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희년 대축일 미사
2026년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선종한 지 8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하고 겸손한 삶으로 복음을 따르며, 모든 이를 형제자매로 맞이하고 평화를 전했습니다.
선종 800주년을 맞아 거행되는 이번 희년 대축일 미사에서는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신앙을 되새기고, 그가 전한 사랑과 평화를 우리 삶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일시: 2026년 10월 4일 오전 10시
장소: 동성고등학교 대강당(스테파노홀)
주례: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서울대교구장)
주관: 프란치스코의 한국 가족 봉사자 협의회
https://www.youtube.com/live/HfPDIY6yCsY?si=RHUebSM3yS-4Waut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교님의 복음서 강복이 있겠습니다. 모두 고개를 숙여 주십시오.
모두 앉으십시오. (정순택) 주교님의 강론이 있겠습니다.
찬미예수님, 반갑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부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기념 미사를 함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00년 전 1226년 10월 초가을 어느 저녁, 아마 10월 3일 부근이 아닌가 싶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의 포르치운쿨라라는 곳의 거친 흙바닥 위에 누워 지상의 마지막 숨을 거두고 계셨습니다. 그의 손과 발, 또 옆구리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상처, 오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오랜 병고와 육체적인 고통으로 쇠약해진 몸이었지만, 그분의 마음은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알았을 때, 두 손을 들고 기쁘게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어서 오시게, 나의 자매인 죽음이여.”
세상은 죽음을 비참한 종말이요 상실과 공포의 순간으로 생각하지만, 프란치스코 성인은 죽음을 원수나 형벌이 아니라 다정하게 자매라 불렀습니다. 오늘 복음과 성인의 삶을 통해 자매인 죽음의 깊은 신비와, 성인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시는 메시지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자들은 스스로의 힘과 이성으로 세상을 쥐고 흔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모든 것을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하늘의 신비를 선물로 받아들이는 철부지들, 곧 가난하고 겸손한 이들은 자신이 무력하고 유약한 존재임을 알고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모든 것을 맡기는 작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프란치스코 그분이야말로 바로 복음이 말하는 철부지라고 하겠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부와 명예를 꿈꾸기도 했었지만, 어느 날 자신이 가장 혐오하던 나병 환자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면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가문과 재산과 세속적인 명예를 내려놓고, 자신을 작은 형제, 곧 가장 낮은 자로 낮추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낮추자, 세상의 지혜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태양과 달과 별, 바람과 물과 땅이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며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낮춘 철부지에게 창조주의 신비가 열린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육신의 죽음을 자매라고 일컬으며 따뜻하고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이미 살아 있는 동안 수없이 많은 죽는 법, 곧 날마다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비워내는 거룩한 죽음을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인이 임종을 앞두고 바친 「태양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주님, 우리 육신의 죽음인 자매를 통하여 찬미받으소서.”
그리고 이어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은 복되다고 노래합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죽음은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자기중심적인 욕망과 소유욕을 내려놓는 첫 번째 죽음을 날마다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참된 가난은 단순히 가진 것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움켜쥐고 지배하려는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난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께 받은 선물임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이 가난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은 무엇입니까?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망, 남보다 더 높아져야 한다는 집착, 소유와 성공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심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러한 짐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온유하고 겸손한 멍에를 선택했습니다. 병고와 시련조차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매로 받아들이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자아에 날마다 죽었기 때문에, 마지막 육신의 죽음도 소멸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원한 품으로 건너가는 평화의 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죽음과 한계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끝없는 소비와 성장을 추구합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주인으로 여기며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한 결과, 우리의 공동의 집인 지구는 깊은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내적인 광야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외적인 광야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 내면의 탐욕과 공허가 자연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생태 위기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위기이며 영적인 위기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피조물과의 관계가 함께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부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태적 회심입니다. 자연을 단순히 이용할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 바라보는 눈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소비와 편리함을 위해 무한히 사용하기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에너지와 자원을 아끼며, 가난한 이들과 신음하는 지구의 고통에 함께 마음을 여는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불렀던 것은 단순한 시적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가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이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길은 무상성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아무 대가 없이 내어주십니다. 우리도 받은 사랑을 계산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내어줄 때에 하느님의 사랑을 닮아갑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렇게 권고합니다.
“형제가 건강하여 보답해 줄 수 있을 때 그 형제를 사랑하는 만큼, 형제가 앓고 있어 보답을 받을 수 없을 때에도 그만큼 형제를 사랑하는 종은 복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만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친절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복음의 사랑은 계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보답할 수 없는 사람, 힘없는 사람,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에게도 같은 사랑을 건네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중심에는 언제나 가장 아프고 가장 미소한 분들이 있어야 합니다. 나병 환자에게 다가갔던 프란치스코처럼 우리도 사회가 외면하는 이들의 자리로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한 사람도 버려지지 않고 가장 미소한 이에게까지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의 요청일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건너가는 ‘트란시투스’, 곧 거룩한 건너감이었습니다. 성인의 삶을 바라보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죽음을 잘 맞이하는 삶은 죽음만을 준비하는 삶이 아니라,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내가 가진 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며, 가장 미소한 이들과 피조물들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을 넘어 생명으로 건너가는 준비일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는 세상의 눈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가난한 사람이었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모든 피조물과 형제자매가 된 가장 부유한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도 죽음을 원수가 아니라 자매로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사부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기념하며 우리도 복음이 말하는 참된 철부지가 됩시다. 주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멍에를 메고 날마다 참된 가난의 길을 걸어갑시다. 탐욕과 이기심에 기꺼이 죽고, 고통받는 이웃과 신음하는 피조물을 무상성의 사랑으로 품어 줍시다. 그리하여 언젠가 우리도 지상 여정의 마지막 날을 맞이할 때,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으로 자매인 죽음을 맞아들이며, 주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생명의 잔치로 건너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평화와 선을 가득히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신자들의 기도>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원천이신 주님 성다미아노 십자가 앞에서 참된 평화를 바라본 성 프란치스코처럼 교회가 이 세상에 모든 장벽을 허무는 화해와 평화의 샘이 되게 하시고 가난과 사랑의 실천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충실히 선포하게 하소서.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류의 목자이신 주님 전쟁과 갈등 몰이해로 고통받는이 시대를 굽어 살피시어 위정자들과 온 세상 사람들에게 위장을 해제하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하여 세상을 갈라놓은 담을 허물고 대화와 화해의 다리를 놓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를 일구는 증거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창조질서 보전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만물의 주님이신 하느님, 피조물을 형제와 자매로 부르며 사랑했던 성 프란치스코의 순박한 마음을 기억하며 기후위기에 처한 지구 공동체의 아픔을 헤아리게 하소서. 또한 모두가 피조물 보호와 생명 존중의 길을 앞장서 실천하며 창조의 아름다움을 보존하게 하소서.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프란치스칸 가족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성프란치스코의 선종 800주년을 기념하는 모든 프란치스칸 가족을 축복하시어 저희가 사부 프란치스코의 가난과 평화의 정신을 오늘에 살아내며 세상 속에서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도록 은총으로 인도해 주소서.
주님 저희 기도를 들어주소서.
숨은 것도 살펴 주시는 사랑의 주님.
저희가 마음을 모아 바치는 이 기도들과 미처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각자의 원의도 함께 들어 주소서.
이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