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 : 자녀를 인기 영어학원에 등록하려고 거리에서 밤을 새우는 학부모들./조선일보 DB사진
서울 광장동에 사는 용현(가명·7)이는 유치원과 영어·음악· 미술·체육 과외로 한달에 100만원을 쓴다. 전업주부인 용현이 엄마(34)는“남편 월급 중 생활비 대부분을 교육비에 쓰기 때문에 화장품은 샘플을 얻어서 쓸 정도”라며“다른 지출은 생각도 못하고 산다”고 했다.
과외비 부담으로 부모들은 등이 휜다. 거주지역·계층에 구분이 없고, 학원(과외) 보내는 아이들 연령은 점점 어려지고 있다. 모자라는 과목을 보충하거나 학교 공부의 보완책으로 과외를 하던 것은 이미 한가한 시절 이야기. 과외 산업은 학부모들 경쟁심·초조감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거기다‘비싼 게 고급’이란 극히 상업적 논리에 근거한 과외 산업은 일부 영어 유치원, 유아 프로그램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 유명 영어유치원. 수업료·입학금·급식비를 합하면 한 달에 80만~110만원 안팎. 여기에 다른 특기과외까지 하면 200만원은 잠깐이다. 미국의 사립학교 1년 학비(기숙사비 포함)가 연 2만5000달러(약 3000만원)니까, 외국 유학보내는 것과 맞먹는 비용이 드는 셈이다. “월급 생각하면 도저히 계산이 안나오는데 어떻게 과외시키고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한 주부는 “남편 용돈은 없다. 그러니 우리 사회부정부패 이야기가 나와도 할 말이 없다”고 할 정도다.
남편 벌이만으로 형편이 빠듯한 집은 엄마들이 과외비를 벌러 나선다.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가까운 대형 할인매장이나 백화점 수퍼마켓 주부 사원들은 대부분 주변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다. “한 달에 40만원 벌어서 딸 학원비에 씁니다.” 서울 개포동의 한 할인매장에서 일하는 김모(43)씨는“초등학교 4년생 외동딸이 공부를 썩 잘해 더 많이 뒷바라지해주고 싶어 일자리를 얻었다”고 했다. 판매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우면 파출부로 뛰기도 한다.
도대체 학원비, 과외비가 얼마나 들기에 전업 주부들이 팔을 걷어붙여야 할까. 가장 싸게 먹히는 게 학습지라지만, 두 세개만 하면 금방 10만원이다. 학원→그룹→개인 과외로 가면서 비용은 기하급수로 올라 간다. 주말 체육 교실도 한달에 5만원 넘게 든다. “안하면 될 것 아니냐”고? 자녀들 미래와 생존을 위한 필수 비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좌뇌와 우뇌를 따로 훈련시킨다는 유아 뇌학습 과외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무리하지 않겠다”던 소신파 엄마들이 이젠 불안을 견디지 못할 정도다.
이렇게 과외가 난리여도 과외 시장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는 곳은 아직 없다. 개별적인 경우를 통해 어림할 뿐이다.
강남의 30평 안팎 중산층 아파트지역을 보자. 봉급 생활자와 자영업자들이 많은 A아파트. 초등학생 둘을 둔 월 수입 500만원(세전) 가구에서 평균 과외비용은 월 120만~150만원 정도다. 학년이 높아질 수록 비용도 늘어, 초등학교 고학년을 둘만 두어도 월 200만원에 육박하게 된다. 아이가 하나인 경우 월 120만원을 상회하는 경우도 있다. 1인당 영어 두가지에 30만원 안팎,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악기 한두 가지에 보통 10만원 안팎, 거기에 수학과 미술·운동· 학습지 등 소소한것 몇 가지가 겹치면 바로 치솟는다.
강북의 대표적인 대형 아파트 주거 지역인 노원구 상계동, 중계동 일대에서도 유아·초등학생 과외 바람은 일상이 되었다. 중계동 은행사거리는 강남 대치동에 맞먹는 학원가. 영어·수학· 악기를 적어도 한 가지씩은 하고 있으며, 과학실험, 영재클래스 등 ‘특별 활동’까지 하면 1인당 최소한 50만원은 쉬 이른다.
유아·초등생 과외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김해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는 날마다 느는 것이 학원이고 유아 특활교실이다. 지난해까지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었던 안양이나 인근 평촌 신도시 같은 곳도 초등학교 때부터 대입준비로 아이들이 바쁜 곳.
평촌의 주부 임모(42)씨는“명문고교 진학성적이 좋은 특정 중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하려고, 아이가 4~5학년만 되면 이사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전한다. 경쟁이 심한만큼,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과학·체육 과외로 중학교 학과목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과외 산업의 대형화야말로 과외광풍(狂風)의 핵심 요인이자, 과외비용을 높이는 주범이다. 유아의 두뇌발달을 촉진한다는 이름 아래, 실제 효과가 검증되지도 않은 학습법들이‘새 것’이란 이름을 걸고 나온다. 학령 전 아이들의‘토론 학습’, 옛날 같으면 색종이 오리기로도 충분할 도형 놀이를 현란한 상품으로 만들어 내놓는 것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유서깊은 인문도서 출판사들까지도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철학동화’류의 아동도서 출판도 유아와 초등학생 과외 학습 열기를 부추기는 경향을 보인다. 이 가운데는 도저히 어린이에게 알맞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 버젓이 끼어있다.
K출판사가 펴낸‘Baby셰익스피어’. ‘2~7세 어린이에게 읽어주라’ 는 이 책에 실린 시. “육체는 슬퍼라, 오! 나는 온갖 책을 다 읽었노라 . 떠나리, 멀리멀리 떠나버리리.(뒷부분 생략)”프랑스 시인 말라르메의‘바다의 미풍’이다. 이 책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중 한 대목도 들어있다.
네댓 살 난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고, 이해를 요구하는 일이 생긴다면 정말 참담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얼마나 드나
서울 개포동 순호(7)·희진(6) 남매 한달 사교육비는 150만원. 순호는 영어유치원·유아 수학·한글·기초체육·미술·과학, 희진이는 피아노·과학·영어·미술·수학·글쓰기를 한다.
광장동 영지(9)·영욱(6) 남매 역시 150만원이 든다. 유치원생인 영욱이는 영어유치원·유아수학·한글·기초체육·미술·과학. 초등 2년생 영지는 피아노·과학·영어·미술· 수학·글쓰기를 배운다. “취학 전에 한글 수학 떼지 않고는 따라갈 수 없게 만든 교과서부터 바꾸라”는 게 영지 엄마의 분노에 찬 지적이다.
압구정동 민형(8)·시형(6) 형제에게 드는 비용은 월 200만원. 제일 큰 몫이 시형이는 영어 유치원(80만원)이고, 둘 다 미술학원(15만원), 영어책읽기(5만원), 영재스쿨(15만원), 인라인스케이트(10만원)를 다닌다. 김해의 소영(7)·재영(9) 자매는 미술(15만원), 영어(24만원), 피아노(15만원), 노래(15만원), 학습지(한글·수학 각 3만7000원)를 한다.
유아 영재교실은 교구값이 강습비를 훨씬 웃돈다. 도형감각과 논리력· 추리력을 기른다는 은물은 한 세트가 160만원. 1주에 1회 교육하는 게 한달 5만원이다. 오르다는 한 세트 100만원, 한달 교습비가 6만원이다. 은물과 오르다, 그리고 미술교실(15만원), 학습지 1개(3만원), 피아노 레슨(11만원)을 받는 현저동 영민(6)이 교육비는 유치원비를 빼고도 월 40만원이다. 미리 목돈을 치른 교구값 260만원을 월 비용으로 나누면 월 21만원이 추가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