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4년부터 1587년까지의 영토이다.
시마즈의 역사는 일본 권력 투쟁의 역사에서 승리된 쪽만 했다고 할 정도로 무난하게 흘러갔다.
본디 겐페이 전쟁 때는 기존의 강자인 헤이케에서 겐지로 도막 운동 때는 호죠 싯켄에서 신정으로 남북조 때는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편을 하며 사츠마 번을 넘어 규슈 지방의 지배자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남북조 시대에 남조의 규슈 정벌 성공, 남북조 통일 후 아시카가 막부 시기엔 각지의 강한 세력 견제로 시마즈의 세력은 축약되고 이토 가문과의 악연도 시작된다.
결국 오닌의 난 이후 전국시대가 도래하자 규슈 역시 혼란에 빠진다. 시마즈는 이토에게 당해 영토가 절반이 되었고 호소카와, 오우치 등 서부의 유력 다이묘들도 규슈를 간섭했다.
시마즈는 내부 결속과 더불어 철포 등 선진기술을 들여왔고 외부의 간섭이 줄어들자 이토와의 승부로 최대 위협 요소를 제거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오우치의 지원을 받던 오토모 역시 강해져 시마즈를 제외한 규슈를 차지하며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다행히 오토모는 쇼니가 차지하던 지역을 류조지가 반란을 일으키며 떼어져 나갔고 모리가 주코쿠 지역 통일, 시코쿠는 초소카베, 미요시로 나뉘어 외부 영향이 전무한 상황이 되었다.
철처히 준비한 시마즈와 마음이 급한 오토모와의 한타를 했다. 시마즈가 승리하며 오토모를 규슈 북부로 밀어내고 류조지 역시 꺾으며 위와 같은 영역을 구가한다.
오토모가 최후 직전에 모리까지 꺾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개입시켜 시마즈의 확장을 멈추고 다시 분열 및 배분을 하며 시마즈의 짧은 전성기는 끝났다.
이후 도요토미의 다이묘였다가 임진왜란, 세키가하라 전투 종군 후 도쿠가와의 인정을 받아 도쿠가와의 다이묘가 되었다. 이후 도쿠가와가 미국에 의해 약해졌을 때는 존왕양이 운동을 주도해 메이지 시대 때도 힘을 잃지 않고 현대까지 이어오고 있다.
첫댓글 일본에 후지와라 고셋케 그리고 도쿠가와 종가를 포함해서 몇안되는 공작가문입죠.
논외로 시마즈의 가신 사이고 쥬도 집안도 공작집안
맞쥬. 참 시대를 잘 읽어서 만든 공작 집안
유로파 맵에서 예쁜 색깔중 하나는 보라색인거같아요. ㅇㅈ?
ㅇㅈㅇ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