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하고 해뜰 날^을 부른 송대관이 떠났다. 그 노래를 부르고 바로 떴다. 나도 쨍하고 해뜬 날이 있었을 텐데 별로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쨍하고 해가 뜬 날의 시작이 어느 때였던가. 눈발을 맞으며 같이 걸었던 때가 불현듯 생각난다. 청춘의 설렘으로 가득 차 있던, 통금이 해제된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이 내렸다. 아담스 인,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청춘은 짧고 아름다웠다. 쨍할 줄 알았다.
엄청 많은 걸 무진장無盡藏이라 한다. 오늘, 또 다른 무진장茂鎭長의 하나인 전북 장수 장안산(1,237미터)을 산행하기로 했다. 백두대간이 뻗어 내린 전국 팔대 종산宗山 중 하나로 그저께 내린 눈 덮인 설경을 보러 여기까지 왔다. 출발 지점인 해발 900미터까지 거의 다 왔는데 아뿔싸, 입산 통제다. 무주 덕유산 향적봉을 산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케이블카도 스키용 곤돌라도 탑승 대기선이 길었다. 스키를 타러 온 젊은이들도 많고 덕유산 눈꽃 축제를 보러온 향락객도 많아 깜짝 놀랐다. 우리 같이 산행 목적으로 오는 이들은 적었다. 눈이 내려 쌓이고 기온이 떨어져 그 자리에 얼어버린 상고대가 황홀할 정도로 예뻤다. 그런 줄 아는데 고산지대에 밤새 내린 서리가 얼어 붙은 것이 상고대霜高帶다. 사진을 찍으려 장갑을 벗은 맨손이 몹시 시렸다. 바람이 세차 체감온도가 뚝 떨어졌다. 케이블카를 내려 향적봉 (1,615미터)까지 걸어 가는 길은 눈꽃 축제란 말이 잘 어울리게 온 천지가 눈이다. 오가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눈이 많이 쌓인 곳은 가슴팍까지 빠졌다. 스틱 끝부분까지 쑥 들어갔다. 중봉까지 가려다 대피소 앞에서 돌아 섰다. 또 입산통제다. 멀리 눈쌓인 산맥들이 너울댄다.
며칠 전, 친구들과 모임을 하고 돌아와선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인데 옛날 같으면 죽었을 병으로 수술한 사람이 여럿 있다니 벌써 그럴 나이인가. 늙었다는 생각을 안 하고 사는데 욕정과 욕심은 약해지고 있다. 젊은 날에 일탈Derail을 좀 더 할 걸 그랬다. 그랬다고 아쉬움이 덜 할까마는. 앞으로 쨍할 일이 있을까, 있다면 무얼까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니 철딱서니가 없다.
아직은 크게 아픈 곳이 없어 즐겨 술을 마시고 소풍가듯 한 달에 너댓 번은 산을 탄다. 이 때는 쓰잘 데 없는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 그것이 좋다. 기뻐 날뛰고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은 날이 앞으로 내게 있겠는가. 이렇게 무탈하게 돌아 다니는 날이 쨍하고 해 뜨는 날이라 생각키로 했다. 하산하고 빨간 딱지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셨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다.
행복한 사람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내노라 할 건 없다 해도 별 탈 없이 곱게 늙어가면 성공한 인생이다. 맞는 말 아닌가? 그러고 싶은데, 착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