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있는가? 비록 “테러리즘”이란 단어가 일상 방송보도에 무수
히 나오지만, 아직 어떤 것이 테러리즘인지 국제적인 정의가 존재하지는 않다. 1999년의
유엔 결의는 “일반인들, 어떤 집단의 사람들 또는 특정인들에게 공포심을 일으키려고 계
획된 또는 의도된 범죄 행위들”로 언급하였다(4). 이 정의에 의하면 니카라과, 엘살바도
르, 과테말라, 인도네시아, 칠레, 콩고 등지에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준군사조직과
군대의 암살대들에 대한 미국정부의 지원은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에게 주는 가장 위험스
런 지원이 될 것이다.(5)
(1) "Bin Laden Comes Home To Roost". Michael Moran, MSNBC, 8/24/98
www.msnbc.com/news/190144.asp
(2) "Analysis: Hamas history tied to Israel". Richard Sale, United Press
International. 6/18/2002.
www.upi.com/view.cfm?StoryID=18062002-051845-8272r
(3) For sources, see section 6 of this pamphlet on Iraqi history.
(4)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51/210: Measures to eliminate
international terrorism.
www.undcp.org/odccp/terrorism_definitions.html
거짓말 6번: 임박한 이라크 침공은 석유 때문이 아니다.
이라크의 현대사는 중동지역의 석유이권 쟁탈로 점철되어 있다.
1920: 식민지 열강들, 중동을 점령하다. 일차세계대전 말경 전쟁에 승리한 최대의 식민
지 열강들(영국, 프랑스, 미국)은 중동지역의 석유자원에 대한 가치를 실감하고 그 지역
의 지배를 위해 서로 경쟁하였다. 영국, 프랑스, 미국 정부는 중동의 전 지역과 자원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상호 분할 지배하였다. 이라크에서 영국 점령자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서 데려온 외국 왕을 이라크국민들 위에 군림케 하고, 영국(50%), 프랑스(25%), 미국
(23.75%)은 제각기 자기들끼리 석유산업을 쪼개 먹었다. 이라크국민들은 자신들의 나라에
서 나온 석유이익을 한푼도 얻지 못하였다.
1958: 이라크 혁명가들, 국왕을 타도하다: 여러번의 실패 끝에 이라크의 혁명장교들은 부
패한 왕정을 전복시키고 마침내 대다수 민중의 지지를 얻어 이라크공화국을 수립하였다.
이 혁명의 지도자들은 이라크의 자원과 운명에 대한 외국간섭의 종식을 주목표로 싸운 세
속적(비종교적) 아랍 민족주의자들이었다. 혁명정부의 가장 중요한 새 정책들 중의 하나
는 농촌에서 부패한 부재지주들의 지배를 제거하고 소농들이 자신들의 토지를 가질 수 있
도록 한 농지개혁법이었다. 이라크의 새 통치자들은 쏘련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미 중앙
정보국장 알랜 덜레스는 당시 이라크의 상황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으로 묘사하
였다.(2)
1972: 이라크 정부, 자신들의 석유를 되찾다. 몇년간의 상이한 정치집단들의 내부 갈등으
로 인한 불안이 지난 후 사회주의 바트당이 마침내 이라크정부를 장악하고 석유산업을 국
유화시켰다. 석유판매로부터 나온 막대한 이익을 가지고 새 이라크정부는 새로이 학교,
병원들을 짓고, 관개시설, 전기화 사업을 일으키는 등 공익사업에 거대한 투자를 했다.
국가 기간 시설에 대한 -대부분 사담 후세인이 선두 지휘한- 이러한 개선은 모든 이라크
인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켰고 전통적으로 분열된 종족과 종교 집단들간의 국민적 통합
을 강화시켰다.(2)
1976-1990: 중동에서 사담 후세인의 통치 하 이라크의 세력 강화되다: 사담 후세인은 처
음 권력을 잡자 이라크 공산당을 금지시켰으며 많은 좌경 노동운동가들을 처형했다. 미국
정부는 공공연히 이 결정을 지지했으며 사담 후세인에 의해 이라크가 쏘련으로부터 멀어
지기를 희망했다. 이라크 또한 잘 무장된 현대식 군대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이
란과의 전쟁 중 미국정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미 정부기관들은 수십억불의 원조
를 주었고, 세균과 화학물질을 포함하여 수십억불에 상당하는 무기들을 팔았다. 비록 이
라크군이 또한 북부 이라크에서 이란과 동맹한 쿠르드족 반군을 무자비하게 진압하였지
만 대부분의 전투는 이라크군과 이란군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가공할만
한 인명손실을 가져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산업경제력은 계속 성장하였으며 이
라크는 중동에서 가장 근대 산업화된 국가의 하나로 부상하였다. 이 전체 기간 중, 이라
크의 근대화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석유이익을 외국 석유회사에 넘겨주지 않고 국내 기
간 시설에 재투자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3)
1990-2003: 이라크, 걸프전에서 패배하고 경제제제를 받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
공은 이라크와 쿠웨이트 간에 변경지역에서의 석유생산에 대한 분쟁으로부터 초래되었
다. 특히, 이라크는,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석유회사들의 요청으로 국제석유
시장에 대량 출하하여 석유값을 하락시키고, 따라서 이라크의 석유판매이익을 심각할 정
도로 감소시키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미국은 석유동업자인 쿠웨이트에 대해 즉각적인 구
조작업을 펼쳤고 20만의 이라크군인들과 수천의 민간인들을 살해한 폭격작전으로 이라크
현대 기간 시설의 대부분을 파괴하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 유엔의 미국대표는 국제시장
에서의 이라크 석유판매 제한을 골자로 한 가혹한 경제제재조치를 추진하였다.(4)
2003: 이라크석유의 장악은 임박한 미국 침공의 주된 목표이다: 미군이 이라크 침공 준비
를 함에 따라, 미국내의 석유회사들은 전문가들이나 분석가들에게 이라크 석유산업 장악
계획을 노골적으로 털어 놓고 있다. 스탠 크로크 등은 비즈니스 위크에 기고한 글에서 다
음과 같이 쓰고 있다:
“미군이 한동안 이라크에 매장된 석유와 천연가스를 장악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미국회사들은 그 사업에서 유리한 부분을 얻어낼 가능성이 높다. 아마 그들은 또
한 채굴권도 어느정도 얻어낼 것이다. ‘석유채굴산업은 상당부분 미국이 지배하고 있
다.’고 어느 미국회사의 간부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굴지의 건설회사 벡텔그룹뿐
만 아니라 핼리버튼(HAL)이나 베이커 휴즈(BHI)같은 회사들이 미국의 특수부대들만큼이
나 승리감에 차있다는 것을 뜻한다.”(5)
(1) "America as Junior Partner: Anglo-American Relations in the Middle East",
Jerry Rubin, Uriel Dann, New York: Holmes & Meier, 198
www.globalpolicy.org/security/oil/1988interest.htm
(2) History of Iraq. Countryreports.org. Teaching Resources.
www.countryreports.org/history/iraqhist.htm
(3) "The Riegle Report: U.S. Chemical and Biological Warfare-Related Dual Use
Exports to Iraq and their Possible Impact on the Health Consequences of the Gulf
War", US Senate, May 25, 1994
www.gulfweb.org/bigdoc/report/riegle1.html
(4) "Market Share Within OPEC", WTRG Economics
www.wtrg.com/opecshare.html
(5) "It's Not 'All About Oil', But..." Stan Crock, et al. Business Week, 2/10/2003
www.globalpolicy.org/security/oil/2003/0210game.htm
거짓말 7번: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가 이라크 국민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
경제제재가 이라크 국민들에게 주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유엔이 만든 인도주의위원회
는 1999년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유아와 산모 건강: “주로 산모의 영양실조로 출산시 체중이 낮은 유아(2.5Kg 미만)가
1990년에는 등록된 출산아 중의 4%였던 것이 1997년에는 약 1/4이나 되었다. UNFPA(유엔
인구기금)과 국제적십자연맹이나 적신월사(회교국의 적십자사에 해당하는 조직)같은 소식
통은 이라크 여성의 70%가량이 빈혈로 고생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18)
영양실조: “1994-95년까지 인구당 일일 섭취양이 3,120에서 1,093킬로 칼로리로 떨어졌
다. 1991년에서 1996년까지 다섯살 미만의 이라크 어린이들의 영양실조 만연은 두배가 되
었다(12%에서 23%). 중부와 남부에서의 급성 영양실조는 같은 나이또래의 아이들에게 있
어서 3%에서 11%로 증가하였다. 1997년 4월에 다섯살 미만의 15,000명의 어린이들에 대
해 실시한 영양상태조사의 결과는 거의 모든 어린 아이들이 영양실조 상태로 되어가고 있
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 유아들의 영양상태조사, UNICEF, 1998.11.7).”(§19)
가격: 유엔국제식량계획(UNWFP)은 “1995년 7월 당시 산출에 의하면 생필품 평균소매가격
이 1990년 7월 수준의 850배까지 이르렀음을 알려주고 있다.”(§19)
기간 시설: “영양실조 문제는 자원의 부족뿐만아니라 또한 기본적인 기간 시설의 대규모
적인 파괴, 특히 식수공급과 폐기물처리 체제의 파괴로부터도 오는 것같다. 가장 취약한
그룹들, 특히 도심지에서 비위생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다섯살 미만의 아동들이 가
장 심한 타격을 입었다. UNWFP는 현재 도시지역에서 1990년 수준의 50%, 그리고 농촌지역
에서는 33%만이 휴대용 식수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
보건 시설: “1991년 이래 병원과 보건소들은 수리 또는 정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
다. 건강관리체제의 수용능력은 식수와 전력공급의 부족, 교통과 통신시설의 결핍으로 더
욱 감소하였다. 국제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에는 억제되었었던 물을 통해 옮기는 수
인성 질병과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들이 1993년에는 다시 유행하게 되었으며 현재 위태스
런 보건상황으로 인해 풍토병의 한 부분으로 되어버렸다.”(§21)
교육: “모든 연령층(6-23)에 걸친 취학률은 53%로 떨어졌다.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
과학문화기구)가 인용한 1993년에 시행된 현지 조사에 의하면, 중남부지구에서는 10,334
개의 학교 중 8,613개교가 심각한 피해를 입어 학교건물의 83%가 재건축되었어야만 했
다. 그 보고서는 또한 700명 수용능력의 어떤 학교들에 실제로 4,500명이 등록되어 있었
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에 따르면, 상당한 발전을 보인 성인과 여성
문맹의 감소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1980년대 중반 수준으로 퇴보하였다고 한
다. 점점 늘어가는 부랑아동들과 취업아동들의 수는 부분적으로는, 가계소득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가정들이 어린이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어 일어나는 학교 중퇴와 복학
률 증가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22)
정신 건강: 국제보건기구(WHO)는 “보건시설을 찾는 정신질환자의 수가 1990년부터 1998
년까지 157% (197,000명에서 507,000명으로) 증가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25)
경제: “위원회에 제출된 자료들은, 심각하게 악화된 이라크인들의 생활상태 그리고 사회
조직의 심한 긴장상태와 더불어 이라크 경제의 지속적인 후퇴를 지적하고 있다. 유엔개발
계획(UNDP)이 요약한대로 ‘이라크는 비교적 풍요로운 사회에서 전반적인 빈곤 상태로 바
뀌어지고 있다.’”(§43)(1)
전 유엔 이라크 담당 인도주의계획단장이었던 데니스 할리데이는 이라크 경제 제재에 대
한 반대로 34년간의 경력을 버리고 사직하였다.
(1) "Report of the second panel established pursuant to the note by the president
of the Security Council of 30 January 1999 (S/1999/100), concerning the current
humanitarian situation in Iraq", made available by The Campaign Against Sanctions
On Iraq
www.casi.org.uk/guide/problem.html
거짓말 8번: 이라크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억압받는 사람들이다.
걸프전과 경제제재 이전의 상황: 1990년, 이라크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전 중동지역에서
가장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었다(점령지역에서의 생활수준을 고려한다면 이스라엘도
포함하여).(1) 사담 후세인 통치 하의 이라크 정부는 정치활동에 상당한 제한을 두었으
나, 이것은 또한 대부분의 중동지역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이라크인들의 경제적 사회
적 권리는 대부분의 다른 중동국가들에서보다 훨씬 더 폭넓은 것이었다. 여성권리 부문에
서는 특히 그러했다.
2000년 중동 4개국에 있어서 여성권리의 비교:(a)
투표권과 공무원 자격 단독 보행과 운전 권리 이혼 신청권
남녀공학의 대학
이라크 있음 있음 있음 있음
쿠웨이트 없음 있음 없음 있음
사우디 없음 없음 없음 없음
이스라엘 있음/없음(*) 있음/없음(**) 있음/없음(***) 있음
(*)이스라엘은 점령지역의 팔레스타인사람들에게 이 권리들을 주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점령지역의 팔레스타인사람들에 대해 이동의 자유를 극심하게 제한하
고 있다.
(***)이혼을 원하는 이스라엘 여성들은 남편의 승인을 얻어 종교재판소에 가야만 한다.
(1) Table compiled based on reports by Human Rights Watch.
www.humanrightswatch.org
걸프전과 경제제재 이후의 상황: 미국의 폭격과 12년간의 경제제재에 의한 황폐화는 이라
크 국민들이 한때 누려온 대부분의 사회적인 편의들을 없애버렸다. 새로이 가난하게 된
수백만의 이라크인들이 겪은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은 이라크 최근 역사 상의 어떤 다
른 정치적인 탄압보다도 훨씬 더 많은 죽음과 더 광범위한 고통을 초래했다.(2)
(1)국내총생산(GDP)의 비교, 유아 사망, 아동 사망, 평균 수명, 문자해독력, 교육, 휴대
용 식수 공급 등은 1980년에서 1990년까지의 유엔 보고서에 근거한 것이다.
(2)경제제재에 의한 고통과 추정된 사망에 대한 적십자사의 보고서와 사담 후세인과 사회
주의 바트당에 의한 정치적인 살해와 투옥에 대한 인권 보고서의 비교.
거짓말 9번: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공에 어떤 특별한 이해관계도 없다.
죠지 부시(대통령):
부시는 언제나 석유자금과 연관을 가졌으며 따라서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재정후원자들
의 몇몇을 통해 국제적인 돈세탁 그룹들과도 연결을 맺고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과 형제
인 살렘 빈 라덴은 알부스토 에너지-죠지 부시가 시작한 텍사스 석유회사의 투자가였다.
부시의 또 다른 재정후원자는, 국제상업신용은행(BCCI=the Bank of Credit and Commerce
International)의 주주들이며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리스트 조직에 재정적 도움을 준 칼
레드 빈 마포쯔도 그중에 하나인 사우디 부호들의 자금을 운영해주고 있었다.
BCCI는 사실상 메델린 마약조직,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사담 후세인과 여러 테
러리스트에 “금융업무”를 해준 국제적인 범죄 조직이었다. 1988년 기소로 시작된 BCCI
의 몰락은 국제적인 스캔들(추문)으로 되었고, 아버지 부시의 백악관 재임 기간 중 워싱
톤의 여러 정치인들도 연루된 사건이었다. 그 은행은 마약조직을 위한 돈세탁, 테러리스
트에 무기 밀매, 그리고 중동의 석유자금을 이용하여 미국 정치인들에 영향을 준 것으로
고발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그 BCCI 스캔들에 깊이 연루된 다른이들로부터 그
의 대통령 취임을 위한 정치자금을 계속 받았다. 그러나, 부시 가문에는, 추문에 얽힌 사
업에 연관된 것이 결코 새로운 일은 아니다: 부시 가문의 재산 중 상당부분은 히틀러의
제3제국에 신용과 필요한 원자재를 공급하여 얻어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적국과의
교역 금지령으로 미국 정부는 현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프레스코트 부시에 의해 운영된 여
러 사업들을 몰수하였다.
- "Bush Family's Dirty Little Secret", Rick Wiles, American Freedom News,
September 2001
www.americanfreedomnews.com/afn_articles/bushsecrets.htm
- "Capital Games: W.'s First Enron Connection: Update on the Bush-Enron Oil Deal",
David Corn, The Nation, 03/04/2002
www.thenation.com/capitalgames/index.mhtml?bid=3&pid=21
- Enron Reps Met With Cheney 6 Times, THE ASSOCIATED PRESS, 1/8/02
www.truthout.org/docs_01/01.09A.Enron.Cheney.htm
- "The BCCI Affair: A Report to the Committee on Foreign Relations (United States
Senate)", Senators John Kerry and Hank Brown, December 1992
www.fas.org/irp/congress/1992_rpt/bcci/07later.htm
딕 체니(부통령):
딕 체니는 에너지, 산업 및 정부에 대해 다양한 용역, 제품, 정비, 기술과 건설공사를 제
공하는 핼리버튼의 전 사장이다. 핼리버튼은 1988년과 1999년에 2,380만불의 판매를 기록
하였다. 물론 두 유럽 지사를 통해 하였으므로 핼리버튼은 직접적으로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를 위반한 것은 아니었다.
그 부문의 회사간부들과 유엔의 비밀기록에 따르면, 핼리버튼은, 체니가 텍사스 달라스
에 본부를 둔 그 회사의 회장 및 사장으로 있는 동안, 이라크에 7,300만불 이상의 석유생
산 장비와 예비 부속품 판매 계약을 맺은 두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1998년 체
니의 직접 감독 하에 핼리버튼은 다른 굴지의 미국 장비제조업체인 잉거솔-란드와의 합작
회사의 두 지사를 통해 이라크에 장비를 수출한 드레써 인더스트리즈를 병합하였다.
핼리버튼은 이라크의 원유 수출이 1997년 40억불에서 2000년 거의 180억불로 증가하도록
도와주었다. 이것은 “식량을 위한 석유”계획에 따른 것이다. 유엔의 기밀 문서들은 핼
리버튼의 계열회사들이 이라크와 광범위한 그리고 때로는 문제의 소지가 많은 거래를 하
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체니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
1) 체니가 핼리버튼을 운영하는 동안 정부와의 계약이 91% 증가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회
사가 정부에 얼마큼이나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2) 체니가 사장으로 있었던 기간에 행해진 “비정상적인 (불법) 회계”와 관련된 최소 액
수가 1억불이나 되었다.
3) 일곱개의 미국의 공식적인 “테러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 중에 두개가 핼리버튼과 계
약을 맺은 것이다.
4) 체니가 의회조사단에 주기를 거부한 에너지 계획 문서의 양은 13,500쪽에 달했다.
5) 에너지 회사들이 부시/체니 대통령 선거운동에 준 돈의 액수는 180만불이나 되었다.
- "Halliburton's Iraq Deals Greater Than Cheney Has Said", Colum Lynch, Washington
Post, 6/23/01
gwbush.com/spots/postpage.html
- "Cheney's Mess Worth A Close Look", Molly Ivins, Common Dreams News Center,
6/10/02
www.commondreams.org/views02/0610-03.htm
- "Who Is Dick Cheney?", Eli Pariser, MoveOn Bulletin, 6/11/02
www.moveon.org/moveonbulletin/bulletin1.html
도날드 럼스펠드(국방장관):
1983년, 럼스펠드는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에게 워싱톤이 다시 외교관계를 맺기 원한다
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1984년 3월, 그는 다시 바그다드에 돌아와 당시 이라크 외무
장관이었던 타리크 아지즈와 만났는데, 이란에 대해 사용되고 있었던 화학무기에 대해서
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1988년, 시카고 트리뷴 신문은 그의 공적 중에 “이라크와의 외교관계 재개”를 들었다.
이런 도움은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었던 때에 주어졌다.
- "The Saddam In Rumsfeld's Closet", Jeremy Scahill, Common Dreams News Center,
8/2/02
www.commondreams.org/views02/08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