14.
결국 청후에게 이끌려 스테이지가 훤희 내다 보이는 룸에 앉게 된 수혼.
수혼을 앉혀놓고 맞은편에 앉는 청후.
곧 웨이터가 주문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는 술과 안주들로 가득찬다.
"먹어."
"근무중입니다."
"내가 너 여기 괜히 데리고 왔는 줄 아냐? 난 빚지고는 못살아.
이만원 값 하는 거니까 마셔."
"..마셔 본 적 없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마셔보면 되겠네."
그렇게 말하곤 한 손으로 턱을 바치고 수혼의 앞에 술병을 몰아준다.
수혼은 술병들을 쳐다보다가 아무생각 없이 시선을 스테이지 쪽으로 돌렸고,
낮익은 누군가를 발결하고는 낮게 숨을 내쉰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청후 쪽으로 고개를 숙여보이곤 빠른 걸음으로 비상구로 향하는 수혼.
"여기서 만나니까 반가운데? 공고 미친개? ..큭큭."
"몸에 상처나면 안되니까 병 들고 설치지만 마라."
다섯 명의 남학생과 그 가운데 서 있는 마영.
"상처 보이면 쪽팔리거든 그 녀석한테. 니들이 더럽게만 안한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서서히 몸을 풀던 마영은 침을 탁 뱉으며 주먹을 내지른다.
그렇게 다섯 명의 학생들이 한 꺼번에 마영을 덮쳤고, 수혼은 뒤에서 한 사람씩 잡아
짧은 터치로 명치만을 공격한다.
그리고 그 다섯 명이 다 쓰러지고 여태까지 수혼을 발견하지 못했던 마영은
뒤에서 나는 인기척에 마지막 남은 멤버인 줄 알고 수혼에게 주먹을 들었다가 멈칫한다.
"..여기서 뭐해 너."
"유흥업소에 출입하시면 안됩니다."
"고지식한 경호원씨. 나 혼자 두고 여기서 뭐하시나."
여지껏 수혼과 마영을 지켜보던 청후.
눈썰미 좋은 그는 이미 그 둘의 관계를 눈치 챈 듯 싶었다.
"..아 나. 여기 오늘 물 왜 이래. 가자 임수혼."
그렇게 말하며 수혼의 손목을 잡고 청후 옆을 지나가려던 마영은,
청후가 수혼의 나머지 손을 잡음으로써 걸음을 멈춘다.
"내 경호원한테 손 좀 떼시지 버릇 없는 일학년?"
"술 쳐 드셨으면 곱게 집에나 들어가시지 영감님?"
알 수 없는 눈빛이 오가고..
이대로 두었다간 일이 커질 것 같은 예감이 든 수혼은 조심히 입을 연다.
"..마영 도련님. 음주는 몸에 해로우니 귀가 하십시요."
"..넌."
"전 청후 도련님과 함께 가야 합니다. 귀가 하시면 부지배인이 정황을
설명드릴 것 입니다. ..그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수혼의 말에 잡고있던 손을 더 꽉 잡는 마영.
"니가 직접 말해. 왜 이청후랑 가는지."
"그건.."
손목이 조여옴에도 아프다 말 한마디 안하고 꿋꿋이 버텨내던 수혼은
차라리 상황 설명을 하는게 더 빠르겠다고 판단하곤 마악 입을 열려고 할 때..
수혼 뒤에 서 있던 청후가 수혼의 목에 팔을 감곤 수혼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인다.
"'난 이청후 도련님이 더 좋아요.' ..복창하고 뛰어 나간다."
그에 마영의 표정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금방이라도 무슨일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수혼은 청후의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마지막으로 낮게 들려오는 청후의 말에 수혼은 동작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시키는대로 하는게 좋을거야. 아.가.씨. 쿡."
.
.
.
"안녕하십니까!"
"야야 천계윤이다 천계윤. 웬일이야. 저 모범미남이 오락실에."
준이치가 간 후에도 오락기 앞에 앉아 숨은 그림 찾기에 여념이 없는 계윤.
후배들이 인사를 해도 주변 여학생들이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으로 손가락만 움직인다.
"이년들아! 빨리 와 빨리! JK에 지금..! 엄마! 저기 천계윤아냐? 아 오늘 대박이다 진짜."
"JK에 뭐."
"이청후하고 천마영떴어! 그 옆에 그..그.. 얼마 전에 전학온 꽃돌이까지!"
온 신경을 오락기 스크린에만 집중하던 계윤은 그 여학생의 말에 손가락을 멈추었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뻐근하다는 듯 목을 두어번 까딱인 후 기지개를 켠다.
"..죽여버리겠다 천마영."
한번만 더 나이트에 가는 것을 목격했을 경우 신변과 뒷 일은 책임지지 않겠다고 한
계윤의 협박에 외곽에 있는 후미진 곳만 다녔던 마영.
계윤은 오락실에서 나와 멀지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JK로 향한다.
.
.
.
"내 경호원한테 그만 수작 걸고 좀 꺼지지 이영감님."
수혼의 어깨에 걸려있던 청후의 팔을 껄렁하게 쳐 내곤 수혼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앞에 세우는 마영.
"경호원. 말해봐. 나랑 갈래, 이 버릇없는 꼬마한테 갈래."
"....."
"뭘 그렇게 사랑스럽게 물어? 이 새끼 남자거든?"
"지금부터 게이하지 뭐. 여자는 질렸거든."
청후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짧게 숨을 내뱉는 마영.
그런 마영과 반대로 청후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이 기대된다는 듯 슬며시
미소지어 보인다.
"..전 지금 회장님의 지시에 따라 청후 도련님의 경호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 꼰대 제대로 귀여운 짓 했네."
"결론만 말해 경호원씨. 이 싸가지 꼬맹이는 머리를 폼으로 달고 다녀서
정확히 말 안하면 알아 쳐 먹질 못하거든."
담배 한개피를 입에 꼬나물고 불을 붙이며 말하는 청후.
그런 청후를 노려보던 마영은 이어지는 수혼의 말에 괜시리 심장 깊숙한 곳이
서늘해짐을 느낀다.
"..이청후 도련님이.. 더..좋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빠르게 나이트 뒤에 있는 주차장으로 걸음하는 수혼.
수혼은 아무도 없이 컴컴하기만 한 주차장 모서리로 가 눈을 꾸욱 감는다.
정말 한없이 비참해진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자꾸 준이치와 돌아가신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진다.
수혼은 주머니에서 희고 가느다란 것을 꺼내어 입에 물곤 조금은 서툴게 불을 붙인다.
컴컴하기만 했던 주차장 안에 하얀 담배 연기가 퍼져나간다.
"콜록..콜록콜록..콜록...하아..하아.."
"천마영이랑 같이 묻히고 싶냐..? ..담배 피는 거 싫다고 했을텐데."
마악 담배를 빨아 들이는데 바로 앞에 나타난 계윤 때문에 놀라 담배 연기를
그대로 다 마셔버린 수혼이다.
"죄송합니다."
어느새 수혼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를 빼 자신의 입에 물곤 옆에 세워져 있는
청후의 바이크를 툭툭 차는 계윤.
"이제 나이트까지 감시하러 오나."
"..감시가 아니고 경호입니다."
"이왕 감시 할거면 잘 해. 여기까지 오게 만들지 말고."
"마영 도련님을 경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전.."
"..여어. 이게 누구신가. 우리 무서운 후배님 아니신가."
양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여유있게 걸어오는 청후.
"말 잘듣네 경호원. 이런 경호원이라면 질릴 일 없겠는데..어때. 나 한번 맡아볼래?"
청후는 그렇게 말하며 계윤을 지나쳐 수혼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에 계윤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지고 수혼은 여전히 포커페이스.
"..손 내리시죠."
"선배한테 명령인가?"
"전 제 물건에 손대는 새끼는 선배고 여자고 가리지 않습니다."
계윤의 말에 조용히 웃어 보이는 청후.
"이 꼬마.. 지금은 내 물건이거든. 자세한 건 니 동생한테 듣고. ..가자."
"네."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만 더 움직여라..?"
"..계윤도련님."
"빨리 타 경호원씨. 지금 안가면 사고칠지도 모르니까."
일부러 화를 누르고 있다는 듯이 바이크에 앉아 요란한 경적을 몇 번이고 울려대는 청후.
수혼의 앞을 막아선 채 가만히 수혼을 주시하는 계윤.
알 수 없는 수혼의 눈빛과 표정.
"..죄송합니다. 제가 없는 이틀 동안은 부지배인과 다른 경호원들이.."
"니가 왜 없는데."
"회장님의 지시입니다. ..그럼."
계윤을 지나쳐 청후의 바이크에 오르는 수혼.
그렇게 수혼과 청후가 탄 바이크가 광음을 내며 주차장을 빠져나가자 여전히
아무런 미동을 보이지 않던 계윤은 주먹을 꽉 쥐곤 낮게 읖조린다.
"..기분이..엿같다."
.
.
.
"필요하신거 있으시면 부르십시요."
"왜 대답 안해."
"그럼 편히 쉬십시요."
그렇게 말하곤 청후의 방에서 나와 자신이 이틀동안 묵게 될 손님방으로 들어가는 수혼.
그리고 그 뒤를 바로 따라 들어가는 청후.
"내 말 씹는건가 경호아가씨?"
"..아닙니다."
"아까 말했 듯이 내 성격은 온화하질 못해. 경호원으로서 니가 맘에 들어.
다른 경호원들처럼 멍청하지도 않고 참견해도 기분 나쁘지가 않아. 보아하니
그 집에선 널 물건취급 하는거 같은데 적어도 여기선.."
"물건은 있던 곳에 그대로 있는 것이 편한 법입니다.
아시다시피 전 특별한 경호원 입니다. 여자의 몸으로 남자인 척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더러 지금 여성의 길을 걸으라고 하면 전 사양할 것 입니다.
이 삶에 익숙해져서 이제 힘들더라도 참을 수 있습니다.
참을 수 없더라도 참아야 하는게 제 직업입니다. 전 천씨가문의 것 입니다."
수혼의 말에 마침표가 붙자 가만히 수혼을 쳐다보고 있던 청후는 보일 듯 말 듯
미세하게 웃어보이며 수혼의 머리를 꾹 누른다.
"긴장 풀어 아가씨. 안건들일테니까."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9.24 12:00
첫댓글 재밌어서 자꾸 기다려집니다~^^
글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9.24 15:34
수혼 때문에 슬퍼서 눈물이 다 나네요 ㅠㅠ
등한번 쓰담쓰담해주고푸네 수혼아~^^
잼잇게잘읽엇습니다~ ㅋ
수혼양 힘내요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