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沙門),육사외도설(六師外道說)
사문(沙門)은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श्रमण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으로서 식(息) · 근식(勤息) · 정지(淨志) 등으로 번역된다.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하는 것으로, 출가자의 총칭으로 되어 있다.
본래는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쓰이며 브라만교에서는 브라만 계급 이외의 출가수행자를 사문(沙門)이라 했는데, 불교에서는 출가하여 불도수행에 힘쓰는 사람을 모두 사문(沙門)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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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문(沙門)들의 출현
우파니샤드 시대에 있어서 심오한 철학적 사유와 높은 종교적 실천이 행해지는 가운데서도, 바라문의 의례와 제사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사제자들에 의한 의례와 제사는 아직도 전통과 권위가 인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상황의 변동은 이 같은 종교 사상에도 큰 변화를 몰아왔다. 사람들은 그동안 만능으로 여겨왔던 제사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를 넘어서는 보다 높은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다양한 사상적 노력을 기울이는 경향이 더욱 현저해진 것이다.
B.C 600 - 500년 경에 바라문의 사상에 맞서 새로운 우주·인생관을 제시하면서 자유로운 사상 활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대거 출현하고 있음은 이런 사정을 반증해준다. 이 새로운 사상가들을 사문(沙門, r mana)이라고 부른다.
붓다 역시 이 같은 사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사문이란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몸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이들은 바라문의 법전(法典)에서 규정하고 있는 네 가지 생활 단계에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네 가지 생활 단계란, ① 스승 밑에서 학습하는 청년 시절의 범행기(梵行期) ② 가정에서 생활하며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가주기(家住期) ③ 가정과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숲속에 들어가 은거(隱居) 하는 김 서기(林捿期) ④ 숲속의 거처까지 버리고 완전히 무소유(無所有)로 걸식·편력의 생활에 들어가는 유행기(遊行期)의 4주기(四住期)를 말한다.
사문들은 이런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편리한 시기에 출가(出家) 하여 무리 지어 숲속에 은거하거나 홀로 편력하였다. 또는 높은 종교적 경지를 얻고자 욕망을 억제하고 극도의 고행(苦行)을 실천하는 자들도 있었다. 사상과 관습에 있어서 매우 혁신적이었던 이들은 정통 바라문의 입장에서 보면 이단(異端)의 사상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대체로 바라문 이외의 사상가들은 흔히 사문으로 불렸다.
그런데 당시 바라문을 포함하여 이들 사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주장하고 제시하는 사상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였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62견(見)으로, 자이나교에서는 363견으로 분류하여 정리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는 불교나 자이나교의 입장에서 각각 이단적 견해라고 생각되는 것을 62종 또는 363종으로 열거한 것이다. 이러한 분류 방법은 기계적으로 맞추어 놓은 것도 포함하고 있어, 이를 그대로 당시 사상계의 실태라고 볼 수는 없다. 어쨌든 이런 설명을 통해 당시 사상계에 얼마나 많은 견해가 제시되고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사상의 내용이나 그 주장자에 관해서는 거의 밝혀져있지 않다. 다만 사문들 가운데 몇 사람의 이름과 그들의 사상이 불교의 초기경전에 속하는 사문과 경(沙門果經) 등에 나타나 있다. 이른바 육사외도설(六師外道說)이 그것이다. 여기서 외도설(外道說)이란 불교와는 '다른 길의 사상'이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붓다와 같은 시대의 인물들로, 모두 특징 있는 견해를 표명한 자유사상가들로서 유명하다. 육사(六師)의 견해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푸라나 캇사파(Purana Kassapa) - 도덕부정론(道德否定論)
당시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던 선악의 행위와 그 행위가 초래하게 될 미래의 과보(果報)를 모두 부정하였다. 살생·도둑질·간음·거짓말을 해도 악을 행한다고 할 수 없으며, 악의 과보도 생기지 않는다. 또 제사·베풂·극기·진실한 말 등을 행해도 선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 과보 또한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체의 도덕관념을 부정했던 그는 노예 계급 출신이었다고 한다.
2) 파쿠다 캇챠야나(Pakuda Kacc yana) - 7요소설(七要素說)
인간존재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가지 원소와 고(苦)·락(樂)·생명(生命,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이 7요소(要素)는 실재(實在) 하는 것으로서 불변이므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즐겁게 할 수도없다는 것이다. 그는 고(苦)와 락(樂)까지도 단순한 느낌의 내용이 아니라 실재하는 요소로 이해하였으며, 따라서 인간의 생명(영혼) 또한 의지 작용이 불가능한 물질적 요소로 취급하였다.
3)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 la) - 숙명론(宿命論)
모든 존재의 구성 요소로서 지(地)·수(水)·화(火)·풍(風)·허공(虛空)·득(得)·실(失)·고(苦)·락(樂)·생(生)·사(死)·영혼(靈魂)의 12요소(要素)가 있다고 한다. 다른 요소들을 성립시키는 순수 공간으로서의 허공과 득(得)·실(失)·생(生)·사(死)·영혼(靈魂) 같은 추상적 관념까지를 실체시(實體視)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의지에 근거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업(業)에 의한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부정하는 등 일종의 결정론적(決定論的) 숙명론을 주장하였다.
4) 아지타 케사캄발린(Ajta - Kesakambalin) - 유물론(唯物論)
지·수·화·풍의 4가지 물질적 원소만이 참된 실재라고 인정하고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였다. 인간은 죽음과 함께 단멸(斷滅) 하고 신체는 모두 4가지 원소로 환원된다. 내세와 같은 것도 있을 수 없고 선악에 대한 과보도 없으며 현세가인생의 전부라 하였다. 그는 철저한 유물론자였으며 생의 가치 면에서는 쾌락주의의 입장을 취했다.
5) 산자야 벨라티풋다(Sa jaya Bela hiputta) - 회의론(懷疑論)
진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불가지론적(不可知論的) 입장에서,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관한 한 확정적인 대답은 주지 않았다. 그는 내세의 존재나 선악의 과보 등의 질문에 대해 언제나 애매한 대답을 하여 판단을 중지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주장은 '뱀장어처럼 미끄러워 잡기 어려운 교설[抱鰻論]'로 일컬어진다. 붓다의 뛰어난 두 제자 사리풋다와 목갈라나는 본래 이 산자야의 제자였다.
6) 니간타 나타풋타(Niga tha N taputta) - 자이나교
자이나(Jaina)교의개조(開祖) 마하비라(Mah v ra) 혹은 지나(Jina)를 불교에서는 니간타나타풋타로 부른다. 그는 우선 산자야의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주의적 인식론(相對主義的 認識論, Sy d - v da)을 수립한 다음, 이에 입각하여 이원론적(二元論的) 우주론을 제시하였다. 즉 모든 존재는 영혼(命, J va)과 비영혼(非命, aj va)의 2부분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혼이란 지수화풍(地水火風), 동식물, 인간 등모든 존재에 내재(內在)하는 하나하나의 생명을 실체시(實體視) 한 것이다. 비영혼은 영혼 이외의 일체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법(法, dharma, 운동의 조건)·비법(非法, adharma, 정지의조건)·허공( k a)·물질(pudgala)의 4 가지가 포함된다. 이것과 영혼을 합해 '5실체(五實體)'라 한다.
마하비라는 이 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윤회하는 생존으로부터의 해탈(解脫)의 길을 가르쳤다. 업(業)을 비영혼 즉 물질로 보고, 이 업물질(業物質)에 의해 영혼이 속박됨으로써 윤회가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을 얻기 위해서는 고행을 실천할 것이 강조된다. 과거의 업을 소멸하는 한편 새로운 업의 유입을 방지하여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육체(물질)에 고통을 주는 고행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자이나교는 고행을 비롯하여 감각의 억제, 정욕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세상으로부터의 초연함, 무소유, 그리고 나체(裸體), 참회와 같은 수행이 강조된다. 이 같은 고행주의 또한 그 이론적 근거로서 5실체설(五實體說)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지만, 사문들 가운데서도 해탈(解脫)사상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상에서 6사(六師)를 중심으로 사문들의 대체적인 사상 경향을 살펴보았다. 정통 바라문의 사상과 함께 이들 사문들의 다양한 주장과 견해는 붓다 시대의 종교 사상이 상당한 수준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다시 이들 2계통의 사상을 정리해 말하면, 그것은 정통 바라문의 전변설(轉變說,pri ama - vada)과 이에 대응하는 사문들의 적취설(積聚說, rambha - vada)로 요약할 수 있다. 즉 자아(自我)나 세계는 유일한 브라흐만(梵)에서 유출 전변했다고 보는 것이 전변설이다. 이에 대해 적취설은 그러한 유일의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개개의 요소를 불멸의 실재로 믿고, 그것들이 모여 인간과 세계 등 일체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2가지 사고방식의 기초가 붓다 시대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종교적 수행 방법으로는 요가(yoga)와 선정(禪定)을 닦아 해탈을 실천하려는 수정주의(修定主義)와 고행을 통해 마음을 속박하고 있는 미혹의 힘을 끊고 해탈을 이루고자 하는 고행주의(苦行主義)의 2가지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반드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 같은 수행 방법은 대체로 전자가 전변설에 입각한 것이라면 후자는 적취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붓다 시대 인도의 종교 사상을 대체로 이상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지만, 앞서 말한 대로 이 시대에 정통적인 바라문 사상은 이미 그 빛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종교 사상의 권위 또한 아직은 확립되어 있지 못하였다. 사문과 같은 자유로운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다양한 견해와 교설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같은 현실 속에서, 당시 사람들이 종교적 또는 사상적으로 심한 방황과 혼란을 겪었으리라는 것 또한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http://www.bulsamun.kr/f02-10.htm
[출처] 사문(沙門)|작성자 수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