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1=지난해 K3리그 초대 우승팀 서울 유나이티드는 지난달 27일 아산 유나이티드와 리그 9라운드 홈경기를 대치유수지 체육공원에서 치르기로 했지만 경기 전 그라운드의 조명시설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부랴부랴 수소문해 350만원을 들여 영화 촬영용 발전기 차량을 빌렸지만 결국 이날 경기는 조명 시설 미비로 연기됐다. '피 같은 돈'만 허공에 날린 셈이었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서울 유나이티드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었다.
#장면2=올해 K3리그에 입성한 창원 유나이티드FC가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결국 지난 8월 후기리그 초반에 해체됐다. 창원은 운영 자금 압박 때문에 팀 해체 직전 단 8명의 선수단이 원정 경기에 나서 8대11로 경기를 치른 적도 있었다. 16개팀으로 시작한 올시즌 K3리그는 현재 15개팀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올 연말을 고비로 1~2개팀이 더 해체될 것이라는 소문이 K3리그 내에 파다하다.
최근 국가대표팀의 박지성도 동의했듯이 요즘 한국축구는 위기를 맞고 있고 어렵게 이를 헤쳐나가려 하고 있다. 비단 대표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대표팀의 위기는 나무로 비유하자면 열매나 가지가 세차게 흔들리는 데 빗댈 수 있다. 하지만 한국축구 문화의 뿌리에 비유되는 K3리그가 어려움을 겪는다면 더 큰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다.
지난해 '생활축구와 엘리트 축구의 만남'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탄생한 아마추어 축구대회 K3리그가 두 번째 시즌을 치르며 몸살을 앓고 있다. '풀뿌리 축구문화'의 근간을 이루겠다는 구성원들의 넘치는 열정으로 지탱되고 있지만 아마추어와 프로의 모호한 경계에서 오는 혼란과 갈등이 시즌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
외형적인 성장의 그늘 속에서 한계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흔들리는 K3리그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리그 규모 확대로 재정 부담 가중
K3리그의 가장 큰 고민은 구단들의 재정 부담이다. 경기 수가 대폭 늘어나고 원정 비용이 증가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지난해 10개팀 체제로 시범 운영될 당시 K3리그 팀당 평균 예산 규모는 1억 4800만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16개팀 체제로 리그가 확대되면서 재정 규모가 2배 이상 증가했다. 올시즌 K3리그 구단 평균 예산은 3억 3700만원, 상위권 팀의 경우 5억 6200만원에 이른다.
K3리그에서 가장 활발한 마케팅 활동으로 정평이 난 서울 유나이티드의 원호인 단장은 최근 "정말 구단 운영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지방 구단 중에는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해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팀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연결고리가 없는 구단들은 증가하는 운영비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K3리그 팀이라 기업들도 후원에 적극적이지 않다.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용인시민축구단의 홍이표 사무국장은 "차차 구단 사정이 나아지리라는 믿음은 있다. 하지만 올시즌은 참 힘들다. 선수들에게 10만원의 출전 수당을 제때 지급하지 못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무관심 해소 위한 고민 절실
'대중의 무관심'도 K3리그 팀들을 외롭게 하는 요소. 청구성심병원의 소상식 원장은 사재를 털어 서울 파발FC 운영비를 대부분 부담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팀을 운영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에겐 K3리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재정적 부담보다 더 큰 고통이다. 소 원장은 "K3리그는 지역 축구의 활성화, 축구인들의 취업 기회 확대 등이 목적이다. 하지만 일반인 중에는 리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다. 무관심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는 대한축구협회나 축구계의 노력이 매우 아쉽다. K3리그의 활성화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지도자 자질도 문제
K3리그 선수들의 기량이 나날이 향상되는데 반해 일부 구단에서는 지도자들의 자질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조기축구회' 수준의 선수들도 눈에 띄었지만 올해 K3리그는 K리그나, 내셔널리그, 심지어 국가대표 출신 선수까지 등장하며 수준이 높아졌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지도자와 겸직하는 K3리그 지도자들 중 극소수는 선수들의 특성에 대한 고려 없이 '스파르타식 훈련'과 체벌로 선수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이따금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K3리그는 발전한다'
K3리그 운영위원회의 진형섭 부장은 "국내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 팀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건실한 팀이 살아남고 기반을 다져가는 과정에 있다. 시행착오도 있지만 K3리그 자체는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K3리그 팀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튼실한 모기업을 등에 업은 화성신우전자, 700여명에 가까운 유소년클럽 회원들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전주온고을FC, 경주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경주시민축구단, 대학 축구부와 연계돼 있는 광주광산FC, 전주EM 등은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양주시민축구단, 부천FC 등도 어느 정도 리그에 정착했다는 평가다. 용인시민축구단, 남양주 시민축구단도 지자체와 연계를 모색하며 끊임없이 '실뿌리 축구'의 활로를 찾고 있다. 특히 경주의 경우 홈경기에 1000여명 가까이 관중이 몰리고, 비가 올 때도 700~800명의 팬이 경기장을 찾는다는 게 K3위원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해체 위기에 내몰린 K3리그 팀도 있지만 다음 시즌 K3리그 참가를 준비 중인 팀도 있다. 이천, 청주 등 5개 팀은 다음 시즌 K3리그 참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진 부장은 "다음 시즌에는 구단 비용 절감 차원에서 권역별 리그를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리그의 건전성과 질을 높이기 위해 회원 입회 자격 강화 및 K3지도자 자격 요건 강화 등을 모색 중이다"고 말했다.
이지석기자 monami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