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에 대한 기억

배우 이은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배우라 단언한다. 그녀의 데뷔작이라 할만한 작품은 SBS "카이스트"였고, 최근 MBC "불새"로 확실한 스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있어 이은주는 TV탤런트가 아닌 영화배우이다. 난 그녀가 나온 영화들, 그러니까 <송어(1999)>, <오! 수정(2000)>, <번지점프를 하다(2001)>, <연애소설(2002)>, <하얀방(2002)>, <하늘정원(2003)>, <안녕 UFO(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주홍글씨(2004)> 이 모든 영화들을 비디오나 DVD, 디빅이 아닌 극장에서 영화로 관람했다. 난 이은주의 팬이고, 이은주가 나오는 무조건 극장에서 영화로 봐주는 팬이며 그래서, <하늘정원>이나 <안녕 UFO>같은 영화들은 전혀 보고싶은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은주가 나온다는 이유로 극장에서 돈 내고 영화를 봤다. 그래서 가끔은 이은주가 좀 더 영화 출현에 신중함을 보였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1999~2001년까지 1년에 1편씩, 그것도 꽤 괜찮은 영화만 찍어오던 그녀가 2002~2003년에는 다작을 하기 시작했고, 영화 자체도 불만족스러웠다. 그러다 2004년이 되면서 다시 예전에 만족스러웠던 그녀의 연기가 살아났고 또한 작품 자체도 괜찮았다. 그래도 2004년 역시 다작을 했기에 (게다가 "불새"로 TV출현까지 했기에) 당분간 좀 쉬면서 2005년 하반기쯤에 새 영화로 만나길 기대하고 있었다. 한동안 안보이길래 재충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충격적인 자살 소식을 접했다. 그러니까 소식이 기사화된게 2시 30분 정도였는데 내가 마침 인터넷을 하고 있던 상황이...오후 3시였다. 이제 막 올라온 그 기사에 순간 멍했다. 너무 충격적이라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예전 정은임 사망소식도, 장정진 사망소식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게다가 사고사도 아닌 자살이라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충격이었겠지. 그녀의 작품을 거의 보지 않는 사람들도 한 스타배우의 자살이 놀라움이었겠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아니었으리라. 모든 사람들이 말하지만, 그녀의 이미지는 뭔가 알 수 없는 신비함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신비주의를 좋아한다. 난 이은주가 좀 더 그런 이미지를 더 밀어붙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가장 그녀 이미지에 맞는다고 평가받는 <번지점프를 하다>가 그래도 이은주에게 가장 먼저 연상되는 영화라는걸 감안하면, 앞으로 연기 인생이 창창한 그녀에게 굳이 변신이란 필요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아무튼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신비함, 그리고 어떤 어두움. 난 그런게 좋았다. 실제로 그녀가 맡은 역할은 하나같이 어둡고 죽음을 맞이하는 역할이었다. <송어>에서 언니의 애인을 좋아해버리는 캐릭터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 다음세상에서 이루는 역할 그 밖에 <연애소설>, <하늘정원>, <태극기 휘날리며>, <주홍글씨>에서 잇달아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과 잘 어울리는 이미지.. 사람은 이미지대로 자신의 운명을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그런 이미지는 연기이자, 실제 삶의 일부였을지 모를 일이다. 그녀의 자살에 대한 원인이 뭔가에 대한 여러 말들이 있다. 사실 유서로 판단하기엔 애매한 상황이다. <주홍글씨>에서 노출씬에 따른 수치심 때문이라는 가족의 친지의 말도 들리고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녀가 자살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노출의 강도로 따지면야 <오! 수정>이 더 심했다. 게다가 이은주가 노출 때문에 몸을 사린다거나 하는 배우도 아니지 않았던가 물론 알게 모르게 그녀가 그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단지 티를 내지 않았을수도 있고~ 하지만, 내가 바라본 이은주의 모습에선 그게 자살의 원인은 아닌거 같다. 그냥 뭐 여러가지가 복합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러저런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심해졌는데 그게 너무나 심각한 상황으로 번져버린 것. 불면증에도 시달렸다는데, 가족이 조금 더 관심 가져주었다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2002년 광주국제영화제 개막식 때 개막작품으로 선정된 <하얀 방> 상영 때 이은주가 왔었는데, 그 때 이은주가 내 옆을 살짝 스쳐 지나갔다. 그 때 바로 앞에서 보았던 이은주의 모습. TV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러면서도 훨씬 세련되고 훨씬 도도하면서 강한 카리스마에 너무나 멋진 모습이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런 그녀가 이젠 비디오나 디비디로밖에 만날 수 없다는게 참 비통하다. 이젠 그녀의 명복을 빌 수 밖에 없다니...참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