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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서울 탈환: 시가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뉴스를 듣고 어깨를 으쓱했을 뿐, 곧 다시 본인들의 업무로 돌아갔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에서 오는 보도기사는 떠들썩한 소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속보들은 정확했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했다.
낙동강 방어선의 서쪽 최전선으로부터 조용히 철수한 해병대원들은 부산으로 복귀하였고, 거기에서 미국으로부터 막 도착한 다른 해병대원들과 합류했다. 해병대는 전투병을 보충하여 제1해병사단으로 새로이 재편성되었다. 부산에서 하루 떨어진 위치에서 해병대 소속 함선들은 병력을 싣고 있는 수많은 함선들을 만났다. 해안에 상륙 시 해병대를 후속하게 될 육군 7사단의 장병들을 실은 배들이었다.
낙동강 방어선을 벗어난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 그리고 싫어하는 수송수단인 배를 탄다는 것조차도 기뻐하며 해병대원들은 잠자리, 식사, 짠물 샤워 등에 대해 불평하면서 즐거워했고, 그들이 공격하러 갈 곳이 어디인지 그 장소에 대해 잡담을 하면서도 즐거워했다. 배의 대형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부대장의 음성이 그들의 질문에 답을 주었다. "인천!"이라고
많은 눈이 상륙작전에 적합한 해변과 깊은 수심, 그리고 좋은 시설을 갖춘 항구들이 있는 한반도 동북쪽을 연해 있는 원산, 흥남 그리고 다른 항구들을 갑판 위의 지도에 그리며 아는 체를 하는 베테랑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인천! 갑판 위에는 인천에 관해 세밀히 그려진 지도가 없었다. 인천은 그들이 상륙할 수 없는 확실한 장소 중의 하나라고 퇴짜를 놓았던 항구였다.
맥아더 장군은 해병대가 인천을 상륙장소로써 제외시킬 수밖에 없다고 하는 바로 그 이론에 주목했다. 그는 만약 도쿄나 워싱턴, 그리고 유엔안보리가 위치한 레이크 석세스(Lake Success)에 있는 모두가 인천을 상륙할 수 없는 곳으로 믿는다면 북한공산군이나 모스크바의 소련 고문관들도 아마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고 분명히 확신했다.
아주 공을 들여 항구에 관한 모든 책과 도표, 기록... 접근로, 각 수로와 측면의 사주들, 그리고 특히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변화무쌍한 간만의 차가 있는 항구가 주는 조류의 특징들... 이런 모든 것을 검토한 후에 상륙전의 분야별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반대로 맥아더는 결정을 내렸다.... 인천!
상륙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항구를 보호하고 있는 섬을 공격한 해병대는 다음으로 정박지를 둘러싼 방파제를 기어올라 상대적으로 가볍게 저항하다 곧 제거된 적군을 무찌르며 상륙했다. 항구를 확보함으로써 후속 중원부대가 쏟아져 들어오고, 비행장은 탈취한 해병대 앞에 놓인 다음 목표는 서울이었다.
이 장의 사진들 "The City(시가전)"는 공산군들에게 점령되었던 서울탈환 전투 중에 찍은 것들이다.
물론 북한 공산군이 서울방어를 위해 어디를 확보하기로 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비행장을 탈취한 후 곧 한강에 도달했을 때 해병대는 잠깐 멈추었다. 그때 다른 해병대원들이 수륙양용 트랙터를 타고 굉음을 내고 있다가 떼를 지어 이동했다.
아마 공산군들은 그 트랙터들을 빛바랜 녹색 모자를 쓰고 무섭게 소리치며 사격을 해대는 병사들을 태우고 그들을 맹렬히 공격하며 강과 들을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전차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공산군들은 혼란에 빠져 달아났다.
공산군들이 트랙터가 무엇인지를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먼지투성이가 된 녹색 사나이들인 해병대원들은 한강을 건너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철도 양옆의 고지를 점령했고, 서울의 서쪽 변두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최근에 적이 포기한 깊고 세심하게 구축된 지휘소가 있는 고지 정상에서 선두 공격중대의 중대장은 고지 가장자리를 따라 배치된 관측병들과 기슭 하단부 밭들이 있는 소총병들과 계속 무선통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공산군들은 방향을 바꾸어, 교외에 이르는 결정적인 접근로를 통제할 수 있는 그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필사적인 시도를 꾀하고 있었다.
사흘 밤낮 동안 많은 적군이 고지 주위로 급히 되돌아와서 오직 전령과 긴급 탄약 팀만이 낮 동안 후방으로부터 기어들어 올 수 있었고 밤에는 아무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대는 홀로 저항을 했다. 밤은 더욱 최악이었다. 소총 사격과 폭발로 가득 찼고, 돌격을 시도하는 적군들이 해병대원들의 진지로 뚫고 들어왔다.
3일째 되는 밤의 황혼 무렵에 기관총 사수인 레오날드 헤이워스 상병은 이달 초순에 낙동강을 따라 이동하는 그의 사진들을 보여주었을 때 처음엔 당황해하더니 곧 아주 온화하게 수줍어했다. 날이 거의 어두워질 무렵 동료들에 둘러싸인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훨씬 고참인 한 해병대원이 헤이워스의 큰 키로 인해 상병의 어깨 너머로 살펴보기 위해 발끝을 딛고서 있었다.
헤이워스가 떠나간 뒤에 그 고참 해병대원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제기랄! 형편없고 저주받을 사진, 누구나 때때로 우는 법이라고." 다음 날 아침 동틀 녘에 기관총을 쏘던 레오날드 헤이워스 상병이 총에 맞아 곧바로 전사했고, 고지 정상부를 탈환하기 위해 마지막 공격을 시도했던 공산군들도 멈추었다.
한낮의 몇 시간 동안도 밤이 길고 추웠던 것처럼 길고 더웠다. 고지 정상부 주변의 사선에 배치된 해병대원들은 아래쪽의 제방을 따라 밭을 가로질러 그들을 향해 빠르게 공격해오는 공산군들의 지속적인 위협을 받았고, 그들은 알게 되었다. 미끄러져 들어오는 적들 하나하나가 다음날의 야간전투 중 아군에게 사격을 가하고 아군의 사격에 사살당해 죽을 운명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밭을 조준하여 사격하는 바로 그 순간에 제방을 따라 재빨리 피하는 어슴푸레한 모습들 가운데 어린이들이 나타났다. 착하고 작고 커다란 눈을 가진 어린이들이... 그 어린이들은 처음에 자신들을 무시했던 이들을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따르며 그들 자신만의 참호를 파고, 그들의 작은 머리에 맞게 헬멧을 능숙하게 조정했다.
아무도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한참 뒤에 중대가 서울 시가지를 공격하기 위해 고지로부터 내려온 후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그러나 그들이 고지 꼭대기 부근에 있었던 동안 그들은 포화 소리에 귀를 막으며 견딘 중대원들이었고, 환영을 받았다.
적어도 한 명의 적군 병사가 해병대의 탄막을 뚫고 들어왔는데 인내심이 강한 저격병이었다. 그가 출현했다는 첫 번째 증거는 안전한 장소라고 생각하고 신중하게 선택한 장소에서 점심 전투식량을 앉아서 먹고 있던 해병대원의 가슴으로 저격병의 총탄이 박혀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의무병들과 동료전우들은 그 해병대원의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었기 때문에 즉각 필사적으로 그를 보살폈다. 그러나 그가 고지 가장사리를 지나서 보다 안전한 아래쪽 기슭으로 옮겨졌을 때 얼마나 오랫동안 더 살아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부상자들을 후방으로 수송하고 있는 구급 지프 한 대가 교묘하게 매설된 지뢰를 밟아서 폭발과 함께 사람과 기계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부상자들 가운데 3명이 또다시 부상을 입었다. 운전병을 돕기 위해 함께 갔던 그의 동료도 전사했다. 폭발로 인해 상처를 입고 또 친구를 잃고 영원히 마음에 상처를 입은 운전병은 그가 폭발로부터 내팽겨쳐진 도로가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 운전병은 자기 친구가 그를 도와주기 위한 임무를 받고 동행했기 때문에 죽은 것뿐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동료를 죽게 만든 매설된 지뢰 위를 온전한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아마 이 포인트가 해병대가 강한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부상에는 무관심하지만, 수년간 고난을 함께 나누고 적의 공격이 지나가길 바라며 며칠 밤을 개인 참호에서 함께 지냈던 전우의 죽음을 비탄에 잠겨 통곡하며 진심으로 슬퍼하는 해병대원... 그리고 전우를 살리기 위해서 주저 없이 자신의 생명을 내줄 수도 있는 사람...
또 다른 구급 지프 한 대가 길로 내려와 부상자들을 싣고 후방에 있는 구호소를 향해 다시 천천히 출발했다. 다치고 부러지고, 각자가 생각에 잠겨있고 여전히 살아서 초라한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사람들의 고립된 집단이 다른 모든 사람, 아마 문명 그 자체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인간의 초기 문명에서 아침 일찍 굶주린 짐승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그들의 토굴 입구에 함께 모여 있을 때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일부는 죽었으나 그들은 살았고.. 그 토굴과 그들의 비밀과 모든 가족과 꿈들은 안전하게 되었다. 그 집단은 살아남았다.
해병대가 서울 남서쪽 측면으로 들어섰을 때 천천히 피어오르는 연기와 아침 안개가 아직 서울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밤새 공산군의 반격을 물리친 후, 해병대원들은 고지로부터 내려와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 철도를 횡단하면서 적이 장악하고 있던 서울의 한복판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길임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황폐해진 거리만이 그들을 맞아 주었다. 그런데 마법과도 같이 전진하는 해병대원들에게 양손을 흔들며 박수갈채를 보내고 환영의 "만세! 만세!"를 외치는 사람들로 거리가 열을 이루었다.
그들이 옳다고 외치는 환영의 소리를... 해병대원들 역시 알았다. 그들이 경험을 통해 남쪽에서 배웠듯이 민간인들로 가득한 거리는 좋은 징조라는 것을 알았다. 반대로 거리가 비어있으면 문제가 있고 기다리고 있는 적이 있음을 뜻한다는 것을...
그들 본부와의 무선접촉은 해병대원들에게 대대의 다른 중대 대원들이 그들의 측면에서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왜냐하면 지형이 후방 쪽으로 사다리꼴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선교신은 해병 1사단의 나머지 부대는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기에 앞서서 그들 뒤에서 이동 중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머지 부대의 공격은 상업지구와 정부 건물들을 넘어서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군 7사단의 전방부대들이 지금은 파괴된 교량 가까이에서 남으로부터 한강을 도하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무전교신으로 약속한 병력지원의 소식은 아직이었고, 해병대원들은 외로이 살상의 세계인 전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전 중반쯤에 정찰대와 해병 제1연대 1대대의 에이블(ABLE)중대가 그들 책임 지역의 주민 주거구역을 통해 침투하였다. 아군 피해는 가벼웠으나 증대되는 대담함과 부주의함 대신에 중대장인 밥 배로우 대위는 더욱 경계를 강화했다. 그의 정찰대는 잘 닦여진 길을 완전히 회피하여 뒤뜰을 가로지르고 정원의 담을 넘었다.
전차 지원을 요구하는 반복된 요청은 무거운 퍼싱 전차의 한강 도하가 지연되고 있다는 불안한 답변을 가져왔다. 정오 직전에 배로우 대위의 해병중대원들은 그들이 서울 서쪽 끝의 가장자리를 이루는 말안장 형태의 산줄기 정상 부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와와 흙벽으로 잘 지어진 집들이 그 지역을 덮고 있었다.
전방의 지면은 서울의 주요한 기차 종착역의 화차 주차장으로 급히 사라졌다. 상업지구와 정부청사 지역들이 왼쪽 산의 기슭 주위까지 뻗어 있었다. 멀리 오른쪽으로 파괴된 한강 다리가 뻗어 있었다. 바로 앞에는 전방 정찰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 매우 흡사한 다소 무해하게 보이는 주거지역이 펼쳐져 있었다.
밥 배로우 대위는 도시 전체에서 가장 관측이 용이한 장소 중의 하나에 무혈입성했다. 그런데 배로우 대위는 앞에 보이는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그의 중대원들을 철로를 가로질러 곧바로 달려 내려가도록 하는 대신에, 서울을 탈취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결정 중의 하나를 내렸다.
그는 기관총들을 능선의 가장자리를 따라 전개하도록 명령했고, 그동안 그는 관측병들, 통신병들과 함께 지도를 가지고 대대의 다른 중대의 정확한 배치와 그의 측후방에 전개되어 있는 육군 및 해병대의 전진속도, 그리고 새로운 지역을 공격하기 전에 전차들이 합류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는 일반적으로 소부대 지휘관에게 기대되고 요구되는 것보다 훨씬 더 세밀하게 공격을 위한 모든 요소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그것을 알지 못했지만 많은 미국인의 생명이 서울을 통한 대공세에 헌신했고 서울발환을 위한 전투의 운명이 그날 오후 약 한 시간 동안 배로우 대위의 손에 놓여 있었다.
지도를 보고 무선교신을 하면서 배로우 대위가 저격수들을 전방 보안관측수와 항공지원 연락관이 그의 중대에 배속되었다. 들은 다음 각자가 면밀히 살펴야 할 전방지역의 할당된 위치에 배치되었다. 관측되는 전체 전장은 정면으로는 주거지역이었고, 왼쪽은 서울의 주요한 오른쪽 멀리로는 한강다리가 보였다. 쌍안경을 들고 관측하는 10명의 병력들 외에는 아무것도 능선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중대가 다른 공격부대들보다 너무 앞으로 진출해 있다는 것을 알고, 배로우 대위는 다른 부대들이 중대 측방에 도달할 때까지 전진속도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배로우대를 향한 압력의 정도로 판단해볼 때 고급간부들이 도쿄에 있는 총사령부로부터 적에게 점령당한 지 3개월이 되는 서울을 늦어도 9월 27일까지는 공산군으로부터 탈취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서울을 탈환하라는 날까지 겨우 48시간만이 남았는데 서울은 죽을 때까지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공산군들에 의해 방어되고 있었다. 전혀 정찰되지 않은 지역에 추방을 노출하는 것을 개의치 않고 그의 중대를 전전도록 하는 것처럼 보였을 바로 그때 그의 곁에 서 있던 저격수가 외쳤다.
"공산군" 배로우 대위는 몸을 앞으로 수그린 병사의 머리 너머로 그의 안경을 추켜올렸다. 모든 눈이 능선을 따라서 기차역 바로 반대편의 세 개의 빌딩들을 훝었다. 그가 옳았다. 빌딩의 입구들은 모래주머니들로 방비가 되어 있었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출입구의 그늘 뒤에서 나타났다. 모든 해병대원이 동시에 욕을 하기 시작했다.
북한군 1개 소대가 철로 둑의 보호막 아래서 갑자기 나타나 건물 중앙부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이 그들의 본부였다.
밥 배로우 대위는 무선교신을 했다. 그는 조용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그가 본 모든 것을 보고했다. 그리고 공산군 사령부에 대한 공중타격 요청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화차 주차장과 주거 지역으로 그의 증대원을 보내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다.
항공지원 연락관에 급히 전투기들을 목표로 유도하는 동안에 더 많은 관측자가 능선을 따라 정면에 표기된 것처럼 보이는 지역에 숨어 있덧 공산군을 찾앙내기 시작했다. 공산군들이 그들의 시야로 미군이 들어오는 것을 기자리고 있을 때 또 다른 적군들의 철모들이 철로를 따라 거북이처럼 열을 이루었다.분명히 공산군 중에 어느 사람도 그들 위쪽의 집과 담장 뒤에 숨어 있는 해병대원들을 보지 몬한것 같았다.
밥 배로우 대위는 그의 증대를 철도를 가로질러 아래로 이동시켰고 대대의 나머지 병력과 연대가 그 뒤를 따랐다. 공산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순히 숨어서 대부분의 해병대원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신호를 주면 그들의 참호와 방책과 너저분한 거리 곳곳에서 그들에게 사격을 가할 것이었다...
적들의 계획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큰 참사가 예견되었다. 밥 배로우 대위의 바로 앞 지역은 서울 전 지역을 담당하는 공산군의 주둔지로서 남쪽으로는 한강 다리 주위의 방어를 강화하고, 북쪽으로는 서울 방어를 위한 전투에 대규모의 병력을 이동시킬 통로로 계획했던 부대 비축소 같은 곳이었다.
항공지원 통제관이 로켓탄과 폭탄 공격을 적군 사령부 건물로 유도하였을 때 배로우 대위는 북한 공산군이 가장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물에 정밀한 중박격포의 일제 사격을 요청했다. 다른 항공기들이 저속으로 강하하여 적의 탱크에 소이탄 공격을 가했고, 적 탱크들은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기름화염의 불꽃을 터뜨렸다.
불어 간물을 통해 퍼져 나갈 때 해병대원들은 처음에는 10여 명, 다음에는 100여 명 또 다음
에는 글자 그대로 수천 명의 적군이 건물 사이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내달리는 것을 보았다. 기관총 사수들이 그들의 무기를 능선의 개방된 가장자리에 놓고 샛길과 거리를 치열하게 사격으로 휩쓸었다.
화염과 연기의 커다란 기둥들이 하늘을 향해
굽이쳐 올라갔고, 곧 전체 지역이 용광로가 된 것 같았다. 포병의 일제사격이 박격포탄 공격과 함께 시작되었고, 종전보다 훨씬 더 많은 항공기가 호출 간격에 따라 급강하 폭격을 가했다.
전방지역이 궤멸하였다는 것은 분명했고, 얼마나 많은 공산군이 그 불 속에서 죽었는지 아마 어느 누구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은 확실했다. 그 지역은 18시간 동안 기록되어 있는 모든 수단에 의해 공격을 받았다.
다음 날 아침 새벽 직후에 포격이 멈추고, 폐허에서 불에 타면서 내는 딱딱 소리와 벽들이 무너지며 내는 굉음들만이 들려올 때, 해병대원들 전원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토치카들이 있는 구불구불하고 서로 얽혀있는 거리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많이 파괴된 적 주둔지의 핵심지역이었던 중심부로 들어갔으나 단 한발의 대응 사격도 없었다. 그 후 해병대원들은 공산군들의 다음 저항지점인 기차역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했는데 그 기차역이 해병대의 다음 목표였다.
건물 위로 진입해 들어가는 대신에 건물의 정면을 따라 침투하는 시가전은 해병대원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그들의 전투는 프랑스의 아르곤과 벨로의 깊은 삼림지대였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들의 싸움터는 태평양의 축축한 정글이나 해변이었다. 시가전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으나 그들은 곧바로 시가전의 특성에 적응해갔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서 공격을 했고, 사격으로 아침의 소란을 일으키는 적기관총사수들이 있는 역사 쪽으로 좀 더 가까이 갔다. 연발 사격이 가능한 소형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또 다른 공산군들이 길을 따라 있는 부서진 담장에 봄을 숨기고 해병대를 꾸준히 압박하며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이내 곧 사라져갔다.
민간 여인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폭풍우가 나무들을 몰아치고 가듯이 해병대원들을 지나쳤다. 피곤함에 찌들고 초라하고 가을 낙엽 같은 그들은 마지막 화를 피해 달아났다. 더 많은 사람들과 가족들이 불타고 있는 폐허로부터 비틀거리며 나타나 피난처라도 되는 것처럼 해병대원들의 팔 안으로 달려들었다. 무엇인지 모를 말들을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그리고 어리둥절해 하는 해병대원들에게 원하지도 않는 선물을 주면서....
해병대원들은 이쪽 거리 모퉁이에서 저쪽 거리 모퉁이로, 또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이 바리케이드에서 저 바리케이드로, 이쪽 담장에서 저쪽 담장으로 교대약진을 해갔다. 그들의 목표들은 거의 볼 수도 없었고 또 타격하기에도 상당히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머리를 내리고, 총을 움켜쥐고, 거리를 똑바로 공격해 들어갔다.
그들은 높은 돔을 가진 고전적 형태의 역사 건물의 유효 사거리에 도달한 후에, 거대한 담벼락들과 바람에 버려진 창문들 주변에 산재한 폭탄 구덩이들을 향해 마지막 숨이 다하도록 전력 질주를 해야 하는 개활지에 노출된 다른 해병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엄호사격을 지원하였다.
공산군들은 사격이 끝나자 위장한 철모를 쓰고 낯선 카키색 바지를 입은 몇 명의 해병대원들과 나머지 병력이 그들이 움직일 때 역사 창문 안으로 사격을 가하며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급히 보강된 바리케이드가 준비되어 있고 서울 북쪽으로부터 달려 내려온 다른 병력이 배치된 거리 쪽으로 빠져나갔다. 공산군들은 바리케이드 뒤로부터 기차역과 그 앞의 광장을 향해 끊임없이 일제사격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해병대원들은 폭탄 구덩이로 몸을 숨기고, 감히 머리를 들지 못했다. 머리 위 총알 소리가 너무 가까웠고 끊임없이 그들을 향해 발사되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리를 따라 뒤에 오고 던 다른 해병대원들은 사격 소리를 듣고, 위험에 처한 그들의 동료를 어떻게 구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위험하게도 바리케이드를 벗어나 몸을 구부렸으나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깊고, 땅을 흔드는 굉음이 그들의 문제를 해결했다. 탱크들. 그들이 오래도록 기다려온 탱크들이 철도를 가로질러 으르렁거리며 역 광장으로 진입했고 적군의 사격을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탱크들은 바리케이드로 방호되고 중무장한 적들과 일제사격을 연속해서 교환했다.
그러자 강철 덩어리들과 바리케이드 조각들이 하늘 높이 날았다. 그들은 직사거리에서 서로를 사살했다. 그런데 짙은 연기가 그 장소로부터 생기더니 교전이 천천히 거리를 따라 뒤로 물러나며 벌어졌고 역 앞의 광장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기차역을 점령하고 있던 해병대원들이 항상 그랬듯이 의심스러운 잔해들과 사면들을 살피며 기차 역사 안쪽 뜰을 둘러싸고 느릿느릿 나아가는 동안, 시가 탈환을 위한 근접교전은 끝났다. 이제 그 해병대원들은 해 질 녘까지 먹거나 잠을 자거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미 다음 블록 너머까지 가 있는 전차를 지원하는 해병대원들을 다시 교대해주라는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다시 민간인들이 나타났다. 그 민간인들은 손과 발이 묶인 다른 민간인들을 끌고 있었고, 한명 또는 다른 어린아이들이 그들 뒤를 따랐다. 경비병들이 묶인 사람들은 위해 배치되었다.
이는 그들을 살려두기 위함과 동시에 그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묶여 있는 사람들은 데려온 사람들로부터 반역자로 간주 당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더 많은 포로를 데려왔으나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제복을 입은 병사들이었고 그들을 잡아 온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며 아직 꼭대기에 붉은 별이 달린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 즉 적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는 명확했다. 즉각적으로 그들이 사령부에서 가치 있게 생각하는 무기나 문서들을 감추었는지를 조사하고, 전쟁 포로 꼬리표를 붙인 후에, 후방으로 그들을 이송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그들을 엄하게 감시하게 했다.
해병대원들은 대부분이 지금 막 했던 것과 같이 먹거나 자거나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저 무거워진 어깨를 늘어뜨리고 서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몇몇은 바로 가까이에 땅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잡혀 온 적군 병사들을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다면 실제로는 그들이 그 적군 포로들을 전혀 보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고, 눕거나 잠을 잘 때라고 느끼고 있었는지도, 또는 무언가 고뇌에 잠겨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다만 장화를 신고 몸을 구부정하게 한 채 말 한마디 없이 서 있었을 뿐이었다.
밥 배로우 대위의 중대원들이 고지의 맨 꼭대기에 자그마한 성조기를 게양했다. 그러나 제자리에 성조기를 막 묶는 그 순간에 고지로부터 들려오는 사격 소리가 주의를 끌었다. 그리고 국기게양은 그냥 큰 의미 없는 일상적인 의례가 되었다. 전쟁 속 어느 하루의 자그마한 사건처럼 말이다.
그렇게 먹고, 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무료한 오후'가 지나갔다. 자유로운 오후'는 아직 존재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해병대원들이 아직도 아침마다 느슨한 자기 내면을 찾아 헤매는 동안 그들 중 누구도 자유로운 오후가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부류의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한 자기들의 오후를 살아가면서 단지 한 블록 떨어져 있었다.
오래 꿈꿔온 그리고 이제는 잊힌 담배가 그의 손가락을 태우는 바로 그 순간에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 그 포로를 위한 자유로운 오후도 없었다.
그리고 한옥 담장에 기대어 일그러진 표정으로 집으로 편지를 쓰면서 아침시간을 덮으려고 애쓰는 해병대원들을 위한 자유로운 오후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화를 내며, 이 해병대원은 종이를 조각조각 찢고 담벼락으로부터 물러났다. 아무것도 없는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한 해병대원에게는 즐길만한 어느 오후가 있었다. 그 해병대원은 소작농의 숯 화로에 불을 붙여 불씨를 조심스럽게 살리며, 그 위에 콩 통조림 하나와 커피 한 캔을 데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승리였다! 순간적인 생존을 위해 다른 담장 뒤로 뛰어들면서 한쪽으로 통조림을 던지도록 강요하는 적의 총알 세례가 없는 서울거리에서 여유롭게 큰 대자로 눕고, 커피를 끓이고, 콩 통조림을 먹을 자유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