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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작소설비평회♣ 원문보기 글쓴이: cafe
단속사 가는 길 심 경 숙 길이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온 산을 휘감아 지척도 분간할 수가 없다. 돌아갈까. 마을은 아직도 깨어있지 않은데 서너 채 있는 집들은 아는 집이 없다. 어디 뜨거운 국물이라도 사 먹을 요량이면 면소재지가 있는 큰 동네로 가야한다. 큰 스님의 생가 터에 있는 매점도, 생가 터의 지킴이도 아직은 잠을 잔다. 온 동네가 푸른 안개에 쌓여 마치 다른 세상으로 건너온 듯하다. 산골자기는 호수가 있는 도시의 끝자락 강의 발원지다. 아래 큰 동네 이름도 원지이다. 강이 있고 호수가 있는 도시는 아름답다.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는 듯 하다. 아침 8시 안개 낀 산골의 공기는 차다. 어머니가 말씀하신다. “야야. 치운데 뭐 할라고 이리 일찍 오노. 내 잘 있다. 죽은 사람한테 잘 하모 뭐 하노. 산 조상이 더 무서번기라. 출가외인이니 시어매 시동생한테 잘해라. 내 걱정마라. 풀에 다리 씻긴다.” 어머니는 이슬내린 풀밭에 갔다가 풀에 살갗이 슬려오는 딸을 걱정 하신다. 어머니의 태 자리이자 지금 누워 계신 곳. 도시에서 너무 일찍 길을 나섰나 보다. 초겨울의 아침은 안개속이다. 내 키만큼 자란 억새가 이슬에 젖어 있다. 따뜻한 곳이 그립다. 꿩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난다. 장끼다. 이야기군인 어머니는 꿩 토끼 멧돼지를 데리고 이야기를 하실까? 아님 청상으로 사남매를 키우게 하고 먼저 길 떠난 아버지께 투정을 하실까? 꿩이 푸르릉 인적기에 저만치 다시 날아오른다. 추수 끝난 다랑논에 알곡이 제법 있다.
장끼는 아름다운 깃털을 가졌다. 안개 속을 헤매며 이슬에 발을 적셔 본 것도 몇 년 만인가. 꼴깍! 침이 넘어가는 소리 타다닥 모갯불이 타들어가는 소리 어머니가 삼 삼는 모습 은하수는 정지문 앞으로 길게 푸른 발을 드리웠다. 나즉나즉한 어머니의 이야기소리 한여름 밤은 일곱 살 어린 내가 어머니를 차지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다. “옛날 손이 귀한 진사 댁에 삼대독자 외아들이 살았느니.” 어머니의 목소리는 잦아든다. “얼마나 귀하든지 초당에 독선생을 앉혀서 공부를 시켰응게. 아이가 열 너댓 살 먹었는기라.” 어머니는 침을 퉤퉤 손에다 뱉는다. 허벅지를 베고 누운 나는 어머니 가슴에 손을 넣는다. 끊어진 삼을 붙여 허벅지를 베고 누운 나를 건너 어머니는 무릎 위에다 비빈다. “한창 심 할 나이제. 하루는 마당을 거니는데 누런 구랭이 하나가 초당 앞 성유난구 아래 누웠다가 실실 기는기 도령 눈에 보이는기라.” 다시 나는 침을 삼켰다. “첫날은 그냥 무심히 넘겼제. 아, 그 뒷날도 같은 장소에 또 나타난기라.” 쑥대 타들어가는 냄새가 어머니가 삼을 삼고 내가 어머니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평상을 한바퀴 휘 맴돌아 대청마루 위에서 사그라진다. “뒷날은 발을 굴려 쫓으니 그 눈이 말짱히 사람을 보는기라. 또 다음날은 이 도령이 장난기가 발동해 가오리 묵고 난 굵은 가시 하나를 문창호지에 꼽아낫다가, 그 구랭이 등짝에다 팍 꼽았는기라. 구랭이가 얼매나 괴로봤는지 온 초당 주위를 비잉 돔시롱 피를 칠칠 흘리 놓고 도령이 신 신는 축담 우에 댓돌 첫발 착 디디는데다 거꾸로 그 가오리가시를 꼽아 논기라. 이상체, 암! 이기 보통일이가.” 어머니의 목소리는 절정에 이른다. “다음날 아측 도령이 무심코 댓돌 우에 발을 처억 내리 딛자 고마 그 가오리가시가 도령발바닥 엄지발가락 밑을 찌린기라. 그기 우찌 그리 될라고 그랬겄제. 성이 나서 부스럼이 나디 안 낫고 결국 그 도령 열여섯 나이에 문둥병이 걸레 갖고 조선팔도 유명한 의사는 다 차자 댕긴기라. 그래도 안 난는기라. 고마 그때 지나가던 노시님 한 분이 시주를 청하더니 도령 몰골을 보고는 방법을 알리 준기라. 지리산 아무데쯤 가모 쬐그만 절이 하나 나오는데 그 절에 영험한 시님이 계신데 가르침을 받아라. 도령은 그 밤에 산을 넘어 그 시님을 만난니 시님 말씀이 3년을 절에서 부처님 공양을 해야 되는데 그 동안 절대로 산 것을 안 죽여야 된다. 세상하고 인연을 끊어라. 개미도 한 마리 죽이마 안 된다카이. 이리 어려븐 주문을 한기라. 귀한 도령은 벵나술 마음에 시님이 시키는 그 힘든 공부를 올매나 고생을 하고 무사히 삼년을 마친기라. 벵이 나사서 집에 돌아오니 반가이 맞아줄 부모는 돌아가시고 그 가문은 절손해서 문을 닫고 집은 폐가가 된기라. 고마 귀한 삼대독자 도령이 천애고아가 된기라. 그 질로 그 도령은 그 살던 집에다 절을 짓어서 대웅전 바깥 벼름 박에다 그 사연을 기림으로 기리논기라. 그 절에는 문디병 걸린 사람이 탑돌이를 하모 났는기라. 그래 그 절이 유명해졌고마 구경 오는 사람한테 그 도령 스님이 일일이 그림을 설명함서 복을 빌어 주는기라. 나도 한분 그 절에 가고접다. 그 도령에 그린 그림 한분 보고접다.” 어머니는 과거와 현재가 없다. 마치 현재 그 절이 있는 듯…. 가물가물 잠이 들었다.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했다. 그래도 옛날이야기는 모기불이 피어지는 날은 계속된다. 한여름날 무시무시한 귀신 이야기나 섬뜩한 뱀 이야기는 모깃불을 피어놓고 듣기엔 안성맞춤이다. 어머니의 뱀 이야기는 무궁무진해서 모시를 풀해서 이슬에 적셔 다리미질할 때, 삼실을 앗을 때면 이마에 배던 땀도 가시고 소롯소롯 소름이 돋는 여름밤의 이야기다. “그리 오지 말고 기다려라.” 오빠의 외침이 안개 속에 젖어온다. 멧돼지가 어머니, 아버지 산소 봉우리를 파 제꼈다고 묵실 아제의 노한 소리를 들은 지도 한 달여 그 도시를 떠난 지 40년 만에 어머니를 산에다 내려놓은 지 5년 만에 찾아온 이곳은 낯설기만 하다. 산소는 어머니의 태 자리에서 산모롱이를 돌아 계곡을 타고 오르면 나온다. 초겨울이지만 요즘의 산자락은 유명한 등산코스가 아니면 누가 오르지 않으니 있던 길도 없어지고 산골짝 다랑논들도 누가 경작하지 않으니 산세는 더욱 고약하다. 오빠는 비슷비슷한 지형에 여름에 와서 벌초한 산소를 길을 내지 못하고 허둥댄다. 여름내 산은 무성해졌으리라. 안개가 자욱한 탓이리라. 어머니는 태어나서 자라난 곳으로 돌아왔다. 유명한 큰스님의 생가 터가 복원되어 있고 어머니의 태 자리는 주차장이 앉았다. 어린 날 이곳에 와서 패차기를 하면서 놀지 않았는가. 그래도 긴 세월이 흘러 낯설기만 하다.
“너들 그리 논을 가로질러 이리 올라와봐라.” 오빠의 외침에 추수 끝난 논바닥을 가로질러 산길을 탔다. 억새가 무성한 곳에 맷돼지가 봉분은 다 할켜 놓고 토끼가 방금 지나갔는지 까만 구슬알 몇 개가 아직 김이 난다. 토끼나 멧돼지도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러 왔을까. 서재골 험한 산 옛날 지경내에서 넘어가면 낮에도 짐승이 나오고 귀신이 나온다는 무서운 골짝 인공 때 죽창으로 인민재판이 열렸던 곳에 대한 이야기하기를 즐긴 어머니는 고단한 몸을 누여 쉬고 계신다. 이제 모시적삼 다듬이질도 하지 않고 여기저기 우거진 산뽕나무도 어머니는 필요가 없다. 봄가을 누에를 치는 어머니는 혼자 산 뽕잎 따러 가기가 무섭다고 언제나 어린 나를 데리고 가셨다. 옛날이야기는 어머니의 산길 동무를 해드린 상이었다. 맷돼지가 할키고 난 꺼진 봉분이 보기 싫어 주위에 작은 돌들을 주워서 꺼진 데를 채웠다. 자갈돌을 줍는데 이 산속에 어찌 기왓장 깨진 것이 나올까. “오빠, 여그 우리 제각 있었소? 뭔 기왓장일까. 엄마 산소 쓸 때 아래동네에서 흙을 파왔소?” “아이다. 요 우에 산속에 절이 있었다 하더라. 여기서 천왕봉이 제일 짧은 코스인데 암자 하나쯤 없었겄나? 신라 적에 있었다 하더라.” 고대사를 좋아하는 오빠다. 얘기를 시키면 문정창 선생이나 박은식 선생이 쓴 책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할 것이다. 묵실 아재가 보면 풍수적으로 어머니 산소에는 돌을 넣어서 안 되는데 넣었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산소에는 그 흔한 비석 하나 없다. 봉분마저 악산이라 돌이 많은 산에 넉넉한 흙이 얹어지지 않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비가 많이 오면 산사태로 봉분이 흘러내려 평 쳐지게 생겼다. 어쨌거나 악산에 연장 없이 간 우리가 맨손으로 흙 한줌 산소에 떠 얹기는 힘들고 주위에 지천인 장돌 이라도 꺼진 봉분 우에 얹어야겠다. 운주사가 배가 떠날 형국이라 천불 천탑을 쌓았을까. 왜 때 없는 운주사 생각이 날까 . 어머니를 모시고 운주사에 갔을 때 와불을 보신 어머니는 “야야. 부처님을 이리 닙히 놓고 밟고서고 머리 우에 서모 우짜노?” 교회에 다니는 나는 어머니의 절 이야기를 듣고 자란 탓인지 틈만 나면 절 구경을 간다. 옛날 이야기속의 도령이 지은 절집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은연중 어머니의 이야기가 세뇌된 모양이다. 절집 구경과 부도구경을 잘 다닌다. 집에 가서 남편과 상의해서 황토 흙 한차라도 싣고 떼라도 사서 입혀야 할 모양이다. 오빠와 언니는 가지고 간 음식을 놓는다. 음식이라야 어제 출발하며 슈퍼에서 산 캔 커피, 집 마당에서 딴 감, 비스킷이 고작이다. 오빠와 언니 올케는 절을 한다. 늙어지며 어머니가 유일하게 당신 입에다 하는 호사가 커피였다. 다른 좋은 것은 다 해드려도 소식하는 어머니는 별로 달가와 하시지 않았다. 늦가을 잘 익은 홍시와 설탕과 프림을 많이 넣어 달게 탄 커피만이 어머니의 기호식품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샐 줄 모른다고 환갑 넘은 나이에 드시기 시작한 커피가 하루에 꼬박꼬박 석 잔은 마셔야 했다. 나는 교회에 다닌다는 핑계로 절을 안 한다. 죽은 사람에게 하는 절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시댁은 교회를 다닌다.죽은 시어머니나 시아버지 제사는 한번도 지내본 적이 없다. 죽어서보담 살아 계실 때 잘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가씨 요즘 어째 연락이 없어? 지난번 아버님 기일에 다 모였는데 아가씨만 안 왔잖아.” “언니 죄송해요 엄마가 많이 아파요. 어찌 어머니가 그런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막내아가씨는 울먹인다. 그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한 모습이 전화 줄을 타고 눈앞에 어른거린다. 시어머니가 고등학교 가는 딸을 읍내에다 방을 얻어주고 세살 어린 영감을 얻어 시집을 갈 때도 아가씨는 엄마가 학교 갈 돈도 다 들고 시집갔다고 버스머리에서 마냥 기다리며 울었었다. “형님 정아 아가씨 어머니가 많이 아프신가봐요. 중풍 같으요. 한번 인사로 들여다 봅시다.” “냅둬. 냅둬. 죄받아서 그래.”결혼해서 죽 서울에서 살다 남편이 고향 근처로 가서 살기를 원해서 그녀와 남편은 남편의 고향 근처에다 터를 잡았다. 고향에 갔던 첫해 이웃들은 그녀의 시어머니의 흉을 봤다. 그녀의 시어머니가 아니다. 막내아가씨의 어머니다. “그렇고롬 독한 년 처음 봐야 그래갖고 교회 다닌다고 책 끼고 댕기는 낯바닥 쳐다보여야.” 남편을 낳은 시어머니는 18세의 남편과 4살 터울 지는 남동생과 여동생을 놓고 저 세상으로 갔다. 교회를 다니다 유교색이 짙은 시댁에서의 시달림으로 가슴앓이를 하다 돌아가셨단다. 지금의 시어머니가 오셔서 막내딸 하나를 낳았다. 시어머니는 시동생과 시누이에게 밥을 안주려고 아침에 밥을 해서 밥통을 아궁이 속에다 감추어 두었다고 했다.그녀가 서울살림을 접고 고향 근처로 내려가자 이웃들의 입질은 그 시어머니의 이야기로 분분했었다. 없는 살림에 얼마나 어려우면 그랬을까 그냥 근성으로 들어 넘겼다. 그녀가 누구보다 배고프고 없는 서러움은 잘 알지 않는가. 아마도 새어머니는 가족들의 한 끼 식사를 놔두면 한창 크는 시동생들이 뒷사람 생각도 안하고 갖다 먹으니 그 밥 냄비를 비닐로 잘 싸서 다음끼니를 이을려고 그랬을 거다 동네소문은 의붓어머니라 더 흉했을 거다. 그 시절은 어지간한 살림이 아니면 다 배고픈 시절이었다. 남편과 손위 시누이들은 그런 시어머니를 달가워 할 까닭이 없다. 시아버지가 구월 스무하루 시어머니가 이월 스무이틀 그녀는 시어머니 시아버지 제사를 한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구월 스무하룻날 모신다. 제사라기 보담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 한 끼 하는 걸로 잇댄다. 막내 아가씨가 항상 불참이다. 여름별이 꼬리를 흔들어댄다. 아름답다 내일은 칠월칠석 어머니는 앞집 오 면장 댁 할머니 절에 입고 가실 모시한복을 푸새해서 꼭꼭 밟고 계신다. 오 면장댁 할머니는 신 새벽 빤닥빤닥 다리미 발이 윤기 자르르 흐르는 잠자리 날개 같은 모시한복을 입고 엷은 분홍빛 양산을 쓰고 의곡사로 치성 드리러 갈게다. 어머니는 오 면장댁 할머니의 모시 한복을 다린다. 내일 아침밥은 쌀이 많이 섞인 반세끼 밥을 된장국에 말아먹을 수 있다. 할머니는 월남 간아들의 무운장구를 빌게다.나는 마른 쑥 한줌을 모깃불에다 확 던져 넣었다. 타닥타닥 불꽃이 일었다. 푸른 연기 속으로 길 잃은 아기별 하나 내려앉는다. “야야. 불티 날아 빨래 베린다.”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나 다듬이 푸새질은 곱다. 아니 이웃에서 부러 어머니를 시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하신다.칠석날 어머니는 달빛에 바늘을 실을 꿰며 소원을 빌라고 하실 것이다. 바늘을 길게 꿰며 모시옷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 손을 잡고 도령이 지은 절에 그림구경이나 가게 해달라고 빌까? 모시치마적삼을 자근자근 밟으신다. 나도 어머니의 다리사이에 다리를 넣어 같이 섰다. 내 머리가 어머니 배꼽근처에 닿는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서신다. 서답위에 두 사람의 발을 가누기는 좁다. 어머니는 목청을 가다듬는다. “어느 해 산청 감남지에 아매도 보리타작 할 때나 되었겄제. 6월 장마가 있시니 올매나 짜다라 비가 와 쌌던고. 강이 불어서 산청다리를 못 건너는기라. 지리산 토굴 속에서 10년 기약하고 도 닦던 시님이 탁발을 나왔다가 고마 비를 만난기라. 그날 날을 넘기고 토굴로 몬가모 시님 공부할 분량을 못 맞추것고, 10년 공부 도로아미가 될 터이라. 시님이 탁발한 바랑을 머리에 이고 강을 헤엄치는데 어디 실한 대갓집 문짝이 떠내려 오는기라. 그래 잘됐다 싶어 뗏목매이로 올라타서 강을 건너는데, 물에 잠긴 집이 한 채 떠내려 오는데 그 지붕에 시커먼 흑질 구랭이가 올라 똬리를 틀고 앉았는데, 남실남실 금방 집이 갈아 앉게 생긴기라. 배미가 시님을 쳐다보며 살리달락고 하는거 같은기라. 시님이 징그러운 마음이 생기가 우짜까 망설이다 ‘그래. 니 같은 미물도 살고져바 지붕에 올라타고 그래 오는데, 같이 살자. 이생인연이 다하고 다음 생에는 좋은 사람이 되라’하고 시님이 짚고 다닌 지팡이를 뱀 쪽으로 내미니 건너 온기라. 아이고야, 밤이 기펐고마.” 어머니의 모시옷 밟기가 다 된 모양이다. 어머니는 다듬이를 꺼내신다. 다듬이질 하면서 옛날이야기는 할 수 없다.“옴마 얘기 마주 해라.” “아이다, 고마 자라 밤이 지펐구마. 낼 마저 하꾸마.”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를 들으며 여름밤은 깊어 소르르 잠이 들었다. 숨을 멈추었다. 노인병동이라 써있는 층 엘리베이터에 내리자 진동하는 냄새 역하다. 시어머니는 중풍으로 왼쪽이 마비되어 계신다. 입도 돌아갔다. “안 가봐도 되야. 죄받아서 그래.” 큰시누이의 말이 가슴을 후빈다. “그 노인네 우들한테 눈곱만한 동정만 베풀었어도 안 그라제. 독새도 그런 독새가 따로 없어야.” “어머니 저예요.” 말이 없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막내아가씨는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 아가씨가 가엾다. 항상 우리막내를 업고 있던 순하던 중학생 그녀의 눈가에 잔주름이 사르르 퍼져있다.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도닥이고 나왔다. “엄마 그 뱀은?” “뭘 우짜긴 우째. 강 건너서 내려주었지.” “그럼 스님은?” “스님은 제갈 길로 갔지.” 그 뒷이야기는 무얼까. 뱀이 살려준 은혜를 갚았을까? 강을 건너 준 스님을 물었을까? 스님은 10년 공부를 끝내고 성불을 하셨을까? 뱀은 그 수를 다해 다시 좋은 인연으로 사람이 되었을까? 친정어머니의 뱀 이야기는 다시 계속된다. “야야, 뱀은 영물이라 해고지하면 꼭 악물하니라. 하물며 사람은 아쩌겄냐? 죄는 지은대로 가고 덕은 베푼대로 온단다. 언제든지 덕을 쌓아야 한다. 시어매한테도 잘 하고 시누한테도 잘 해라. 그기 니 업인기라. 너매 며느리된 본분이 형제간에 우애하고 부모 잘 모시는기라.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 한 그릇 대접해도 그기 덕을 쌓는기라.” 생전 어머니는 남편 없이 사남매를 키우느라 절에 시주 한번 가본적도 없는데 그리도 절 이야기 도닦은 스님들이 할법한 인생을 달관한 이야기를 당신이 가보신 듯이 잘하실까? 어머니는 가갸거겨도 모르신다. 가을누에가 한밥을 먹는다. 어머니는 누에를 들어서 해비치는 쪽으로 들고 본다. 투명하나 누에의 뱃속에 알른알른 고치 지을 가는 씨줄이 비친다. 어머니는 깊은 산속 오염되지 않은 청솔을 베어다 누에 방에다 걸쳤다. 누에가 청솔 같은 향기 맑은 고치를 짓기를 바래서다. “우리 중씨가 있제.” 중씨는 두 째 이모다. “그 시동생을 겨론 안 시켰나. 각시가 천하일색이라. 시동생이 하루도 그 마누라를 안품어모 못사는기라. 동네 초상이 나도 씰데 없는기라. 근디 그 각시 하는 기 이상 혀. 선보름은 그리 이쁜데 후보름은 입술이 툭 불거지는 기, 얼굴색이 틀린 기라. 아마도 몬쓸벵이 걸린 걸 그 친정에서 숨킨기라. 집안이 뒤집어졌제. 근데 신랑이 서른 대도록 몬간 장개 가가 그 각시를 놓고 싶겄나. 뱃속에는 아가 크제. 그래 그 집을 동네끝 외딴데다 지어서 그 집하고는 품도 안바꾸는기라. 자연 왕래가 뜸했제. 하루는 그 남편이 논 가운데서 늘보 한마리를 새끼에다 끼어서 꾸우서 각시를 메긴기라. 묵자마자 각시가 달도 안찬 배를 트는기라. 그런디 오이서 왔는지 그 늘보하고 똑같은 기 각시 애 트는 그 방문밖에 있는 감나무 가지에 척 허리를 걸치가 쇠를 뇔름거린기라. 그라디 아가 나왔는되, 우짜모 그리 그 뱀이 낼름거린거 하고 갔겄노. 결국 새댁이가 고마 신랑을 새장가 디리 놓고 집을 나갔다하데.” 그 집에 어릴 때 어쩌다 놀러 가면 어머니는 엄청 무섭게 혼을 냈다, 내 또래의 언청이 사내아이가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야야, 사람 우에 사람엄고 사람 밑에 사람 엄는기라. 없는 사람 괄세도 말고 잘났다고 자랑도 마라.” 어머니의 이야기는 어디서 이렇게 올까 외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열여섯 어린나이에 아버지한테 시집왔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정화엄마 새시어머니가 들어오셔서 10살 14살 시누이 시동생을 키운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닐까? 마지막 남은 토지를 팔아다가 막내아가씨 방을 얻어 줄때도 나나 남편은 별로 군말을 안했다. 아직 집 한 칸 없이 객지로 돌아다니는 살림살이를 별로 힘들게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이 결혼할 때도 시어머니는 떡 한말 해낸 적이 없다. 동네에서 나오는 부주 돈만 챙겼을 뿐 막내 아가씨가 시집간다고 청첩을 찍어온 날 남편은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청첩이름에 올라도 아무 말이 없었다. 정화의 엄마는 당신이 지금같이 사는 남편을 돌아가신 시아버지 이름으로 당신의 옆자리에 앉히겠다 했다. 그 밤 가난이 죄다 하고 남편은 꺽꺽 울어댔다. 배다른 막내여동생 시집갈 밑천을 못해주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욕되게 한다고 자신을 질책하며 서러워했다. 시어머니가 아프다. 그녀는 중풍에다 치매까지 걸렸다. 시동생과 시누이가 어머니께 가지 않았다. 막내 아가씨가 어머니가 우리들 오는 걸 원치 않는다고 오지 말란다. “내가 서울 가느라 기차를 안탔나. 삼랑진에서 갈아타야 서울가제. 앞에 시님이 한분 오르셨는데 어이서 오시냐니께 지리산에서 10년 기한 공부를 하는데.” 어머니는 인간의 노력한계는 10년 인가보다 홀로 사신 50년은 생불이 될 시간이었을까. “시님이 아, 긴 시간 지루한데 애기를 그리 마치 잘 안하나.” “지리산에 뱀이 엄청 많은기라요. 찬바람이 날라하면 무울기 없는지 밥하는 냄새 맏고 새름새름 또가리를 틀고 밥솥 옆에 앉는기라. 하루는 반찬 할라고 도사리배추를 칼로 돌리는데 하얀 백사가 배추 속에 꽃처럼 앉았다가 칼로 돌리자 안 나오것소. 놀라 칼도 내삐리고 도망을 치는데 우지 그리 빠른고. 내 한발 뛸 때 훌쩍 한길씩 뛰는 기라.” “한길씩 내리 뛰면서 따라 와예.” “쫓기다 쫓기다 산 아래 동네까지 뛰는데 배미가 우찌 그리 잘 뛰는동 고마 훌쩍 뛰다가 우떤집 돼지막에 안 쳐박혔겄습니꺼.” 그리고 어머니는 또 이야기를 짜른다. 어머니가 아는 뱀 이야기는 부잣집 도령이야기만 끝이 있다. 절을 지어 부처님 말씀을 널리 가르치고 많은 사람들의 복을 비는거다. “옴마 우찌 됐노? 도닦는 스님은” 어머니는 도 닦는 분들도 모두 스님이다. “우찌 되긴 우찌 돼? 돼지가 그 뱀을 줏어 무삐리제. 시님이야 토굴로 공부하러 가셨겄제.” 그 뒤에도 스님이 원님댁 부인을 사모하여 원님 부인의 배곱에 또아리 튼 상사뱀 이야기가 마지막 여름밤에 끝이 난다. 한여름 어머니의 뱀 이야기는 가을이 와서 뱀이 들어갈 무렵쯤 되면 끝난다. “뱀이 겨울을 보낼라치면 배가 안고프겄나. 뱀이 겨울잠 자러 들어갈 때 주디를 싹 문대는 돌이 있단다. 그 돌을 주다가 그 돌에다 입을 닦으모 배가 안고프다카이.” 우리는 항상 배가 고팠다. 어머니의 삵 바느질은 가난한 살림이다. 어머니는 열여섯에 시집을 오셔서 스무 해를 아버지와 사셨다. 아버지가 마흔넷의 젊은 나이에 병사했다. 나머지 여든여섯이 되실 때까지 사남매를 혼자 키우시며 갖은 고생을 하셨다. 우리가 커서 어른이 되어서야 어머니는 배고픔과 헐벗음에서 놓여나셨다. 우리가 장성해서 자기 밥벌이를 하기까지 어머니는 끼니를 제대로 드신 적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그 때까지 남들처럼 초파일한번 절에 가 보신 적이 없으신 분이다. 절에 계신 고모할머니가 초파일에 놀러오라고 말씀하시면 부처님 앞에 공양할 것이 없어서 못 가신다했다. 형편이 좋아졌을 땐 서울지리에 길눈이 어두워 어머니 혼자 길을 모르셔서 누가 모셔다 드리는 사람이 없어서 못 가신다 했다. 내가 학교를 기독교 학교로 가고부터 나는 교회에 다녔다. “야야, 니는 부처님 은덕으로 태어난기라. 교회가믄 안좋다이.” 가끔 감기라도 걸린 날은 어머니는 또 그 말씀을 하셨다. “니는 교회가모 몸이 아푸다.” 어머니가 암에 걸리셔서 얼마 못 사신다 했을 때 마지막 한달을 어머니는 우리 집에 계셨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하는 절로 모셔다 드렸다. “엄마 구례 화엄사 갑시다.” “그래, 가자.” 어머니는 그래도 법당에 들어가 절 한번 하지 않으신다. 어머니는 못났다. 큰오빠가 “어머니 요번 초파일에 등쓰러 안가십니까. 내 등 값 드리고 모셔다 드릴게요.” 등을 사서 손주들 이름을 써놓고도 어머니는 그 법당에 당당히 처억 들어가서 절 한번 안하신다. 못하신다. 아니 하실 줄을 모른다. 그리곤 언제나 “그 도령이 뱀한테 물려서 문디 됐다가 나사서 시님 된 절 말이다.” 어머니는 전설과 사실도 구별이 안 되신다. “그기나 한번 데려다 다고.” “옴마 시님이 아즉까지 살았나 오데. 그때가 온제쩍이고?” “내는 그 기림만 보면 된다 아이가. 시님이 기린 기림.” “절이 오데 있는 절이고.” “지리산 밑에 오디 안 있겄나. 단속사라 카드라.” 전국 사찰 총람에도 단속사라는 절은 없다. 단속사는 어머니가 태어나신 단성에 있었던 절이 아닐까? 그 옛날 신라 때 전해 내려온 이름만 전해지는 절이 아닐까. 있는 곳도 어느 역사책에도 없는 어머니만이 아는 절이 아닐까.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 제삿날이면 머리감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장만 하신 어머니. 팔십 평생에 딱 한군데 가시고 싶다 하신 곳이 단속사란다. 내가 다니는 인쇄소에 가끔 우리나라 고찰들의 이야기들을 인쇄했다. 천년 가람이라든가 하는 제목으로 나는 어머니께 절 그림이나, 탱화, 작은 아기부처, 흑두, 들이 찍힌 사진들을 갖다 드렸다. 오백나한의 사진들을 보여드렸을 때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야야, 내 어릴 때 이런 쪼매난 부처님 가지고 반주께 살았다. 치마폭에 싸갖고 놀다가 고마 변소 간에도 빠뜨렸다.” “옴마 그거 지금도 가면 있을까?” “그기 우찌 지금까지 있겄노. 내 살던 데가 도랑가라 다 씰리 내리가비지.” 어머니의 말씀은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꿈인지 어릴 적인지 구분이 없다. 어머니는 정말 손안에 꼭 들어가는 사기로 된 아기부처님을 가지고 소꿉을 살았을까? 열여섯에 시집온 어머니는 몇 살까지 아기부처님을 가지고 놀았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어머니의 모습은 곱기도 했다. 보얀 얼굴에 검버섯 한점이 없었다. 큰 눈을 내리 감은 어머니의 속눈섭이 죽 곱았다. 어머니는 주무셨다. 평생 늘어진 늦잠 한번 못 주무셨으니 이제 실컷 주무셔도 된다. “야야, 내 인자 니 걱정 안할란다. 고만 하면 니 인자 살것구마.” 돌아가실 때야 막내딸 때매 얹혀있던 맷돌 짝이 내려진다 했다. 유복녀로 태어나서 아버지사랑 한번 못 받고 기운 가세로 서럽게 자란 딸이 어머니의 가슴을 짓누른 맷돌이었다.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막내딸 대학 보내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파하셨다. 연애를 해서 가난한 남편을 만나 어렵게 사는 것을 더울 마음 아파하셨다. 전화가 왔다. 막내 아가씨다. 시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단다. 아니 시어머니가 아니다. 그녀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다시 재가했다. 막내 아가씨의 어머니다. 막내 아가씨는 남편의 배다른 동생이다. “어머니 저 왔어요.” “오냐 잘 살았나?” 그녀는 오늘은 정신이 맑다. “우리 정화 잘 부탁한다. 막내 저거 너거가 키우고 갈치도 못했는게 인자라도 좀 잘해라이 배다르다고 괄세마라이.” 맑은 정신이다. 막내를 부탁하는 어머니. 막내아가씨가 결혼할 때도 시어머니는 말했다. “너들이 키우도 갈치도 않했은게. 여우기는 해야 안되겄나.” 당신이 얼마나 남편의 가슴을 할퀴었는지 모른 채 남편에게 요구만 하신다. 남편은 고개를 돌렸었다. 시어머니의 입이 더 틀어졌다. 대변을 못 보신단다. 사흘에 한번씩 관장을 한단다. 막내 아가씨의 고운 얼굴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 “독한 년. 아, 보리대를 쌓아놓은디를 간게 꺼먼 흑질 한마리가 또가리를 틀고 있었제. 그년이 그럴 갖다 너 아부지 빙나순다고 대린기라. 곰국 고우는 냄새가 마 동네를 진동케 했니.” 시어머니의 대담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남편을 극진히 모신 열부로 생각하면 안 될까? 시아버지는 간경화로 그녀가 시집와서 3년을 사시다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또 3년을 사시다 시집을 갔다. 부잣집 대문을 뗏목처럼 타고 건너 준 그 뱀은 그 스님께 은혜를 갚았을까? 스님은 성불하여 생불이 되었을까? 전화가 왔다. 막내아가씨가 운다. “언니, 엄마 돌아 가셨어요.” 시어머니의 모습은 흉하다. 뼈만 앙상히 남은 몰골이 까맣게 탄 얼굴하며 틀어진 입. 이제 반듯이 펴서 고운 화장을 해드려야지 돌아가신 모습이 막내아가씨를 닮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시아버지 곁으로 갈수 없다. 막내아가씨는 화장을 해서 납골당으로 모셨다. 시아버지 곁에는 돌아가신 남편의 어머닌가 계신다. 근데 그 절은 어디 있을까? 큰스님 태어난 그 동네 아니 어머니가 누워계신 그 산속에 있을까?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을까? 안개는 걷혔다. 도시로 나가는 길도 훤히 보인다. 어머니와 내가 살았던 도시다. 초겨울의 햇살이 어머니가 계신 산소에 서있는 소나무 솔가지에 반짝 빛을 낸다. 어머니의 산소에는 봉우리대신 오래되어 달아진 묵은 기와조각이 소복이 얹혀 있다. 어머니는 기와집 아래 계신다. 어머니의 소리가 들린다. “뱀은 영물인기라. 해고지하면 악물한대이. 나는 단속사에 잘 있다. 잊어버리고 니나 잘 살아라.”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다 절 하나를 짓고 온다. 내년 봄에는 어머니가 계신 절에다 댕그랑 그리는 편종을 하나 달아야지. “야야, 살아있는 생물에게 잘해야.” 막내아가씨의 커다란 눈매가 보인다. 아가씨는 이제 어머니가 안 계신다. 아가씨의 친정집은 이제 우리 집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한다. “아가씨, 내년 3월 1일 가족들 모이는데 잊지 말고 꼭 와. 애들 데리고 고모부도…”. |
소설 심사평 순박한 마음이 만드는 그윽한 세상 소설을 읽는 맛은 지은이가 창조한 향기로운 참삶의 길을 밟아가는 즐거움에 있다. 허구를 동원하여 진실을 말해주는 소설의 묘미는, 구성의 흔적 없이 조용하게 풀어내 조용조용 들려주는 이야기에 들어 있다. 독자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응모된 180여 편의 작품들을 읽었다. 응모된 작품들 가운데 ‘화두’ ‘득안가(得眼歌)’ ‘탑’ ‘시간이 흐르는 소리’ ‘단속사 가는 길’ ‘생의 변주’ ‘그녀와의 거리’ ‘다우니 종(鐘)’ ‘벌레 이야기’ 등 9편을 본심에 올리고 깊이 읽어갔다. ‘화두’는 문장이 거칠고 사건이 위악적이고 작위적이다. 작위적인 작품을 읽는 일은 어색하고 고통스럽다. ‘탑’은 탑 복원에 나선 이야기인데, 억지스럽고 주제가 미약하다. ‘시간이 흐르는 소리’는 관념적인 이야기를 현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그 관념을 떠받치는 하부구조(서사)가 부실하다. ‘생의 변주’는 사건이 없고 지루하다. ‘다우니 종’은 장애아의 순박한 영혼 이야기인데,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감동이 미약하다. ‘벌레 이야기’는 내 아내에게 심장을 주고 죽어간 비구니의 이야기인데, 그 비구니가 나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누님이라는 설정이 통속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위의 6편을 젖혀놓고 다음 세 작품을 다시 읽었다. ‘득안가’는 개 도살업을 하고 사는 나와 횟집 여는 것이 소원인 여인과의 알몸 섞기와 부처님께 삼천 배를 하고 사는 참회하는 삶 속에서 장애아 회성이를 품고 사는 설정이 좋지만, 문장이 거칠다. ‘그녀와의 거리’는 의식 없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장례를 치른 다음 친정어머니를 또 모셔다가 간병하는 여심을 잘 그리고 있다. 여타 형제들의 이기적인 일상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인고와 헌신과 실존이 가슴을 저리게 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도 넉넉하다. ‘단속사 가는 길’은, 억지로 꾸미려 하지 않는, 담백한 이야기가 그윽하고 아름다워 입가에 미소가 어리게 한다. 실제로는 없고 어머니의 가슴 속에만 있는 단속사의 세계가 독자의 마음을 다사롭게 감싼다. 이 3편을 놓고 고민하다가, 잔잔한 감동을 주는 쪽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당선된 작가에게 축하하고 건필을 빈다. 한승원(소설가.조선대 문창과 초빙교수) |
소설 당선소감 어머니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어머니가 주신 숙제를 풀지 못해 자라지 않고 사는 내 모습이 답답했습니다. 묵실로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맑은 샘물을 떠서 주시며 환히 웃으셨습니다. 언제나 막내딸의 부족한 부분까지도 사랑으로 감싸주시던 그 모습대로, 그렇게 고향에서의 하룻밤이 밀린 숙제를 끝내고 모든 부담에서 놓여났습니다. 눈이 많이 왔습니다. 제가 있는 이 농촌은 피해가 많습니다. 눈물어린 이웃이 있기에 기뻐도 밖으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께 이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당신의 이름자도 못쓰시던 분을 대신하여 어머니의 옛날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이 영광을 얻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실 겁니다. “야야, 어른들 말 잘 들으모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카이.” 30여년을 돌아서 이제 제 자리에 섰습니다. 남은 시간 어머니의 못다 푼 이야기를 마저 할까 합니다. 불심 깊은 내 친구. 긴 세월동안 글쓰기를 잊고 산 내게 글쓰기를 시작하게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그 친구. 여섯 번의 항암요법을 장하게 끝낸 친구에게 70세 되는 날 예쁜 시집 한 권 선물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때까지 쓰는 공부에 더 매진하겠습니다. 모든 것에서 미숙하고 부족하기만 한 제 글을 뽑아주심은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알겠습니다.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영광입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마치 새해 선물을 미리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오랜만에 든 이 펜을 다시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 감사의 마음을 다시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글 쓰는 공부에 성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심경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