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야곱과 에서가 그들의 삶의 태도로 말미암아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을 지난주 설교를 통해 들어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야곱으로 살수도 있고 에서로도 살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비참한 운명의 에서가 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축복의 사람 야곱이 되길 원하십니까?
하느님께 붙잡힘으로 축복의 사람 야곱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다시 야곱을 만나야 합니다.
비겁하고 또 조금은 야비하고 자기 밖에 모르며
또 때로는 형제와 부모도 속인 야곱이지만,
어쩌면 저와 여러분들이 그런 야곱을 닮았기에
야곱을 찾아오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야곱은 그의 형 에서의 눈이 무서워
고향을 떠나 그를 피해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만 하는 비참한 운명의 야곱 ....을 보면서
우리는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의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하느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떠났던 사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아브라함과 오늘 쫓기는 자 야곱의 운명은 사뭇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주신 그의 비젼을 품고 하란을 떠나
하느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나아갔으나
야곱은 비젼이 아닌 두려움을 품고
아브라함이 떠나왔던 하란으로 쫓겨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처량한 신세가 된 야곱이 하란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밤이 되어 돌을 베게 삼아 누워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에 땅에서 하늘에 닿는 층계가 있고 그 층계를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는데, 야훼께서 그의 옆에 나타나시어 "나는 야훼,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요, 네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이다. 나는 네가 지금 누어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리라. 네 후손은 땅의 티끌만큼 불어나서 동서남북으로 널리 퍼질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종족이 너와 네 후손의 덕을 입을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다가 기어이 이리로 다시 데려 오리라.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 줄 때까지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라고 축복하십니다.
야곱을 찾아오신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이라 말합니다.
그 말은 그들을 축복하고 인도하신 하느님이라는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 야곱의 인생에 은혜를 베푸시겠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밤은 야곱의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고난의 시간일 것입니다.
그는 이제껏 아버지의 집에서 풍족한 삶을 누림으로
사막에서 밤을 보내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사막의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광야에서
밤을 지내며 추위에 떨게 된 것입니다.
광야의 밤은 그에게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외로움만이 아닌 단절감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기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루스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루스'라는 이름은 "떨어져 나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야곱이 이삭과 에서와 분리되면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다.
벧엘의 하느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며 내가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꿈에서 깬 야곱은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서원을 하면서
'루스'를 '벧엘' 즉 하느님의 집이라 명명합니다.
그때 야곱이 말합니다.
"만일 제가 이 길을 가는 동안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하여 주시고 저를 지켜 주셔서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고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만 하여 주신다면, 저는 야훼님을 제 하느님을 모시고, 제가 세운 석상을 하느님의 집으로 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저에게 무엇을 주시든지 그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야곱의 인생이 하느님을 청할만한 인생입니까? 아니지요!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를 찾아오십니다.
야곱이 하느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은 어떤 인생입니까?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하느님의 은혜 가운데 거할만한 인생입니까?
이 세상 천지에 그런 인생이 있다면 한번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은혜 없이 살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하느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만,
하느님께서 은혜로 돌보아 주시는 인생이지요.
정말 야곱이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야곱이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가 어디입니까?
그가 성공 가운데 하느님을 만납니까?
아닙니다.
형에게 쫓기는 신세로 광야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돌베게를 베고 잘 때 만납니다.
그가 절망적인 위기의 상태에 놓여 있을 때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이란 인물은 자신의 꾀만 믿는 사람인 듯 합니다.
비록 그가 하느님을 알았지만, 하느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믿어 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벧엘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면서 그가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늘문이 열리는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절망중에라도 하느님을 만나면 하늘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을 만난 야곱은
지난 밤 두려움에 떨던 야곱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느님을 만난 후 그는 변화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슬픔과 절망의 길을 걷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가지고 이젠 하란을 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의 축복을 믿고 서원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베델에서 하느님의 전을 세우고는
하느님께서 무엇을 주시든지
그 십분의 일을 하느님께 반드시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어제의 야곱은 소망이 없었어나
하느님을 만난 야곱은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비록 그에게 아무것도 없는, 쫓기는 신세였지만
하느님의 축복을 믿음으로 하느님께 십일조의 서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런데, 여기서 야곱은 아직도 야곱의 삶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야곱의 신앙을 본 받으시라 말씀 드릴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생떼를 쓰면서까지 그가 하느님의 복을 구하는 것은
그가 천상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는 야곱처럼 그렇게 라도 구하라 하십니다.
하느님께 여러분의 구할 바를 간절히 구하시기 바랍니다.
벧엘에서 하느님을 만난 야곱이
하느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면 하느님께 자기의 것을 드리겠다 말하는 것은
그가 하느님을 믿는 신앙 가운데 이제 살아가겠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과 거래를 하는 야곱과 같을 지라도
하느님과 함께 하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감사하며
하느님께 십의 일은 드리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라헬을 만나고 또 라반을 만나 서로가 골육인 것을 확인합니다.
그리고는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목동으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가 몇 살쯤 되었을까요?
아니 연세가 얼마쯤 되었을까요?
그때 야곱은 일흔이 넘었을 때였습니다.
그런 야곱은 형 에서가 장가들고 아이 낳을 때까지
터벅머리 총각이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소망을 품고 꿈을 가지고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 꿈이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자손의 복을 주시겠다 하셨기에
나이 70에 라헬을 얻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그는 7년을 7일같이 보내고 있습니다.
야곱에게 라헬은 그가 7년 종살이를 해서 얻은 기쁨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7년간 종살이를 해서 얻은 라헬과 첫날밤을 보내고는 대노했습니다.
그 밤에 라헬이라고 믿었던 여인이 라헬이 아닌 그의 언니 레아였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라반을 찾아가서
어찌하여 저를 속이십니까? 하고 콘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는 라반에게 속은 것을 안 순간
자신이 형 에서를 속인 일과 아버지를 속인 일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는 지난 7년은 레아를 얻은 값으로 치르고
다시 라헬을 위해 7년을 일해야만 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종살이를 하며 14년을 보낸 후는 그가 90세가 넘던 해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자손을 축복해 주신 것처럼 그는 레아와 라헬을 통해 11명의 자손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라반의 집에서 6년을 더 일을 하면서 품삯을 받을 것을 예상하지만
라반에게 10번이나 속고 맙니다.
그때, 그는 라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속이는 자 야곱은 또다시 그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아버지를 속이듯 형 에서를 속이듯
장인 라반을 속이고 그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속이는 자 야곱은 변화된 듯 한데, 아직도 변하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야곱은 라반과 그의 자손들에게
결국 그는 미움을 사고 하란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는 도망치듯 떠납니다.
야곱의 인생은 나그네의 인생입니다.
떠돌이 야곱이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도 야곱을 닮아 나그네의 인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란을 떠나왔지만, 실제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집은 에서의 눈이 무섭고 하란은 라반의 눈이 무서웠습니다.
그는 20년 동안 종살이 하던 하란을 떠나면서 하느님의 큰 축복을 받으며 떠났지만,
여전히 그는 변하지 못한 야곱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을 그가 신뢰하지 못했지 때문입니다.
야곱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야곱으로 살아갑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하느님을 믿기보다는 오로지 자신만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얼마만큼 믿고 있습니까?
야곱처럼 이것저것 재어보면서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야곱처럼 하느님과 거래는 하지 않습니까?
야곱은 하느님의 집 벧엘에서 하느님을 만나고도
자기의 탐욕을 다 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는 아직 야곱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야곱이 하란을 떠날 수밖에 없는 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고대 최고의 문명과 문화를 가진 하란....
아브라함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던 ....하란
그리고 리브가와 야곱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하란....
우리는 하란을 언제나 동경하며 떠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벧엘의 하느님을 경험했다면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었다면
언제든 하란은 떠나야 할 땅입니다.
벧엘의 하느님은
함께 하시는 하느님, 감찰하시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야곱에게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너에게 복을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야곱은
언제나 하느님은 뒷전입니다.
오로지, 그의 생각은
있을지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의 집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하늘이 열려있는 사닥다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이 저와 여러분이 거할 집입니다.
야곱을 지키시고
야곱과 함께 하시며
야곱을 축복하시는 하느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지키시고 함께 하시며 축복하여 주시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