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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마을 일본연수 후기]
사람과 세상을 생각하다, 애즈원과 키타시바를 가다
- 강북마을 연수단 김선희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내게 가서는 안되는 나라였다. 한일 위안부 협상 이후 일본은 한국 정부와 더불어 용서할 수 없는 나라였다. 하지만 일본에 살고 있는 이가 그랬다.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2016년 늦여름 강북마을 연수로 방문한 일본에는 사람이 있었고 공동체가 있었고 마을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일본은 내게 애즈원이고 키타시바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친구들이 있는 나라다.
같이 가자~ 일본 연수
마을공동체에서 지역공동체로. 올해 강북마을은 지역의 마을, 교육,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등 다양한 활동들을 소통하는 것에서 나아가 함께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일상적으로 협력하고 연대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함께’라는 말은 매력적이지만 실제 함께 해가는 일은 간단치 않다. 우리는 각각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고 눈높이를 맞추고 같은 꿈을 찾아가야 한다. 강북마을의 비전을 만드는 일은 긴 숙제다. 해외연수는 공동의 시간과 경험을 통해 그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 생각했다.
더 많은 지역의 활동가들이 함께 하기 위해 가까운 나라 일본을 생각했다. 일본 마을만들기 현장들을 계획했으나, 10여년 전 신기했던 일본의 돌봄, 마을, 재생 활동들이 이미 우리 마을공동체 현장에서 익숙한 풍경이 됐다. 그러던 중 애즈원과 키타시바를 소개받았다. 자료를 통해 미리 본 그곳들은 강북마을이 지역공동체의 미래, 현재를 고민하게 할 많은 내용들을 품고 있었다. 그래, 가자!
일본어 마을지도를 만들다
마을, 교육, 문화, 도시재생 등 영역에서 한참 바쁜 사람들에게 4박5일을 비우고 일본연수를 가자 하니 난색부터 표한다. 그중 몇몇은 아직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의 엄마다. 단 하루라도 쉼이 필요할 사람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빼곡히 들어찬 연수 일정은 그리 매력적이지 못했다. 좀더 많은 사람과 함께 가자니 예산이 부족하고 자비 부담도 컸다. 그래도 부득불 가자 했다. 당시 참여자치 분과장의 협박성 설득까지 가세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강북마을 일본연수단이 구성됐다.
막상 연수단을 확정하고 나니 잘 만나고 오자고 욕심이 났다. 방문지인 애즈원과 교류하며 [인간의 본성에 맞는 사회] 책을 내신 강화도의 유상용 샘을 모셔서 사전 학습을 했다. 키타시바는 일본에서 자료를 받고 몇 해전 키타시바를 방문한 지역의 보고서를 구해 공부했다. 듣고 읽고 보니 애즈원과 키타시바가 더 궁금해졌다. 강북마을을 잘 소개하기 위해 마을 활동이 빼곡이 들어찬 지도를 일본어 이름으로 번역해 일일이 편집해 넣고 일본어 마을지도도 만들었다. 마을 기념품은 딱히 없고 우리 활동을 담은 선물이 뭐가 있을까 했는데 서울마을센터에서 때마침 만든 종이가죽 카드를 협찬 받았다.
태풍을 비켜나 육해공으로 찾아간 애즈원
드디어 연수 출발일. 남은 일을 처리하느라 전날 밤 제대로 잠도 못자고 공항으로 나온 연수단 활동가들. 일본에 태풍이 상륙한다 해서 비행기는 뜨려나, 도쿄에서 통역자가 와야 하는데 혹시 태풍으로 신칸센이 멈출까 새벽까지 뜬 눈으로 카톡을 주고 받았다. 다행히 신칸센은 움직였고 비행기도 뜬다 한다. 처음 외국을 나가는 활동가도 있고 비행기를 타는 일은 제주도를 가더라도 여전히 아이마냥 설레지 않던가. 이제 진짜 가는 거다.
태풍이 지나가고 있다는데 연수단이 도착한 나고야 중부국제공항은 비를 뿌리지 않았다. 일본 희망제작소 연구원 출신으로 일본통으로 불리는 강내영씨가 공항에서 연수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복을 준다는 일본 떡을 환영 선물로 받고 도쿄에서부터 달려온 든든한 안내자도 생겼으니 맘이 놓인다. 공항에서 이어진 항구에서 1시간 가량 고속선을 타고 쯔항구로 이동했다. 애즈원 커뮤니티에서 연수단을 맞이하러 항구로 나와주셨다. AS ONE이라는 모자를 쓰고 환하게 맞아주심에 급히 배운 일본어 인사말을 건넸다. “하지메마시떼(始めまして)~” 한 시간 가까이 길을 달려 스즈카시 애즈원 커뮤니티에 도착했다. 비행기 타고 배 타고 자동차 타고 육해공 첫날이다.
다툼과 분쟁이 없는 행복한 ‘하나의 사회’, 애즈원
애즈원 커뮤니티의 이름은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 가사에 있는 ‘세상은 하나처럼 될 것’(the world will be as one)의 애즈원(as one)에서 따왔다. 노래에 담긴 다툼과 분쟁이 없는 세계, 그런 세상이 우리 커뮤니티면 좋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2001년 뜻을 모은 사람들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고 스즈카시 작은 동네에 모였다. 의욕이 높았지만 여러 문제가 발생했고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애즈원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생활방식과 사회가 만들어졌다.
애즈원커뮤니티 맵이라는 마을지도는 가로, 세로 반경 1㎢로 걸어서 5~6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규약이나 제약 같은 셀 수 있는 근거가 없으니 커뮤니티 구성원이 몇 명인지는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대략 100명~150명 정도라고. 마을 중간에 오피스, 인포메이션 등이 있는 스즈카 컬쳐 스테이션이 있고 사이엔즈 스쿨과 사이엔즈 연구소가 있다. 먹거리를 만드는 마을밭공원과 자연과 환경, 숯을 만드는 마을 뒷산이 있다. 주식회사 엄마도시락이 있고 우리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노래가 아닌 실제 세상에서 사람들이 다툼도 없이, 상하도 없이, 통제도 없이, 돈도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펼쳐지고 있다고 했다. 종이 몇 장과 설명으로 온전히 이해하긴 쉽지 않았다. 다음날 애즈원 커뮤니티 활동 현장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조용한 동네 도로가에 정갈한 2층집 애즈원 게스트 하우스. 마을에서 난 재료로 직접 만들어 차려주신 저녁 밥상을 감사히 받았다. “이타다끼마쓰~.” 식사를 마치고 함께 한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었다. 애즈원에서 커뮤니티 안내를 맡고 있는 사카이, 이치카와, 식사와 생활 지원 담당 나카이 요시코, 엄마도시락에서 일하는 후카타가 함께 했다.
애즈원 이후 연수 방문지인 키타시바에서도 활동가들이 왔다. 애즈원을 함께 돌아보고 키타시바로 갈 예정이다. 생활곤궁자상담원 반도 노조미, 교육 지원을 하는 유스케, 커뮤니티 레스토랑 요리사 아마노 치혜가 함께 했다. 모두들 각 커뮤니티에서 적게는 6년, 많게는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다. 각각 한국의 성미산마을, 인천 우동사, 관악 등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강북마을 연수단. 이름과 사진, 활동 이력과 관심사, 그리고 마을지도까지 일본어로 된 연수단 안내자료를 만들어가 우리를 소개하는데 톡톡히 덕을 봤다.
하나의 사회는 장벽이 없는 사회
애즈원에서의 둘째날. 스즈카 컬쳐 스테이션을 찾았다. 커뮤니티 구성원들을 위한 거점 공간으로 오피스와 인포메이션, 상점 조이(JOY)가 있다. 일반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크고 작은 교육, 문화 공간들이 있다.
오피스는 커뮤니티의 엄마와 아빠 같은 존재이고 거실과 같은 공간이다. 무엇이든지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다.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을 열고 일상에 묻힌 이야기들을 복원한다. 매일매일 뉴스레터를 통해 커뮤니티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질구레한 뉴스를 전부 다 담아낸다. 커뮤니티 뉴스레터를 받는 사람이 120명 정도이고 이중 오피스와 소통하고 있는 사람은 80여명이라고 했다. 인포메이션은 우편물, 컴퓨터, 전기제품 등 무엇이든지 부탁할 수 있고 구성원들의 생활 편의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상점 조이는 돈이 필요 없는 가게다. 원래 지역통화를 사용했는데 청년들이 밭공원에서 키운 생산물을 내면서 돈이 없는 가게가 됐다. 밭공원의 야채, 과일, 작물들에 엄마도시락의 도시락, 다양한 생필품들이 비치돼 있다. 커뮤니티 구성원 중 월급과 재산을 공유하는 하나의 지갑(One Pocket), 살림을 살고 있는 64세대가 이용자이다. 하나의 가족이므로 상점 조이에 없는 모든 소비는 개개인의 필요에 따라 지출한다. 월세가 필요한 사람은 월세를, 자동차가 필요한 사람을 자동차를 구매한다. 누가 무엇을 샀는지, 얼마나 샀는지 기록하지 않는다.
그게 가능할까? 운영이 되는가? 적게 벌어서 많이 쓰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오피스에서 엄마 역할을 맡고 있는 다케모토 미오코씨는 “‘하나의 사회’는 합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처럼 장벽이 없는 사회”라며 “돈이 있다, 없다로 관계가 분단되지 않고 돈도 자연의 공기처럼 함께 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위해 회사를 만들었다
분홍색 미니트럭이 주차장에 가득했다. 갖가지 식재료들로 색감도 이쁘고 먹음직스러운 도시락이 매장에 가득했다. 밭공원의 야채, 과일 등 작물과 반찬, 세제나 생활용품도 같이 판매한다. 하루 스즈카시 주민 1,000명, 많게는 1,600명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엄마도시락을 방문했다. 주로 일반 가정, 사무실, 병원 등으로 배달된다.
엄마도시락에서 음식을 만들고 포장하고 배달하는 사람은 하루 20명 정도 된다. 하지만 전체 직원은 60명이다. 1주일에 몇 번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일한다. 주식회사이고 대표도 있지만 역할일 뿐 상하 관계는 없다. 쉬고 싶으면 언제든지 당당하게 쉴 수 있고 정해진 월급 규정이 없어 대화를 통해 일하는 사람이 필요한 만큼 돈을 받는다.
그게 가능한가? 엄마도시락의 키타다미 류씨는 “우리는 동료에게 존중받고 사랑받으며 비난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을 같이 염려해주고 지켜준다”고 했다. 물론 10년 전 처음에는 직원들간 대립과 갈등이 있었다. 대립하면 왜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는 연구를 사이엔즈 연구소와 시작했다. 연구소 사람들과 직원들이 매주 한 번씩 토론을 했다. 대립 상황에 자기가 왜 그럴까를 생각하고 자신의 경험과 인식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 역시 그 사람의 인식과 경험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로가 다른 것이 당연하고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상대가 왜 그랬는지 관심을 갖게 되고 경청하고 되고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그 때부터 이야기가 되고 합의점을 찾게 된다. 그렇게 회사의 공기가 달라졌다고 했다.
“회사의 설립, 발전, 성장을 위해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회사를 만들었다. 회사가 사람에 맞춰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에 대한 탐구
유토피아, 이상 사회라고도 생각되는 애즈원 커뮤니티의 활동들은 사이엔즈 스쿨과 사이엔즈 연구소로 뒷받침된다. 사이엔즈는 Scientific Investigatin of Essential Natuer(과학적 본질의 탐구)의 머릿글자 SCIEN과 Zero(無, 무)의 Z의 합쳐진 글자다. 사람에 대해 고정(관념) 없이 제로에서부터 근본적인 내면, 원리를 알고자 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사람의 본질,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연구가 느껴졌다.
사이엔즈 스쿨은 사람이 온전히 자립한 사람으로 서로 성장해가기 위한 학교다. 사카이씨는 “분쟁 없는 사회를 이루는 커뮤니티가 되려면 개개인이 먼저 분쟁과 싸움이 없는 개인으로 자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사이엔즈 스쿨이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를 알기 위한 코스부터 자기를 보기위한 코스, 인생을 알기 위한 코스, 사람을 듣기 위한 코스, 사회를 알기 위한 코스 등 총 8개의 코스가 있다. 질문만 있을 뿐 답이 없고 가르치는 사람도, 답을 주는 사람도 없다. 3박4일부터 6박7일까지 합숙하며 스스로를 만나는 내관(內觀) 코스를 제외하고는 모든 코스가 토론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사이엔즈 스쿨의 취지서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보낸다’는 목적 아래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지식이나 경험,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히는 일 없이 순수하게 보고 듣고 누구하고도 융합하여 대화할 수 있는 지적이며 정적인 인간이 서로 되어가는 것이야 말로 모든 것이 시작이다. 자기 자신을 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성립과정이나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를 아는 것, 자신을 포함한 세상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애즈원 네트워크로 세상을 변화시키자
사이엔즈 연구소는 사람의 본성, 관계의 본질,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요소, 방법 등을 연구한다. 이를 커뮤니티에 적용하고 계속 실험하고 연구함으로써 커뮤니티 활동의 나침반 역할을 맡고 있다. 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 이상적 사회는 일본 무소유 공동체로 많이 알려진 야마기시즘에서 출발한다. 스즈카 인근 일본 야마기시 실현지는 3,000명의 사람들이 모일 만큼 큰 공동체였다.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며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야마기시 공동체에서 나온 이들이 애즈원 초기 5년 동안 왜 그럴까를 연구했다. 사이엔즈 연구소의 오노씨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참고해보자.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는 일이 발생한다. 하지만 책임을 지운다고 실패가 없어지거나 원상복구 되지 않는다. 사과한다고 원인이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 때문에 실패를 숨기려 하고 진짜 원인을 감추려 한다. 엄마도시락은 책임이나 비난을 하지 않는다. 실패하면 어떻게 할지 상의하고 진정이 되면 원인을 규명한다. 비난받지 않으면 실패도, 실패의 원인도 스스로 밝힌다. 물론 하루, 이틀만에 된 일은 아니라고 했다. 회사가 변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상과 현실은 잘 접목되지 못했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흔히 이상은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이 그러하니 그렇게 한다.” 막연히 안 될 것이라는 의심과 불안이 있는데 의식적으로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어서 그렇다. “의식 세계의 결정은 무의식 세계의 결정, 예를 들어 사회는 원래 그래, 인간은 원래 그래 같은 고정관념에 영향을 받는다. 그것을 조명하고 제로(0)에서부터 보면 달라진다. 그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매일매일 분노할 일 많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궁금해졌다. 지금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활동이나 운동에 애즈원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애즈원의 개별 구성원들이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애즈원 커뮤니티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다 했다. “문제에 하나하나 대응하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근본적인 변화를 생각하는 것이 돌아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꼭 필요하지 않겠는가.”
애즈원 커뮤니티는 ‘애즈원 네트워크 스즈카 커뮤니티’로 이름을 바꿀 계획이다. 애즈원 스타일이 여러 지역에 적용되고 전파되기를 희망하며 전세계에서 분쟁이 없는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네트워크에 하나의 움직임으로 스즈카 커뮤니티가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함께 만들어갈 세상의 변화를 확신하는 애즈원 사람들, 그들의 향기가 애즈원 네트워크 강북 커뮤니티를 상상하게 할 만큼 깊고 진하다.
키타시바 가는 길, 윤동주를 읽다
애즈원을 떠나 키타시바로 향하는 길, 윤동주의 시비가 있는 교토 동지사 대학에 들렀다. 영화 동주로 윤동주 시인의 삶이 다시 조명되면서 다녀간 이가 많았다. 대학 건물을 한참 헤매다 한 구석 윤동주와 정지용 시비를 만났다. 태극기와 무궁화와 그의 시집 등이 놓여져있었다. 학창 시절 시험에 대비해 그저 시구에 밑줄 치며 의미를 외웠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동지사 대학을 걸어 나오며 윤동주 시인의 다른 시들을 찾아 함께 읽었다. 나라 잃은 식민지 청년으로 일본에 유학을 와 있던 그가 시인의 그 섬세함으로 펜 끝마다 떨리며 써내려갔을 그리움과 괴로움이 절절이 전해져오는 듯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있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청소년들에 칭찬받을 기회 주기
오사카부 미노시의 250세대 500명이 사는 작은 마을 키타시바에 도착했다. 키타시바의 첫날 저녁식사는 마을법인이 운영 중인 인권문화센터 라이토피아 2층에 위치한 지역 아이들을 위한 공간 ‘피아피아’에서 가졌다. ‘피아피아’는 지역의 결식아동이나 인스턴트 과다 섭취 등 영양이 불균형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건강식인 ‘피아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식당이지만 어른들도 이용 가능하다. 이용료는 ‘마부’라는 지역통화로 받는데 아이들은 100마부, 어른은 500마부다. 마부가 없을 때는 600엔이다.
연수단에 피아피아를 설명한 것은 밥 먹으러 온 6학년 동네 아이였다. 낯선 한국 사람들 앞에서 막힘없이 술술 피아피아를 소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스케씨가 잘했다며 지역통화 마부를 주었다. 지역 아이들에게 역할을 주고 마부를 주는데, 칭찬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1층에서는 일본 전통북 연습이 한창이었다. 아이들이 선생님께 전통북을 배우나보다 했는데 앞에서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 청소년이어서 놀랐다. 10년 전 시작한 전통북 공연은 이제 런던 북페스트벌에도 초대받을 만큼 정도다. 이후 설명을 통해 안 것이지만 자전거평화여행, 꿈 콘테스트 열기구 등 다양한 교육활동들이 펼쳐지고 있었고 모든 교육활동이 차별받는 부락의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존중해주는 활동들임에 감동받았다.
차별받던 마을에서 발신하는 마을로
다음날 키타사비 마을에 대한 공식 소개. 마을 법인인 생활만들기네트워크 키타시바의 우즈하시 대표가 키타시바의 역사와 마을만들기의 변천 과정을 설명했다. 키타시바는 차별받는 부락민들이 사는 지역이었다. 키타시바를 비롯한 피차별 부락들이 1922년 전국수평사회의를 만들어 평등한 인간으로서 차별에 대한 투쟁의 역사를 시작했다. 전체주의에 탄압받고 해산됐지만 수평사회의 정신을 계승해 이후 부락해방동맹이 구성되었고 부락해방동맹 키타시바 지부로 활동해왔다. 1969년 피차별지역을 지원하는 동화대책특별추진법이 제정되었고 특별법에 따라 부락들의 낙후한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다. 시영주택(임대주택)이 들어서고 생활복지거점으로 인보관이 건립되었다. 아이들 장학금과 노인연금 등 복지 지원도 있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지역 안에서도 격차가 확대되고 차별부락에 대한 지원 예산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행정 의존에 대한 문제를 인식했다. 91년 부락해방복지정책연구회를 발족해 지역의 젊은이, 공무원, 연구자가 지역 실태를 파악하고 여전히 차별받는 현실 속에 낮은 자존감, 문맹률 등 과제를 개선할 시책을 제안했다. 1년 동안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중얼거림 줍기’ 작업을 진행했다. 부락주민들이 개인연금을 반납하고 대신 일자리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1997년 마을에서 독자적으로 고령자의 일자리 사업으로 ‘마카상회’를 결성했다. 부락 주민을 위한 인보관도 지역 주민을 위한 인권문화센터 라이토피아21로 리뉴얼했다.
행정 의존에서 자립 지원으로, 이웃 주민들과 함께 하는 키타시바 발신형 마을만들기로, 행정 요구형이 아닌 주민자치형 마을만들기로 전환했다. 지역주민까지 함께 가는 조직으로 2001년 NPO법인 생활만들기 네트워크 키타시바를 설립하게 되었다.
“주민주도형으로 하루아침에 바뀐 것은 아니다. 행정의존형에서 행정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주민들이 어떻게 해 달라 요구하고 나섰고, 주민들의 교섭력을 높이는 과정이 있었다. 주민들에게 더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그것이 곧 주민주도의 동력이 되었다.”
마을이 청년을 성장시키다
키타시바의 최근 다양한 활동들은 교육지원 일을 하고 있는 나카무라 유스케가 설명했다. 키타시바 활동 지도에는 인권문화센터, 청년 공간, 고령자들의 집, 커뮤니티 까페, NPO 중간지원사업 공간 등이 담겨있다. 인권문화센터는 배움을 지원하고 사회체험, 시민활동 촉진, 생활종합상담 등을 진행한다. 청년 공간은 청년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공간을 제공한다. 고령자들의 집은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지원, 돌봄 지원 등 원스톱 서비스를 실현하려 한다. 커뮤니티까페와 NPO 중간지원사업 공간은 지역의 식탁 프로젝트, 벼룩시장 등을 개최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청년들의 활동과 청년들을 위한 활동들이다. 히끼꼬무리 같은 에너지가 없는 청년들에게 쉼터, 안식처, 휴게공간인 이바쇼를 제공하는데 가정,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으로 안심하고 있을 공간을 말한다. 정형화된 공간을 넘어 사람, 문화, 단체 등 관계를 의미한다. 다양한 문제로 억압돼 있는 청년들에게 이바쇼가 우선이고 그 다음에 프로그램 참여 안내 등 스스로 자기성장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청년들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전시회, 축제 기획 등의 경험을 갖게 한다. 청년들은 운영자금을 모으기 위해 클라우드 펀딩을 하고 지역통화 마부와 안심지역지킴이권을 담당한다. 청년들은 지역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발견하고 담당자로 성장하여 지역사회에서 인재로 성장해간다. 주민리더의 청년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다.
“10~15년 전 동네 청년 5~6명을 마을이 고용했다. 청년들이 지역사회에 관심 갖도록, 일을 찾아보도록 마을이 청년에게 투자한 것이다. 청년들이 지역에 관심 갖고 부락에 관심 갖고 성장했다. 그중 1명은 시의원이 되어 시 정책을 만들고 있고 1명은 법인 사무국장이다. 지역사회 일원으로 성장한 것이다. 능력있는 외부 청년들도 찾아온다. 외부 인재가 들어오면 내부 청년들이 자극받고 성장한다. 지역의 청년들이 성장해서 외부로 나갈 수도 있다.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한다. 사회 운동의 관점에서 역량을 갖춘 청년들이 외부로 나가 사회운동을 하면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것이 또 운동의 장점이다.”
연수를 넘어 교류의 시작
키타시바의 마을 소개와 현장을 돌아본 후, 강북마을에 대한 소개 시간이 있었다. 간략한 연수단 소개가 아니라 1~2시간에 걸쳐 강북마을의 사업과 활동을 소개했다. 키타시바는 한국의 빈민운동, 주민운동 지역들과 꾸준히 교류를 해왔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키타시바를 방문하면서 한국의 변화들이 궁금했다고 한다. 마을공동체와 도시재생, 혁신교육의 마을배움터 등 정책과 사업들에 대한 흥미를 나타냈다. 연수가 일방적인 배움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연수의 마지막 저녁, 키타시바 커뮤니티 하우스에서는 한일 활동가들의 교류회가 있었다. 교류회라고 하지만 조용한 동네에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커뮤니티 레스토랑의 요리사인 치혜가 오꼬노미야끼와 모듬 우동을 만들어내고, 우리 연수단에서는 잡채와 감자전을 만들었다. 주민리더부터 청년, 인턴들까지 키타시바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모두 방문한 듯 많은 사람들이 교류회에 참석했다. 언어가 잘 소통되지 않음에도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며 최대한 그 뜻을 헤아리려 한 시간들. 마침 애즈원부터 함께 했던 유스케씨의 생일이어서 다함께 진심으로 축하한 시간들.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 나누며 기쁘고 즐거웠던 시간들. 행복한 공동체의 어느 일상은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오는 10월 10~13일 키타시바에서 강북마을을 방문한다. 마을공동체 현장부터 마을배움터, 지역자활, 도시재생, 청년 등 다양한 현장을 방문하고 지역의 활동가들을 만날 예정이다. 키타시바의 역사와 깊이 있는 활동에서 느낀 감동을 지역의 더 많은 활동가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니 즐거운 일이다. 또한 강북마을에서도 지속가능한 마을을 고민하는 주민자치, 지역공동체경제, 청년자립을 위한 생태계 조성 등 제안들을 담아 포럼을 열 계획이다. 두 마을의 지속적인 교류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래본다.
< 강북마을 연수단 연수 후기 중 >
“지역에서 활동가의 재생산구조, 쉼과 성장을 위한 교육, 지역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내용들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들이 오고가고 있다. 애즈원 커뮤니티가 주목하고 있는 ‘사람의 본성이 실현되는 사회’는 강북에서 회자되던 고민들을 이제는 하나씩 실험해 보아야 될 때라는 생각을 더 가지게 하는 계기였다. 키타시바는 우리랑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주었다. 비슷하다보니, 지역정치, 청년, 세대를 이어가는 정신, 근거지 등 고민과제를 많이 던져주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세심하고 정성어린 일본활동가들의 모습에 감동받은 연수기간.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도하고 실험해 보는 정성이 필요한 때다.” (김혜신 연수 후기 중)
“애즈원과 키타시바 두 곳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간절함’ 혹은 ‘절실함’이었다. 나의, 그리고 우리의 간절함은 무엇이었던가. 애즈원 엄마도시락의 파격적인 기업 또는 조직운영이 준 교훈은 조직과 형식은 단지 사람과 생명이 유기적으로 순환하도록 뒷받침한다는 것. 키타시바의 ‘수평사 정신’과 ‘발산형 마을만들기’를 통한 주민자립의 과정으로 현재 우리 ‘도시재생’ 활동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힌트를 얻게 된 것. 무엇보다 강북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듣고 눈빛을 교환하며 두고두고 나눌 이야기꺼리를 만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인상 깊은 강렬한 통역으로 연수단 마음을 사로잡았던 강내영 선생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우은정 연수 후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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