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부터 1895년까지의 영토이다.
건국
마다가스카르는 태평양으로 가서 폴리네시안이 되었던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인 말라가시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라가시인은 두가지로 나뉘었다.
기원전부터 오스트로네시아 대이주 때 거주하기 시작한 바짐바인,
15세기부터 스와힐리인(킬와) 등 타민족의 동아프리카로의 확장으로 인해 섬으로 이주하며 피신한 호바인이였다.
딱히 국가가 없었고 부족정 추장사회와 소규모 마을 장도로만 살던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점차 영토가 부족해져 외부에서 이주한 사람들과 기존에 있던 사람들로 나뉘어 살 곳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때 점차 사회가 확장되고 국력이 모이기 시작하며 소왕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이 200년이나 지속되자 분쟁을 막기 위해 두 세력은 정략결혼을 하며 직접적 분쟁을 피했다.
그러다 1550년에서 1570년까지 호바 부족에서 왕위 계승 분쟁이 일어났고 이때 바짐바인이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두 세력이 정확히 양분되었다. 호바인들은 뒤늦게 이주했기에 섬의 척박한 중부 산지에 정착했는데 이 기회로 바짐바인의 영토를 뺏으려 노력했다. 이때 호바인을 규합해 세워진 왕국이 이메리나 왕국이었다.
위기 및 확장
결국 이메리나 왕국과 바짐바인, 호바인은 서로 끝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이때가 1580년대였고 즉 포르투갈 아비스 왕가의 단절로 인한 식민지 통제 약화 및 항해 기술, 항해로 등이 유출되었다. 또한 80년 전쟁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이 포르투갈의 정수를 다 갈취하며 본격적인 식민지 경쟁이 개막하게 된다.
포르투갈이 만든 황금 무역, 상아 무역, 노예 무역은 경쟁자가 발생하고 새로운 참여자가 늘자 급격히 확장되었다.
그 중 이메리나 왕국은 노예 무역으로 세계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계승 분쟁 더 나아가 계승 전쟁 이후 마다가스카르는 이메리나와 바짐바인, 이메리나와 미편입 호바인, 호바인끼리, 바짐바인끼리 서로 좋은 땅을 차지하고 부를 얻기 위해 살육을 벌였다.
이 결과 군사 및 재정을 위해 포로를 수출했고 요루바족 부흥, 콩고의 노예 사냥과 더불어 노예 생산의 핫스팟이 되었다.
산업 혁명 이전까지 유럽은 아프리카에 대해 영토보다는 무역에 초점을 두어 외침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200년이 지나 18세기가 되자 항로 보호, 인도 식민지 보호 및 경쟁, 아시아 무역 활성화로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 변화 및 침투가 가속화되었다.
특히 인도양 무역에서 마다가스카르의 입지는 무시할 수 없었다. 당시 상황에서 가장 갈망한 곳은 바로 프랑스였다.
7년 전쟁으로 소규모 조계지를 제외한 인도의 굵직한 식민지는 영국에 다 뺏겼고 영란전쟁으로 인도 남부 및 인도양 도서부는 영국이 전부 차지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기술과 지식은 모두 갖추었으나 성장과 확장은 정말로 하기 힘든 욕구 불만의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가 7년 전쟁, 미국 독립 전쟁으로 경제마저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새로운 경제 원동력과 기존의 경제 체제 보호에 눈을 붉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아프리카 침투의 계기였다.
1770년부터 1780년 프랑스는 마다가스카르 침투에 대한 사전준비 및 활동을 정말 열심히 하였다. 이의 결과 및 부산물로서 코모로 제도와 레위니옹 섬이었다. 마다가스카르의 모든 세력도 이를 인지하게 되며 위기감에 빠졌다.
하지만 이때 마다가스카르 내에서 가장 세력이 컸고 중앙집권이 그나마 된 이메리나 왕국에 외부 세력이 접촉했다.
바로 영국이었다. 영국은 이메리나에 군사 사절단을 보내 선진 군사 기술과 무기를 조달하고 훈련시켰다. 이메리나는 이 기술과 무기를 통해 마다가스카르 전역에 정복 전쟁을 벌였고 남서부를 제외하고 직할지 및 속국으로 삼게 되었다.
프랑스는 마다가스카르의 세력 규합과 영국의 독립 보장 및 방해로 눈 앞에서 국가 사업이 실패했다. 그리고 결국 프랑스는 혁명의 화마에 빠지게 되었다.
멸망
1787년 마다가스카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후 1840년대에는 마다가스카르를 완전히 직할지로서 통일했다. 그러나 대가 없는 지원은 없다.
1799년부터 1812년까지의 대프랑스 전쟁 및 혁명기가 지나고 빈체제 하의 유럽이 탄생하자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은 극에 달하였다.
이메리나 왕국에 대해 지원을 해주었고 이권을 뺏어가기 시작한 영국과 마다가스카르에 대한 정복을 잊지 못한 프랑스가 마다가스카르를 차지하기 위해 간섭과 약화를 시작했다.
수많은 피식민지 국가와 같이(조선 포함) 쇄국 정책도 하고 열강들을 끌어들여 근대화를 이루고자 했다. 끝은 알다시피 이권 및 영토 일부를 영국에 뜯기고 정치 및 경제가 프랑스에 먹혔다.
결국 프랑스가 이기려하자 이메리나 왕국의 여왕이 성공회 개종까지 시도했다. 근데 베를린 회담으로 노력도 무색하게 그냥 프랑스령이 되었다. 마지막 왕이 자식까지 없어서 가문까지 사라졌다.
첫댓글 태평양은 도대체 어떻게 간건지 신기
이동하려고 문명의 이기도 버리고 갔으니깐유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려 애썼으나 결국은 프랑스에 의해 몰락하고 말았군요...
지구 반대편까지 자기네들 세력 투사하고 세력다툼할 수 있다는게
참 신기;;; 17세기 18세기 이런 옛날에...
그야 돈이 되니깐유
지독한 전쟁 끝 식민지...허망하네요..
프랑스:너네가 노력해봤자 식민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