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11.목요일
필독
세계아파트단지 101동 704호에 사는 철수엄마는 어느날 갑자기 문득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단지내 7대 수려한 베란다' 가정에 선정되고자 결심한다. 철수엄마는 선정위원장인 앞동 보험아줌마를 불러 남편이 선물받은 비싼 차와 머스크메론을 지극정성으로 대접하고 우리집 베란다가 얼마나 좋은 베란다인지 구구절절 설명한다. 이 화분은 3년 동안 키운 것인데 어찌나 이파리가 싱싱한지 앞동에서도 훤히 보이지 않냐며 자랑한다. 앞동에 보이는 게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거실의 식구들은 덜 싱싱한 부분을 봐야 하긴 하지만. 물론 단지 주민들이 남의집 화분에 관심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화분 뿐이랴. 바닥을 들어내고 다시 깐 아파트 상가 인테리어 가게표 타일이며, 홈쇼핑에서 주문한 특허출원 빨랫대 등등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선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정 날짜가 가까워온다. 철수엄마는 식구들을 데리고 기도원에 가 철야예배를 드린다. 통성기도시간이 되자 철수엄마의 열렬한 신앙심이 날카로운 비명이 되어 수천 명의 목소리를 뚫고 기도원 천장을 가른다.
"주여 우리 베란다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허락하소서어어어어..."
그 덕에 철수는 중간고사에 애로사항이 생기고 아빠는 직장에서 졸아야 하겠지만, 무려 세계아파트 7대 베란다다. 이정도 치성도 없이 7대 베란다이기를 바라다니 다른 여섯 집 베란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이 신심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 법이다. 확실한 얘기는 아니지만 경비실 앞에서 철수엄마가 보험아줌마의 주머니에 흰 봉투를 찔러넣는 모습을 누군가 봤다고도 했다.
7대 베란다 선정 D-100일날 격려차 뻑적지근한 외식도 하고 노래방에도 갔다. 다른 집들이 시큰둥한 건 중요하지 않다. 어, 그런데 이웃들은 왜 이 중요한 일에 별 관심이 없는 걸까? 보험아줌마 본인의 말로는 동사무소의 인증을 받은 건 물론이고 건축학과 교수님네 집인 103동 1004호의 공식 협찬까지 받았다고 하는데 말이다. 철수 동생 광수가 궁금해서 그 집에 전화 한통을 넣어봤는데, 어 그런 적 없더란다. 동사무소 공무원 누나도 그런 거 금시초문이란다.
그렇다. 보험아줌마는 어느날 갑자기 문득 별다른 이유도 없이, 오직 그 자신만 느낄 수 있는 뇌세포의 어떤 신비로운 작용에 의하여, 다른 이도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이 세계아파트 7대 베란다를 선정하겠노라 선언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지고한 뜻을 의심해서야 되겠는가. 철수엄마가 한석봉 위인전을 괜히 사다 놓은 게 아니다. 형님누나들 말씀에 다음 두 분의 말만 잘 들으면 길잃을 일이 없다고 하잖은가. 엄마와 네비게이션.
거실에서 철수는 생각한다. 저 베란다가 7대 베란다로 선정된다고 해서 성적이 1점이나마 올라갈 일도 없고 수도꼭지에서 아리수 대신 삼다수가 나올 일도 없는데 하고. 친구들이 베란다 구경한다고 더 놀러올 것 같지도 한다. 사실 7대 베란다에 끼는 거사에 성공하고 나서 엄마가 이 사건이 얼마나 영광된 일이며, 이 찬란한 성과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두고두고 얘기할 걸 생각하니 피곤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7대 베란다로 선정되는 게 좋으면 좋지 뭐 나쁜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우리 철수는 생각한다.
이 얘기가 마음에 드실런지 모르겠다. 신통치 않으면 가리봉동 단독주택 7대 멋진 마당은 어떤가. 일다시십이번지 사시는 가리봉제일교회 권사님은 어느날 갑자기 문득 별다른 이유도 없이...
제주도 세계 7대 자연경관 소동은 캐나다계 스위스인 버나드 웨버 Bernard Weber(캐나다계임을 감안하면 베르나르 베베르라고 읽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라는 양반의 불순하고 거창한 상상에서 시작됐다. 그는 수억년의 세월이 만든 자연경관에 순위를 매기고 장사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냥반이 버나드 웨버
웨버 씨는 뉴세븐원더스(New 7 wonders)라는 무척 저렴해보이는 이름의 재단을 설립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걍 사설재단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설업체다. 유엔과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돼 있다고 뻥치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의혹'이 아니다. 사실로 드러난 명백한, 걍 뻥이다. 유엔협력사무국이 공식적으로 답변했다.
"우리 계네랑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
아아 미스터 웨버, 이 남자가 사는 법은 내가 딴지사옥 창고를 월 구만팔천원에 임대해서 종로삼가에서 만오천원에 판 명패 하나 갖다놓고 '뉴세븐맛나스(New 7 Matnas)'라는 명목상 재단을 설립해, 명동 7대 맛집을 선정해드리겠노라고 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내가 꼴리는대로 선정하는 게 아니다. 진짜다. 공평하게 투표에 의해서 한단 말이다. 단 익명성과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시대에 발맞춰 누구든 무제한 무기명 중복투표할 수 있다. 참고로 사설공식 투표용지는 한 장에 천원에 모십니다. 맛집으로 선정되면 이몸이 몸소 행차해서 사설공식 행사를 열어주는데, 행사비용은 이백만원입니다. 싫으시다구요? 그럼 후보목록에서 빼드리지요. 옆집이 7대 맛집으로 선정되는 꼴을 눈뜨고 보시던가요.
뉴세븐원더스재단은 2007년 고대 7대 불가사의를 카피한 '현재의 7대 불가사의('Wonder'를 불가사의로 번역되는 게 영 어색하지만)'를 선정한 바 있다. 여기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아는 사람? 로마 콜로세움과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 등 이것저것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거 때문에 이탈리아랑 브라질에 여행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든 사람? 어 왜 아무도 손을 안 드는 겐가. 그런 사람이 없을 리가 없다. 아니 없어선 안 된다.
뉴세븐원더스는 뉴세븐맛나스와 마찬가지로 전화나 인터넷으로 무제한 중복투표가 가능한 단순명쾌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런가하면 행사비용 및 투표절차, 스폰서십 등에 드는 실탄으로 인도네시아 정부에 450억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상대의 주머니 크기를 고려하는 양심은 있는지 작은 나라 몰디브에는 10억원이 안 되는 85만불을 불렀다고 한다. 의혹, 논쟁거리, 아니다. 걍 사실이다. 두 나라에서 문서 깠다.
꿈꾸는 남자 웨버씨가 지구를 가지고 현찰 부루마블 놀이를 하겠다고 덤비는 단계에서는, 그는 스위스 김선달 아저씨일 뿐이고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쇼는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깜빡 넘어갈 뻔한 나라들이 좀 되는 모양인데, 인도네시아와 몰디브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벌써들 김 샜다. 칠레 대통령은 "그 누구도 이스터 섬의 경이로움을 알기 위해 투표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웨버 씨를 쌩깠다. 그러나 한민족 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있을 때 웨버 씨의 꿈은 찬란한 현실이 된다.
뉴세븐원더스 관계자들이 제주도에 놀러와 6성 호텔에서 칙사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와 몰디브가 까제낀 것과 비슷한 문서가 오갔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확실한 건 우리나라는 몰디브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보다 현금이 훨씬 많은 나라라는 거다. 우리 정부와 지자체는 국민의 무제한 중복투표를 독려한다. 물론 돈 든다. 국민의 세금은 물론 사비까지 써야 한다. 제주도와 국격, 그리고 웨버 씨의 통장계좌를 위해서다.
여기서 나의 부족한 지성은 불충한 소설을 생각해내고 만다. 가카와 정부의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선정 쇼는 지능 아니면 양심의 문제라는 내용의 소설을. 설사 가카의 지능이 설치류 수준으로 낮지는 않을 것이므로, 소설은 더욱 불충해진다. 소설의 내용을 최대한 요약하자면 이렇다. 가카는 레임덕을 맞이하사 국민들에게 제대로 한 건 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웨버 씨가 필요한 건 아닐까. 제대로 된 건이 못 되는 걸 제대로 된 건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말해 국민들이 제주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국가적 과제나 되는 것마냥 착각하게 하기 위해 이 쇼가 그토록 대단한 영광인 양 선전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국민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허황된 감동에 몸을 떨고 자신들이 부담한 투표비용으로 가카에게 감사해야 하는 슬프도록 웃기고 자빠진 블랙코미디를 연출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나 가카에겐 좆도 깊은 뜻이 있을 게다. 내 단순한 머리는 이역만리 스위스 땅에 사무실 하나 내놓은 웬 사설재단의 사랑을 받지 않아도, 제주도는 그 모습 그대로 거기 있다는 결론밖에는 도출해내지 못하겠다. 남태평양의 섬들이 원주민들의 인위적인 노력 없이도 태고적부터 아름다웠듯이.
참, 그토록 아름다워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한다. 베란다에 그 예쁜 화분을 치우고 칙칙한 샌드백을 걸어놓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Quo Vadis Gakane, 쥐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도 제주에 투표했다."
첫댓글 거두절미 하고 물론 제주도 좋은 섬이긴 하지만 갔다와본 사람들은 필이 팍 오지않는가?
솔직히 세계7대 경관은 좀 아닌듯
제주가 우리나라가 자랑할만한 멋진 경관을 가진 섬이라는건 동의하겠는데 7대 경관 이런거 웃기는거죠 ㅋㅋ
치적 존나게 좋아해!!!
제주가 제일의 경관일듯. 이런 광고를 한국 이외에서는 본적이 없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