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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의 도전
삼상 17:1-11
1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2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전열을 벌였으니
3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삼상 17:1-11 / [다윗과 골리앗] 블레셋 족속들이 자기들의 전병력을 유다 지파의 소고 지역에 집결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소고와 아세가 사이에 있는 에베스담밈 근처에 진을 쳤다. 2) 사울도 이스라엘 군인들을 집결시켜 베들레헴 서쪽 2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느티나무 골짜기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이 느티나무 골짜기의 언덕으로 올라가 싸울 준비를 하자 3) 블레셋 군인들도 골짜기 건너편의 언덕으로 올라와 대치하였다. 4) 이때 블레셋 진영에서 어떤 용사가 홀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걸어 나왔다. 그의 이름은 골리앗인데, 블레셋 족속의 도성 가드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그의 키는 여섯 규빗하고도 한 뼘이 더 컸는데, 거의 3미터에 가까운 키였다. 5) 그는 순전히 놋으로 만든 투구와 비늘 갑옷과 각반으로 무장을 하였는데, 그가 입은 갑옷의 무게만도 5천 세겔로서 60킬로그램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의 등에는 놋으로 만든 투창이 꽂혀 있었고 7) 손에는 자루가 베틀의 용두머리만큼 굵은 창이 들려 있었는데, 그 창날은 600세겔이나 되는 쇠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7킬로그램에 가까운 무게였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호위병 한 사람이 큰 방패를 들고 걸어 나왔다. 8) 이렇게 무장한 골리앗이 블레셋 진영에서 나와 서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소리쳤다. `너희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오면 어쩌겠다는 거냐? 나는 블레셋 족속의 장수요, 너희는 사울의 종들이 아니냐? 너희들 중에 나와 싸울 만한 사람을 한 명만 골라서 내게로 보내라! 9) 그가 능히 싸워서 나를 쳐죽인다면 우리가 모두 종이 되어 너희를 섬기겠다. 그러나 만일 내가 승리하여 그를 쳐죽인다면 너희가 모두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야할 것이다.' 10) 이스라엘편에서 아무런 대답도 없자, 그 블레셋 사람이 또 한 번 소리쳤다. `이스라엘 족속들아!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어서 나와 싸울 자를 내보내라!' 11)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놀라서 몹시 떨기만 하였다.
블레셋의 대표 장수로 나온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합니다. 이에 겁먹은 사울과 그의 병사들의 초라한 모습이 서로 대조됩니다.
블레셋의 침공과 이스라엘의 대치(1-2) 블레셋은 팔레스타인 남부지역에 살면서 이스라엘과 자주 전쟁을 벌였던 민족입니다. 이들은 가드,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글론의 다섯 성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이들을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신 7:1-2). 하지만 불순종하여 그들을 남겨 두어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화근이 되었습니다(삿 2:1-3). 이때에도 블레셋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매우 피곤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입니다. 이번 공격은 블레셋이 과거 믹마스 전투에서 패전한(삼상 14:31)것에 대한 보복이었고, 한편 사울 왕이 악신으로 고통 받고 있어 전력이 약해진(삼상 16:14) 틈을 이용한 것입니다.
에베스담밈에서 만난 이스라엘과 블레셋(3) 소고는 베들레헴 서쪽이며 엘라 골짜기의 남쪽에 있는 요충지로서 ‘가시가 많은 곳’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곳은 유다 산지와 블레셋 평원에 위치한 요새 도시 중 하나입니다(수 15:35). 그리고 아세가는 엘라 골짜기의 북쪽에 있었습니다. 블레셋 군이 유다에 속한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 이미 이스라엘을 기선 제압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베들레헴까지 14km떨어진 엘라 골짜기는 그 폭이 400m 정도 되는데, 이스라엘은 동쪽 고지를, 블레셋은 서쪽고지를 점거하여 피의 경계선이라는 뜻인 에베스담밈에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의 도전과 이스라엘의 두려움(4-11) 골리앗은 블레셋의 다섯 성읍중의 하나인 가드 사람입니다. 가드(Gath)는 아세가 서쪽 약 8.9km 지점으로, 이 지역에는 거인족인 아낙 족속(Anakim)이 섞여 살고 있었으며(수 11:22), 골리앗도 거인족의 후예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키는 6규빗 한 뼘(약 3m)이며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갑옷이 5천 세겔(약 57kg),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날은 철 6백 세겔(약 6.8kg)로 무장하여 이스라엘의 군대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나”(8)는 말을 통해 도발합니다. 이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울의 종이라는 의미가 담긴 모욕적 언사입니다. 이에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고 맙니다.
적 용 : 하나님을 떠난 사울, 그 틈을 이용하여 침공하는 블레셋을 보면서 오늘 우리의 영적 삶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는, 세상이 아무리 높고 웅장하며, 두렵고 무섭다해도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벗어나 혼자 있을 때, 이전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던 세상의 작은 일에서도 공포와 불안이 엄습합니다. 이제껏 자신의 귀를 쟁쟁하게 울리던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방패시라” 는 성경구절은 그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벗어나 혼자 있을 때..
호크마 주석
=====17:1
블레셋 사람들이...싸우고자 하여 - 블레셋 사람들의 이같은 전의(戰意)는 당시 악신으로 고통받던(16:14) 사울의 통치력 약화를 기화로, 믹마스 전투에세의 패전(14:31)을 설욕키 위한 것이었다. 유다에 속한 소고 - '소고'(Shochoh)는 '가시가 많은 곳'이란 의미이다. 이곳은 유다 산지와 블레셋 평원, 곧 세펠라 지역에 위치한 요새 도시 중 하나로서(수 15:35), 오늘날 와디숨트(Wady Sumt)지역에 위치한 '슈웨이케'(Shuweikeh)로 추정된다(Keil, Smith). 베들레헴 서쪽 약 22.5km, 아세가 남동쪽 약 4.8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 블레셋 군이 유다에 속한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이스라엘에 대해 기선을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세가 - '파헤친 땅'이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아얄론 골짜기(수 10:12) 남부의 견고한 도시로서, 해발 약 120m 가량이다. 수 10:10 주석 참조. 에베스담밈에 진치매 - '에베스담밈'(Ephes-dammim)은 '피의 경계선'이란 의미이다. 이같은 지명은 그곳에서의 잦은 전투로 많은 피가 흘려졌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이곳은 소고(슈웨이케) 북동쪽 약 2.5km 지점으로 현재의 '다뭄'(Damum)으로 추정된다(Keil, Fay). 한편 대상 11:13에는 '바스담밈'으로 표기되어 있다.
=====17:2
엘라 골짜기에 진 치고 - '엘라 골짜기'(the vally of Elah)는 '상수리 나무의 골짜기'란 의미이다. 이곳은 예루살렘 서남쪽 약 22.5km에 위치한 오늘날의 '와디 에스 상트'(Wadies Sant)로 추정된다. 당시 그 지역 내에는 나무가 무성하였고, 그 골짜기 밑바닥에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을 때 사용했을 듯싶은 조그만 돌들이 지금도 깔려있다고 한다. 또한 이 골짜기는 '소고'의 북쪽에서 동서로 가로질러 있다. 한편 이곳은 여름철만 빼고는 항상 골짜기에 물이 흘렀으므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이 전투는 물이 말랐을 여름철에 벌어졌음이 분명하다(Hertzberg).
항오를 벌였으니 - '항오(行伍를 벌이다'(* , 아라크)는 '상대를 엄습하다', '일렬로 정렬하다'란 의미이다(4:2;욥 6:4). 여기서는 블레셋에 대한 이스라엘의 방어적 자세를 가리킨다.
=====17:3
본절은 블레셋 족속이 자신들의 본진이 있는 '에베스담밈'<2절>을 떠나 이스라엘이 진을 치고 있던 '엘라 골짜기'로 진격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이때 양군은 골짜기를 경계로 낮에는 양편 언덕에 대열을 이뤄 길게 늘어서서 전투 내세를 취하다가, 밤에는 자신들의 장막으로 돌아가기를 계속하고 있었을 것이다(Hertzberg).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더라 - 여기의 '골짜기'(* , 가이)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일반적 의미의 골짜기(* , 에멕)와는 전혀 다른, 좁고 급격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협곡(峽谷)을 뜻한다(Conder). 바로 이같은 지형적 요인 때문에,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마주보면서도 쉽사리 전면전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17:4
싸움을 돋우는 자(* , 아쉬 하베나임) - 문자적으로는 '둘 사이에 있는 사람'(a man between the two)이란 뜻이다. 이것은 결국 단신으로 싸워 단번에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하기 위해 두 군대 사이에 개입하는 중간사람(middle-man)이란 뜻으로, 곧 선봉장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같이 전군(全軍)을 대표하여 선봉장이 상대방의 선봉장과 전투를 하는 방식은 성경 다른 곳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이같은 전투 방식은 헬라 민족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바로 이 블레셋 족속들이 헬라권에서 이민 온 민족이라는 사실은 골리앗의 이같은 전투 형태를 넉넉히 이해케 해준다. 그 이름은 골리앗 - '골리앗'(Goliath)이란 이름이 갖는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까닭은 이 사람이 비셈계 인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가드 사람 - '가드'(Gath)는 아세가 서쪽 약 8.9km 지점으로, 블레셋 5대 도시 중 하나이다(5;80. 그런데 이 지역에는 거인족인 아낙 족속(Anakim)이 섞여 살고 있었다(수 11:22). 그러므로 분명 골리앗도 이 거인족의 후예일 것이다.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 고대의 측략법에 근거하여 한 규빗(Cubit)을 약 45cm 정도로, 한뼘(Span)을 약 13cm 정도로 본다면, 골리앗의 키는 약 283cm 정도로 추정될 수 있다. 한편 NEB는 274cm로 환산하였고, NIV와 Living bible은 '9피트 남짓'(over nine feet, 약 270cm 남짓)으로 보았다. 아무튼 골리앗은 270cm 이상으로, 보통 사람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장대한 거구였음이 분명하다.
=====17:5
머리에는 놋투구 - 여기서 '놋투구'(* , 코바)는 이 단어의 첫 철자가 본절에서는 '카프'(* )로, 반면 38절에서는 '코프'(* )로 각기 다르다는 점에서, 헷 족속이나 아랍 민족으로부터 수입한 것이 듯하다(Krinetzki).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 '어린갑'(* , 카스케세트)은 천 위에 비늘 모양의 놋이나, 철판 조각을 다닥 다닥 붙여서 만든 갑옷(coat of mail, KJV; coat of scale armor of bronze, NIV)으로(Aquila), 고대의 전투 때에 왕이나 군장에 의해 주로 착용되곤 하였다(Layard).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 - 한 세겔(Shekel)은 약 11.5g이므로, '오천 세겔'은 약 57.5kg이다.
=====17:6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 어린갑에 의해서는 허리나 허벅다리 부분까지도 보호 되었다. 그러므로 이 놋경갑은 다리 부분을 보호하는 장비임이 분명하다.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 '놋단창'(* . 키돈)은 어깨의 뒷 부분에 차는 창을 가리킨다. 혹자는 이것을 방패라고 주장하나(LXX, Vulgate, the Syriac) (1) 고대에 방패는 대개 병기 드는 자가 별도로 갖고 다녔으며(7절) (2) 견고한 갑옷에 의해서 등 부분도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는 점(Josephus) 등에서, 여기 '놋단창'은 방어용 무기인 방패라기 보다는 오히려 창과 같은 공격용 무기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본 단어가 단수라는 점에서, 이것은 손으로 던져 적을 살상케 하는 단검류는 아닌 듯하다.
=====17:7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 이것은 멀리 던지기 위해 창자루에 고리가 달린 가죽끈을 감아 놓은 창의 모양에 대한 표현이다(Yadin). 즉 창자루에 긴 끈이 달려있었기 때문에 '베틀채'(weaver's beam, KJV; weaver's rod, NIV) 같고'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자루'(staff, KJV; shaft, NIV)에 해당하는 '헤츠'(* )는 케리(Keri)에 따라 '에츠'(* )로 고여 읽어야 한다(삼하 21:19;대상 20:5). 창 날은 철 육백 세겔 - 600 세겔은 약 7kg이다. 따라서 이것은 골리앗의 창이 엄청나게 컸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4-7절에 묘사된 바 블레셋 군대의 선봉장 골리앗(Goliath)은 그 거대한 신장이나 육중한 무기등이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조차 없을 만큼 크고 강했다. 마치 우뚝 솟은 난공 불락의 요새와 전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17:8
본절에는 골리앗이 자신을 블레셋의 대표로 자처하면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자신과 싸울 대표를 뽑아 보내라고 호통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골리앗이 이처럼 일대일 결투를 신청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협곡을 경계로 서로 대치했던 지형 형편상 전면 선제 공격이 곤란했으며 (2) 골리앗이 자신의 힘을 과신하여 이스라엘의 그 누구라도 쉽사리 이길 수 있으리라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사실 이같은 일대일 결투는 고대 이방의 전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이 경우 선봉장의 승리는 곧 전체의 승리로 간주되어, 패배한 측은 상대국에게 패전국으로서의 모든 의무를 다해야 했다(Klein, 9절). 그가 서서 - 골리앗은 그때 언덕위에 있던 자신의 진을 나와 골짜기의 중간쯤에 우뚝 버티고 서있었을 것이다. 어찌하여...항오를 벌였느냐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나와 진을 치고, 골짜기 언덕에 대열을 이루고 있는 사실을 가리킨다. 나는 블레셋 사람...너희는 사울의 신복 - 여기서 '나는 블레셋 사람'이란 말은 골리앗 자신이 블레셋 군대의 힘을 대표하는 자란 뜻이다(Keil). 그리고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란 말은 이스라엘 민족이 중앙 집권적 군주 사울에 의해 철저히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롱하는 말이다. 이것은 여기의 '신복'(* , 아바림)이란 단어가 '종들' 혹은 '노예들'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로써도 잘 알 수 있다. 아무튼 골리앗은 이같은 언급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블레셋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흥분케 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한것이다.
=====17:9
종이 되어...섬길 것이니라 - 본절에 언급된 골리앗의 이 제안은, 결국 그가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볼 때(52-54절), 다만 이스라엘을 공포 분위기 속으로 빠뜨리기 위한 공갈 협박용이었음이 확실하다(10, 11절).
=====17:10
내가...모욕하였으니 - 이것은 골리앗이 (1)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울의 노예 혹은 종이라고 깔보았고(8절), (2) 또한 이스라엘은 겁장이들이므로 블레셋의 종노릇이나 해야 할 무력한 민족이라고 조롱했던 사실(9절)을 가리킨다.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 골리앗이 이스라엘에게 자신과 맞서 싸울 용사를 요구만 하고 이스라엘 진으로 접근해 갈 수 없었던 이유는 (1)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진이 가파른 산 위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2) 또한 그는 중무장을 하여 몸이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17:11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 여기서 '놀라'(* , 하타트)는 원래 '파괴되다', '부서지다'란 의미로서, 극단의 공포심을 표현할때 사용되는 단어이다(왕하 19:26;사 30:31;렘 8:9). 그리고 '두려워하니라'(* , 야레)는 '경외하다', '엄위하다'란 의미로서, 어떠한 유.무형의 강력한 힘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완전히 압도당하는 것을 가리킨다(창 18:15;19:30;신 5:5;수 4:4;시 119:120). 이처럼 이스라엘은 사울 왕으로부터 전체 병사에 이르기까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겁을 집어먹고 기가 질려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는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총지휘자 사울에게서 여호와의 신이 떠나 버린 필연적 결과였다(F. W. Krummacher).
< 설 교 >
영적 침체를 경계해야 합니다
삼상 17:1-11 / 김충식목사(서울연합교회)
다윗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삼상 18장을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요나단과 같은 좋은 친구를 붙여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줄 수 있을 정도의 친구입니다. 또한 다윗으로 하여금 군대의 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청년의 때에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명예의 복을 받았습니다. 전쟁에 나가서 승전하고 들어올 때에 여인들이 노래하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삼상 18:7)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이스라엘 국민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 가지를 더한다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지혜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모든 면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이 축복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끝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다윗에게 주신 축복의 언약을 지키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원인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인간적으로 보면 흠과 결격사유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다윗을 끝까지 사랑하신 것은 다윗이 참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무슨 일을 하든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매듭을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과 영성을 잃어버린 적이 없으며, 근본적으로 하나님 신앙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신앙의 지조를 지킨 사람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간사하고 변덕이 심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지조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저와 함께 우리 교회를 시작하신 분들이 몇 분 안 남으셨습니다만 그 분들은 교인들로부터 존경받고 대우받으며 주인의식을 가지고 믿음생활을 하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킨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런 사람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다윗과 비교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사울 왕입니다. 사울왕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울 왕이나 다윗 왕은 모두 대단한 가문 출신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셨고 선택하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일시에 왕으로 세움 받았습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힘과 용기를 주셔서 주변에 있는 나라와의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 때부터 왕조 초기까지 늘 블레셋에 눌려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들어서면서 대세가 역전되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군사적인 또는 정치적인 우위를 점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울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는 매우 겸손했던 사람입니다. 왕으로 세우려 할 때에 짐 보따리 사이에 숨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던 사람입니다. 성경은 사울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도 소개합니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과 달리 왕이 된 후에 인본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왕국을 이루고 나라가 튼튼해지니 자신을 세운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을 멀리 하고,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신이 직접 드리는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말렉 민족을 붙여주실 때 우양을 비롯한 모든 사람을 죽이라고 하셨음에도 자기 마음대로 왕과 좋은 우양을 살려주는 불순종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인 것 같습니다. 항상 하나님이 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변합니다. 인간이 변하면 하나님은 축복하고 싶으셔도 축복하실 수 없으며, 결국은 그 사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끝까지 성공했던 비결이 신앙의 지조였다면 사울 왕이 추락하고 실패한 원인은 영적 침체입니다. 영적 생활의 차이가 사울과 다윗 인생을 가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항상 영적 침체를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침체하면 모든 것을 실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본문은 사울 왕이 영적으로 침체할 때에 어떤 일이 주어졌는가? 하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울 왕의 영적 침체로 인해 주어진 결과를 살펴보면서 영적인 분발을 하는 계기로 삼으려 합니다.
1. 영적 침체에 빠지면 사탄이 공격할 수 있는 결정적 빌미를 제공합니다.
본문 17:1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침체할 때에 블레셋이 공격해왔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사무엘과 사울 왕이 등장하므로 미스바와 막미스에서 벌인 두 번의 전투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블레셋은 감히 이스라엘을 넘볼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고 다시 공격해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침체한 이스라엘은 급격한 국력의 약화를 가져 왔습니다. 우선 지도력 공백이 생겼습니다. 사울왕은 정신질환이라는 악신이 들렸고, 하나님의 사람을 멀리하는 사람이 되었고, 방향 감각을 잃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틈새를 노려 공격한 것입니다. 블레셋의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도 처음에는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두 번의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이번에도 이길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은 어려웠습니다.
사탄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상시에는 움츠리고 있다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침체하는 때를 노립니다. 마귀는 결코 함부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이 강하면 절대 건드리지 못합니다. 믿음이 떨어지고 낙심하고 나태해질 때에 그 틈을 노립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떨어지면 사탄의 결정적인 공격의 빌미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침체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삶의 리듬이 깨집니다. 하루 하루 사는 것이 지겹게 느껴지며, 삶의 즐거움을 잃게 됩니다.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고, 기도를 해도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 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잊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거나, 그냥 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침체하면 마귀가 공격합니다. 그런데 마귀가 공격할 때에 영적으로 충만하면 오히려 우리가 마귀의 틈새를 노려서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실상 마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물리칠 수 있고, 이길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해서는 성공 못합니다. 그러나 틈새시장을 노려서 공격하는 사람은 식당을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사업을 하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마귀와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마귀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성경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자리에 기독교를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보는 사람에게 ‘당신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모두 믿으십니까?’ 했습니다. 성경을 읽던 분이 ‘예,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잖아요’ ‘그렇다면 요나가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는 것도 믿으십니까?’ ‘당연히 믿죠’ 하니 ‘사람이 고래 뱃속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을 믿어요?’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던 사람이 ‘예, 제가 확실히는 모르지만 이 다음에 천국에 가서 요나를 만나면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요나가 천국을 갔는지 지옥을 갔는지 어떻게 아세요? 지옥 갔으면 어떻게 할꺼예요?’ 합니다. 그러자 성경 읽던 분이 가만히 있다가 ‘예, 그때는 당신이 가서 물어보면 되겠네요’ 했다고 합니다.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더 할 말이 없어지고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마귀의 공격을 이겨낸 것입니다. 마귀도 분명히 틈새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마귀에게 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군사라는 칭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물리치고 이길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4:7을 보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말씀하며, 고린도전서 10:13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고 피할 수 있는 시험 외에는 다른 시험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마귀가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사탄을 물리 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영적침체에 빠지면 사탄의 세력이 우리보다 강해보입니다.
본문 4절-7절까지는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골리앗을 누구도 감히 상대할 수 없는 거인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 가까이 되며, 그가 입은 갑옷의 무게가 57kg이며, 창날 무게만도 7kg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전쟁에 나갔다가 골리앗을 보는 순간 주눅 들고 기가 질렸습니다. 더우기 골리앗이 큰 소리로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노하면서도 어떻게 할지 모르고 쩔쩔 매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침체하면 세상이 커 보이고, 사람이 커 보이고, 마귀가 커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대한 거인인 골리앗과 블레셋은 다윗과 이스라엘의 군사에 의해 완전히 패하였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겉으로 보기엔 강한 것 같고, 힘이 센 것 같고, 커 보이는 것 같지만 우리가 영적인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동물들이 서로 싸울 때 상대에게 겁을 주려고 자기의 몸을 크게 부풀립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도 우리 앞에서 몸집을 부풀리는데 절대로 그 위협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침체하면 마귀가 그렇게 커 보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좋은 어느 아가씨가 결혼했는데 불신자 가정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시댁이 큰 부자이고, 신분이 높은 집안인데다, 철저히 불교를 신앙하는 집안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신앙을 지키리라, 그리고 시댁을 전도하리라’ 했지만 시댁이 골리앗처럼 커 보이기에 기가 죽어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합니다. 시어머니가 ‘너 이번 주일날 나하고 절에 가야겠다’하면 아무 대꾸도 못하고 끌려가는 날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시댁이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더우기 시댁의 도움과 유산까지를 생각하면 현실적이 되어서 신앙생활하는 것을 엄두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작은 믿음의 양심이 있기에 시댁 부모들 모르게 시간이 되면 교회를 나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본인의 영혼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타협하고 야합할 때에 하는 일도 안 되고, 가정 구원도 못시키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과감하게 ‘나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해야겠습니다. 쫓겨나도 믿음만은 지켜야겠습니다’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의 믿음도 지켜주시고, 그 가정도 구원해 주시고,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골리앗이 커 보입니까? 믿음보다 더 큰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크신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영적으로 침체되면 마귀는 커 보일 수밖에 없지만, 영적으로 충만하면 골리앗과 같은 사탄이 우리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3. 영적침체에 빠지면 세상과 사탄이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 하니라”고 합니다. 골리앗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이 떨어지면 세상의 말이 두렵고, 마귀가 두렵습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귀를 주셨습니다. 하나는 육체의 귀이며, 또 하나는 영혼의 귀입니다. 육체의 귀로는 세상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귀로 모든 소리를 듣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소리는 못 듣습니다. 만일 가만히 앉아서 온 세상과 우주에서 나는 소리를 모두 듣는다면 정신병자가 될 것입니다. 못 듣기에 살 수 있고, 우리의 귀가 제한되니 행복한 것입니다. 들을 것만 들을 수 있는 육체의 귀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적인 귀도 주셨습니다. 영적인 귀도 두 가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는 마귀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침체하면, 하나님의 음성보다는 마귀의 말이 들립니다. 어느 때는 달콤하고 유혹하는 말을 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위협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해주시며, 어느 때는 책망을 하십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침체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는 막히고 마귀의 소리만 들립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리와 마귀의 소리는 차단되고 하나님의 음성만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에덴동산이 한국에 있었다면 인류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한국 여자라면 뱀이 와서 하와를 유혹할 때에 말을 듣기도 전에 먼저 뱀을 잡아 뱀탕을 끓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인류가 타락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하와가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결코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 남자가 여자 말을 듣는 것 보았습니까?’하는 것이 답입니다. 하와가 아무리 선악과를 먹으라고 하더라도 아담이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도 한국 사람처럼 믿으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귀가 달콤하게 우리를 유혹하고, 때로는 큰소리로 위협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한국인처럼 무장만하면 ‘사탄아 오너라, 너의 말을 듣지 않을뿐더러 탕을 끓여 먹을 것이다’ 하면서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끈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면 세상이나 마귀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마귀와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커도 일시적입니다. 권세가 아무리 좋아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믿음도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침체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열심히 깨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상고하고,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서 52:1을 보면 “깰지어다 깰지어다 내 힘을 입을 지어다” 마태복음 26:41에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고린도전서 16:13에서는 “깨어 믿음에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말씀합니다. 영적 침체에 빠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4:16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의 육신은 쇠하여 가지만 영혼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 속에 있는 두려움을 몰아내자
삼상 17장 01절 / 이근수목사
서론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염려와 두려움을 가지고 삽니다.
내가, 대학 수학 능력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 우리 애가 괜찮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까? 내가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 우리 애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 할 수 있을까? 결혼한 애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할 텐.. 속이 종종 쓰린데 혹시 위암은 아닐까? 혈압이 높은데 쓰러져 중풍이 되면 어쩌나? 당뇨 합병증이 무섭다는데 괜찮을까? 왜 하필 내가 암일까? 잘 치료 될까? 몇 년이나 더 살까? 직장일과 사업이 잘 되야 할 텐데.. 교회건축에 온 성도가 한 마음으로 참여해야 하는데 과연 창립 50주년에 완공할 수 있을까?
염려와 두려움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내 속에 있는 두려움 때문에 고민하고, 잠을 못자고, 고민하며 먹지도 못하고 기도합니다. 내 힘으로, 내 맘대로 척척‘할 수 없고, 되지 않는 일’ 때문에 사람들은 고민합니다. 그러면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전폭적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전폭적인 믿음이 있으면 내 안에 있는 염려와 두려움이 해결됩니다.
본문
이스라엘 왕 사울의 두려움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염려와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 그것은 불레셋의 침략으로 전쟁이 난 것입니다. 키가 2m 90cm나 되는[6규빗*45cm=270cm+한 뼘(20cm)4절]의 거구 골리앗과 그의 무장을 보고 사울과 이스라엘 군인들은 기가 팍 죽었습니다. 골리앗은 머리에 놋 투구를 썼고, 57kg 이나 되는 갑옷을 입었고, 어깨에는 놋 단창을 메었고, 정강이에는 놋쇠를 대었고, 그의 손에는 7kg의 날을 가진 대창을 들었고, 그의 앞에는 큰 방패를 든 전담 군인이 서 있었습니다.
골리앗의 선전포고
이 호전적이고 맹수 같은 싸움꾼 골리앗이 양측 대표가 한 명씩 나와 1:1로 싸워서 전쟁을 단판에 끝내자고 했습니다. 지는 편은 종이 되자고 했습니다. 마땅히 사울 왕이나 용맹한 장군이 나가 싸워야 하는데 모두 두려워 떨고만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에는 그와 맞서서 싸울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무엇입니까? 죽을 까봐 겁을 내는 것입니다. 망할 까봐 겁을 내는 것입니다. 왕과 군인들은 죽을 까봐 겁을 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나라가 망할 판입니다. 골리앗의 심리전술에 말려 사울과 군인들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5-7]. 두려움은 왕과 군인들을 가련하게 만들었습니다. 두려움은 아무것도 못하게 합니다.
[적용]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두려워 떱니다. 자녀들은 대학 시험에 떨고, 군대 갈 것에 떨고, 취직 때문에 떱니다. 어른들은 사업 때문에 떨고, 질병에 떨고, 노인들은 죽음에 떨고, 일부 교인들은 건축 때문에 떱니다. 누가 사울 왕의 두려움을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믿음 있는 자가 없었습니다. 용감한 자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 없는 자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사울의 신하 중에는 애석하게도 믿음 있는 자도, 용감한 자도 없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믿음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용감한 자가 필요 합니다. 믿음 없이 두려워 떠는 자를 하나님은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용감해야 합니다. 그래서 귀한 일에 쓰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어 드리십시오. 누구입니까? 저라고 하나님 앞에 나설 분은...이스라엘 군대에서는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염려될 때 두려울 때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잘 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하나님은 믿음 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외모나 지위를 보고 사람을 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중심과 믿음을 보고 사람을 쓰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전폭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다윗을 전쟁터로 보내신 하나님
다윗은 어려서 아직 군대에 가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는 군대간 세 아들-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가 염려되고 궁굼 해서 막내아들 다윗에게 볶은 곡식 18되, 빵 열 개, 아들의 상관 천부장에게 보낼 치즈 10 덩어리를 들려 보내 며 형들이 안부 편지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13,17,18]. 다윗은 늙으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군대간 형들을 몇 번 면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최전방은 40일 간 적과 대치하며 비상이 걸려 있었습니다. 다윗이 바로 이때에 전선에 왔습니다[16].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골리앗의 말에 분개한 다윗
바로 그때 다윗은 골리앗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골리앗이 40일 동안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했음에도 이스라엘 진영에는 분개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뒤늦게 분개한 것은 어린 다윗 뿐 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말을 듣고 울분이 치 솟았습니다. ‘감히 저자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다니... 저런 자를 그냥 놔 둘 수 있나? 그럴 수 는 없다!’ 다윗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다윗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다윗은 비록 어렸지만 그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과 용맹함은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 보다 더 강했습니다. 이런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합니다.이런 용기가 오늘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셨네~
두려움을 해결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 합니다.
첫째, 두려움을 인정하고
둘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셋째, 기꺼이 두려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사울은 두려웠지만 하나님께 기도도 하지 않았고 용감하게 감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두려운 일이 있을 때 염려만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적극적으로 용기를 내어서 내가 할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은 사울
사울 왕은 하나님은 전쟁과 아무 상관없는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오직 군사력으로 무력으로 적과 싸워 이기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는 작전을 잘 세워서 전쟁에서 이길 생각만 했지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어려운데도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고 도와 달라고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적용]
현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이 그의 삶에 아무 상관이 없다
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일날에 교회 가서 마땅히 예배드리고 봉사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도, 주일날- 바이어 만나서 사업해야 돈 많이 벌고, 거래처 사람 대접해야 돈 많이 벌고, 시장 나가서 장사해야 돈 많이 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돈 많 벌어 부자 된 후 하나님을 인정합니까? 안합니다. 왜요? 그는 하나님과 자기가 부자 된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주일 날 교회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 말씀배우며 믿음으로 자라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데주일날-특별 과외 지도를 받아야 대학간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이 있습니다. 자녀의 대학 진학과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갑니까? 만약 대학에 간다고 해도 그가 믿음생활 제대로 합니까? 안합니다. 왜요? 자기가 대학 간 것과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믿음으로 공부하고, 믿음으로 사업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가 좋은 대학 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일성수 잘하고 믿음으로 자라도록만 하세요. 그러면 다윗과 같이 잘됩니다. 아멘? 아멘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속지 마세요. 사탄에게 속지 마세요. 주변에 현혹되지 마세요. 자녀를 잘 못된 길로 기르지 마세요. 금방 큽니다. 남편을 망하는 길로 밀지 마세요. 하나님을 우리 자녀의 대학 진학과 남편의 사업에 복 주시는 분으로 믿으세요.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도록 사세요.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의 주인이 되시도록 믿음으로 기르세요. 그럴 때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해 주셔서 잘 됩니다. 오늘도 사울 같이 두려움에 빠진 사람은 ‘나는 안 된다. 나는 못한다’고 미리 단정 짓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다윗의 믿음
다윗은 전쟁이 하나님과 상관있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싸워주신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믿으세요.
그러면 승리합니다.
용감하게 나선 다윗
목동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기로 했습니다. 다윗은 용감하게 나섰습니다. 강한 의지와 결심을 하고 나섰습니다. 어린 다윗은 골리앗과 용감하게 싸우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용기가 중요 합니다. 두려움을 감수하는 용기와 결심이 중요 합니다. 우리들에게도 믿음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용기가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두려운 일을 감수하겠다는 용기와 결심하는 사람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복 받아 잘되고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아멘? 아멘!
다윗의 일을 방해하는 큰 형님[28]
다윗이 믿음으로 골리앗을 물리치려고 하자 큰 형님이 그를
보고 화를 내었습니다. ‘다윗아, 네가 양을 남에게 맡겨놓고 집에 안가고 뭐하냐. 내가 너의 그 시건방진 것을 아는데 빨리 집으로 가!’큰 형님이 화를 내며 소리를 쳤습니다. 지금도 자녀들이 믿음으로 살려고 할 때 가족이 기를 꺾고 훼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집은 안 그런지 살펴보세요. 교회도 믿음 없는 사람, 용기 없는 사람, 의지와 결심이 약한 사람들이 앞을 가로 막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결론
우리자녀들도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자라기를 축복합니다.11월 5일 대입수능 시험을 치는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 믿음으로 잘 치러서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성도들은 믿음으로 내안에 있는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강한 용기와 의지와 결심으로 당당히 감당해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골리앗을 물리치라
삼상 17장 4~11절 / 박기완목사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는 지어낸 이야기도 아니고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또한 골리앗을 물리치는 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마귀, 사탄, 우리 앞을 가로막는 모든 죄악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은(Goliath) 가드 사람, 블레셋 장군으로서 키가 육규빗 한뼘, 약 2m90Cm나 되는 거인이었습니다. 머리에는 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는 자그마치 놋 5천 세겔, 약 1백96kG이나 됩니다.
다리에는 놋 경갑을 찻고 어깨사이에는 놋 단창을 매었는데 그 창자루는 베틀체 같았으며 창날은 철 6백 세겔이나 된다고 했습니다(삼상17:4∼7).
그는 방패를 든 군졸들을 앞세우고 이스라엘 진을 향하여 외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항오를 벌렸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하면서 거만한 자세로 접근해 왔습니다(삼상17:8).
당시 전쟁 방식은 군대를 동원한 전투가 아니라, 한 사람을 뽑아 일대 일로 싸워 전쟁의 승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중에서는 아무도 대답을 하거나 응수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때마침 다윗이 전쟁터에 있는 형들을 보려고 왔다가 이 사실을 목격하고 분개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할례 받지 못한 이방백성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므로 다윗은 사울 왕에게 나아가 골리앗과 싸울 것을 요청하게 되었고 이에 허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소년 다윗은 막대기를 들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은 후 그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골리앗은 어린 다윗을 보고 코웃음을 치며 부르짖기를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며 다윗을 저주했습니다(삼상17:43).
다윗은 호령하기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렇게 외치면서 다윗은 그를 향하여 물매돌을 힘차게 던졌고 거구의 골리앗은 이마를 맞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삼상17:45).
사랑하는 여러분!
골리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의 대상이요, 공포의 대상이요, 죽음의 대상인 골리앗은 오늘 우리에게도 다가와서 위협하고 있음을 절감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현대인에게 있어서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골리앗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우리를 유혹하며, 하나님과 멀리하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단절시키고 가로막는 큰 산(山)이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려고 할 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할 때... 우리 앞에 골리앗은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골리앗은 머리에는 투구를 썼습니다. 온몸에는 갑옷을 입었으며, 다리에도 놋으로 만든 경갑을 찼습니다. 어깨에는 단창을 꽂았고, 손에는 무기를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에는 방패를 든 군졸들을 앞세웠습니다. 완전 무장을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탄은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철옹성입니다.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영적으로 완전 무장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11절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6:12절에 보면, 우리가 싸우는 싸움의 대상은 '혈과 육'을 덧입은 인간이 아니라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사탄 즉 마귀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공격할 기회를 주어서도 안되며, 방심해서도 안됩니다(엡4:27).
한번은 길을 지나가는데 어떤 집에서 요란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만히 보니까 부부인듯 보이는 사람인데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싸우는 정도가 아니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술에 만취한 남편이 칼을 집어들고 그 아내를 향하여 욕을 퍼부으며 죽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부인은 사슬이 시퍼렇게 질려 한쪽 구석에서 두 팔로 얼굴을 가리운 채 울부짖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말리느라고 진땀을 뺍니다. 사람들이 말리니까 더욱 사기를 올리며 그 남편은 칼을 던지고 물건들을 집어 던지며 욕을 합니다.
이 사람이 정말 자기 정신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정말 미친 듯이... 무엇에 홀린 듯이 날뛰는데 자기 본래의 모습이 아닙니다. 동네사람들이 말하기를 술만 깨면 그렇게 자상한 남편이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누가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바로 사탄입니다. 이 못된 습성, 이 못된 죄악의 골리앗을 물리쳐야 합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마음속에 계획하는 것조차 악하다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은 하늘을 찔렀고, 의인 10명이 없을 만큼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악한 생각을 하고 죄악을 그 마음에 품으며, 하나님과 원수 맺는 육체적인 욕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로 하여금 이 죄악의 늪에서 멸망을 시키려 합니까?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두려운 골리앗임에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가리켜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싸울 때 하나님이 함께 싸워 이기게 하신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이 전쟁을 가리켜 이스라엘은 성전(聖戰 HOLY WAR)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전쟁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규정한 배경은 신명기 24:1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하신 말씀에 근거합니다.
사무엘상 17:47절에서도 다윗은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외치며 골리앗 앞에 나아가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한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하십니다. 때로는 사로잡으라고도 하시고 때로는 전리품을 너희 것으로 삼으라고도 하시며, 때로는 모두 불태워 버릴 것을 명하십니다.
이 모든 사실을 볼 때에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여호와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대로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골리앗의 호령에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의 키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가 입은 갑옷을 보고는 기가 죽었습니다. 손과 몸에 지닌 창을 바라보고는 모두가 다 두려움에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두려워합니까? 무슨 두려움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우리 인간을 가장 두렵게 하고 멸망케 하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죄는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고통이 왔고 죽음이 왔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성이 전적으로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생활에 고통이 있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죽을 몸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우리를 위하여 주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내니 두려워 말라!"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짓게 하고, 유혹하며, 넘어뜨리려고 하는 사탄의 역사는 오늘 우리에게 골리앗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두렵게 만듭니다. 죄의 짐은 무겁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골리앗을 넘어 뜨려야 합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 싸움이요 성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승리케 하시는 주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아담이 나무 사이에 숨은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바다에 빠진 것도 두려움 때문입니다. 3년 동안이나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이 두려움 때문에 예루살렘 골방 가운데 문빗장을 걸어 잠그고 숨은 것입니다.
신명기 20:1절에 보면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행하시며 우리의 대적을 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0: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유사들에게 또 이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못한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
"포도원을 만들고 그 실과를 먹지 못한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
"여자와 약혼하고 결혼하지 못한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
"두려워서 마음에 겁을 내는 자는 모두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신20장).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까? 두려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두렵게 합니다.
오늘 교회는 '거룩한 싸움'에 나갈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성전에 참여한 그리스도 예수의 병사입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는 승리의 역사가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육체의 소욕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눅9:62).
가나안을 코앞에 두고 옛날이 좋았다고 모세를 원망한 백성들이 하나같이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거룩한 싸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적인 싸움터에서 원망은 금물입니다. 두려움도 금물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골리앗은 어떻게 물리쳐야만 하겠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멸망에 이르게 하는 죄는 멀리해야 합니다. 물리쳐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죄의 근원까지 완전히 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가나안 땅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땅이 아니라, 그곳에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①헷족속과 ②기르가스 족속 ③아모리 족속 ④가나안 족속 ⑤브리스 족속과 ⑥히위 족속 그리고 ⑦여브스 족속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고, 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약속의 성취였지만,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에게는 하나님의 징계요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7:1절 이하에 보면, 그들을 진멸하되 그들과 언약도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 것이며, 그들이 섬기던 단을 헐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리고, 조각한 우상은 불살라 완전히 진멸할 것을 하나님께서는 엄히 명령 하셨습니다.
신명기 7:26절에서는 미워하되 심히 미워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우리는 죄를 미워하되 심히 미워해야 합니다.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는 것은 미련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상을 깨뜨리고 불로 살라 버리라는 것은 완전히 그 모양이나 형체, 그 근원까지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담배를 끊겠다던 사람이 라이타가 아까워서 보관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유혹에 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술을 끊겠다는 사람이 집에 여러 가지 술을 진열하고... 이건 몸에 좋은 술이고.. 이건 어디에 좋고 이건 어디에 좋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술을 담아둔다면 술을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던 사람,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친구들..., 그런데 그를 잊지 못해서 전화번호를 적어 둔다면, 그것으로 인하여 죄를 짓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이든지 못된 습관이든지 취미생활이든지 간에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그 가능성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민수기 33:55절에 보면, "만약 그 땅의 거민을 몰아내지 아니하면 그 남겨둔 자로 인하여 너희의 눈에 가시와 같이 될 것이며 사는 날 동안에 그들로 인하여 괴롭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만약 죄의 습성이나 그 가능성까지 완전히 멸하지 아니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괴롭게 되며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없이 하라시면 그것이 아끼는 재물이라 할지라도, 명예나 권세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고 장벽이 되고, 죄를 지어 멸망케 하려는 골리앗이 된다고 하면 그것은 반드시 진멸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15:63절에 보면, 유다 자손은 여부스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 16:10절 말씀에도 보면, 에브라임 지파는 가나안 사람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로 인하여서 우상숭배에 빠졌고, 죄를 짓는 타락의 중심지가 되고 말았습니다(왕상12:25).
오늘날 인간은 세계를 정복하고 심지어는 우주까지 정복하려고 합니다.
전화, TV, 비행기, 잠수함, 자동차, 컴퓨터, 팩시밀리, 고속기차, 인터넷 등등... 인간은 온갖 문명의 이기를 통하여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위대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감기 몸살로 끙끙 앓고, 암이나 AIDS에 걸리면 무력하게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통사고라도 날라치면 부서지고 깨지고 죽습니다. 인간이 위대해 보이지만 역시 연약한 존재입니다.
덩치가 큰 동물도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나 알지 못하는 세균에 의해서 꼼짝도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라서 잎이 나고 열매를 맺어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침몰시키는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죄라고 할지라도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골리앗의 고향이 어디입니까? 바로 가드 지역이었습니다. 이 가드라고 하는 지역도 역시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완전히 점령하지 않고 약간의 사람을 남겨 둔 곳입니다. 바로 그 지역에서 골리앗이라는 사람이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순종하지 않은 결과로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만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은 그 모양이라도 깨끗이 청산해야 합니다.
오늘의 현대인은 다윗의 질적 소형보다 골리앗의 물량적인 대형을 좋아합니다. 무엇이든지 크고 많고 능력이 있으면 좋은 것으로 평가하고, 반면에 작고 질적인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바로의 권세가 갈상자의 어린 모세에 의하여 쓰러지고, 로마의 세력이 나사렛 예수에 의하여 정복되었듯이 오늘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골리앗의 횡포도 믿음의 능력으로 응전할 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다윗과 골리앗의 사건이 주는 교훈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골리앗은 어떻게 다가옵니까?
두려움과 절망 속에 떨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듯이 예수의 이름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죄악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넘어뜨리려 호령하는 골리앗을 말씀의 칼로 단칼에 베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다
삼상 17:1-11 / 우인택 목사
오늘 본문은 블레셋의 침입과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는 장면입니다.
1. 먼저, 1-3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입했다고 말씀합니다. 블레셋은 사사시대 후기부터 왕정시대 초기까지 이스라엘을 매우 괴롭히던 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은 사무엘 이전까지만 해도 이스라엘보다 군사적인 절대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무엘과 사울시대부터 두 번의 큰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이스라엘이 다소 우위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고 또 그의 병세가 심해져 이스라엘의 지도력에 공백이 생기고 이스라엘이 침체에 빠지게 되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블레셋이 전쟁을 걸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도 우리 성도들이 영적인 침체에 빠지면 블레셋처럼 여지없이 공격합니다. 사탄은 늘 성도들을 공격할 때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함부로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성도들을 단숨에 넘어뜨릴 수 있는 틈을 노리다가 기회가 오면 순간적으로 공격합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침체기는 사탄이 공격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가 됩니다.
성도들의 영적인 침체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원만하지 못할 때 찾아옵니다. 그러할 때, 예배를 드려도 감동이 없고 기도도 되지 않으며 성경을 읽는 것조차 힘이 들게 됩니다. 삶의 리듬이 깨어지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지겹게 느껴지며 삶의 즐거움도 잃게 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버리고 싶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힙니다. 심지어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까지도 내려놓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탄의 공격 앞에 무방비로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속해서 이겨내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사탄이 원하는 데로 불안과 근심과 한숨과 우울증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분발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 성도들과의 교제와 봉사, 전도와 섬김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육신은 날로 늙어지나 영혼은 날마다 새롭게 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이어지는 4-7절에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여섯 규빗 한 뼘’, 2m 96cm나 되는 거인으로 그가 입은 갑옷 무게만 ‘놋 오천 세겔’, 무려 57kg이었습니다(참고. 1규빗=45.6cm, 1세겔=11.45g). 이것은 골리앗이 얼마나 힘이 세고 강한지를 보여줍니다. 이런 골리앗이 앞에 버티고 서서 8-9절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라며 큰소리치고 있으니 이스라엘 군사들이 그 앞에서 용기를 잃은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스라엘 군사 중에는 두려워 떨며 그 누구도 싸워보고자 하는 엄두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블레셋과 골리앗이 예표하는 사탄의 세력은 이스라엘이 상징하는 성도들에 비하여 언제나 강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은 언제나 자신들을 강한 것처럼 나타내 보입니다. 이는 성도들이 낙심하게 하여 영적인 전쟁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해 올 때에는 본문의 골리앗처럼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를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본문의 이스라엘처럼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레 겁을 먹어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사탄의 모습과 계략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제아무리 어렵고 강한 시험을 가지고 나온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면 그 시험을 능히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허락하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고전 10:13), 사탄의 시험이 아무리 강하게 보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면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탄을 대적하여 능히 이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어지는 8절 이하에 블레셋 장수 골리앗은 이스라엘을 조롱하며 모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어쩌다 이렇게 이방 민족에게 조롱받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의 보호자이신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입니까?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보호할 힘이 없어서입니까?
이유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범죄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된 길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의지하여 선민으로서의 마땅한 삶을 살아야 했는데 오히려 불순종의 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서 떠나셨고 선민으로서 그들의 사명은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습니다. 이렇게 사명을 잊어버리고 하나님마저 떠남으로써 선민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의 교회 역시 사명을 잊고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세상으로부터 조롱받게 될 것임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가 있고 정직함과 공의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충만하여 복음 전도에 최선을 다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모습이 없다면 그 교회는 이름은 있으나 능력은 상실한 곳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면 세상은 교회에 예수의 사랑이 없다고 조롱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정직하지 않다면 세상은 교회가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할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참된 모습과 사명을 잃어버리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성장에 앞서 먼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함으로써 세상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참된 교회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실패를 교훈 삼아 우리 교회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로 세워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본문을 통해 성도들의 영적인 침체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원만하지 못할 때 찾아옴을 깨닫습니다. 영적인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와 말씀, 성도들과의 교제와 봉사, 전도와 섬김에 열심을 내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사탄이 우리를 공격해 올 때에는 본문의 골리앗처럼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를 가지고 옴을 알아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거인 골리앗, 우리 안의 두려움을 비추다
삼상 17:1-11
성경 속 수많은 이야기 중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만큼 우리에게 익숙하고 또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드물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용감한 소년 다윗에게 초점을 맞추지만, 오늘은 그 거대한 적수, 골리앗에게 잠시 시선을 돌려보려 합니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사무엘상 17:1-11) 속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떡 벌어진 입! 거인 골리앗의 등장
이야기는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엘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양 군대가 서로를 마주 보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을 때, 블레셋 진영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골리앗, 가드 출신의 거인입니다.
성경은 그의 모습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약 290cm),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그 무게가 놋 오천 세겔(약 57kg)입니다. 다리에는 놋 각반을 찼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습니다. 그가 든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약 6.8kg)이며, 방패 든 자가 그 앞에서 행합니다(삼상 17:4-7). 상상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나요? 그의 등장은 단순히 키가 큰 병사 한 명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힘과 기술, 그리고 당시 최고 수준의 무장으로 완벽하게 준비된 '압도적인 위협' 그 자체였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이 그의 모습만 보고도 두려움에 떨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입니다.
감히 누구에게? 그의 멈추지 않는 외침
골리앗은 단순히 그의 외형만으로 위협을 가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멈춰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삼상 17:8-9).
여기까지는 고대 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대일 대결 제안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삼상 17:10) 라고 외칩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도발을 넘어, 이스라엘이 섬기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모욕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 나아가 그들이 믿는 하나님까지 조롱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을 듣고 "심히 두려워하니라" (삼상 17:11)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골리앗의 외침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과 정체성까지 흔드는 강력한 심리적 공격이었던 셈입니다.
골리앗이 우리에게 남긴 생각거리
사무엘상 17장 1절부터 11절까지, 골리앗의 등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은 종종 골리앗처럼 거대하고 강력한 힘, 압도적인 기술, 위협적인 목소리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눈에 보이는 조건과 힘의 논리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우리의 믿음을 조롱하며 두려움에 빠뜨리려 합니다.
골리앗은 단순한 거인이 아니라,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압도적인 문제'나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벽', 또는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세상의 목소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번쩍이는 무기와 큰 키는 세상적인 힘과 권세, 부와 명예 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의 모욕적인 외침은 우리의 신앙을 약화시키려는 회의감, 불신, 조롱의 목소리와 닮아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 떨었던 것처럼, 우리도 삶의 골리앗 앞에서 얼마나 자주 작아지고 두려워하는지요?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골리앗의 등장은 곧이어 등장할 다윗의 믿음과 용기를 더욱 빛나게 하는 배경이 됩니다. 하지만 오늘은 먼저, 우리 앞에 서 있는 골리앗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앞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잠시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QT 사무엘상 17장 1-11절
김두옥목사
※ Hallelujah!
- 월말을 앞둔 마지막 주말 토요일 새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 연일 비온 후에 힘을 얻어 아름다운 연산홍 꽃길을 보면서 천국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상상 해 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이 세상에 복을 주시고 그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은혜를 베풀려고 하셨습니다.
- 오늘도 기도하며 말씀 묵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의와 평안과 기쁨의 능력을 받아 거룩한 주일에 전도의 열매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 소년 다윗이 장군 골리앗을 쳐 죽임
◑◑◑본문 이해와 요약 ◑◑◑
◗ 17장에서는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블레셋의 용장 골리앗을 맞장 떠서 물맷돌로 쳐 죽이고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하는 내용입니다.
-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이 이스라엘 사회와 정치에 등장하게 되는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보여 주고 있는 계기인데, 이것이 바로 다윗과 골리앗과의 전투와 악신이 들린 사울을 보좌하기 위해 궁으로 입궐하게 된 것입니다.
- 이 전투에서 다윗은 나이 어린 소년의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하무적의 장군인 골리앗을 가볍게 쳐죽이는 크고 놀라움을 보여 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 골리앗은 자신의 힘을 가지고 하나님의 군대 이스라엘 군사들을 매몰차게 조롱하였습니다.
- 그리고 골리앗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의 백성들뿐만이 아니라 믿고 있는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 이렇게 골리앗은 자신의 힘만 믿고, 전능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경멸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만, 이런 불경스런 자의 최후가 비참한 죽음임은 두말할 필요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 골리앗의 결국은 아직 군대 소집조차도 될 수 없는 나이 어린 소년, 다윗의 돌팔매에 죽음을 당함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 우리는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소년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발전 과정을 생생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 참으로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살아 계시며 전능하신 분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 그의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다윗의 용기가 자신의 힘을 신뢰하는 골리앗의 인간 중심적인 교만을 정복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다윗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 결론적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이 역사적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 다윗은 전쟁의 목적은 살아서 역사를 운행해 가시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데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이 선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하고 모든 일의 승패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 속에 좌우되며, 전쟁을 통해서까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전멸시킬 것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이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예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세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 믿음만이 세상에서 원수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의 면류관을 차지하는 비결이요, 열쇠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➊ 나를 알고 적을 알면 승리의 영광을 주신다. (삼상17장8,9절)
➋ 블레셋은 세상이며, 골리앗은 권세 잡은 사단이다.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 나의 정체성을 알면 담대하게 되고, 성전인 내가 책임을 다할 때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지 않습니다.
- 8, 9절 이하를 살펴보면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 본문에서 사울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사들과 강력한 블레셋을 대치하면서 블레셋 장수 골리앗에게 얼굴 뜨겁게 조롱을 받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어쩌다 이렇게 이방 민족에게 조롱을 받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을까? 또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입니까?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보호할 힘이 없어서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대 최고의 강대국인 애굽 땅에서 구원 하신 분입니다.
- 그리고 홍해와 요단을 가르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러한 하나님이 힘이 없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한다면, 있을 수 없는 거룩한 분노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에게 모욕을 당한 이유는 사울 왕과 백성들이 자기가 맡은 사명과 본분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이 세상에 복을 주시고 그들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은혜를 베풀려고 하셨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통치할 자로 세움 받은 사울왕은 범죄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잘못 된 길에 동조 동행했습니다.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의지하여 자기들의 책임을 다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순종의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서 떠나셨고 그들의 사명은 그들의 기억에서 잊어졌습니다.
- 자신들의 책임을 망각했던 것이며, 이렇게 자기들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하나님마저 떠남으로써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에게 처참하게 조롱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오늘의 교회 역시 주어진 복음의 사명을 잊고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오늘의 교회를 예표하며 블레셋은 세상을 골리앗은 사단마귀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 따라서 이러한 본문을 통해 교회는 교회의 사명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가 있고 정직함과 공의가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 또한 성령이 충만하고 복음 전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 만일 우리 교회가 이런 모습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교회의 모습은 있어도 그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 교회가 어려운 위기에 처한 형제를 외면하면, 세상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다고 교회를 조롱할 것입니다.
- 그리고 정직이 없다면, 교회가 거짓말을 한다고 비난할 것이고, 성령과 복음 전파의 열심이 없다면, 교회의 본질에서 비켜 가고 있다고 비판할 것입니다.
- 세계 제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국가 교회를 보게 되면, 그들은 나치의 정책뿐만 아니라 유태인을 독가스 실로 보내는 것까지도 찬성했습니다.
- 그들에게는 사랑, 정직, 복음의 열정 등 참된 교회의 모습이 없었던 것이며 단지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권력의 하녀에 불과하였습니다.
- 때문에 그들은 정부의 권력을 힘입어 막강한 힘을 소유했지만, 아무도 그 교회를 참된 교회로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비웃었던 것입니다.
- 이렇게 교회가 교회의 참된 모습과 그 사명을 잃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됩니다.
- 교회가 아무리 세상 적으로 힘이 있고 근사한 건물을 가지고 있으며 물질이 많은 부자 교회라 할지라도 그 교회는 교회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 그러므로 내가 교회의 영적 성장에 앞서 가장 먼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 그리고 그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해 나감으로 세상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참된 교회로 인정받아야 하겠습니다.
- 신명기28장 37절에서“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베드로전서2장 12절에서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믿음의 자리에 서지 못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본문의 이스라엘처럼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지레 겁을 먹어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 이런 사단의 모략에 절대 속지 말아야 하며, 사단이 제아무리 어렵고 강한 시험을 가지고 나온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면 그 시험을 능히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 고린도전서10장 13절에서 “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욥에 대한 사단의 시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사단의 시험과 세력이 아무리 강하게 보일지라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기만 하면, 우리를 피하는 것이 사단의 속성입니다.
- 그래서 야고보서4장 7절에서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 영적 싸움에 임했을 때 사단의 모습을 보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맙시다.
- 강하게 보이는 사단마귀의 모습은 마치 동물들이 서로 싸울 때 상대를 겁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부풀리는 것과 같습니다.
- 그렇다면 오늘 이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지금 내가 주어진 직장 일과 공동체 사역 앞에서 블레셋과 골리앗이라는 거장 앞에 한없이 약하여 압도당하는 내 모습은 아닌지? 그리고 사울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무시당함과 조롱당하는 내 모습은 아닌지? 이것을 극복하려는 힘은 무엇인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문자답 해 봅시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반드시 이기고 승리하게 됩니다.
- 지금 내가 누구입니까?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으로 악한 골리앗이 앞을 가로막고 조롱하고 있다할지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음에 확신합시다.
- 따라서 내가 비록 사단의 모습과 그 위세가 대단하여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일어납시다.
-민수기14장 9절에서"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 그러면 사단의 그 과장 된 모습과 위세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 오늘 17장 본문의 시작으로만 봐서는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하고 블레셋과 골리앗 앞에 예속될 것 같아 보이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소년 다윗 앞에서 죽은 자는 골리앗이요, 망한 것은 블레셋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사단이 주는 두려움을 겁내지 말고 세상 속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일어섭시다.
- 여호수아10장25절에서 “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 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 세상권세를 잡은 원수마귀 사단의 위세와 시험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 나갑시다.
- 그러므로 지금 예수를 믿는 자녀들에게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있고, 예수님의 이름이 있기에 악한 원수 사단 마귀 앞에서 다윗처럼 결코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대적하여 능히 이기고 승리하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골리앗과 영적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나?
삼상 17:1-11 / 금빛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우리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다윗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골리앗과의 싸움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이름을 모욕한 사탄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통해서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서 어떻게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골리앗과의 싸움은 두려움의 싸움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골리앗이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골리앗이라고 하면 무조건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삼상17: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블레셋 사람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으니 골리앗이라고 합니다.
싸움을 돋우는 자가 누구입니까? 옛날에 싸움은 심리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나와서 말합니다. 그러면 그 말 때문에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위축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골리앗은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로 싸움을 돋우는 자였습니다(삼상17:8-10,11,16).
그래서 키가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하는 것은 3미터 정도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최홍만 선수가 키가 커서 싸움을 잘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골리앗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골리앗은 말로 싸웟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를 말로 모욕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에서 다윗은 골리앗을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결과 이스라엘백성들은 싸우지도 못하고 두려워하기만 했습니다.
11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또 다윗이 형들을 만나러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삼상17: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전열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그래서 “삼상17: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사실 하나님의 군대인 우리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항상 말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줍니다.
그래서 딤후1장 7절에서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할 수 없다고 하는 마음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절제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 중에서 사탄은 오늘도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불안을 주고 있습니다. 근심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낙심하게 하여 도망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두려움의 골리앗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었습니까?
삼상17장 3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삼상17: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다윗은 두려워하여 낙담하는 사울에게 낙담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을 주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골리앗이 아무리 크고 강대해도 내가 믿는 주님이 더 크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지니까 마음이 우울하십니까? 낙심이 되십니까?
괜히 나는 혼자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그리고 무엇이지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드십니까?
그것을 단순한 심리적인 현상이라고만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항상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낙심을 줍니다. 불안을 줍니다. 외로움을 줍니다. 그리고 근심과 걱정을 줍니다. 이런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탄보다 큰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골리앗과 같은 싸탄을 싸워서 이기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둘째,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된 두 번째 비결은 싸움의 동기가 분명했습니다. 다윗은 인간적인 동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한 동기로 싸움을 했습니다.
삼상17장25절에 보면 이스라엘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을 주고, 또 딸을 줄 것이며, 그 사람의 가족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기로 했다”고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관심은 골리앗을 죽여서 많은 재물과 상을 얻는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관심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26절 하반절에 보면 다윗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삼상17:26하-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골리앗이 이스라엘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이름름의 명예와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싸움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17장 45절과 46절을 쉬운 성경에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삼상17:45 다윗이 골리앗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나에게 칼과 큰 창과 작은 창을 가지고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시다. 너는 여호와께 욕을 했다.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나에게 주실 것이다. 나는 너를 죽여 너희 머리를 밸 것이며, 블레셋 군인들의 몸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에게 먹이로 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할 것이다(쉬운성경)"
여기서 보면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는 이유는 자신의 이름이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욕을 당하고 짓밟히는 현실 가운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온 세상에게 보여주기 싸움에 나갔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왜 여러분이 월화수목금토요일을 그렇게 분주하게 처절하게 사십니까? 또 그곳에서 승리하며 성공하려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 경우 내가 무엇 때문에 목회를 하는가? 단순히 목회성공을 위한 것입니까? 저는 기도할 때 목회하는 동기가 어디 있는지 저 자신에게 자주 물어봅니다. 그때 마다 제 마음속에서 조용히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나를 통해서//내 목회를 통해서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목표가, 내 목회의 목표가 내 영광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가만히 있지 않고 더 열심히 살며,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일들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다윗과 같은 거룩한 의분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곳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가려진 시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이 이름의 영광이. 예수님의 이름의 영광이 영화나 문화 매체를 통해서 모욕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가리워지고 모욕당하는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님의 이름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이 밤에 우리의 기도의 동기가 오직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위기는 기회다
삼상 17:1-11 / 서춘웅목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간 약속의 땅은 비어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가나안의 살기 좋은 곳이라 벌써 일곱 족속들이 성을 쌓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약속받을 땅이었으나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일곱 족속들과 싸워야 그 땅을 빼앗을 수 있다. 가나안 땅을 싸워 차지한 이스라엘 백성들! 하지만 모든 가나안 족속들을 다 몰아 낸 것은 아니었다. 그 남은 족속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힘을 길러 자주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해 왔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빈번히 위기를 맞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족속들에게 정복되고 지배당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해 와 위기를 맞게 한 대적 중에 대표적인 사람들은 불레셋 사람들이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스돗, 가자, 아스글론, 갓 그리고 에글론이 모두 불레셋의 도시였다. 불레셋 사람들 역시 원래 가나안에서 산 것은 아니었다. 어느 때인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그 곳으로 이주해서 산 민족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왕이 있기 전부터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고 첫 이스라엘 왕 사울때 역시 가장 큰 이스라엘의 적이었다. 또 사울이 이들과 자주 싸웠고 마침내는 불레셋과의 싸움에서 그와 그 아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다윗 왕때에 와서야 완전히 불레셋을 제압하게 되었다.
불레셋은 이스라엘의 주적으로 생존을 위협하는 큰 세력이었다. 오늘 본문도 보세요. 불레셋 사람들이 군대를 모으고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에베스담빔에 진을 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크게 달랐다. 그것은 불레셋을 대표해서 나타난 적장 골리앗 때문이었다.
제가 1974년경으로 기억된다. 총회(장로교) 간사로 일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때 종교 지도자 산업시찰이 있었다. 그래 대구, 부산, 울산, 포항, 여수, 목포 등지에 산업시설을 돌아보는 정부차원의 홍보였다.
그런데 울산에 가서 배를 만드는 조선소에 가니 먼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큰 크레인이었다. 그런데 그 크레인의 이름을 제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골리앗이었다. 골리앗!
오늘 성경본문에 이스라엘과 불레셋의 싸움은 이스라엘과 골리앗과의 싸움이었다.
골리앗은 어떤 사람이었나?
그의 이름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챔피언이다. 두 사이에 있는 사람이다. 혹은 대표자란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나 됐다. 9 feet란 말이다. 거인 중에 거인이다.
또 적의 공격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갑옷을 입었는데 그 무게가 놋 5,000 세겔이었다. 또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다. 그러니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물고기가 비늘로 온 몸을 싸고 있듯이 놋으로 쌌다. 게다가 큰 방패를 든 자가 그 앞에서 방어를 하고 있다.
역시 그는 무기를 갖췄는데 놋단창을 멨고 그 창자루는 베틀채같고 창날은 철 600세겔이었다. 그런데 불레셋의 이 거인 골리앗이 아침저녁으로 나타나 천둥소리만큼이나 큰 음성으로 나와 싸울 자는 나오라! 이기는 자의 종이 되기로 하자. 골리앗을 보고 그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의 진영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사울 왕도 그 아들 요나단도 국방장관도 장군에서 사병에 이르기까지 골리앗과 맞서 싸울 자가 없었다. 골리앗과 싸울 장수가 없으니 싸우지도 못하고 불레셋이 종이 되고 말 것이다. 나라의 주권이 자유가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하나님의 영예가 풍전등화와 같았다. 민족의 위기였다. 나라의 위기!
우리나라 보세요. 고조선에서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으로 통일신라로 고려로, 이씨 조선으로 한국으로 이어왔다. 우리 자신도 나서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거친다. 교회도 그렇다. 교회도 생명체니까 개척해서 부흥성장하기도 하고 침체의 숲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부흥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사라지기도 한다. 사업이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왜 지속하지 못하고 사라지고 마는가? 침체되나? 오늘 성경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서처럼 위기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 위기를 바르게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텍사스 클레어레이크 교회에서는 한 가족 다섯 명의 자녀들의 합동 장례식이 있었다. 생후 6개월에서 7세까지의 아이들이었다. 자녀 다섯 명이 하루에 다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 장례식에서 아버지는 아이들의 관을 붙잡고 오열한다. 이해심 많고 동생들을 잘 챙긴 믿음직스런 첫째 아이, 항상 웃음을 잃지 않은 둘째 아이, 나무랄데 없이 무서울 것 없는 용기있는 넷째 아이, 가정을 행복하게 하게 해 주는 막내 딸 아이의 관을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며 기억을 더듬어 가면서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슬픔 때문에 장례식장이 울음바다가 됐다. 행복했던 가정이 풍지박산이 났다.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나? 어머니다. 엄마가 죽였다. 왜요? 산후 후유증으로 생긴 우울증 때문이란다. 우울증이 엄마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 위기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 결과 상상도 못할 큰일을 저질렀다. 그 엄마는 경찰에 잡혀 감옥으로 갔다. 다섯 명의 자녀를 잃고 아내를 감옥으로 보낸 남편 홀로 남은 그 심정이 어떠하겠나?
몸에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병원에 가서 친찰을 받으니 암이란다.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남편이, 자녀가 죽었다. 얼마나 참담하겠나? 부부간에 마음이 맞지 않고 점점 더 사랑이 식어가 이혼하자는 말이 오고간다. 사업이 계획과 생각대로 잘 안 된다. 더 이상 유지할 능력이 없다. 어찌해야 하나? 파산 신청을 할까 한다. IMF가 와서 사장하던 이가 하루아침에 집 없이 길바닥에 나 앉게 됐다 모두 위기다.
교회는 어떤가? 예배 장소를 옮길 때 예배당을 지을 때 교역자가 바뀔 때 무슨 큰일을 하려고 할 때 항상 시험이 따른다. 우리 교회도 오늘이 설립 19주년이다. 교회를 개척해 보자. 먼 거리에서 우리 교회에 나오는 성도들 언제까지 나오시겠나? 그러니 그런 곳에 교회를 세워 그 분들이 중심이 되어 전도하므로 복음을 전하자!
그렇지 못한가? 그러면 우리의 전도 구역을 벗어난 곳에 교회와 거리가 크게 떨어지지 않았더라고 전도 구역이 아니라면 교회를 세워 전도하자. 교회를 개척하면 가능한 한 교회가 선 구역 식구들을 떼어주어 개척교회에 가서 그들이 주도적으로 교회를 세워가게 하자. 세운 교회와 세워진 교회가 서로 주고받은 아름다운 관계에서 그 지역 사람들에게나 교계에 정말 좋은 일을 했다는 칭찬을 듣게 되면 세운 교회나 세워진 교회가 모두 좋은 소문나는 교회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부흥될 것이다. 왜 작은 교회인데 능력도 없는데 개척교회를 하나? 여러분! 모든 교회가 개척교회를 하면 우리는 개척교회를 할 필요가 없다. 모두 내 교회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내 교회만 생각하고 그 일을 하지 않으니까 그것이 우리 교회가 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척 멤버가 나간다면 모두 일군이다. 자리가 빈다. 지금 이런저런 이유로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고 제가 알기에도 세 가정 이상이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에 더 교회를 더 떠나야 할 입장에 있다. 성가대원이 잘못하면 6,7명이 빠질 입장이다. 중고등부 교역자가 없다. 대학부의 부장도 지도교사도 없다. 영어예배도 해야 한다. 젊은이는 없는데 더 줄고 어렵고 위기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의 계산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지혜나 머리로 되는 일이 아니다. 어려워도 주면 주는 자가 복되다 하신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다.
개척교회는 목사 한 사람과 장로나 안수 집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 교회가 해야 할 수 있다. 모두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기도하며 신중하게 해야 하겠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하자. 누구의 일이 아니라 우리 교회 전체가 할 일이다. 온 교인이 할 일이다. 서둘지 말아야 하지만 미루지는 말아야 한다. 많은 성도들이 염려하시고 시끄럽다며 불만을 말씀한다. 저도 듣고 알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일에나 실수가 있을 수 있다. 실수라고 생각된다면 빨리 고쳐야 한다. 실수도 하면서 처음 하는 일이니 배워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잘 안 되면 다시 시작하는 수고를 아껴서는 안 된다. 어찌 한술에 배가 부르겠나? 위기처럼 보이는 어려운 일 하나님의 뜻대로 잘 한다면 우리 주변교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일을 이루게 하시고 축복하실 줄 믿는다.
이스라엘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두려워 떨고 침묵했던 이스라엘 진영에서 한 사람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섰다.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나선 사람은 다윗이다. 다윗은 누군가? 이새라는 사람의 말째 아들이다. 아직 군인이 될 수 없는 어린 소년이다. 양떼를 치는 목동이었다. 그런데 내가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골리앗은 무사요 다윗은 목동이다. 골리앗은 불레셋을 대표하는 군인이요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그의 형들도 인정하지 않는 무명의 소년이었다. 아버지가 형들의 안부를 알아 오라고 해서 심부름으로 왔다. 싸우러 온 것도 아니다. 칼과 단창을 가진 골리앗에 비해 다윗은 물맷돌 다섯 개가 고작이었다. 골리앗은 다윗이 싸우기에는 너무 큰적이었다. 상대가 안 된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위기를 대처할 수 있는 위인이 못 되었다.
골리앗이 싸우러 나온 다윗을 어찌했나? 물맷돌을 들고 나온 다윗을 본 골리앗이 업신여기며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왔느냐? 내가 오늘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겠다! 무시당했다. 모두 상대가 안 된다, 싸우다간 죽는다고 한다. 그래도 다윗은 싸우겠다고 나섰다. 용기! 위기극복의 첫 발은 용기란다. 용기가 시작이란다. 시작이 중요하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위기가 무엇인가? 가정불화인가? 내 몸에 깊이 침투한 질병인가? 부부간의 사랑의 신뢰가 금이 갔는가? 자녀가 공부를 안 하고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나? 누구와의 대인관계인가? 사업의 실패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가? 직장에서 해직당했나? 내 신앙이 성장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이 무엇인가? 내가 해결하기에는 너무 큰 것인가? 골리앗같은가? 두려운가? 도망치고 싶은가? 주저앉고 싶은가?
그러나 여러분! 위기를 바로 대처하려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려면 움츠려들지 말아야 한다. 나는 적으나 나는 약하나 나는 힘이 없으나 나는 가진 것이 없으나 나는 지혜가 부족하나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싸울 수 있다, 위기를 대항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낙심말고 두려워말고 일어서야 한다. 싸우러 나서야 한다. 이스라엘의 많은 군인들은 안 된다, 못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골리앗은 너무 크고 강하다고 했다. 그러나 다윗은 다른 생각을 했다. 그의 몸집은 너무 커서 돌팔매가, 물맷돌이 빗나갈 수 없다. 자신있게 마칠 수 있다. 골리앗은 쓰러질 것이다. 낙관적인 생각을 했다. 불가능하다. 모두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다윗은 긍정적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고 발견했다. 그래서 물맷돌 다섯 중에 하나를 던지니 그 돌이 불레셋의 거장 골리앗의 이마를 맞췄다. 그 돌이 이마에 박혔다. 거장 골리앗이 쓰러졌다. 다윗이 달려가 골리앗의 칼을 빼 그를 죽이고 머리를 베니 그만 믿고 덤볐던 불레셋 군인들이 오합지졸꼴이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불레셋 사람들을 따라가 죽였다. 위기가 이스라엘의 승리의 기회가 됐다. 그러면 다윗의 용기와 지혜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가? 골리앗을 대항해 싸우러 나갈 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간다. 하나님이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하나님을 신뢰한 믿음, 골리앗보다 크신 하나님,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전쟁의 승리를 임의로 주장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내 편이시다는 하나님의 믿음으로.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니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다 이 세상을 먼저 떠났어도 여호와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업에 실패했나? 재물 얻을 능력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나? 부지런히 하나님께 기도하자. 다시 정직하게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케 해 주심을 믿고 일어날 수 있다.
질병으로 고생하나? 하나님은 내 모든 병을 고치시니 믿고 도우실 줄 믿고 힘들어도 약도 쓰고 주사도 맞고 운동도 하고 질병과 싸우면 이길 수 있다. 교회의 빈자리, 일군의 빈자리, 비었다고 안 된다고 한탄만 말고 누구도 나갔다고만 하지 말고 내가 다윗이 되어 그 자리를 채우면 골리앗같은 일군이 빠진 자리라도 내가 채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도우시니... 신앙이 침체됐나? 주저앉지 말라. 일어날 때다. 원인을 찾고 해결하시라. 그리고 모든 집회에 다 참석하라. 더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시라.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을 다 사용하라. 그러면 내 신앙은 새로워질 수 있다.
가정불화도 부부간에 위기가 왔는가? 사랑과 신뢰의 회복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는데 사람이 나눌 수 없다. 나누려고 했다면 회개하고 다시 사랑과 존경으로 회복할 수 있다.
살아가다가 부닥치는 역경, 어려움, 위기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삶의 과정이다. 누구에게나 다 온다. 교회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그 위기는 시련과 역경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하나의 동기가 되고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런 확신을 가지면 오늘의 위기도 하나님께서 도우심으로 능히 극복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역경과 위기는 물러갈 것이다. 승리의 기회가 될 것이다.
1978년 뉴저지 뉴어크에 사는 가난한 러시아인 케비넷 제조업자의 아들인 버니아르커스는 Do it yourself 라는 DIY 철물 소매상인 핸디단에게 해고당했다. 그것이 아더 불랭크와 함께 team이 되어 그들의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들은 1979년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첫 가게를 열었다. 그 가게 이름은 Home Depot였다.
그런데 오늘날 Home Depot는 15만 7천명이 넘는 종업원에 760개가 넘는 점포를 갖고 있고 사업은 해외까지 확장되었고 년 30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하고 있다.
베니마르커스는 핸디단에게 해고당했을 때 비참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위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해고의 역경이 위기가 그로 하여금 세계적인 기업을 할 수 있게 한 기회가 됐다.
여러분, 오늘은 우리 교회가 19주년이 되는 생일이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시고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그동안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가 크실 것이다.
나 개인, 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혹시 골리앗 때문이었다면 여러분의 골리앗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 교회의 골리앗은 무엇인가? 그대로 두고만 있지 말자. 안 된다고 체념하지 말자.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서 싸우자.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다. 함께 하시고 도우신다. 그러니 승리할 수 있다. 우기가 가진 것이 없고 골리앗에 비해 적고 보잘 것 없고 부족해도 하나님을 믿고 사용하면 보잘 것 없는 물맷돌 한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물맷돌 네 개가 남았던 다윗처럼 우리고 이기고 남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 교회설립 19주년이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의 신앙과 생활이 모두 거듭나고 새로워지시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그리하여 골리앗같은 위기도 승리의 기회로 만드시는 용기와 신앙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