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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계곡인 집다리골을 품고 있는 화악산 촛대봉
화악산 개요
화악산은 경기 5악에 포함된 산으로서 경기도의 최고봉(1,468m)이며, 정상은 군사시설물로 인해 등산객들의 접근이 금지되고 있어 일반적으로 중봉(1,450m)으로 오르게 됩니다. 정상을 중심으로 서남쪽에 중봉, 동쪽에는 매봉(1,436m, 응봉)이 위치해 있어 이들을 삼형제봉이라 부르며, 여기서 발원하는 물은 화악천을 이루어 가평천의 주천이 되어 북한강으로 흘러듭니다.
중봉의 남쪽으로는 애기봉(1,055m)과 수암산(796m)으로 이어지며, 응봉의 남쪽에는 오늘의 산행대상지인 촛대봉(1,125)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화악산에서 응봉을 거처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道界)를 이루는 산맥이며, 촛대봉의 동쪽에는 청정계곡인 집다리골이 흐르고 있습니다.
홍적고개∼촛대봉
40명의 등산객을 태운 관광버스(뫼솔산악회 주관)가 75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가평군 북면에서 341번 지방도를 이용해 북쪽으로 달린 후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춘천시의 경계인 홍적고개에 도착합니다(09:23).
홍적고개는 화악산 응봉에서 촛대봉을 거쳐 내려오면서 다소 가라앉았던 산줄기가 남으로 몽덕산∼가덕산∼북배산∼계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길목에 위치한 고개입니다.
길섶에는 남쪽으로 몽덕산(660m)과 가덕산(858m) 등산로를 알리는 안내도가 세워져 있지만 북쪽의 촛대봉으로 가는 등산로에는 이정표만 서 있습니다.
들머리부터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사람의 키보다도 더 큰 억새와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에 잡초가 휘휘 감기고 스틱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등산로에는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아 찌는 듯한 무더위가 온몸을 감쌉니다.
잡풀이 무성한 등산로
다행히 안부에 도착하면 잠시 동안 시원한 바람이 살살 불어와 콧속을 간질이다가도 다시 계속되는 오르막길에서는 한증막으로 변하고 맙니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홍적고개너머 몽덕산줄기가 안개에 쌓여 있고 가야할 촛대봉 능선도 안개가 넘나들어 꼭 신선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뒤돌아본 몽덕산 방향의 조망
안개낀 가야할 촛대봉 능선
산행을 시작한지 약 1시간 30분 후 바위봉에 도착할 때까지 지루한 억새능선길이 계속되어 사람들을 지치게 합니다(11:00). 사실 억새는 여름이 아니라 은백색으로 변한 가을에 보아야 그 정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지만 전국적으로 유명한 억새 군락지가 많으니 이곳에 올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입니다.
바위봉을 지나 정자나무처럼 생긴 큰 나무아래에서 몇 명의 등산객이 모여 휴식을 취합니다. 이제부터 등산로는 전형적인 산길로 변했지만 바람이 없는 곳에서는 기진맥진합니다. 삼거리에 도착하니 홍적고개 4.4km, 촛대봉 1.4km, 화악리 2.9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11:41). 이곳에서 몇 차례 더 오르내림을 반복하자 드디어 화악산 촛대봉 정상입니다(12:29).
바위봉 지나 정자나무 쉬터
화악리 오름길과 만나는 삼거리 이정표
화악산 촛대봉 정상
정상(해발 1,125m)에는 가평군에서 세운 정상 표석이 늠름하게 서 있는 데 주변은 짙은 안개로 인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상 옆에 북쪽으로는 등산로가 없음을 알리는 커다란 안내판이 걸려 있지만 산악회 측에서는 북쪽으로 더 진행하면 춘천시에서 세운 또 하나의 정상표석이 있으며 이를 통과하여 응봉 아래 군부대의 출입금지를 알리는 지점까지 산행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가평군에서 설치한 촛대봉 정상표석
강원도에서 세운 등산안내문
촛대봉∼군부대시설
촛대봉에서 제법 험한 길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서자 이번에는 매우 평탄한 등산로가 이어지는 데 앞쪽에서 선두 팀이 뒤돌아오며 응봉 아래 군부대 출입금지 지역에서부터는 등산로가 없다고 합니다.
P산악회장은 그럴 리가 없고 약 15분 정도 더 가면 정상표석이 하나 더 있다고 하면서 한 등산전문가에게 전화로 자문을 구하더니 선두 팀이 오던 길로 들어갑니다. 선두대장도 산행에는 베테랑인데 이 사람이 찾지 못한 길을 산악회장이 간다고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 사람들은 웅성거립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산악회장을 따라 나서고 일부의 사람들은 뒤에 남습니다. 필자도 고민하다가 산악회장이 갔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산악회 측에서 나누어 준 산행개념도에 의하면 북쪽의 응봉방향으로 조금만 더 진행하다가 오른쪽의 집다리골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곧 나타나야 하는 데 북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끝없이 계속됩니다. 다만 등산로는 매우 또렷한 것이 과거에는 산행을 허용하다가 나중에 금지시킨 것이 분명합니다.
이곳의 등산로는 오르내림도 거의 없어 흡사 초원지대를 걷는 기분입니다.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억새지대를 걸어오면서 묻었던 땀의 찌꺼기를 날려보낼 지경이며, 사방에서 울어대는 매미소리만이 숲 속의 정적을 깨뜨릴 뿐입니다. 촛대봉에서 출발한지 무려 1시간 20분을 지나서야 응봉으로 가는 길목에 군부대에서 설치한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 도착합니다. 사람들은 삼삼오오로 모여 앉아 식사를 하거나 쉬고 있습니다(13:50).
청정계곡 집다리골
이들에 의하면 선두는 오른쪽으로 내려갔는데 내려간지 약 20분이 지나도 되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제대로 내려갔을 것이라고 합니다. 필자도 서너 명의 등산객과 함께 선두의 족적(足跡)을 따라 하산을 시도합니다. 흙으로 된 매우 가파른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데 선두의 발자취는 제법 선명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닌 흔적은 보이지 않아 이른바 알바를 하는 중입니다.
길없는 비탈면을 내려가는 길의 큰 나무
선두가 진행방향을 군데군데 표시해 두었지만 한 눈을 팔면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사람의 발길이 한 번도 닿지 않았을 것 같은 계곡을 만나 이끼가 낀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다시 이리저리 발자국표시가 이어집니다. 계곡의 물은 매우 찬데 점점 고도를 낮춤에 따라 계곡의 폭도 커지고 수량도 많아지며 어떤 곳에서는 우렁찬 폭포소리가 귓전을 때리기도 합니다.
이끼로 덥힌 계곡의 상류
깨끗한 물
시원한 폭포
맑은 공기
옆으로 지나가면서 규모가 제법 큰 폭포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노력해 보지만 구도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청정계곡인 집다리골의 상류지점부터 거꾸로 내려온 것입니다. 물소리와 사람소리가 동시에 들려오는 곳에 이르니 임도가 지나가는 다리 옆인데 피로를 풀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으로서 먼저 도착한 선두그룹이 모여 땀을 씻고 있습니다(14:55).
물의 양이 점점 많아짐
설악산 천불동 계곡의 오련폭포같은 모습
휴식을 취한 곳의 폭포
집다리골 자연휴양림
이곳에 도착하는 등산객들은 누구나 배낭을 내려놓고 탁족(濯足)을 합니다. 임도를 만났으니 이제부터는 편안하게 하산하리라고 예상합니다. 약 20분간을 푹 쉬다가 다시 배낭을 들쳐 메고 오른쪽 방향의 임도를 따라 갑니다. 하산하려면 고도가 낮아져야 하지만 거꾸로 점점 올라가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한 구비를 돌아가자 왼쪽의 산 속으로 다시 들어가라는 이정표가 놓여져 있습니다.
가파른 산길을 한참동안 이리저리 돌아 내려오자 드디어 양쪽의 계곡물이 합수하는 지점에 이릅니다(15:50). 계곡의 가운데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는 데 아마도 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가 봅니다.
임도변에 자라고 있는 야생화
제법 큰 폭포
두 계곡이 합수되는 지점의 콘크리트 구조물
이제부터는 계곡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하산길이 이어지는 데 암반위로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맑은 물이 흐르며 중간 중간에 폭포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계곡에 정신을 빼앗길 지경입니다.
텐트를 치고 피서를 즐기는 한 가족을 뒤로하자 비로소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계곡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두 개의 아름다운 다리 밑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인파가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도로를 따라 가면서 찍은 폭포의 모습
물놀이를 즐기는 피서객들
첫번째 다리(흔들리는 다리)
두번째 다리 밑의 피서객
생수가 콸콸 쏟아지는 샘터에서 물을 받아 배낭에 넣은 후 승용차가 다니는 길을 따라 계속 걸어도 소형주차장만 있을 뿐 대형버스주차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산행을 다니며 많은 계곡을 보아왔지만 여기만큼 깨끗하고 또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면 정말로 좋은 피서가 될 것입니다. 도로주변에는 자연휴양림답게 아담한 규모의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줄지어 있어 피서객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큰 폭포를 내려다 본 모습
집다리골 자연휴양림 매표소
두 계곡이 합쳐지는 삼각지점에서 30분을 걸어 내려와서야 드디어 "집다리골 자연휴양림매표소"에 도착합니다(16:20).
오늘 산행에 무려 7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당초 산악회 측에서는 3일 연휴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가벼운 산행대상지로 화악산 촛대봉을 선정했다고 생색을 내었는데, 정상에서 바로 하산하지 않고 산행이 금지된 구간으로 안내하여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바람에 힘든 산행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산 후 산악회 측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전에는 두 개의 정상 표석이 있었으나 이를 하나로 통일했으며, 우리가 올랐던 정상에서 바로 하산했으면 정상적인 등산로를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습니다.
짜증나는 귀경길
매표소 앞의 계곡으로 내려가 찌든 땀을 씻습니다. 첫 번째 임도를 만났던 곳에서 이미 씻었지만 내려오는 길에 다시 땀으로 범벅이 되었기에 계곡에 발을 담급니다. 윗도리를 벗고 찬 수건으로 땀을 훔치니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입니다. 산악회에서 계곡물에 담가두었던 수박을 쪼개어 나누어주니 한마디로 꿀맛입니다.
등산객이 하산을 완료하자 매표소 앞에 주차되어 있던 등산버스가 출발하는 데 길섶에 무질서하게 주차되어 있던 승용차 한 대 때문에 버스가 도로를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한참동안 실랭이를 벌인 후 승용차 차주가 도착했는데 갑자기 바깥의 분위기가 험악해 집니다. 승용차 차주가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왜 큰 버스가 안으로 들어와서 난리를 피우느냐고 항의했던 것입니다. 버스의 뒤쪽에 탑승한 혈기방장한 사람이 버스 창문을 열고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우여곡절 끝에 버스가 출발합니다.
집다리골 계곡을 빠져나와 잘 달리던 버스가 가평에 이르기도 전에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합니다. 오늘은 3일 연휴의 마지막날이고 계절적으로도 여름휴가의 절정기입니다. 계곡으로 숨어들었던 모든 피서객들이 날이 저물자 너도나도 자동차를 끌고 나와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누구를 원망할 처지가 못됩니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기다리면서 시간이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도로의 정체도 문제이지만 버스 내 뒤쪽의 분위기는 더욱 꼴불견입니다. 술에 많이 취한 한 사람이 주변사람들에게 자꾸만 말을 걸고 큰 소리로 떠드니 조용하게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려는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큰 고통입니다. 산악회장이 나서서 자제를 요청하고 또 한 두 사람이 조용히 하기를 주문하지만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시정되지 않습니다.
서울 사당역까지 무려 다섯시간이나 걸렸는데 장시간 동안 눈을 붙이지도 못한 채 술 취한 사람의 횡설수설(橫說竪說)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 짜증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강원도 춘천시에 소재한 청정계곡 집다리골을 알게 된 것은 그나마 큰 수확이었다고 자위하면서 재빨리 사당지하철역 구내로 들어섭니다. 끝.
첫댓글 펜펜님의 산행기 즐감하고 갑니니다 아나로그 시절 다녀와서 기록할만한 자료가 부실 하여 항상 아쉬어지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