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잘 쓰려면..
첫째마당 ― 한자를 외우자
지금 북반부에서는 한자를 쓰지 않는다. 우리 나라 언어생활에서 한자를 몰라도 특별히 불편한 일은
없으나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한자를 써왔기 때문에 한자의 지식이 있으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것도 사실이다. 한시도 한자를 알고 읊으면 두배, 세배 깊숙이 그 멋을
즐길 수 있다.
(1) 漢字와 漢文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漢字란 말과 漢文이란 말을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두 가지 단어는
뚜렷이 구별을 하는 것이 낫다.
한자(漢字)는 그 문자자체를 지칭하며 한문(漢文)은 한자로 쓴 글 문장, 즉 고대중국어의 문장을 지칭
한다. 따라서 보통 <한문을 안다>라고 할 때, 사실은 <한문>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한자>를 아는
것이다.
(2) 한자읽기는 의외로 쉽다
한자는 일단 옥편을 찾으면 그 소리와 뜻을 쉽게 알수 있다. 그렇지만 한자를 볼 때마다 옥편을 찾는
것도 번거로우니 되도록이면 많은 한자를 기억하는 것이 낫다. 최저한 글자가 복잡하지 않은 한자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자를 외울 때 마구 외워면 너무 힘들다. 이왕이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게 외우고
싶다. 다행히도 한자는 그렇게 외우는 길이 있는 것이다.
례를 들어 <구리 동(銅)>자를 보자. 銅자는 <동>이라고 발음한다. 이 銅자의 소리 <동>은 그 한자
속에 들어있는 同자와 같은 발음이다. 다시 말해 銅자는 그 속에 있는 同자 소리를 빌려서 <동>이라
발음을 하는 것이다. 銅자에서 同자를 뺀 나머지 金자 부분은 이 한자의 뜻과 관련된다.
구리는 금속이기때문에 쇠금변이 달려있는것이다. 이와 같이 한쪽이 소리를 나타내고 다른 쪽이 뜻을
나타내는 한자 구성 원리를 <형성(形聲)>이라고 하는데 한자의 80%는 이 형성에 의해 만들어져있다.
그러니까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그 한자의 어느 부분이 소리를 나타내는지를 알면 그 한자 소리는
대략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銅자의 경우는 同자와 발음이 똑같지만 <통 통(筒)>자처럼 발음이 약간
변형될 수도 있지만 <동>과 <통>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전혀 관련이 없는 소리로 바뀌는 일은 거의
없다.
형성자의 례를 여러 가지로 들어보자.
同(동)→桐(동), 銅(동), 洞(동, 통), 筒(통)
僉(첨)→儉(검), 劍(검), 檢(검), 驗(험), 險(험)
可(가)→哥(가), 歌(가), 苛(가), 何(하), 河(가), 荷(하)
列(렬)→烈(렬), 裂(렬), 例(례 : <ㄹ>이 <ㅣ>로 변했음)
倉(창)→創(창), 蒼(창), 槍(창), 滄(창), 瘡(창)
이것으로 (한자 뜻은 몰라도) 한자를 읽을 수는 있게 된다.
어느쪽이 소리며 어느쪽이 뜻이냐를 가려내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반적으로 부수가 되여 있는
부분은 뜻을 나타낸다. 삼수변이나 갓머리 등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海(해), 湖(호),
滴 등은 다 물에 관한 한자이고 家(가), 宿(숙), 宅(택) 등은 집에 관한 한자다.
그렇게 생각하면 <넓을 호(浩)>자가 원래 바다나 호수가 넓은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까지 짐작
할 수 있다.
(3) 한자 뜻은 한자말을 활용하라
한자를 그저 읽는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으나 뜻은 읽기보다 어려울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옥편을
마구 찾기보다 자기가 알고 있는 한자지식을 활용하는것이 더 편하다. 그 지식인즉 평소에 많이 쓰고
있는 한자말이다. 물론 이 활용법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자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례를 들어 <報(보)>란 한자의 뜻을 알고 싶을 때, 이 報자가 들어있는 한자말을 생각해본다. 그러면
<보고(報告)>란 단어로부터 이 한자가 <알리다>란 뜻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보답(報答)>
이란 단어로부터 <대가를 갚다>란 뜻도 있는 것을 알수 있다. 이렇게 한자말을 활용하면 의외로 재미
있는 사실을 만날 경우도 있다. <보도(報道)>에서 왜 <길 도(道)>자가 쓰이는지 너무 궁금한데 옥편
을 찾아보면 道자의 뜻으로 <말하다>가 있다. 결국 <報道>의 뜻은 <알리고 말하다>인 것이다.
이런 발견이 있으면 <休道(휴도)>란 구가 <말하기를 멈추다>라고 알수 있다.
둘째마당 ― 한문을 읽자
(1) 동사를 찾아라 한문은 중국어이다.
중국어는 조선어와 달리 동사 뒤에 목적어가 오는 영어식의 어순이다. 그러니까
한문을 읽을 때는 어디에 동사가 있는지를 찾아 내는 것이 중요하다. 동사만 찾으면 그 앞부분은
기본적으로 주어가 되고 뒤 부분은 목적어가 되는 셈이다.
<國之語音異乎中國>란 훈민정음의 서두 부분은 <異>가 동사이다. 다른 한자들은 다 명사적이니까
이것밖에 없다고 추측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 앞부분인 <國之語音>이 주어가 되고 <乎中國>이
목적어가 된다(정확히 말하면 목적어는 아니지만 목적어 비슷한 것이긴 하다). 따라서 이 글의 뜻은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다르다>가 되는 것이다.
두보의 시 <春望(춘망)>의 서두 부분 <國破山河在>는 <破>와 <在>가 동사로, <國破>와 <山河在>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있다. 둘 다 동사 앞에 말이 있기 때문에 그 말들은 주어가 된다. 뜻은 <나라가
격파되였는데 산하는 (그대로) 있다>이다. 한문에서는 과거형이니 현재형이니 하는 것은 없기 때문에
<國破>는 <나라가 격파되었다>처럼 알아서 과거형으로 해석한다.
(2) 꾸미는 말은 우리말과 같이
꾸미는 말은 조선어와 같이 꾸며지는 말의 앞에 오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이다.
<푸른 하늘>이라고 할 때는 <靑空>이라고 하면 되고 <크게 화낸다> 할 때는 ≪大怒≫라고 하면 된다.
不(불), 非(비), 莫(막) 등 부정을 나타내는 말은 앞에 온다. 우리가 흔히 쓰는 한자말 <불신(不信;
믿지 않음)>, <비정(非情; 정 없음)>, <막론(莫論; 논하지 않음)>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3) 한문에서 흔히 쓰는 한자를 꼭 외워두자
한문에는 문법적인 것을 나타내는 한자가 있는데 흔히 나오는 것은 꼭 외워두어야 한다.
是(시) … ① 영어 be동사와 같음. <我是學生>은 <나는 학생이다>. ② 가끔 <이, 이것>이란 뜻도 됨.
之(지) … ① 토 "-의" ② 대명사 <이, 이것, 여기> ③ 한시에서는 <가다>란 동사로서 쓰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요주의.
而(이) … 문장과 문장을 연결하는 접속사로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의 뜻. 논어의 <學而時習之>
(배우고 그리고 때마다 이를 익힌다)에도 나온다.
欲(욕) … <∼고 싶다>란 뜻도 있지만 동사 앞에 있으면 <∼을 것 같다>란 뜻이 된다.
將(장)도 그런 뜻이 있으니 요주의.
當(당) … 동사 앞에서 <∼어야 하다>란 뜻. 우리가 쓰는 한자말 중에도 <당연(當然)>이란 말이 있다
<그렇게 되여야 한다>란 뜻이다.
須(수) … 동사 앞에서 <꼭 ∼어야 하다>란 뜻. <필수(必須)>의 須자다.
若(약), 如(여) … ① 문장 첫머리에서는 <만약에>, ② 문중에서는 <∼와 같다>란 뜻.
何(하) … <무엇> 이외에도 <어디, 언제, 왜, 어떤, 어느>도 나타낸다.
安(안) … 동사 앞에 있으면 <어찌>란 뜻이 된다. 요주의.
蓋(개) … 두껑 개자인데 신기하게도 ≪아마 ∼을 것이다≫란 뜻이 된다.
豈(개) … ≪어찌 ∼을까≫란 뜻.
矣(의) … 강조의 뜻 등 어떤 뉘앙스를 가미시키기 위해 문말에 놓는 한자.
焉(언) … ① 동사앞에 있으면 安과 같고 ② 문말에 있으면 矣와 비슷하다.
也(야) … ① 문중에서는 ≪∼이야≫, ② 문말에서는 ≪∼이다≫. 또 한시에서 많이 쓰이는 한자
도 외워두면 편리하다.
辭(사) … <떠나다>. 發도 같은 뜻을 나타낸다.
故人(고인) … 죽은 사람이 아니라 <동무>란 뜻.
疑是(의시) … <마치 ∼와 같다> 이백이 즐겨 쓴 문구다.
蕭蕭(소소) … 쓸쓸한 모양을 나타내는 의태어.
兮(혜) … 말소리를 고르는 한자. <에헤라> 정도로 별 뜻은 없다.
셋째마당 ― 한시를 읊어보자
사실은 한시는 보통 한문보다 쉽다. 왜냐 하면 귀절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오언시는 한구가 다섯자
인데 이 다섯자는 2-3으로 나누어지며 칠언시는 한구가 2-2-3으로 나누어진다.
예를 들면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란 구는 <春眠-不覺曉, 處處-聞啼鳥>로 나누어진다.
이 시는 맹호연(孟浩然)의 유명한 <춘효(春曉)>의 일부분이다.
(례1) 春曉(춘효) 孟浩然(맹호연)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 : 봄의 잠은 새벽을 못 느끼는 정도로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 잠결에 곳곳에 새 우는 소리 들린다
夜來風雨聲(야래풍우성) : 어제 밤부터 비바람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花落知多少(화락지다소) : 대체 꽃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첫째구] 覺이 동사. 직역을 하면 <봄의 잠은 새벽을 느끼지 않는다>.
[둘째구] 동사는 聞이다. 啼도 동사이긴 하지만 여기서는 鳥를 꾸며서 <우는 새>로 해석 한다.
직역하면 ≪곳곳에 우는 새를 듣는다≫.
[셋째구] 여기서는 동사가 없다. 來는 동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夜처럼 시간을 나타내는 말에 붙은
것은 <∼이래>란 뜻이다. 직역은 <밤부터 풍우의 소리>.
[넷째구] 동사 같은 말이 落과 知 두개가 있는데 진짜동사는 知이고 落은 花와 함께 <꽃이 떨어지
기가>란 주어가 되어있다. 직역하면 <꽃이 떨어지기가 많고 적음을 안다>가 된다. 多少는
현대 중국어에서도 ≪얼마≫란 뜻이 있다. 따라서 知多少는 ≪얼마인지 아느냐≫가 된다.
한시를 읽을 때는 압운한 부분에 약간 힘을 주어서 읽으면 압운소리가 뚜렷이 울려서 좋다.
그러니까 <춘면불각효오∼, 처처문제조오∼>처럼 약간 과장될 정도로 힘주는 것이 좋다.
(례2) 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황학루송맹호연지광릉) 李白(리백)
故人西辭黃鶴樓(고인서사황학루) : 동무는 서쪽에서 황학루를 떠나
煙花三月下揚州(연화삼월하양주) : 안개 끼는 삼월에 양주로 내려간다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 멀리 돛 하나 푸른 하늘에 사라지고
唯看長江天際流(유간장강천제류) : 뒤에는 양자강이 하늘 끝으로 흘러갈 뿐
[제목] 送이 동사이며 그 앞의 黃鶴樓는 장소이니 <황학루에서 보낸다>란 뜻이다.
送 뒤 부분이 목적어가 되는데 그중 之가 동사로 있다. 이 之는 <가다>란 뜻이다.
직역하면 <맹호연이 광릉으로 감을 황학루에서 보낸다>가 된다.
[첫째구] 辭가 동사다. 직역은 <친구가 서쪽에서 황학루를 떠난다>.
[둘째구] 下는 <아래>가 아니라 <내리다>라는 동사다. 煙花三月이 시간을 나타내어 직역하면
<연화 삼월에 양주로 내려 간다>가 된다. 煙은 <연기>가 아니라 <안개>란 뜻으로 꽃 필
적에 끼는 안개를 煙花라고 한다. 산수화를 보는듯한 문구다.
[셋째구] 이 구에서 동사는 맨 마지막에 있다. 孤帆遠影가 주어이며 碧空은 장소이다.
직역하면 <홀돛의 먼 모습이 푸른 하늘에 사라진다>.
[넷째구] 동사는 看이고 그 뒤 부분 전부가 목적어이다.
목적어 부분은 문장처럼 되어 있는데 長江이 주어, 天際가 장소, 流가 동사로
<장강이 하늘끝으로 흘러감>이란 구성이다. 天際는 낯선 말이지만 <하늘 천(天)>에다
<가 제(際)>이기 때문에 하늘가, 즉 하늘끝 쪽이란 뜻이다.
직역하면 <장강이 하늘 끝으로 흘러감을 오직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