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승의 병통 / 석용산 스님
스님들 사이 오가는 은어가 있다.
예를 들면 술을 곡식으로 빚은 차라 하여 곡차,
화투놀이를 경을 보는 것에 비유하여 화엄경 법회를 본다 하고,
소나 돼지고기를 도끼로 다듬은 나물이라 하여
도끼부(斧) 도끼월(鉞) 나물채(菜) 해서 부월채라 하고,
닭고기를 울타리 뚫고 다니는 나물이라 하여
뚫을천(穿) 울타리(籬) 나물채(菜) 해서 천리채라 부른다.
또 열심히 수행하여 신통을 얻었다고 당당히 말하는데
알고 보면 복통, 요통 등을 일컬음이니 웃지 못 할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은어가 아니라
젊은 청춘과 정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바친 결과가
신통이 아닌 병통으로 표현되는 승려들의 아픔,
특히 포교승의 아픈 편린을 짚어 보고 싶은 것이다.
구법망구 란 몸을 버려 법을 구한다는 뜻으로
전법구도를 위해 몸을 버릴 각오와 그 정신을 요구하는 말이다.
식도락을 넘어 몸에 좋다면, 구더기마저도 꿀꺽해 버리는 요즘 세상에,
몸이 지탱할 만큼만 음식을 먹어야 하는 절집의 식생활이
다른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으나,
이 글을 쓰는 승려마저도 하루에 두 끼를 제대로 먹기 힘든 시간을
쪼개 쓰는 포교승이고 보니, 오장에 영양이 충분히 공급될 리 없고
산빛 푸른 눈을 지니기엔 무리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겨우 포교생활 십여 년 남짓 되었으나
선배스님 중간이 반쪽, 폐가 반쪽, 장도 반쪽,
위도 반쪽씩 밖에 없다는 포교승의 병통 아니 신통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포교승이 많은 병을 지니게 됨은
비단 식생활 문제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포교승이 되려면 양쪽 귀를 통하도록 뚫어야 한다고 이른다.
오른쪽 귀로 들은 소린 왼쪽 귀로,
왼쪽 귀로 들은 소린 오른쪽으로 흘려 보내야 하며,
오장육부에는 스폰지나 철판을 입혀 충격을 완화 시켜야 한다는
웃지 못 할 아픈 현실이 되고 보니,
오장육부는 썩고 제대로 휴식 못하는 몸뚱이는
많은 충격과 고통을 감내하기에 숱한 병을 지니게 되고 만다.
도통했다는 말이 신통 아닌, 온갖 병을 얻은
병통의 의미로 쓰여 지고 있음을 이해하리라.
경우에 따라 곡차도 마셔야 하고 천리채, 부월채도 뜯어야 하는
포교승의 일상에서 자신을 지키며 전법하기란
어려움 중에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경허 스님이나 진묵 스님 정도의 도력을 지녔다면,
술독에 빠져서 라도 자비방광을 하겠지만,
우리 같은 작은 포교승은 막행막식하지 않는 것이
포교의 원칙 중 하나라 믿기에
영양 섭취의 부족과 휴식하지 못하고 받아야 하는
인간적인 스트레스는 천리통, 천안통 등 6신통 대신
복통, 요통, 등 6병통의 아픈 병을 지니게 됨은
어쩔 수 없는 또 하나의 아픔이 된다.
말법시대 오탁악세에는 악법 비구와 계를 파한 승려가 나온다고
지장 십륜경에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계를 파한 승려라도 삼보의 하나로 귀의하되,
직접 가르침은 받지 말며,
또 속가법으로 치죄하거나 단죄하지 말도록 이르고 있다.
그 이유는 소가 죽었어도 남긴 우황은 사람을 살리고,
사슴이 죽었어도 사향을 남기어 중생을 구제하듯,
계를 파한 승려는 이미 죽은 승려이지만
그 모습은 부처님의 자비를 생각케 하고
귀의 하고픈 생각 등을 일으키게 하는 열 가지 공덕이 있으니,
멀리서 귀의하라 이른다.
토끼뿔 같은 명예와 치부 때문에
수행자의 본분마저 잃어 버리는 승려가 있는가 하면,
몸을 버려 법을 펴는 아름다운 스님들이 계시니,
너무 걱정할 일만도 아닐 것이다.
모든 포교승이 복통. 두통 온갖 병통을 다 지녔더라도
전법구도를 위해 병통을 얻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
신라 천 년의 불교 장엄을 다시 보게 되리라!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중에서
-----------
* 석용산 스님
지장불교 근본도량인 대구 만촌동의 공덕원 회주 석용산(56) 스님
충남 논산 출신으로 71년 해인사에서 수행을 시작한
석 스님은 80∼90년대에 대구 공덕원과
경북 경산의 용성바라밀학교, 미국 버지니아 등지에
지장 선양회를 설립하는 등 활발한 포교활동을 통해
불교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또 수필집 ‘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와
‘미우면 미운대로 고우면 고운대로’ 등의 시집 등을 남기는 등
문학을 통한 포교활동에도 열심이었다.
[출처] 나홀로 절로 | 작성자 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