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기사 Another Story - 황혼의 기사들 -
“할 수 없군. 그래도 여기서 이틀 정도 머물다가 가야겠어. 엑슨이 정신 드는 것은 봐야하니깐.”
그렇게 결정한 라디는 펠과 듀란을 데리고 식사하기 위해 병원을 나섰다. 고든도 데려가려고 했지만, 고든은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그들이 떠난 지 한 시간 가량 지났을 무렵, 의사 역시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간 것을 확인한 고든은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통증에도 이를 악물고 옷 보관함에 들어있던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고는 창을 들고서 패트릭 일행이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탓에 평소다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관에서 왁자지껄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던 패트릭 일행은 고든이 갑자기 문들 열고 들어오자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술을 들이키려던 알렌은 여관으로 들어오는 고든을 보고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슨 볼일이지?”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소.”
“부탁? 무슨 부탁이지?”
알렌은 고든이 낮에 자신에게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을 위해 온 것이라고 여겼지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말에 의아해 하고 있을 때,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가르침을 부탁드리고 싶소.”
“귀족인 주제에 이런 곳에서 무릎을 꿇다니, 당신은 자존심도 없는가?”
“난 귀족이기 전에 무인(武人)이오.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치욕이라도 상관없소.”
언제나 쓸데없이 자존심만 쌘 귀족자제들만 보아오던 알렌인지라, 고든의 행동이 꽤나 신선하게 느껴졌다.
“재미있는 놈이군. 그렇게 원한다면 알려주도록 하지.”
“감사하오.”
“다만…”
알렌은 그의 옆에 놓여 있던 낮에 사용하던 막대기 대신 구석에 가죽으로 쌓여있던 창을 꺼내어 들었다.
"친절하게 말로 가르쳐줄 생각은 없다. 가르침이 필요하다면 실전을 통해 직접 알아내.“
“물론이오.”
알렌이 밖으로 나가자 고든도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여관 앞 공터에 마주보고선 두 사람은 공격을 위해 자세를 잡았다.
“당신은 싸움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지?”
알렌의 질문에 고든은 지극히 일반적이고 교과서적인 답을 말했다.
“자신의 명예를 걸고 상대에게서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마음가짐이오.”
“웃기는 소리군. 미안하지만 난 교과서나 낭독해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말이지.”
알렌의 비웃는 것 같은 말투에 고든은 약한 불쾌해졌다.
“승리를 쟁취하는 것 말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이오?”
“싸움은 정해진 룰에 따라 펼쳐지는 대련과는 다르지. 싸움에서 가장 중요 한 것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적을 반드시 쓰러뜨리고 철저히 파괴해 버리겠다는 강한 의지, 즉 투기(鬪氣)다.”
“그것은 시정잡배들이나 해당되는 것이오. 정정당당한 싸움 통해 명예를 지켜가며 싸워나가는 것이 기사로써의 도리요.”
고든의 말에 알렌은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투기(鬪氣)를 끌어올렸다.
“안타깝게도 난 기사 따위가 아니야. 그 따위 가식적인 작자들은 역겹거든.”
“기사를 모욕하지 마시오!”
고든은 더 반박하려고 했지만, 자신을 압박해 들어오는 알 수 없는 기운에 한 쪽 무릎을 꿇은 채로 간신히 버티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알렌의 창이 쇄도해 들어왔다. 그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피하려했지만, 창으로 부터 푸른 섬광의 무리들이 뻗어나와 그의 전신을 강타했다.
“크아악!”
전신을 엄습해 오는 고통에 고든은 비명을 지르며 쓰려졌다. 고통을 참으며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는 찰나, 알렌이 창을 옆으로 휘둘러 봉 부분으로 복부를 가격하였다. 그로인해 고든은 피를 뱉으며 다시 쓰러졌다.
“이런 젠장…”
평소에 오로지 귀족적인 고상한 말만 하던 고든의 입에서 ‘젠장’이라는 상스러운 단어가 나왔다. 쓰러진 자를 일어나기 전에 다시 공격한다는 것은 기사도에 어긋나는 비겁한 행위였고 그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기가 생긴 그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알렌은 이번에도 틈을 주지 않고 창 뒤쪽의 둥글고 두툼한 부분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크헉!”
고든의 고개가 옆으로 꺾어지며 뒤로 쓰러졌다. 이어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처음 당했던 푸른 섬광의 무리들이 또다시 고든의 몸을 강타하였다. 고든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알렌은 시체처럼 축 늘어져있던 그에게 다가가 자신의 발로 그의 머리를 밞아 짓눌렀다.
“이게 당신이 말하는 기사의 모습인가? 하긴 기사는 실력이 아니라 단지 가문의 명예를 갉아먹으며 사는 벌레 같은 존재이니 이상할 것도 없군.”
제대로 공격조차 못해 본채로 알렌에게 형편없이 짓밟힌 고든은 수치심과 자괴감으로 인해 육체의 고통보다 더한 정신적 고통을 느꼈다.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사로써의 자존심이 알렌에게 더럽혀지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인다.’
순간, 고든의 마음속에서 살기가 일었다. 그가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이었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까지 잠식하며 이성마저도 삼켜버렸다. 그와 함께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사라지고 오직 눈앞에 있는 존재를 없애버리겠다는 살의만이 남았다.
‘죽인다.’
알렌에게 밟혀있던 고든이 옆에 떨어져 있던 창을 쥐고는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알렌을 향해 빠르게 창을 찔러 들어갔다. 알렌이 뒤쪽으로 살짝 뛰어 오르며 피했지만, 고든의 창이 반원을 그리며 그의 오른쪽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알렌은 급히 창을 세워 공격을 막았고 이에 고든은 창을 놓으며 몸을 날려 그에게 부딪혀 왔다.
“이런.”
알렌은 고든의 막무가내 식 공격에 살짝 당황했지만, 뒤로 넘어지면서 무릎을 살짝 굽혀 급소이자 남자의 상징을 가격했다.
“크아악!”
방금 전까지 알렌을 죽일 듯이 달려들던 고든은 알렌의 일격에 공격받을 곳을 붙잡고 열심히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한참을 뒹굴 던 고든이 정신을 차렸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났다.
“이게 무슨 짓이오?!”
“말했지 않나? 어떻게든 이기는 게 중요하다고. 어쨌든 정신이 들었나 보군.”
“그래도 이건 너무 하지 않소?”
남자로써의 인생을 앗아갈 번했던 알렌에게 고든은 방방 뜨며 항의했지만, 알렌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하지 않겠나? 어찌되었던 패도(敗道)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게 무슨?”
알렌의 말에 고든은 기억을 더듬어 살기가 자신을 지배하던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는 오직 알렌을 죽이겠다는 살의만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때의 느낌을 통해 미약하지만 투기(鬪氣)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아!”
깨달음을 얻은 고든이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단순히 감탄사 하나만 남긴 채, 뒤로 넘어가며 기절해 버렸다. 낮부터 지금까지 알렌에게 얻어맞은 상처들에서 오는 고통이 정신이 들자 한꺼번에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남자를 업는 건 사양인데.”
알렌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기절해 버린 고든을 창의 뒷부분으로 쿡쿡 찔러보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의사인 바칸은 눈앞에 있는 인간으로 보이는 피 범벅의 생물체를 바라보며 신음하고 있었다.
“끄응…”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알렌이 병원 밖을 나서려 하자 바칸이 멈춰 세웠다.
“잠깐!”
고든을 배달하고 병원을 떠나려던 알렌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왜 그러십니까?”
“자네, 이게 뭔가?”
“고든이라는 자입니다만?”
“그럼 사람이라는 말이군?”
“당연한 걸 왜 물으시는 겁니까?”
바칸의 질문에 알렌은 귀찮은 와중에도 나름 성심껏 대답했지만, 바칸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근데 왜 무슨 바비큐 용 멧돼지 마냥 창에 묶여 있는 건가?”
바칸의 말대로 고든은 바비큐용 멧돼지처럼 손발 묶인 채 창에 매달려 병원 바닥에 옆으로 가지런히 눕혀져있었다.
“아, 그건 남자를 업고 다니는 건 질색이라서 말이죠.”
“그래서 온 몸에 타박상을 입고 내상까지 당한 환자를 허리까지 꺾어서 이렇게 묶어서 왔다고?”
“예, 창이 길지가 않아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힘들더군요.”
알렌은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그러냐는 듯 심드렁하게 대꾸했지만, 바칸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잠시 밥 먹으로 나갔다 온 사이에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피떡이 한 놈 더 추가되었던 것이다. 그는 빛과 같은 속도로 옆 탁자에 놓여있던 침통에서 기다란 침 3개를 꺼내 알렌을 향해 날렸다.
“이런 오우거 대가리 같은 놈이 있나?!”
바칸의 기습에 알렌은 재빨리 허리 찬 단검을 꺼내 막았다.
“훗, 영감님 저한테 이런 공격은…어?”
막았다라고 생각한 알렌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려는 순간 그의 몸이 마비되며 미소 짓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머리와 가슴을 노리 던 2개는 막았지만, 아래를 노린 침 하나가 왼쪽 발 새끼발가락에 박혀 버린 것이다.
“플라이(Fly)!"
알렌에게 다가간 바칸이 마법으로 알렌의 몸과 창과 공중에 띄웠다.
“인텐글(Entangle)!"
이어서 주문을 영창하자, 마법으로 만들어진 로프가 나타가 창에 알렌을 몸을 고든과 같은 바비큐용으로 묶어버렸다.
“저 하늘의 밝게 빛나는 별이나 되 거라! 페스트 무빙(Fast moving)!”
마지막으로 주문을 영창하자, 알렌이 묶인 창이 문 밖으로 쏜 살같이 날아가더니 마을 중아에 있는 고목의 꼭대기 부분에 박혔다.
첫댓글 피식.. 유머가.. 잘봤습니다.
안녕하세요 애플군
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