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의 국정수행 스타일중 한 가지 특색을 꼽으라면 현장주의를 들 수 있다. 지하철 건설 공사장이 붕괴되었을 때 바로 현장으로 나가고 한해(旱해) 또는 수해지를 시찰 하거나 끊임없이 군부대와 지방을 순시해왔던 지난시절의 움직임이 단적으로 현장중시 철학을 말해준다. 각하는 왜 (현장에 있는 청와대) 또는 (움직이는 청와대)라는 말을 들을 만큼 현장에 자주 가는 것일까. 그것은 “청와대는 국정의 현장에 있어야 된다.”는 각하의 신념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관계관의 설명이다.
각하는 취임 초 “대통령 임기 7년은 안일하게 보내려면 퍽 긴 기간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그 직을 능동적으로 수행하자면 결코 길지 않은 기간”이라고 밝힌바있다. 이때의 “능동적인 수행“은 (보고받은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라는 각하의 생활신조를 지키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서인지 각하는 전방. 시골, 서울시내 곳곳 할 것 없이 자주 찾고 있었다. 이 같은 스타일이 정착됨에 따라 각하는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현장에 직접 몸을 두고 확인행정과 현장지도를 열심히 하는 국가 원수의 이미지를 국민 속에 남기고 있다.
“농약의 종류가 다양하고 이름도 어려워 농민을 불편하게 하거나 혼동할 초래가 있다. 농약 종류를 단순화하고 명칭도 쉬운 우리말로 표시해서 농민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각하의 이 같은 말은 농촌실정을 모르는 도시민에게는 감이 잡히지 않는 이야기 일 지 모른다. 각하는 현장순시에서 내린 지시가 오히려 왜곡되는 역작용도 빠뜨리지 않는다. ”국민들이 알기 쉬운 용어를 쓰라고 했더니(좌회전). (우회전).을 (왼돌이). (오른돌이))등 더 어려운 말로 쓰는 폐단이 있다고 일선공무원들의 과잉반응을 나무란 것이 그런 예에 속한다.
각하의 각종 순시 때는 물론 기자들도 수행 취재한다. 각하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자들의 취재대상이기 때문이다. 각하의 이러한 현장주의에 따라 청와대기자들도 과거와는 판이하게 바빠졌다. 불시시찰일 경우 현장을 처음부터 취재할 수 있는것은 대단히 어렵다. 뒤늦게 도착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현장 확인의 첫 테이프는 80년9월4일. 제11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진 뒤 불과 사흘 뒤에 끊었다. 이 무렵 영산강 지역이 수해를 입고 있었다. 각하는 신임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주기가 바쁘게 청와대를 출발, 전북전주, 완주, 전남광주를 먼저 둘러보고 영산포 읍에 직접 내려갔다. 여기에서 수재민들을 일일이 격려하고 도청, 군청의 관계자들에게 복구대책 지원을 지시한 것이 그 1호였다.
그로부터 계속되고 있는 각하의 현장 확인 노정은(가장 부지런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실천하는 뜻을 담고 있다. 각하는 지방순시에서 밝혔듯이 “공무원들은 상하를 막론하고 국민 속에 뛰어들어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공복윤리를 확립해야 한다.”는 신조이다. 각하의 현장 확인은 상시적인 의미에서의 (가야할 곳)과(위험지역)이란 구별이 없는 것 같다. 취임 초 강원도 탄광지대를 찾았을 때는 1천7백 미터의 지하 갱 속에 광부용 인차를 타고 들어가 채탄작업으로 얼굴과 손이 시커먼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는 한편 채탄실태를 살피었다.
‘보통관리들도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이런 곳에 국가원수께서 들어오시다니...’라며 채탄 작업 중이던 광부들은 놀라움 속에 반가와 했다. 어느 곳이나 찾아가 국정 현장을 살피겠다는 각하의 (파격)에 우선은 놀란 것이다. 과거에는 예상할 수 없던 위험지역까지 직접 찾아보는 각하의 스타일은 종래의 관점에서 보면 (파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서울 남대문 근처 대한화재 해상보험 빌딩에서 폭발화재사고가 났을 때에도 각하는 현장을 찾았다는 점으로도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