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친구를 사귈 때에 내가 원하는 친구를 사귀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완성된 친구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생각을 함께 하며 천천히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사귐은 ‘함께 하는 그 자체’로 기쁨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평생을 두고 그 벗과 함께 하는 것, 그 여정을 통해 그 벗의 진정한 모습을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귐의 기쁨일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생활 역시 ‘성당에 다니는 것’ 이전에,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여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제 자신을 바라보아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제가 어릴 때에 가졌던 하느님의 모습과, 신학교에 들어갈 때의 하느님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또한 사제가 되어 지금 느끼는 하느님 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차이는 사제로 살아가며 새로운 하느님을 늘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을 알아가는 과정에 기쁨도 있지만 때로는 회의 적인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님을 알아감에 있어 회의보다는 앞으로의 행복을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믿음이 바로 저를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아마 과거 주님을 따른 제자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며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갔을 것이고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볼수록 탄복하고, 더 깊이 빠져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이 처음부터 예수님의 뜻을 100퍼센트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더 드러내 보여주고 싶으셨겠지만, 아직 제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어 주님께서는 “그러나 성령이신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그들에게 희망을 전해주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성령께서 오신다는 것이 우리 신앙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갈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기념하는 유스티노 성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그랬으면 합니다. 지금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할 수 있고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을 온전히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중간에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신앙은 지금 이 순간에 완성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주님을 알아가는 이 길을 행복하게 걸어 갈 수 있도록 이 미사 중에 은총을 청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