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5.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롬 12:1~2
*제목; 로마교회에 보낸 사도바울의 편지(24) 복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1. 복음을 아는 것과 복음을 믿는 것의 차이
한 산부인과에서 여인이 막 자연분만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도우던 의사가 산모에게 “심호흡하세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산모는 입으로 “심호흡, 심호흡”이라고 말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믿음으로 보면 결코 우스운 일만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믿으라고 했을 때의 의미는 입으로 “복음을 믿습니다.”라고만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복음을 믿고, 천국에까지 입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복음을 아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복음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입니다. 복음을 믿고, 복음을 살아내어, 천국에 입성하는 자녀가 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빌 1:27’입니다.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
그리고 오늘 본문의 ‘1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우리 삶이 “산 제물”이 되게 하라고 합니다. 죽은 제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서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드리는 것이 바로 “산 제물”입니다. ‘빌 1:27’의 말씀처럼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될 때 “영적 예배”가 완성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영적 예배를 완성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첫 번째가 바로 “바른 예배”인 것입니다. ‘요 4:23’입니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철야기도회로 유명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예배가 얼마나 뜨겁고 신령한지 소문이 나서 한 기자가 이를 취재하기 위해서 참석합니다.
과연 철야기도회는 소문대로 뜨겁고 신령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기자는 너무 어이없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예배를 마친 성도들이 육교를 두고 무단 횡단을 해서 건너편 자기가 주차한 차로 가서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자는 “뜨거운 기도회에 차가운 준법의식”이라는 조롱 섞인 기사를 내보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이 예배는 진짜 예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진짜 예배를 삶으로 살아지는 예배가 진짜 예배입니다. 마찬가지로 진짜 복음을 믿는 신앙은 삶으로 그 복음을 살아가는 신앙을 말합니다.
복음을 살아간다는 것은 삶에서 세 가지가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감사요, 둘째는 사랑이요, 셋째는 기쁨입니다.
참된 예배는 그래서 예배를 마친 후 식당에서, 주차장에서 시작되고, 우리의 가정과 직장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참된 예배자입니까? 그렇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2. 복음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복음은 아는 것이 아니라 믿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2절’ 말씀입니다.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당신은 변화했습니까?
변화 없다고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이제부터 변화하면 됩니다. 변화를 위한 가장 우선된 작업은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과 하나 되어지는 과정”입니다.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천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하나되어질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아가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선된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님과 하나되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품으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어지게 되고, 그 역사와 능력을 경험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요 15:10’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 15:10)
결국 다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부하신 계명으로 설교가 귀결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사랑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 이야기로 오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스티브 메트카프 선교사’가 쓴 책(<어둠 속에 빛나는 등불을 들고>)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영국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살아갑니다. 그러다 2차대전이 터지고, 일본군이 중국을 점령하고 중국인들을 수탈합니다. 이 때 메트카프는 포로가 되어 일본감옥에서 갖은 고통을 당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일본과 일본군을 너무도 증오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감옥에 ‘에릭 리들’이라는 선교사가 잡혀옵니다.
그는 책 <불의 전차>의 주인공으로 1924년 파리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입니다. 그의 주종목은 100m달리기 였지만, 그 결승전이 주일에 열려 그는 이 경기를 포기하고 맙니다. 주일에 경기를 뛸 수 없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의 실력을 아깝게 여긴 감독이 주종목이 아닌 400m를 뛰게 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하고, 바로 중국선교사로 지원하여 이 감옥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에릭 리들 선교사는 메트카프를 전도하고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큰 논쟁이 일어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도저히 지킬 수가 없다고 메트카프가 이야기한 것입니다.
에릭 리들 선교사는 그에게 ‘일본인들을 위해서 기도해보라’고 조언하고 그 논쟁을 마칩니다. 이후 메트카프는 그의 말 때문에 ‘일본인들을 위해서 억지로 기도하기’를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임하시고, 그를 완전히 바꾸셨습니다.
이후 그는 일본선교사로 지원하여, 일본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복음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려면, 말씀과 함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더 좋은 방법은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면, 원수조차도 사랑하게 되고, 원수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말씀을 통한 기도가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고, 이것들이 그로 변화를 경험하게 하고, 하나님의 이루시는 역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복음의 자녀는 입으로만 주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삶으로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도 답답하게 만드는 자들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입술의 고백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여 천국으로 입성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말씀과 이를 붙잡는 기도로 주님과 하나될 때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