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집(5-5): 뜻의 변절, 마음의 타락, 사회의 부패
다시, 김매순에게 보낸 편지(答金德叟)이다. 임오년(1822년) 2월의 편지이다. 총명하고 사리에 밝아서 일을 잘 처리하여 일신을 잘 보전한다는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의미를 밝히는 글이다. 선악과 시비의 변별은 사라지고 일신과 일가의 보존만이 과제이자 비결이 되고 말았다. 명철은 가고 보신만 남은 셈인가. 문재인 정부가 100일을 맞았나 보다. 대체로 후한 점수를 줄만하다. 결과야 나올만한 시간이 아니니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태도에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9년과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믿음이 생기는 지점이다. 하지만 ‘살충제 달걀’ 사태에 이르면 낙관은 비관으로 변한다. 무엇보다 친환경인증을 받은 제품이 더 문제였다니! 소비자는 두 번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친환경의 역설이 아니라 ‘농피아’의 농단이 있었다. 여러모로 이 편지의 의미를 새기게 된다. 특히 “사익에만 몸 바치고 공익은 무시하면서 스스로 영무자의 도회(韜晦)라 여겨 뉘우칠 줄을 모릅니다. 나라가 한번 기울어지면 일어날 수 없고 세속이 한번 무너지면 일으킬 수 없는 까닭은 모두가 이 잘못된 설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도회(韜晦)는 재주와 덕을 감춘다는 의미이다. 뜻이 왜곡되면 변절된 뜻이 사람의 마음과 몸을 타락시키고 사회와 공동체는 부패한다.
“명철보신이 네 글자는 지금에 와서 세상을 부패케 하는 원부가 되었습니다. 분명히 《시경》의 해석에 잘못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매양 글자의 뜻이 그렇지 않다고 하였습니다만 이러한 말을 할 만한 데가 없습니다. 이제 보내주신 글을 읽어보니 신기가 왕동함은 물론 바늘을 꽂을 틈도 없이 꼭 합치되어 할 말을 못 찾겠습니다. 선악을 변별함을 명이라 하고 시비를 변별함을 철이라 하고 유약한 사람을 부지함을 보라 하였는데 보라는 글자는 보입니다. 대신의 의리는 사람을 선발하여 임금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선악을 밝게 분별하여 현사를 나오게 하고 시비를 밝게 분별하여 준예를 발탁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현사와 준예로 내 몸을 부지하고 내 몸을 부지한 다음에는 한 사람을 섬기는 왕을 보존하는 것이 대신의 직분입니다. 지금의 세속에서는 이 시어의 해석을 이해를 구별하는 것을 명이라 하고 어묵을 아는 것을 철이라 하고 몸을 온전히 하여 화를 면하는 것을 보라 하고 있습니다. 정전이나 주전에는 그러한 내용이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입을 모아 부화뇌동하여 깨뜨릴 수 없이 굳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신을 온전히 보존하고 일가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 참으로 지극한 비결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의리가 확립되고 나면 임금은 앞으로 누구와 더불어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제가 앞서 영무자의 우지에 대해 논한 하나의 안건은 세교에 관계되는 바가 큽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도 중산보의 명철에 대한 하나의 안건으로 세교를 보존시키려 하시었으니, 어쩌면 지견의 서로 맞아떨어짐이 이런 정도에까지 이를 수 있단 말입니까. 원래 중산보의 덕은 오늘날의 이른바 명철보신이라고 하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위에서 ‘이 천자를 보호하도록 중산보를 내셨도다.’라 하고 또 ‘백관과 제후들의 본보기가 되고 왕의 몸을 보중하게 하라.’라고 하였으니 이 두 보 자는 결단코 자기 한 몸을 온전히 하고 자기 집을 보전한다는 보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몸을 보전하며’라는 데의 보는 또한 보포한다는 보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중산보는 억강부약하고 권세가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중산보는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빠뜨린 것을 주워서 임금을 보좌하였으며, 중산보는 들어와서는 후설을 맡고 나가서는 외방에 정사를 폈으며, 요직을 사양하지 않았고 혼자만의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이 사람을 관찰해 보면, 제 몸과 처자의 몸을 보호하려는 술책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의 군자는 보다 수준이 낮은 사람도 권세를 탐하다가 스스로 멸망을 취하니 이런 자들이야 참으로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만, 행실을 닦고 몸을 삼가 대강 예의를 아는 사람도 또 명철보신 이 네 글자를 제 몸을 온전히 보존하고 해로움을 멀리하는 제일의 묘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입을 다물고 아부하여 용납되기를 구하며 무리지어 나아갔다가는 무리지어 물러나오며 집의 일을 먼저 하고 나랏일은 뒤로하여 사익에만 몸 바치고 공익은 무시하면서 스스로 영무자의 도회(韜晦 재주와 덕을 감춤)라 여겨 뉘우칠 줄을 모릅니다. 나라가 한번 기울어지면 일어날 수 없고 세속이 한번 무너지면 일으킬 수 없는 까닭은 모두가 이 잘못된 설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양웅이 잘못 해석한 것으로부터 그 본래의 뜻을 잃었다고 하였는데, 주자의 집전에서도 역시 순리로 몸을 지키는 것이지 이로움을 따르고 해로움을 피함으로써 목숨을 훔쳐 제 몸만 온전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으니, 말류의 폐단에 대해서 주자께서도 미리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폐출되어 전야에 있는 사람이야 몸에 직책이 없으니 해로움을 피하여 목숨을 훔친다는 것으로 탓할 수는 없겠습니다(‘明哲保身’四字, 於今爲敗世之元符. 明知《詩》訓有誤, 每云‘字義不然’, 顧此說無處開口, 今讀來喩, 神動氣湧, 針投契合, 不知所以爲喩也. 辨別善惡曰明, 辨別是非曰哲, 扶持幼弱曰保, 保者, 呆也. 大臣之義, 以人事君, 故明辨善惡, 以進賢士, 明別是非, 以拔俊乂. 於是以此賢俊, 扶持我身, 扶持我身, 以事一人, 此大臣之職也. 今俗解此詩, 別於利害曰明, 知所語默曰哲, 全軀免禍曰保. 鄭《箋》․朱《傳》, 無此影響, 而萬口和附, 牢不可破, 以之全一軀保一門, 誠爲至訣. 而此義旣立, 人主將誰與爲國也? 鄙人前論寗武子愚智一案, 大關世敎, 來敎以仲山甫明哲一案, 欲存世敎, 何知見之相入至是也? 原來仲山甫之德, 非今之所謂明哲保身. 上云‘保玆天子, 生仲山甫’, 又云式是百辟, 王躬是保, 此二保字, 決非全保之保, 則以保其身之保, 亦豈非保抱之保乎? 仲山甫茹剛吐柔, 不畏疆禦. 仲山甫補闕拾遺, 以佐袞職, 仲山甫入而司喉, 出而賦政, 不辭樞要, 不憚賢勞, 默觀其人, 非全軀保妻之術也. 今之君子, 其下焉者, 貪權樂勢, 自取滅亡. 斯固勿論, 卽修行飭躬, 粗知禮義者, 又以‘明哲保身’四字, 爲全身遠害之第一玄訣, 含默取容, 旅進旅退, 先家而後國, 殉私以滅公, 自以爲寗武子之韜晦, 而莫之悔焉. 國之所以一傾而不可起, 世之所以一壞而不可興, 皆此說使之也. 來喩謂自揚雄誤解, 失其本義, 卽朱子《集傳》, 亦云順理以守身, 非趨利辟害, 而偸生全軀之謂, 末流之弊, 朱子其先知之矣. 但廢黜在田野者, 身無職責, 不可以辟害偸生爲咎也.『여유당전서4』, 문집Ⅲ, 2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