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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쳐 주소서(시 90:12-17)
할렐루야! 하나님이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019년, 한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올 한해, 수고하셨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참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며, 기뻐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고,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다고,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다 쏟아부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헛된 일이었다고 한다면, 그 모든 수고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헛된 곳에, 우리의 마음을 쏟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떻게 살아왔든, 지난 한 해 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주님의 말씀처럼, 오늘 예배를 통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을 주님 앞에 다 내려놓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시편 128:1-2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껏,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며 살아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주님을 예배하며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딤후 4:7)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들도 그런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을 남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는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오늘 읽은 시편 90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기도문입니다.
애굽 왕 바로의 멍에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너, 황량한 광야에 들어와, 생활한 지, 40년, 이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가기 전, 요단 강 건너편, 모압 평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서, 이 시편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넜던 수많은 사람들, 지금 그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 중에,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모세 외에는 광야 40년을 지나는 어간에, 모두 다 쓰러져 가지 않았습니까?
모세는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5절)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10절)라고 말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했던 광야 40년이, 신속히 지나가, 잠깐 자는 것 같이, 일장춘몽이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일장춘몽이란 인생의 영화는 한 바탕의 봄 꿈과 같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금방 들어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생각대로 잘 되어지지 않았습니다.
모세도, 단 한번의 실수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실망할 수 있고, 아쉬워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일 수 있지만, 모세는 전혀 실망하지 않고, 아쉬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담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한번 밟아 보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입니다.”라고 하나님께 떼를 쓸법한데, 모세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시편 90편은 죽음을 앞둔 모세가, 그가 살아온, 120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모세는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시 90:3-4)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살아온 120년의 생애가, 밤의 한 순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아멘.
“사람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러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은 늘 이러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어떤 결론을 내든지, 한 마디로,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딘가에서 와서, 여기에 잠시 머물다가, 어디론가 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1-2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왔다 가야 하는 피조물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 인생들은 티끌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티끌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고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7)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기 전,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세는 인생의 덧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가 세상에 사는 날이 얼마나 짧은가를 알게 하소서. 짧디짧은 인생이라 할지라도, 제대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이제, 한 해를 마감해야 할 때가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무리를 잘 해야 합니다. 끝이 좋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끝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므낫세 왕입니다.
므낫세는 열두 살에 왕위에 올라, 오십 오년 동안, 남유다를 다스렸습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 왕이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겼습니다.
또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습니다.
므낫세 왕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것이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앗수르로 하여금, 므낫세 왕을 치게 하셨습니다.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므낫세 왕은 그제서야,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셨습니다.
므낫세는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 므낫세는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제단들을 다 성 밖에 던지고,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 드리고,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명령하였습니다.(대하 33:1-20)
므낫세 왕은 처음에는 좋지 않았으나, 끝에는 좋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고, 예배함으로, 처음보다는 나중이 훨씬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4-1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아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모세는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였고,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수고와 슬픔”뿐이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찬 인생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들 요셉을 만나려고, 애굽에 내려간 야곱도, 바로 왕에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가장 지혜롭고, 가장 화려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 왕도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2:22-23)라고 말했습니다.
열심히 애쓰고 수고했지만, 결론은 슬픔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참으로 기쁘고 즐거웠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수고와 슬픔뿐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찬 인생이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 일평생 근심하고, 수고하고, 슬펐다. 밤에도 쉬지 못하고, 일만 했다”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내 인생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찬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어떤 일을 만나고, 어떤 환경 속에 처한다 할지라도, 늘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세는 아침부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구했습니다.
인자하심이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아침이면, 어둔 밤의 고통과 저주와 슬픔이 다 떠나고, 찬란한 태양이 비추는 것처럼, 소망이 넘쳐나게 하시고, 기쁨이 있게 하시고, 하나님의 즐거움이 나에게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기쁨을 얻지 못하면, 그 어디 가서, 기쁨을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거스틴은 “오 하나님, 주님 안에서 참 쉼을 얻기까지, 제 마음은 그 어디서도 만족을 얻지 못하였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94:19,시 4:7)라고 고백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 있을 때, 생명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모세는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면서,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살기 보다는 매일 매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함으로, 남은 생애,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아멘.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셔서,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이 잘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왜 수고합니까? 왜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을 합니까?
지금보다는 내일이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행복하고, 더 풍요롭기를 바라기 때문에, 애를 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보다 나은 내일이 없다면, 애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이 잘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다”(창 24:1)고 했습니다.
요셉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창 39:23)고 했습니다.
다윗을 보면,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삼하 8:6)고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왕하 18:7)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아브라함, 요셉, 다윗, 히스기야처럼, 범사에 형통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세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시 말해, 모세는 “주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있어야, 우리들이 하는 일이 잘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붙들어 주셔야 합니다.
주님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가정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자녀들을 붙들어 주시고, 우리의 직장과 사업장을 붙들어 주셔야 합니다.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는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스 7:9)고 말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머나먼 길을 오는 동안, 하나님이 도우셔서, 아무 탈 없이 잘 오게 되었다고 하는 고백입니다.
느헤미야도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셔서, 바사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벽을 건축할 수 있었다”(느 2:18)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잘 살 수 있습니다.
역대하 17:5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우상을 다 제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백성들을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 왕도 부귀와 영광이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견고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은총을 베풀어 주셔야,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성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도움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도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암 케리는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는 말을 항상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자녀들을 향하여, 직장과 사업장을 향하여, 교회를 향하여, 베풀어 주실 위대한 일을 기대해야 합니다.
어느 덧, 2019년이 다 지나왔습니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나 온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후회하기보다는 다가올 날들을 생각하면서, 이제는 후회없는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819)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의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아야 합니다.
마지막 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언제나, 무슨 일이 있든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처음보다는 끝이 더 좋은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음으로, 기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므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우리 손으로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손으로 우리 한마음교회를 붙들어 주셔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