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 다리를 도보로 걷거나, 지하철로 통과하면서 보면 그 수량과 폭에 놀란다고 하죠.
<백제본기> 온조왕 기사에서
"남쪽 경계를 웅천에 두었다."
말이 안 되죠.
웅천은 비정 1순위가 당연히 충남 부여시의 금강입니다.
저 밑에 200년대나 있었어야 할 기사가 온조왕 대에 올라와 박혔으니, 개작되고, 편집되고, 망가지고.. 역사논쟁의 싸움의 원인이 되죠.
마한 54국에 작은 나라로 출발한 백제가 어떻게 대번에 남쪽 경계를 금강에 두나요?
트로이 전쟁에서 패한 무리가 로마에 정착했고, 로물루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그런 신화를 가진 로마인들도 차츰 주변국을 복속시키면서 확장해나가며 나라가 커지는게 당연하죠.
한나라가 한군현을 설치하면서 한수를 경계로 윗쪽은 한나라의 땅이라는 의미인데, 오늘날 한강이라는 강이름에 그런 의미가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죠.
그런 얘기를 정약용이 했더군요.
백제의 무리들이 한군현 피해서, 남하할 때, 대동강 상류 지역이 주석에 들어가 있는걸 볼 때, 그 주석은 타당성이 있죠.
낙랑군과 현도군의 빈 공간을 타고 내려오다가 중간 기착지가 필요했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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