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불화 최대걸작 수월관음도 제작을 발원한 충선왕비 숙비는 누구인가?
아들의 여자 양귀비를 취한 이는 당현종이다. 아버지 당태종의 여자 측천무후를 취한 이는 당고종이다.
우리 역사에서 아버지의 여자를 취한 국왕이 있을까? 바로 고려 충선왕이다. 충선왕의 어머니는 쿠빌라이칸의 딸인 제국대장공주이다.
충렬왕이 원나라 출신 왕비를 잃었다. 아들 충선왕은 부왕을 위해 과부였던 숙비를 애첩으로 들여 준다. 1308년 충렬왕이 죽자 숙비는 왕위를 이은 충선왕과 동침하여 다시 후궁이 되어 권세를 누린다. 숙비는 한 남자와 두 왕을 섬긴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때 충선왕의 나이는 33세 숙비는 서너살 연상이었다.
충선왕의 행실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생겨났다. 충선왕은 즉위 삼개월만에 고려를 떠나 원나라에 들어가 편지로 정사를 보았다.
수월관음도는 충선왕이 원나라로 떠나고 1310년 5월에 권력실세인 숙비의 발원에 의해서 최고의 궁중화가들 손으로 그려진 것이다. 숙비는 거대한 불화를 그려 무슨 소원을 빌고자 했을까?
첫째는 충선왕의 아들을 갖기를 발원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경쟁자인 순비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자 기원하였다.
셋째는 충렬왕의 원 왕비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고려불화 중 가장 큰 수월관음도는 완성 된지 81년 후에 일본으로 건너간다.
고려사를 보면 1310년에서 1391년까지 왜구들이 개경부근까지 노략질을 일삼았다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흥천사의 충선왕과 계국대장공주의 영정이 약탈당하고 태조 왕건의 아버지 초상까지 약탈당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 기간 동안에 수월관음도 또한 약탈당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수월관음도의 화기에 따르면 1310년 충선왕의 왕비였던 숙비가 발원하고 김우문, 이계, 임순, 송연색등 8명의 고려왕실 소속 궁중화가가 동원되어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수월관음도가 완성 된지 100년이 되지 않아 일본승려 양현이 지금의 경신사에 진상했다고 나온다. 경신사의 수월관음도는 보험금만 150억에 이르는 보물중의 보물이다. 지난 1993년 미국 쎈프란시스코 아시아박물관에서 수월관음도 특별전시회를 가졌다. 그때 언론의 찬사는 대단했다.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했다.
고려불화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경신사 소장 수월관음도가 범해 김범수 교수에 의해서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그때의 재료와 전통 제작기법으로 천연석채를 사용하여 모사복원한 것이다.
김범수화백은 원광대 회화 문화재 수복학과 교수이며 범해 문화재 연구소 소장이다.
제자들 네 명과 함께 2년에 걸쳐 공들인 결과물이다. 이제 작품장황을 마치고 벽에 내걸었다. 족자표구만 마무리하면 완성된다.
1391년 8월 고려불화가 일본으로 건너 간지 625년 만에 완벽한 복원불사를 이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