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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12
구자근 사모(광주 화평교회)
<왕녀와 머슴>
"어이! 이 쪽이 좋구만 그래. 여기서 먹자고! "
"그려, 그려. 여기 잔디 위에서 먹으면 되겄어."
"어이, 그 밥 이 쪽으로 가져오슈."
왁자지껄...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지난 여름,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때때로 행해지는 동네사람들의 무분별한 행동 때문에 심사가 복잡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교회마당이자 우리집 마당인 등나무 아래에 턱 걸터앉아서 담배피우며 이야기하지를 않나, 교회 옆 양파밭에서 떼지어 일하면서 점심 보따리는 교회 마당으로 끌고온 채 한바탕 풀어놓고 시끄럽게 먹고 한잔 마시고... 밥그릇을 달라느니 숟가락을 달라느니 안주가 부족해서 그런데 엊그제 사모님 김치 담근 것좀 한보새기만 달라느니... 또 교회사택 담장 좀 보시라지. 나는 채소 부스러기 하나 마음 놓고 버린 적이 없는데 깡통에, 술병에, 담배꽁초에, 양파 심고 남은 모판 찌꺼기들이며 비닐봉지며 농약병, 이 쓰레기, 저 쓰레기... 그 때마다 그 상식 없는 처사에 (초등학교 시절, 길거리에 휴지를 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배운 이래로 정말이지 이 날 이 때껏 쬐그만 종이조각 하나 버린 적이 없는 이 모범적인 시민이 볼 때) 울화통이 터져서, 이 놈 저 놈 하며 애꿎은 오목사한테만 화풀이를 해댔다. 그 때마다 오목사는,
"가만 보니께 말여, 이 사람들 수준이 이거여. 나도 당장 어떻게 해보고 싶지만, 그런다고 저 사람들 습성이 고쳐질거라는 기대는 웃기는 거라고. 차라리 나랏님을 원망하지, 이 사람들을 그대로 이해해야 할 것이오. 선교지가 따로 없수다. 성도가 사는 곳은 다 선교지로 낙인 찍힌 거라고... 저 앞 웅덩이 쓰레기 봤수? 마을 전체가 쓰레기 처리가 안돼서 엉망이라구. 자기네 밭들은 얼마나 깨끗하게 해놓는지, 자기 밭 쓰레기 남의 담장에 버리면서 깨끗함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라고, 가만 내둡시다. 내가 언제 푸대자루 들고 다니며 다 주워서 없애버릴팅께. 저 사람들이 보면 미안해 할까봐서 지금은 가만 놔두는거요. 복음 아닌 거 가지고 괜히 성내고 핏대내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러우면 더러운 거지. 더욱이 은혜 못받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라도 마음대로 잘 살아봐야 할 거 아니요? "
쳇, 속도 좋네. 매주일 심판이니 은혜니 외치고 외치고 또 외쳐대면서 왜 저딴건 그냥 냅두는 거냐고... 하기사 매번 남에게 다 떠넘기며 나는 깨끗한 척 해대는 모양이 꼭 나를 보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만서도... 하여간에 간신히 그 겨울을 났다. 새 봄이 돌아오면서 여기저기 품앗이 하는 사람들의 무더기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오늘 그 과거가 생각나는 현장에 또다시 돌입하게 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문을 열고 나갔다. 내 이번에는 절대로 그냥 안넘어간다. 점잖게라도 한마디 해야지.
"무슨 일이세요? "
집주인이 나갔으면 뭐 미안해하는 눈치라도 있어야지, 아무도 대꾸하는 사람은 없고 자기네들끼리 밥상을 풀어놓기 직전이다. 아니 어디다가 지금...
"그 쪽은 아이들이 들락날락거리는 문이예요. 동네 아이들도 들랑거리고요. 차라리 저 쪽에서 드세요. "
"... 예, 그렇구만요. 사모님, 그런데 신문지 좀 갖다주실라요. "
원하는 자리가 아니라서인지 썩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물건들을 옮기면서도 부탁할건 빼놓지 않았다. 쳇, 돗자리도 안가지고 다니나... 막상 이말 저말 뭐라고 하자니 속에서만 맴맴 돌 뿐 그놈에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아이구, 당연하지. 초등학교 다닐 때 너 생각 안나냐? 소풍갈 때, 1년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한 김밥, 계란말이 밥을,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송충이가 지나간 자기 밥과 바꿔 먹자고 했을때도 말 한마디 못하고 통째로 바꿔준 그 답답이의 원조가 바로 니 속이 아니냐고... 에이! 밥 좀 먹자는데 어쩌겄냐.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신문 가질러 집 안으로 들어오는데 식탁에서 딸기(신마트 아주머니가 거저 주신 ) 한박스를 다듬고 있던 오목사가 슬슬 나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여? 뭔 일 났남? 왜이렇게 시끄러워? "
갑자기, 한소리 하자면 얼마든지 하고도 남을 오목사가 사람들한테 혹시라도 화낼까봐 겁이 났다. 그래서 조용히,
"그냥 밥먹는 거예요. " 하고 말하며 눈짓을 했다. 그러나 벌써 마당으로 발을 내딛은 오목사가 좌중을 향해 한마디 했다.
"무슨 일입니까? "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래도 누구 하나 나오지 않고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을 준비를 했다.
"여기 대표가 누구요? 대표 없어요? "
"대표 나오래요. " 수군수군...
"어이, 이 쪽으로 와봐. 목사님이 대표 찾아요. "
자기네들끼리 뭐라 뭐라 하는데 그 대표라는 사람이 나왔다. 오목사가 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아저씨, 남의 집에 들어왔으면 주인을 먼저 찾고 '우리가 사정이 이러이러하니 마당에서 밥 좀 먹겠습니다. 이해하쇼' 라든지, 뭐 얘기가 있어야 할 거 아뇨. 더군다나 이 교회, 사택은 내 개인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이 동네 성도들이 돈을 모아서 지은 것인데, 저도 집을 맡았으니 관리 책임도 있는 것이고 말이지요. 이렇게 아무 말씀도 없이 함부로 하시면 어떡합니까? 오늘은 드시고, 다음부터는 이런 식으로 하지 마십시오... "
말을 마치고 났는데 목사 옆에 있던 분이 목사 팔을 잡으며 말했다.
"목사님,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여기 성문이 할아버지네 밭에 고추심고 있는 것인데... "
소리가 낯익어서 자세히 보니 김복림 집사님이었다. 순간 얼마나 당황스럽고 웃기기도 하고 또 미안하기도 하던지...
"어? 집사님 아니십니까? 참, 진작에 말씀 좀 해주시지 않고... 어? 새롬이 엄마, 아빠도 계시군요... 저회가 작년 여름에 이사와서 가끔 놀란 일도 있고 해서 이렇게 말씀드린 것입니다. 갑자기 들이닥쳐서 한마디 말도 없이 자기네 볼 일 보고 나가고 말이지요."
"그러셨겄어. 그렇지... 놀라기도 하셨겠구만, 하하하..."
가만 보니 지난 수요일 밤에 처음으로 교회에 나와 앉아계시던 아주머니 얼굴도 보였다. 모두 수건들을 눌러쓰고 그 위에 모자를 겹으로 얹어써서 언뜻 보면 누가 누군지 몰라볼 수밖에 없었다. 말은 바른 소리 했지만 왠지 겸연쩍고 미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목사니, 사모님도 같이 드세요."
"아니예요. 저는 점심 먹었습니다. 그럼 맛있게들 드세요."
오목사는 인사를 하고 잠시 전의 일터로 사라지고, 본래 들밥 맛을 즐기는 나는 슬며시 눌러 앉기로 했다.
"여기도 밥 한그릇 주세요."
"아이구 사모님, 이 쪽으로 앉으세요. 여기 찌개 국물도 떠드시고요."
"괜찮아요. 거기 놓으세요. 제 팔이 길거든요... 아주머니는 어디 사세요? "
"원동에 살아요. "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한번도 못본 얼굴이예요. 수건을 거의 쓰고 다니시니까 누가 누군지 몰라서 저희가 인사도 못하고 실수할 때도 많이 있어요. "
"그렇지요, 뭐... 저는 본 적이 있는데.. "
"사모님, 이 것도 좀 드세요."
참말 미안하게 왜이러신담? 자꾸 권하고 이것 저것 또 권하고... 그러고 저러고 난 뭐냐?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변덕스러워서야 원... 지지고 볶던지 말든지 뭐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결말짓던 오목사는 점잖게 한마디 한 채, 본연의 자리로 물러가고, 오늘은 기어코 뭔가 한마디 할라고 다짐했던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신문지에 밥그릇에 대접에 숟가락, 젓가락에... 게다가 들밥을 보니 또 땡기는 것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눌러 앉았으니 말이다.
어쨌든 밥은 꿀맛이었다. 옆자리에서는 아저씨들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해대며 맛나게 빈 속을 채우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껴서 자리가 어색할까봐 일부러 이 말 저 말 묻고 답하고 웃기도 했다.
"아저씨, 누가요... ? 중학생이요? "
"예... 운남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얼굴이 반반했던 모양입니다. 15살 짜리가 자기 선생님하고 연애질해서 그 뒤로 학교도 제대로 못다니고 결혼까지 했는데, 글세, 그 속에서 난 자식이 얼마전에 사법고시까지 패스했다는 거 아니예요... "
"예... 뭐, 이상한 일은 아니네요. 원래 아무나 연애 잘하는거 아니잖아요. 똘똘한 사람이 연애도 잘하거든요."
"하하하... 하하하... 그러죠, 그러죠... "
"이 원동 부락도 여자들이 미인인 데다가 웬만한 일은 여자분들이 다 해내는 것 같아요. 아저씨들은 복도 많습니다. "
"무슨 소리?! 우리 남자들 꼼짝 못하고 살아요. 어이구--- 무섭습니다. 수 틀리면 돈 한 푼 안주고 나가라고 그러고, 그러면 갈 데도 없고 금방 들어갈 수도 없고... "
"하하하, 그래야 제대로 된 가정이래요. "
이 얘기, 저 얘기 유쾌하게 주고 받으며 식사를 마치고 모두들 일터로 가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모님 때문에 밥을 많이 못먹었다는 등치좋고 배나온 대표 아저씨가 말했다.
"조금 있으면 또 한사람 밥 먹으러 올텐데, 여기에다 그냥 두고 가겄습니다. "
"예, 찌개는 제가 데워 드리지요. 거기 안에다 들여놓고 가세요... "
어느새 괜히 기분이 유쾌해진 나도 부엌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목사는 그때까지 그 큰 딸기를 칼로 깨끗이 다듬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먹은 자리를 얇삭하게 도려내고, 꼭지 따내고... 몇 개 씻어서 먹어보니 올 해 처음 먹어보는 딸기 맛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염치없는 마음이 된 나는 사과의 말꼬를 텄다.
"아이구^^ 서방님, 이거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할 터인데 대체 왜이러십니까?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오늘은 이래저래 공부가 늦어졌네요. 가셔서 묵상하십시오. "
"아니여--?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그냥 묵상이 줄줄 나오는게 아니라구. 말씀 앞에 씨름하고 있어도, 주께서 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토해낼 수가 없지. 이렇게 딸기를 다듬고 있어도 성령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면 바람은 부는거여? 그래서 말인데 난 확실히 결정하게 됐수."
"무슨 말이유? 우리가 뭘 결정할게 남아있남. 선택의 여지가 없는 쪽으로 살아왔는디... "
"내 인생의 목표를 확실히 결정했다구... 이렇게 당신 섬기고, 아이들 섬기면서 끝까지 이 집안의 종놈으로 남겠다-- 이거여! 난 옛날 자랄 때부터 내 자리가 꼭 이런 모양이었다니까. 참 신기한 일이여. 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래서 크게 한번 소리치며 살고도 싶었는데 말이지. 이상하게 돌아보면 내가 자연스럽게 이런 자리에 있어지게 되고, 그래야 또 모두가 편하더라니까.... "
"하하하, 하하하 난 또 무슨 말이라고... 새삼스러운 목표도 아니네 뭐. 여태까지 그런 마음으로 버텨오고선... "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왕녀와 머슴... 종놈이 마당 현관에서 나그네들과 왁자지껄... 안된다느니, 된다느니, 이러 이러 하라느니 떠들고 있을 때 바로 그때, 위기의 순간에 상전이 딱 나타나는 것이여. '어허, 무슨 일로 이렇게 소란스러운가...' 그리고 상전의 넓으신 아량으로 주위가 잔잔해지고 평화로워지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었는데, 사실은 그 상전의 주가가 높아진 것이지... 하하하 난 종놈 자리가 딱 어울린다니까. 당신은 뒷마무리 싹 하고 어색한 분위기 다 풀어놓고 사람들 마음 편하게 장식해주는 상전 역할... "
진짜 그러네. 돌아보니 그렇게 된 것이구만. 이 장면을 형제를 섬긴다고 말하던가, 형제를 세워준다고 말하던가... 어쨌든 주님을 사랑하는 그 한가지에서 나왔다는 것을 저 진지한 표정으로 알 수 있겠는데, 나는 이제 주님 앞에서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용기 있는 척, 담대한 척 하다가 막상 밥상머리 앞에서 밥 못먹을까봐 심기가 약해진 내가 아닌가. 내심 내가 부드럽게 해야 '화평교회' 이미지가 새롭게 세워지지... 이러면서 말이다. 주님의 교회되게 하심과 새롭게 하심이 어디 인간의 부드러움과 웃음으로 세워지고 유지된 적이 있었던가!
이 세상은 어떤 조직이든 애써 부드러움과 웃음의 써비스를 가르친다. 친절과 인내와 온유를 가르치고 훈련시킨다. 그래야 조직이 인정받고 괜찮은 사람들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즉 찾아들게 하는 것이 각각의 조직이 모인 이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살 길이 되고 돈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태초에 하나님을 떠나게 된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자아충족을 누리는 길이고 나의 존재가 드러나는 기쁨으로 인하여 살 맛 나게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애쓴 열매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인간이 불어나고 조직화될 때 얼마나 뿌듯할 것인가. 성장에 대한 탐심과 유혹은 개인으로 보나 조직으로 보나 끝없이 펼쳐진 미로이다.
교회는 이러한 세상의 특징과 비슷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목표나 수단으로 내세우지 않는 곳이다. 찾아들게 하는 힘이 '조직'으로가 아니요,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으로 말미암는다고 주장하는 곳이다.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으로라야 빛으로 드러나고,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대치될 수도 없는 소금의 짠 맛이 내진다는 것을 확인받는 곳이다. 성도는 조직의 힘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도록' 애쓰는 자가 아니요, 위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으로 비춰지는 빛이요 짠 맛 내도록 되어 있는 소금이다. 즉 예수님은 성도로 하여금 세상과 섞일 수 없고 구별될 수밖에 없도록, 그래서 빛노릇, 소금 노릇 하도록 경계선이 되어 주신다.
생명수는 흘러서 넘치는 것... 그래서 생수의 강은 더 넓게 주변을 적시고 점점 더 확실하게 그 영역을 드리워서 우리에게 임한 천국을 돋보이게 한다. 마치 모든 씨보다 작은 겨자씨 하나가 다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는 것(마태복음 13:31-32)처럼... 이것이 인간의 부드러운 웃음과 편안한 분위기로 이루어질 일인가. 공중의 새들을 그 가지에 깃들이는 일이나 그 작은 겨자씨를 나무가 되도록 자라게 하는 일도 그렇지만, 겨자씨 자체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성도가, 교회가 무슨 실천이 없고 바른 행함이 없다고 통탄하는 것은 세상 조직으로 생각할 때나 나오게 되는 마땅한 말이다. 그러나 교회는 분명 세상의 조직이 아니다. 성도는 열매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교회는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이것은 '바르고 착한 행실의 있고 없고'에 대한 세상 조직의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원천적인 의미에서 '믿음의 유무'에 대한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즉 믿음은 거저 받은 것이라고 했을 때, 주신 자가 내시는 믿음의 열매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 '당신은 왕녀요, 나는 머슴'이라고 하는 고백조차도 믿음에서 발생된 것이라면, 조직에서 가르쳐지고 훈련된 행실이 아니요 위로부터 임한 능력의 소산이리라.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심지어 밥상머리에서조차 밥 한그릇이라도 더 얻어내려는 조직의 왕녀에게 늘상 부끄러운 자리는 따라다닌다. 잘해보려는 자신의 의도가 어느새 수치스런 기억으로 마감되곤 한다. 그런데 이것이 왜이렇게 꼭 들통나게 되는가. 바로 능력의 머슴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것이 은혜이리라.
이 세상의 조직에서 어떻게 해야 살 길인지를 음으로 양으로 학습받고 훈련받으며 자란 성도가 본능적으로 그리 행하고 있을 때, 신랑되신 예수님은 우리 곁에 꼭 따라붙어서 '조직으로냐, 능력으로냐'를 캐물으신다. 조직의 왕녀가 '애써서' 내는 열매냐, 능력의 머슴에게 '따라 다니는' 열매냐를 재차 물으신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서는 여전히 부끄러움만 남지만 화평마당의 밥상머리에서는 더 이상 조직의 사람을 챙기려는 불필요한 행위는 의미없음을 알게 되고 대신에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밥 한그릇 챙겨먹든지 피하든지 그것따라 판단하지 않고 오직 성도의 곁에 따라붙는 주님으로 인하여, 은총의 사람으로 남게 된 사건만을 기념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성도는 조직의 왕녀보다 능력의 머슴에게 붙어사는 은혜를 은밀한 중에 기뻐하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