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튼은 왜 떠났는가
2006.2.6. (월) 딴지총수
결별
적어도 일반대중에게 있어 이 사건의 시발점은 피디수첩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든 새튼의 결별 소식이었다.
그 이전부터 난자에 대한 시민단체나 민노당의 문제제기는 있어 왔으나 주요한 이슈로 취급 받지 못했었다. 2005년 11월 8일, 난자매매가 있었다는 노성일의 고백이 언론을 탔을 때조차 그러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4일 후, 11월 12일, 워싱턴포스트지가 전한 새튼의 결별 소식은 차원이 달랐다. 이 뉴스는 즉각 모든 매체를 뒤덮고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황우석도 언론을 통해서야 소식을 접하고 새튼과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이유를 모르겠다는 내용의 보도가 뒤를 이었다.
다시 3일 후, 11월 15일, 미국의 '어린이 신경생물학치료재단'과 '태평양불임센터', '하버드대 줄기세포 연구소', '스탠퍼드 대학',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이 황우석과 결별 혹은 협력을 거절 했단 소식이 전해진다.
6일 후, 11월 21일, 노성일은 미즈메디 병원 지하강당에서 난자의혹에 대해 <대국민 발표>를 한다. 황우석 연구를 위해, 국익을 위해 매매된 난자를 사용했다고. 그리고 그 다음 날, 새튼의 결별 선언으로부터 열흘 후, 11월 22일, 피디수첩 1탄이 방영된다.
드디어 대폭발.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새튼의 결별은 이해하기 힘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결별통보를 황우석에게 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지역 신문도 아니고 워싱턴포스트지를 통해 한다. 게다가 새튼이 먼저 결별에 관한 성명을 내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언론들이 취재한 것이 아니다. 성명은 그 뒤에 나왔다. 새튼이 먼저 연락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겨우 3일만에 미국의 여러 기관들이 특별한 이유를 대지 않고 무더기로 황우석을 떠나간다. 황우석의 공식 해명도 아직 없었던 상황인데. 단순히 난자와 관련한 문제임을 시사하는 신문 기사 하나로 그 기관 모두가 3일 만에 일제히 떠났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았다.
기사를 접한 후 구체적 사실확인을 위해 새튼에게 연락하고 답을 받은 후, 그 진위를 확인키 위해 당사자인 황우석에게 답변을 요구하고, 그에 따라 관계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해 결정 내리는 것이 상식적 수순일 게다.
세계에 단 한 곳밖에 없는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보유한 세계적 연구기관과의 결별을 결정하는 과정이 상대편으로부터의 공식확인도 생략하고 바로 3일 내에 이뤄진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황우석의 난자 논란에 관한 공식적 입장표명은 12일 후인 11월 24일에야 나오는 데 말이다.
더구나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서로 다른 기관들이 서로 다른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있을 텐데도, 기사보도 후 각자 논의했다면 설사 전부 결별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서로 다른 날 각자의 결론에 도달했어야 하는 게 자연스럽다.
기사 보도 후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공식적 확인과정도 없이, 같은 날, 같은 결론 낸다는 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황상 새튼이 그 기관들에 이미 사전 작업을 해두었고 날짜도 미리 맞췄을 개연성 높아 보였다. 그 기관들이 황우석으로부터의 공식적 확인 없이도 믿을 수 밖에 없을 정도의 적극적 설득이 있었을 공산 역시 크다 판단했다. 여기서 한 가지 추론이 가능했고 동시에 몇 가지를 추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먼저, 확인 할 수 있는 것 하나.
새튼은 그 결별을 최대한 파괴력 있게 만들고 싶어 했다는 점. 교신저자로 참담하다는 성명을 조용히 낸 것도 아니고 혼자서 떠날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
우선, 당시 새튼이 결별 이유로 모호하게 언급했던 난자 논란 때문이라면, 이미 2004년 5월부터 네이처가 거론했던, 새로울 것이 없는 사안이다. 다시 거론된다 하더라도 황우석에게 먼저 사연을 묻는 게 정상이다.
당시 국내 언론이 유추했던 사유 - 과거 자신도 난자 논란에 연루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란 - 만으로 몇 년간이나 관계해 온 중요 파트너에게 그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그 모든 걸 결행했다는 것이 설명되기엔, 아무래도 한참 부족해 보였다.
그러한 윤리적 문제 때문이라면, 자신의 연구에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에게 불가피하게 떠나야만 하는 자신을 이해시킬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비윤리적 대목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만약 난자 논란이 아니라 사실은 논문 부풀리기 이야기를 들었던 거라면, 자신이 직접 작성했던 논문인데다 그 학문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 교신저자로서 당장 황우석에게 달려가 대책 논의부터 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누군가 새튼에게 줄기세포 자체가 단 하나도 없는 원천사기극이라 일러줬던 거라면, 그 사람은 누구이며 설혹 새튼이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하더라도 직접 만든 당사자인 황우석에게 최소한 확인이라도 했어야 정상이다. 누구의 말이기에 그 경악할 비밀을 듣고도 확인조차 할 필요가 없었던 건가.
더구나 당시 피츠버그대에 있는 연구원들은 줄기세포를 직접 봤다며 줄기세포가 없다는 말을 부인하던 상황이다. 김선종, 박종혁이 새튼에게 피디수첩의 취재를 보고했다 하더라도 당시에는 피디수첩조차 서울대 2번이 미즈메디 4번과 일치한다는 정보밖에 없었다.
새튼이 결별을 선언한 11월 12일에야 피디수첩은 DNA 검증을 위해 서울대로부터 줄기세포 2,3,4, 10, 11번을 건내 받는다. 아직 누구도 황우석에게 환자맞춤형 줄기세포가 단 하나도 없단 걸 모르던 상황이었다.
피디수첩에서 줄기세포 하나가 미즈메디 것으로 나왔다고 하더란 연구원들의 보고를 받고 새튼이 그대로 믿었다 해도, 나머지 줄기세포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도대체 그게 궁금해서라도 황우석에게 연락했었어야 정상이다.
본 총수, 그의 행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사태의 맹렬한 진행은 새튼 정도는 한참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사이언스에 논문 철회해 달라고 혼자 메일 보냈다는 기사에서 언급되는 정도를 제외하곤, 새튼은 그렇게 잊혀져 갔다.
영주권
그러다 새튼을 잊지 말고 꼭 다시 따져봐야 하겠단 생각이 들었던 건 다음과 같은 뉴스를 접한 후다.
황 교수팀 관계자는 7일 '새튼 교수팀에 파견된 한국인 연구원 2명이 미 영주권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는 미국 소식통의 제보에 대해 "현재 2명의 연구원이 영주권 신청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3명의 연구원 가운데 한 명은 도미(渡美)시부터 영주권 취득을 희망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연구원은 국내 모 지방 의대 교수직 선정에서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영주권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12월 8일 |
세 가지가 궁금했다.
그 2명에 박을순이 포함되는가.
'황교수팀 관계자'라는 건 서울대 쪽인가.
새튼은 관련이 없는가.
박을순과 다른 한 사람이라면 박을순이 미국에 간 지 오래된 만큼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되던 영주권 신청작업이었음에도 워낙 민감한 시기다 보니 뉴스가 된 단순한 사안일 가능성이 더 높다 여겼고, 만약 김선종, 박종혁이라면 이번 사건의 핵심 논란인 배양을 담당한 당사자들이기에 피디수첩의 취재, 새튼의 결별, 검찰 수사 의뢰로 이어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석연찮은 행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만 하더라도 언론은 황우석, 미즈메디, 기타 관련자들을 구분하지 않고 '황교수팀'으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황우석도 이미 전부터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그건 박을순에 관한 내용일테고 위와 같은 이유로 단순 사안일 공산이 더 크고, 다른 소스라면 액면 그대로가 아닐 가능성도 동시에 존재한다 여겼다.
마지막으로 새튼이 연관되어 있고 박을순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건 새튼이 연구원들을 빼돌리려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 여겼고, 새튼이 관련되어 있는데 김선종, 박종혁이라면 새튼과 미즈메디간 모종의 합의라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생각했다. 김선종, 박종혁은 단순 유학생이 아니라 미즈메디에서 파견된 미즈메디의 직원이기에.
그러나, 크게 이상한 점까진 발견하지 못했단 뉘앙스로 단순 정리된 이 뉴스는 그렇게 한 번 보도되고는 어떤 언론도 다루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더구나 얼마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선종은 영주권 보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부인한다.
김 연구원은 황교수가 검찰 수사를 의뢰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억울했지만 `원하시면 수사 맡기십시오'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자신이 영주권을 신청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사실이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많아 힘들었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12월 17일 |
그러다..
본 총수, 수소문 끝에 최근 위 기사를 제보한 바로 그 '미국 소식통'과 연결이 되었다. 미국 시민권자인 한국계 이민법전문변호사인 P씨는 다음과 같이 제보의 배경을 밝혔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피츠버그대 출신 Dr. 정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피츠버그대에서 영주권 관련해 중요한 전화가 올 테니 잘 처리해달라 부탁하는 연락이 먼저 왔고, 곧 이어 2명의 한국인 연구원들의 영주권에 관한 문의 전화가 왔다 한다.
P씨는 당시만 하더라도 이 사건에 대해 잘 몰랐으나 황우석 관련 연구원들이 피츠버그대에 가 있단 뉴스를 본 기억이 나 인터넷에서 사실확인을 하고 조선일보 사이트에 간단한 제보를 하게 됐고, 조선일보는 몇 시간 후 그 제보를 바탕으로 위 기사를 냈다 한다. (위 기사는 12월 8일 새벽 3:00 포탈에 입력되었고 P씨가 거주하는 곳과 한국의 시차는 열 시간이므로 전화를 받은 '어느 날'은 현지 기준으로 12월 7일이다.)
여기까지가 그 기사의 제보 사연이다.
그런데 본 총수 그 내용을 하나하나 P씨와 확인해 가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한 번도 밝혀지지 않았던, 매우 중요한 특이사항 몇 가지를 파악하게 됐다.
피츠버그대 인사부서(Human Resource)에서 직접 전화했다는 점
전화를 한 사람은 연구원들이 아니라 피츠버그대 인사부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민 관련 사안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로 수많은 상담을 해봤지만, 대학당국이 소속 연구권의 영주권 신청을 직접 문의한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라 했다.
당연히 당사자가 신청을 하며, 더구나 연구원이 영주권이 있건 없건 학교 입장에선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런 일엔 오히려 협조적이지 않은 것이 통례라 한다. 도움을 준다고 해봐야 대학당국이 아니라 지도교수가 추천서를 써주는 정도.
영주권을 일주일 이내에 취득하길 원했다는 점
피츠버그대 인사부서에서는 세포 관련으로 유명한 한국 연구원 둘이라 했고 문의 과정에서 일주일 이내 처리가 가능한지 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P씨는 불가능하고, 여러 가지 서류 준비에만 한 달이 걸리고 이미 신청한 사람들이 밀려 서류 준비 후에도 두 세 달은 기다려야 하는 것이 통상적인 경우라 답했다고 한다.
연구원 둘 중 한 사람의 성이 박이었다는 점
그 두 명이 누구였느냐는 질문에 P씨는 그 당시만 해도 이 사건에 대해 잘 몰라 언급됐던 둘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다만 그 중 한 사람의 성이 박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했다. 피츠버그대 직원과 친척이냐는 농담을 주고 받았기에 확실히 기억 한다고. '박'이라면, 박을순 아니면 박종혁 둘 중 하나다.
미국 영주권을 가지게 되면 국내귀국을 강제할 수 없다는 점
영주권을 가지게 되면 얻는 이익이 뭐냐 묻자,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미국에 와 가장 먼저 취하는 절차가 바로 영주권 신청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영구히 거주할 권리가 있으므로 본인 스스로 귀국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한국 법정에 세울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인터폴이나 FBI를 언급하자, 그것도 한국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먼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새튼의 결별 선언이 있었던 2005년 11월 12일부터 영주권 신청 전화가 왔던 2005년 12월 7일을 전후한 한국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 11월 12일 새튼의 결별 선언 - 11월 17일 PD수첩 검증 결과 발표 - 11월 17일-18일경 김선종 입원 - 11월 18일 국과수 DNA결과 통보로 황우석 바꿔치기 인지 - 11월 21일 노성일 난자매매 기자회견 - 11월 22일 PD수첩 1탄 방송 - 11월 24일 황교수 난자 사용 시인 기자회견 - 11월 26일 PD수첩 광고 중단 - 11월 27일 노무현 대통령 홈페이지 기고 - 11월 29일 황우석 사이언스 논문 정정(줄기세포수 7개에서 3개로)
- 12월 1일 안규리, 윤현수 미국방문 - 12월 2일 최승호CP, 한학수 PD 기자간담회("미즈메디와 관계없다") - 12월 4일 YTN, MBC 취재윤리 문제 제기 - 12월 4일 MBC 대국민사과문 발표 - 12월 6일 브릭에서 DNA 핑커프린트 조작 의혹 제기 - 12월 7일 영주권 신청 문의 전화 - 12월 9일 피츠버그대 특별조사단 구성 - 12월 9일 윤현수 교수 출국(학회 참석 이유로) - 12월 10일 프레시안 피디수첩 김선종 녹취록 공개 - 12월 14일 새튼 사이언스에 논문 철회 요구
그 즈음, 한 마디로 숨 가뿐 역전, 재역전의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고 있었다.
여기서 확인한 특이사항을 분석해보자.
영주권 작업에 새튼이 나섰을 공산이 매우 높다.
일개 연구원들이 대학 당국을 움직일 순 없다. 대학 당국이 문의했다면 연구원이 아니라 교수급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건 자명하다. 다만 현재 피츠버그대에선 새튼 관련 어떤 문의에도 답하지 않고 있어 자세한 과정을 확인할 순 없다.
( 여기서 연구원들이 대학당국이라 속이고 누군가에게 시켰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으나 문의 전화를 하면서 중간에 Dr. 정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부탁하게 하고, 이후 대학당국이라 속이는 미국인을 또 한 번 거칠 이유가 없다. 문의 과정에서 자신들이 드러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면, 중간에 누굴 끼울 필요도 없이 그냥 이름을 말하지 않거나 다른 이름을 대고 직접 물어도 된다. 정 불안하다면 같은 한국인인 Dr. 정이란 사람에게 대신 묻게 하면 될 일이다. 대학당국이라며 문의한다고 더 자세한 내용을 알게 되거나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법률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더구나 대학당국이라 밝힌 전화는 두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고로 이 가능성은 기각. )
영주권 신청을 오래 전부터 준비한 것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일주일 내에 불가능하고 서류 준비에만 한 달 정도 걸린다는 걸 몰랐을 리도 없고, 급하면 급한 대로 애초 영주권 신청 서류를 맡겨 둔 변호사와 어떻게든 급행처리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서류 준비만 한 달인데 다른 변호사를 찾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설혹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안되니 야매가 가능한 변호사를 찾아 헤매는 와중이었다 하더라도, 그 시점에서 일주일 내 처리를 언급할 만큼 다급했다는 것만은 결코 움직일 수 없는 정황이다.
박을순이 아니라 박종혁이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국내 모 지방 의대 교수직>에 지원한 사람이라고 한 사람은, 박종혁이다.
" 미국 피츠버그대학 박종혁 연구원이 경북대 치과대학 교수로 사실상 임용될 예정이었으나, 논문 파문으로 인해 임용이 취소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
- 국민일보 2006년 1월 24일 |
영주권에 대한 해명은 거짓말이다.
"원래 영주권 신청을 하려고 했었고, 교수직 임용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란 해명은, 당사자들에게 그런 뜻이 애초 있었건 없었건, 그 시점에서 그 상황에 대한 해명으론 거짓말이다. 그런 사유가 일주일 내 영주권이 당장 필요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김선종의 영주권에 대한 부인도 또한 거짓말이다. 당시 새튼 연구실의 한국 연구원은 3사람. 박을순, 김선종, 박종혁. 박을순이 아니라 박종혁이라면 나머지 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김선종이다.
본인 뜻도 묻지 않고 새튼이나 대학당국이 영주권 신청을 도모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제 확인해야 할 건 하나. 그 소스는 '황우석'인가 아닌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본 총수, 객관적 정황정보를 얻기 위해 자세한 자초지종을 생략하고, 황우석 변호사를 통해 황우석의 연구원들 영주권신청의 사전인지 여부만을 단순히 문의했다. 얼마 후 돌아온 답변은 황우석은 몰랐다 한다.
이제 중간 정리하자. P씨의 기억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새튼이 개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박종혁 김선종의 영주권 신청 시도가 다급하게, 황우석이 알지 못하는 사이, 시도된 적이 있다.
과거
새튼은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지금부터 그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황우석 이전
2003년 4월 11월 자 사이언스 표지
새튼이 국내 언론에 주요하게 거론되는 최초 시점은, 2003년 4월 11일 자 사이언스 197쪽에 실린 논문을 통해 "영장류는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다. 황우석 특허와 충돌하는 시발이 되는 새튼의 특허 역시 이 내용이 발표되기 바로 이틀 전인 2003년 4월 9일 최초 가출원된다.
당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원숭이 난자의 핵을 흡입, 제거하는 과정에서 특정세포의 구조도 함께 제거되는 걸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면 염색체 분열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포가 분열할 때 염색체는 '방추'형 구조로 정렬하게 되는데 - 이를 전문용어로 방추체(mitotic spindle)라 한다 - 핵치환 과정에서 이 방추체에 필요한 핵심 단백질까지 제거되어 제대로 된 염색체의 수를 갖지 못하고 결국 복제는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특허 출원서에 실린 그림을 통해 설명하자면,
한 마디로 말해 그림의 왼쪽처럼 정렬되어야 하나 특정 세포 구조가 제거되어 오른쪽처럼 제대로 정렬되지 않아 영장류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가 이틀 전에 가출원한 특허의 제목은,
<Methods for correcting mitotic spindle defects associated with somatic cell nuclear transfer in animals>
이다. 즉, 바로 이 방추체 결함을 교정하는 방법에 대한 특허다.
영장류 복제는 안 된다고 발표하고는, 특허는 그걸 교정하는 방법을 가출원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특허가 공개된 1년 6개월 후의 2004년 10월 28일자의 출원서에도 그 구체적 교정 방법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 이유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논하자.
그는 또한 이 보고서와 특허를 발표하기 5개월 전인 2002년 12월, 부시대통령의 생명윤리위원회(President Bush's Council on Bioethics) 에 출석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primate cloning, including human cloning, will not be in our lifetimes."
그러나, 영장류, 인간을 포함해, 복제는 자기 평생에는 안될 것이란 이 발언은 그가 출원한 특허에도 배치되는 말이며 완전히 거짓말이었음이 추후 드러난다.
월스트리트 저널 2004년 12월 22자 <With Public Wary, Cloning Scientists Watch Their Words> 제하의 기사에 의하면, 미국립보건원(NIH) 내부 문서에는 새튼이 생명윤리위원회에서 출석해 "영장류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증언을 하기 바로 한 달 전인 2002년 11월, 인간 이외의 영장류(NHPs- nonhuman primates)를 5년 이내 최소한 10마리 복제할 것을 목표로 하는 연구승인요청서를 미국립보건원에 제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철저히 이중적 행보를 한 것이다.
이 이상한 상황을 정리해보자.
정치적으로는, 생명윤리위원회에 출석해 영장류 복제는 불가능하다 발언하면서 그 발언 한 달 전 미국립보건원에는 5년 내 영장류를 10마리 복제하겠다고 지원 요청을 했고,
과학적으로는 사이언스에 영장류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발표하면서 그 이틀 전 그 결함을 해결했다고 내용 없는 특허를 가출원했으며,
정책적으로는, 미국립보건원(NIH)이 영장류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새튼의 논문으로부터 불과 4개월 후인 2003년 8월, 새튼의 요청을 받아들여 매년 원숭이 구입비 명복의 175,000달러를 포함해 640만 달러의 연구비 지원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새튼의 앞뒤 맞지 않는 이 이상한 행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튼에게 거액의 지원금을 승인한 미국립보건원의 희한한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미국 상황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미국
부시는 이미 2000년 대선 캠페인 당시부터 "혈세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연구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인간복제 연구에 관한 반대를 확실히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인간배아복제연구를 합법화하려는 첫 시도는 2001년 미 하원에 인간배아복제 연구의 제한적 승인을 내용으로 하는 법안 상정을 통해서다. 그러나 이 법안은 바로 일주일 전인 2001년 7월 24일 부시가 교황을 만나는 적극적 언론 플레이 등을 통해 2001년 8월 1일, 249대 178로 기각된다. 이로써 당시 기준으로, 미국 내에서 인간배아복제연구는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부시는 그 법안이 하원에서 기각된 바로 다음 주인 8월 9일 오후 9시, 텍사스주 크로포드 자택에서 미국 전역에 생중계된 TV 연설을 통해 인간복제는 안되나 줄기세포연구에는 연방정부의 제한적 재정지원을 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부시는 이 TV 연설 이틀 후인 8월 11일 주간 라디오 연설에서 다시 한 번 줄기세포에 대한 연방정부의 제한적 재정지원에 대해 설명하고 그 다음 날인 8월 12일에는 뉴욕타임스에 줄기세포 연구를 제한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기고문까지 낸다.
이전까지 부시가 말해왔던 것과는 반대의 결정일 뿐 아니라 마지못해 눈감아 준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 TV, 라디오, 신문에까지 등장하는 무척 적극적인 액션이었다. 이때 줄기세포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그는 군대를 파견하는 것에 비교했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 <타임> 지의 2001년 8월 20일자 <How Bush Got There> 기사에 의하면, 부시의 이러한 결심은 줄기세포연구의 선구자였던 위스콘신 대학의 제임스 톰슨 교수(그는 1998년 세계 최초로 인간의 배아 줄기세포주를 수립했다)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던 당시 복지부 장관 톰슨과의 5월 오찬 시점부터 시작된 것이라 한다.
2001년 8월 20일자, 표지인물 제임스 톰슨 교수
또한 부시의 발표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법안이 기각된 바로 다음 날인 8월 2일에 있었던 미 국립보건원(NIH)의 과학자들과 만남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타임>지는 이러한 일련의 부시 행동의 가장 큰 목적은 2000년 대통령 선거 당시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수 많은 미국인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립보건원의 새튼 지원 결정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부시의 TV 연설 다음 날인 2001년 8월 10일, 톰슨 보건복지부장관은 " 미국립보건원(NIH)이 연방기금 지원조건을 충족시키는 줄기세포주를 등록 받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고 발표한다. 이 기금은 다음 달인 9월 미국립보건원(NIH)의 예산안 심의에 포함되어 그 다음 해인 2002년부터 집행된다.
( 최근 언론에 거론되는 미즈메디가 받았다고 하는 미국립보건원 지원금은 바로 이 기금이다. 미즈메디와 미국립보건원(NIH)의 관계는 다음 단락에서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자. )
이러한 미국의 분위기는 다음 해 다시 반전된다.
2002년 중간선거 전 공화당에서는 연구목적의 배아복제 연구까지 전면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한다. 그러나 이 법안이 과학자들과 환자권익 옹호단체의 반대에 막혀 폐기되자 2002년 중간선거의 승리 후,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게 된 공화당은 다음 회기에는 치료목적을 포함한 모든 인간복제의 전면금지를 다시 한 번 추진하겠다고 벼른다.
이렇게 의회에서 복제 전면반대파와 연구용 복제연구의 지지파가 팽팽해 맞서자 부시는 2002년 12월 대통령 직속의 생명윤리위원회를 구성, 전문가들로부터의 견해를 취합한다. 이 생명윤리위원회가 바로 새튼이 출석해 "영장류 복제는 불가능하다"고 증언한 바로 그 위원회다. 이 생명윤리위원회는 향후 4년간 인간복제에 관한 어떤 논의도 유예할 것을 부시 대통령에게 권고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다. 이 유예 권고는 4년을 못 채우고 3년 후인 2005년 뒤집어지게 되는 데 이는 나중에 살펴보기로 하자.
그러니까,
새튼은 복제연구 반대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영장류 복제는 불가능하다"는 발언과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며, 실제로는 복제연구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이 장악하고 있던 미국립보건원(NIH)의 지원을 통해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려 했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도 않았던 기술을 내용으로 하는 특허 가출원부터 해두었던 것이다. 그의 특허가 출원 당시 실제로는 영장류 복제의 기술적 결함을 완전하게 교정하지 못한 것은 자명하다.
그랬다면 그 기술로 성공한 복제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 보이려 했을 것이나 그 이전까지 그는 8세포 또는 16세포기에서 계속 실패했다. 황우석을 만나 연구 지원을 받은 후에야 문제를 극복, 2004년 12월 6일 제 44차 미국세포생물학회 워싱턴 총회에서 원숭이 배반포의 성공을 발표한다. 그는 그날 스스로도 그것이 한국의 기술 덕분이었다는 것을 밝힌다.
아마도 최초 특허 가출원시에는 제목만 공개되니, 내용이 공개되는 1년 6개월 이전에 미국립보건원(NIH)의 자금으로 기술을 확보해 특허를 수정하면 될 것이라 당시에는 판단했을 것으로 추론된다. 이에 대해선 특허 항목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정리하자.
새튼은 2003년 8월부터 미국립보건원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으며 5년 이내 영장류 복제를 성공시켜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와 관련해 불완전한 특허를 가출원해 둔 상태였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2003년 11월 말, 새튼은 황우석을 만나러 한국에 온다.
NIH와 미즈메디 그리고 문신용
새튼과 황우석의 만남을 이야기하기 전에, 위에서 언급되었던 미국립보건원(NIH)와 미즈메디의 관계를 잠시 살펴보자. 미국립보건원(NIH)과 미즈메디의 관계는 줄기세포 수립을 위한 미국립보건원(NIH)의 기금이 마련되는 2002년 그 해부터 바로 시작된다.
미즈메디병원 줄기세포 연구팀이 향후 2년간 미국 NIH(국립보건원)로부터 51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받게 됐다고 11일 밝혔다. 국내 연구팀이 줄기세포분야에서 NIH 연구비를 지원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2002년 12월 12일 국민일보 |
미국립보건원(NIH)의 회계자료에 의하면 미즈메디는 2002년 첫 해에는 314,826 달러(기록보기), 2003년에는 194,612 달러(기록보기)의 연구비 지원을 받고, 이 2년 간의 지원이 끝나는 시점에 다시 추가로 3년간 기금을 지원받는다.
최근 NIH측에서는 미즈메디 의과학연구소를 방문해 연구성과와 병원을 둘러보고 제2차 연구비 지원을 확정했다. 이번 지원결정으로 2004년 10월 1일부터 2007년 8월 31일까지, 3년 동안 825,152 달러를 받게 됐으며 5년간 지원 받는 연구비 총액이 1,334,459달러로 한화로 약 16억 원에 이른다. 미즈메디병원 의과학연구소는 NIH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는 세계 6개 연구소 중 하나로, 국내에서는 유일하다.
- 2004년 10월 1일 메디팜뉴스 |
이 시점 미즈메디와 새튼 교수의 연구협약 체결을 추진 중이라는 내용도 관련 기사에 잠깐 언급된다. ( 이 과거의 미즈메디와 새튼 관련 기사는 거의 검색되지 않는 데 당시 기사는 이름이 '셔튼'으로 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
연구소는 미국 국립보건원에 등록된 인간 배아줄기세포(Miz-hES1)를 대량 증식시켜 전 세계에 연구용으로 분양할 예정이다. 또한 피츠버그대학의 셔튼 교수팀 등 미국의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위해 연구협약 체결을 추진 중이다.
- 2004년 9월 30일 제일경제 |
피츠버그 대학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사에선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미즈메디 병원 의과학연구소는 미국 NIH에 등록된 인간배아줄기세포 (Miz-hES1)를 대량증식시켜 전세계에 연구용으로 분영할 예정이며, 연구진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체 개발한 세포주를 미국 피츠버그대 발생연구소에서 생산해 미국내 연구진에 공급하는 한편, 유럽 및 그 이외의 국가에도 직접 공급할 예정이다.
- 2004년 9월 30일 |
발생연구소가 바로 새튼이 소장으로 있는 곳이다(Director of Pittsburgh Development Center, PDC). 미즈메디와 세포응용사업단의 관계 역시 관련 기사에 등장한다.
과학 기술부는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 사업 일환으로 수행중인 세포응용 연구사업단(단장: 문신용) 의 지원을 받고 있는 미즈메디 병원의 의과학연구소 윤현수 박사팀이 인간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미국NIH로 부터 5년간 135만 달러 (약 16억원)의 연구비를 지원 받게 됐다고 30일 밝혔다.
- 2004년 9월 30일
또한, 미즈메디병원 줄기세포 연구팀은 과학기술부의 21C 프론티어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2002년 10월부터 진행된 세포응용 연구사업(연구사업단장 문신용 서울대 교수)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으며..
- 2004년 10월 1일 메디팜뉴스 |
이 미즈메디와 미국립보건원(NIH)과의 관계는 2002년 초기부터 문신용 교수의 역할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는 프론티어사업단인 세포응용연구사업단이 오는 6월말께 본격 가동에 들어간다. 과학기술부는 지난 16일 사업단장으로 문신용 서울대 의대 교수(54)를 단장으로 선임하고 줄기세포 연구사업을 공식 출범시켰다. 앞으로 10년간 1000억원을 들여 연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사업단의 사령탑을 맡은 문신용 단장을 만나 연구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중략)
"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3∼4개의 줄기세포주를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 또 고급기술인 분화를 멈추도록 하는 기술도 확보했다. 미국 NIH에서 와서 보고 만족스러워했다. 그 중 하나는 NIH에 등록했다."
- 2002년 5월 21일 파이낸셜 뉴스 |
미국립보건원(NIH)와 미즈메디의 관계가 미즈메디와만의 관계가 아니라 문신용 교수의 세포응용사업단 예하의 미즈메디가 그 구도 하에서 관계를 맺은 것이란 것은 당시 등록한 줄기세포의 등록주가 미즈메디 단독이 아니라 서울대와 공동이란 점에서도 드러나며, 실제 그 관계를 문신용 교수가 대표했다는 것이 미국립보건원(NIH)의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미국립보건원(NIH)의 2003년 국제협력 자료를 보면 미즈메디와의 여러 협력 논의가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며 그 한국 방문단의 대표가 문신용 교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The Korean delegation was headed by Dr. Shin-Yong Moon, Director of Korea's Stem Cell Research. (기록보기) |
정리하자면, 특이점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 째, 이 미국립보건원(NIH) 관련 기사에는 2002년 기사부터 2004년 기사까지, 황우석과의 만남은 2002년부터였음에도, 황우석 교수의 이름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보도자료를 미즈메디 쪽에서 낸 것으로 보이며 이 미국립보건원(NIH)과의 사업은 황우석 교수와는 별도로 진행된 것으로 판단된다.
둘 째, 황우석 교수와 새튼만 관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미즈메디와 새튼 역시 황우석과는 별도로 피츠버그대에서 줄기세포주를 생산할 연구협약을 체결하는 정도의 관계가 있었다는 점.
고로 박종혁과 김선종의 파견이 황우석 교수와의 공동연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단서가 된다. 원숭이는 배반포까지만 성공 했는데도, 그리고 배반포 이후 원숭이 자궁에 바로 착상시키는 동물복제가 새튼의 연구 영역이었는데도, 배반포 이후의 후반부 배양이 전문인 연구원들이 2명이나 피츠버그대에 가 있을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도 동시에 풀린다.
" 자체 개발한 세포주를 미국 피츠버그대 발생연구소에서 생산해 미국 내 연구진에 공급"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 구체적 내용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가 없었다.
황우석 이후
새튼과 황우석의 최초의 만남은 2003년 11월 말이다.
지난해 11월 말 새튼 박사는 한국의 복제 권위자인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의 실험실을 방문했다.
- 2004. 1.5 동아일보 |
둘 간의 교류는 새튼의 "영장류 복제 불가능" 논문이 발표된 후 시작된다. 1번 줄기세포를 수립 후 황우석은 새튼에게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메일을 보냈고 이 메일은 받은 새튼이 방한한 것이다.
당시 황우석은 줄기세포 1번을 이미 수립한 상태였으나 논문은 아직 채택되지 않고 3차례에 걸친 수정 보완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이 시점에서 연구 주도권을 놓고 황우석과 새튼의 공방이 다소 있었다 한다.
섀튼 교수는 그해 11월 말 방한해 황 교수의 줄기세포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 무렵 섀튼 교수는 "황 교수가 줄기세포를 미국으로 가져와 미국의 줄기세포 분화기술을 활용하자"고 제의했다. 황 교수는 그러나 "줄기세포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만큼 분화기술을 한국으로 갖고 와 연구하자"고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양측의 줄다리기는 황 교수가 연구원을 섀튼 연구실에 파견해 원숭이 복제를 돕는 선에서 정리됐다.
- 2005. 11. 29 중앙일보 |
그리하여 1월 말 새튼은 황우석에게 2명의 연구원을 자신에게 파견해줄 것을 요청한다.
국내 복제기술의 권위자인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교수는 29일 “미국 피츠버그대 매기여성병원 생식발생연구팀의 제럴드 섀튼 박사 요청으로 박사후연구원 등 2명을 현지에 파견했다”며 “2년 이상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동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2004.1.30 동아일보 |
이 2명이 바로 핵치환을 담당했던 박을순과 배양을 담당했던 박종혁이다.
그리고 드디어 2004년 2월 13일 사이언스를 통해 발표된 논문은 전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당시 황우석, 문신용 교수는 사이언스가 주최한 미국 시애틀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했으며, 당일 LA 타임지에 1면에 난 인터뷰에서 새턴은 " 기절할 만한 성과이며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왔다는 것에 너무도 놀랍다"고 말한다.
사이언스 2월 13일자에 실린 논문
그 기자회견 이외에도 미국 고등과학원 연례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전세계 200여 국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에서 내외신 기자들과 만나 황우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의 제럴드 새튼 교수가 중요한 카운터 파트로 일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연구중단을 선언한다.
서울대 황우석·문신용 교수팀은 "당분간 인간 난자를 가지고 복제 연구하는 것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공항 귀빈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황교수는 "난자를 가지고 하는 복제연구는 앞으로 국제적인 여론을 들어보고 또 우리나라 국민과 정부의 판단도 기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 2004년 2월 19일 경향신문 |
전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돌아오는 귀국 길에 바로 연구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공항에서 바로 연구중단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을까. 귀국길 공항에서 바로 연구중단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건, 그것이 미국의 상황과 관련 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 대목에 대해선 추가 조사하여 서플리먼트로 보강하기로 한다.)
잠시 그런 결정의 기본 배경 정도를 이해하자면, 인간복제와 줄기세포 연구를 구분하지 못했던 당시 일반의 이해수준과 부정적 견해 쪽을 살펴봐야 한다.
이 발표 직후 국내에서는 종교계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인위적인 생명조작을 중단하라"는 반대성명이 있었고, 국제적으로는 교황청을 위시하여 여러 국가에서 제기된 반대 목소리에 유엔은 인간배아복제문제를 다루는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게 된다. 또한 황우석은 귀국 후 여러 강연에 초청되어 연구재개를 위해 "슈퍼맨 배우는 다시 하늘을 날고 클론의 강원래는 다시 춤출 수 있을 것이다"는 등의 발언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귀국 공항에서 연구중단을 즉시 언급했다는 것은 미국 방문 시 미국의 연구 반대의 분위기가 상상 외로 크다는 것을 실감하며 미국의 협조 없이는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할 어떤 계기 있었을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다시 연구 재개될 때까지 황우석과 새튼 그리고 당시의 미국 상황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2004년 6월 2일 황우석은 미국 플로리다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전학정책협회(GPI)의 '버나드 시겔' 대표에게 초청을 받아 한국과학자로는 최초로, 유엔본부에서 열린 복제과학학술회의에서 세계 150여 개국의 외교관들 앞에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중요성을 알리는 기조연설을 한다. 이때 새튼도 12명의 패널 중 하나로 참석한다.
이날 회의에서는 슈퍼맨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더욱 진전된 연구로 전세계 수 백 만명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달라"며 보낸 영상 메시지가 공개된다.
영상 메시지 동영상 보기
2004년 6월 6일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레이건이 알츠하이머병을 앓다 사망하자, 미망인 낸시와 레이건의 차남이자 공화당 출신으로 정치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던 론 레이건은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줄기세포 연구지지 연설을 하는 등 줄기세포 연구가 빨리 가능해야 한다며 민주당 케리를 지지하게 된다.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가장 대표적 공화당 출신 대통령인 레이건의 유가족들이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을 지지하게 되는 이 사건은 줄기세포 논란이 미국 대중에게 널리 인지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론 레이건의 민주당전당대회 연설
2004년 9월 2일 서울대 주최 제 2회 줄기세포 서울국제심포지엄에서 새튼은 황박사의 연구는 절반의 완성이며, 연구에 복귀해야 한다고 발언한다.
2004년 10월 10일 슈퍼맨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집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로써 줄기세포 연구 이슈가 미국인들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지되는, 최대의 대선쟁점으로 떠오른다.
2004년 10월 12일 <생명공학자 3인 공동기자 간담회>에서 새튼은 슈퍼맨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를 언급하며 황교수의 도움을 받았다면 하늘을 날았을 것이라 발언한다.
2004년 10월 13일 미국 주도로 유엔에 상정된 '인간복제금지협약'(코스타리카 안)에 대응하기 위해 황우석은 다시 유엔대표부와 유전학정책협회(GPI)등이 공동주최한 회의에 참석, 인간복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날 다시 한 번 크리스토퍼 리브와 마이클 제이폭스의 영상 메시지가 방영된다.
인간복제금지협약(코스타리카안) - 치료용 연구까지 포함해 전면 금지안 - 미국 주도로 61개국의 동의를 얻어 유엔에 상정된 법안
인간개체복지금지협약(벨기에안) - 인간개체 복지만 금지하고 치료용 연구는 허용 - 한국, 벨기에, 영국, 중국, 일본 등 22개국 동의 |
2004년 10월 21일 미국 생식의학회 연레 심포지엄에서 황우석은 8개월 만에 연구재개를 공식 선언한다. 이때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주를 만들겠다고 천명한다. 이 즈음 영국도, 최근 배반포까지 성공해 황우석과 비교되었던 뉴캐슬대학의 연구를 승인한다.
이 대목에서 다시 큰 의문 한 가지.
2월 초 귀국하는 공항에서 바로 연구중단을 선언했던 황우석은 연구 재개를 다시 미국에서 선언한다. 한국에서 진행하던 연구를 굳이 미국에 가 그 재개를 선언한 것이다. 중단과 재개 모두 미국과 관련이 있다는 점, 주목할 만 하다.
그런데 재개를 선언한 2004년 10월 21일은 미국 대선이 불과 열흘 남은 때였고, 유엔에서의 인간복제에 관한 협약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여전히 치열한 공방을 주고 받을 때다. 미국과 유엔의 반응 때문에 연구를 중단했었던 거라면 그 논란이 가장 첨예한 시점에서의 연구 재개선언은 매우 과감한 결정이다.
이 선언을 황우석의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영국과 같은 후발 경쟁국가도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이 국면을 정면돌파하자는 시도로 볼 수 있고,
반대파에 황우석이란 자극제를 줄곧 필요로 했던 미국 쪽 줄기세포 연구 지지자들의 입장에선, 슈퍼맨을 지속적으로 내세우며 줄기세포 연구를 대선전의 최대 쟁점화 해가던 대선전 종반이기에 황우석의 연구재개 선언이 꼭 필요했던 시점이기도 하다.
모든 정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공산이 크고 실제로는 미국 쪽의 요구가 없었을 수도 있으나, 만약 미국 쪽의 요청이 있긴 있었다면 그것은 누구의 요청이었는지 매우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에 관해선 마찬가지로 추가 조사하여 서플리먼트로 보강하기로 한다.)
이 선언 후,
2004년 11월 3일 슈퍼맨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의 미망인까지 가세해 지속적으로 줄기세포 연구재개로 대립각을 세우던 캐리를 누르고 대선은 부시의 승리로 끝난다.
2004년 11월 19일 유엔 총회 위원회는 인간배아복제의 연구를 두고 회원국 간 갈등이 심해지자 구속력 있는 조약을 맺는 대신 구속력이 없는 '인간개체복제를 반대하는 정치 선언문'(이탈리안안)을 채택한다. 이로서 줄기세포 연구는 실질적으로 각국 정부의 자율권에 맡겨진다.
인간개체복제를 반대하는 정치선언문(이탈리아안) - 인간개체 복제를 하지 않는다 - 여성이 착취되어서는 안 된다 - 인간 존엄이 중시 되야 한다 |
이렇게 선거도 끝나고, 유엔에서의 논쟁도 끝난 직후인 2004년 12월 6일 제 44차 미국세포생물학회 워싱턴 총회에서 새튼은 원숭이 배반포 성공을 발표한다. 복제배아 135개를 대모 원숭이 25마리에 이식하였으나 임신에는 실패했다는 내용도 함께 발표된다.
<월스트리트 저널> 2004년 12월 22자 <With Public Wary, Cloning Scientists Watch Their Words> 제하의 기사에 의하면, 새튼은 이 발표 2달 전인 2004년 10월 초 토요일, 기존의 흡입법 대신 한국에서 훈련된 젊은 학생 'Park Eul Soon'(박을순)의 '부드럽게 쥐어짜기'-squish 기술의 도움으로, 히말라야 원숭이로부터 14개의 난자를 채취한 지 5일 후, 14개의 배반포를 만드는데 성공하게 된다. 새튼은 박을순의 합류로 가속된 연구 실적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 We are suddenly going past roadblocks "
한국의 도움으로 장애를 갑자기 극복하게 됐다는 걸 스스로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원숭이 배반포 수립을 발표한 당일 배포한 자료에서도 새튼은 "한국 연구진의 복제방법을 적용, 원숭이 체세포 복제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장애물들을 극복했다"고 한다.
정리하자.
2004년은 황우석의 논문 발표와 미 대선이 맞물린 정세에서 줄기세포 연구가 세계적 논쟁거리가 되는 해였으며
황우석의 연구 중단과 재개 모두 미국상황과 상당한 정도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새튼의 원숭이 배반포 수립은 황우석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원숭이 배반포가 수립되고 황우석이 연구 재개를 선언한 바로 이 무렵인 2004년 10월 28일, 새튼은 2003년 4월 9일 최초 가출원 시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를 대상으로 했던 특허 내용을, 인간을 포함하는 내용으로 수정 출원한다. 그 내용상 황우석의 특허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이제 이 특허 이야기를 해보자.
특허
잊혀졌던 새튼이 다시 한 번 주목을 받는 시점은 한참을 건너 뛰어 2006년 1월 7일 미국으로부터 날아든 뉴스 때문이었다.
새튼의 본거지인 피츠버그 지역신문 <피츠버그 트리뷴>은 섀튼의 특허 출원 내용이 황우석의 국제특허출원 내용과 매우 유사하며, 같이 일해 온 황우석보다 무려 8개월 여 먼저 출원했고, 자신이 교신저자였던 논문이 논란에 휩싸인 상황에서 정부에 특허를 받아들여 줄 것을 재촉하고 있다며 비난한다.
보도 사실이 알려지고 그 다음 날, 황우석팀 특허의 공식적 관리권한을 갖는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의 한 관계자는 이는 사실무근이라 말한다.
서울대 관계자는 8일 섀튼 교수가 2004년 4월 신청한 특허의 내용은 동물복제와 관련된 것으로 황 교수팀이 2004년 12월에 신청한 배아줄기세포 기법 관련 특허와는 무관하다.”면서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섀튼 교수는 이미 2003년 4월 이 동물복제 관련 특허를 세계 최초로 가출원한 상태였다.”면서 “이는 황 교수팀이 신청한 특허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 2006. 1.9 서울신문 |
그러나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었다.
- 새튼의 특허는 2004년 4월이 최종이 아니며 - 이미 인간을 포함하는 영장류까지 포함됐고 - 그로 인해 황우석의 특허와 충돌하는 부분이 발생한다.
2004년 10월 28일 수정된 새튼의 특허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Methods for correcting mitotic spindle defects associated with somatic cell nuclear transfer in animals>
What is claimed is :
1. A method comprising the steps of: introducing nuclei along with one or more molecular components into an egg; culturing said egg to produce a viable embryo; transferring said embryo to the oviducts of a female; and producing a cloned animal. (중략)
24. An animal produced by the method of claim 1. 25. The animal of claim 24, wherein said animal is a primate. 26. The animal of claim 25, wherein said primate is a non-human primate. 27. The animal of claim 25, wherein said primate is a human.
- - - - - - - - -
<동물 체세포 핵치환에서 발생하는 방추체 결함을 교정하는 방법>
특허신청 내용 :
1. 한 개 혹은 그 이상의 분자 구성요소와 함께 핵을 난자에 주입하고, 이 난자를 생존 가능한 배아로 배양, 그 배아의 대리모체 착상, 동물 개체 복제 생산까지의 단계로 구성되는 방법. (중략)
24. 1의 방법으로 생산된 동물. 25. 24의 동물은 영장류임. 26. 25의 영장류는 인간이 아닌 영장류임. 27. 25의 영장류는 인간임. |
이 특허에는
여전히 방추체 결함 해결의 구체적 기술에 대한 언급이 없고
2004년 10월 28일이라면 한국의 "부드럽게 쥐어짜기" 기술로 원숭이 배반포를 수립했다며 스스로 한국의 도움으로 가능했다고 인정했음에도 황우석과 한국의 기술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대신
영장류 개체 복제가 아니라, 복제배아 줄기세포 만드는 과정을 완전히 새롭게 삽입하고는, 핵치환 기술 부분에는 <gently squeezed or aspirated to expel the nucleus> - "핵추출을 위해 부드럽게 짜거나 빨아들이는" 기술이라고 표현을 약간 달리해 자신의 특허로 포함하고 있으며
복제배아 줄기세포까지 포괄적으로 설명한 특허내용 상 인간을 포함한다면, 황우석의 특허와 충돌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바로 그 시점에 인간을 포함한 것이다.
그런데 새튼은 2004년 12월 29일 다시 한 번 특허를 수정하는 데 이 때는 특허의 제목을
< METHODS FOR CORRECTIONG MITOTIC SPINDLE DEFECTS ASSOCIATED WITH SOMATIC CELL NUCLEAR TRANSFER IN ANIMALS > 에서
<CORRECTING MITOTIC SPINDLE DEFECTS IN SOMATIC CELL NUCLEAR TRANSFER>로
바꾸고 계속해 구체적 기술에 대한 언급이 없던 방추체 결함을 설명하는 그림이 결국 삭제된다. 제목에서 동물이란 문구와 황우석의 기술로 무의미해진 방추체 결함 부분의 그림은 삭제한 것이다. 여기까지의 잠정 결론.
본총수 여기서 흥분 한 번 한다. 새튼, 아무리 너그럽게 봐도, 특허 도둑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드는 아주 커다란 의문 하나.
핵치환 기술은 박을순에게서 배웠다고 하자. 그럼 인간 배아복제 배반포는 전세계에서 오로지 황우석만이 만들었는데, 그 배반포가 있어야 가능한 후반부의 배양기술은 대체 어떤 배반포로, 누구에게서 배웠는가. 더구나 피츠버그대가 있는 펜실베니아주는 아직 인간 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가 허용되지 않은 곳인데 말이다.
그러나 당장 특허와 관련해서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미주교포 사이트인 <모아미디어>의 섀튼 특허내용 분석(기사보기)에 의하면 2004 논문의 1번 줄기세포가 서울대조사위에 의해 처녀생식으로 규정된 것이 황우석 특허의 가장 결정적 취약점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연히 발생한 처녀생식에 어떤 특허가 가능하겠냐는 것이 미국 특허청 심사관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서울대조사위의 처녀생식 결론은 그 과학적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황우석의 특허보다 8개월이나 앞서 출원된 새튼의 특허와 황우석의 특허가 충돌해 분쟁이 발생할 시, 황우석의 특허를 무효화하는 데 있어 새튼 쪽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러한지, 분쟁 대비해 이 대목 철저히 사전 연구해봐야 할 부분이다. 동시에 과연 처녀생식이란 결론이 과연 타당한지, 서울대는 세계과학계와의 추가검증을 시도해봐야 할 필요성, 반드시 있다.
그런데 새튼은 한국이 이렇게 처녀생식이란 결론을 내고 검찰수사로 정신 없는 사이, 미 특허청에 자신의 특허를 받아들여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 데 그치지 않는다. 새튼의 특허는 유럽에도 출원되었다.
EU 특허국 사이트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출원 사실이 나온다.
공개일 2006년 1월 18일 이므로 그 출원일은 더 빠르단 소리다. 명백한 것은 이미 유럽에도 출원됐다는 사실. 만약 황우석의 특허와 충돌하게 된다면 이제 미국 외에도 유럽에서도 분쟁이 생기게 된 것이다.
정리하자.
새튼은 황우석팀에게서 기술을 배웠음에도 황우석을 제외하고 그 기술을 자신의 특허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은밀한 노력을 경주하는 중이다.
그리고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 배양기술에 관해, 공식적으로는 만들어본 적도 없는 그가, 그것을 특허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반드시 따져야 한다.
( 이 특허 쟁점과 관련한 세부적이고 전문적 비교는 차후 서플리먼트를 통해 논하기로 하자. )
다시 결별
이제 마지막으로 결별이 있기 얼마 전의 상황을 살펴보자. 우선 황우석의 연구 재개 이후 미국의 상황부터.
부시의 대선승리 후 미국에서의 줄기세포 연구는 오히려 탄력을 받는다. 레이건과 슈퍼맨을 기억하는 일반 대중정서에 힘입어 캘리포니아주는 대선과 함께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30억달러의 주 기금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는 법안을 미국에서 최초로 통과시켰으며,
세계 최초로 수정란 줄기세포를 수립했던 제임스 톰슨 박사가 있는 위스콘신주에서도 줄기세포 연구와 생명공학에 7억5천만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나섰고, 일리노이주 역시 줄기세포연구를 공식 인정하는 법 제정을 추진하는 등 대선 직후인 2004년 11월, 미국 내에서는 줄기세포 연구의 전환점이 마련된다.
분위기는 역전되어, 부시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결국 2005년 5월 24일 미 하원은 드디어 부시 대통령의 줄기세포 연구제한을 완화시키는 <드제티-캐슬>법안을 238대 194로 통과시킨다. 공화당 쪽 의원들이 50여명이나 부시의 정책에 반기를 든 덕분이다.
드디어 미국에서 줄기세포 연구의 일대 전기가 마련된 것이다. 2002년 12월 생명윤리위원회가 부시에게 권고했던 향후 4년간 인간복제에 관한 어떤 논의도 유예한다는 결정이 이때 드디어 뒤집어지기 되는 것이다.
이 투표 결과에는 겨우 4일 전, 2005년 5월 20일 사이언스를 통해 발표된 황우석의 논문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도된다. 우연이라면 기막힌 우연이다.
그리고 동시에 황우석의 영향력이 최대치가 되는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쪽에선 더 이상 황우석 자극제의 필요성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2005년 5월말 미국에서의 줄기세포 연구가 드디어 일대 전환점이 마련된 직후, 새튼은 2005년 6월 한국을 방문, 특허 지분을 요구한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이상 기류가 감지된 것은 논문을 발표한 지 한 달 뒤인 6월께다. 당시 회의 참석차 한국에 온 섀튼 교수가 미국인 특허변호사를 대동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회의 참석자들은 섀튼 교수의 의도에 대해 의아해했다"고 전했다.
섀튼은 이후 보다 분명하게 특허 지분을 요구했다. 10월 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섀튼 측은 한국 측 관계자를 만나 특허권의 50%를 요구했다. 섀튼은 이 자리에서 황 교수 논문의 공동 저자로 특허권을 가질 권리가 있으니 특허권의 절반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황 교수 측은 이를 거부했다. 연구의 특허권이 국가(서울대 산학협력재단)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 2005년 11월 29일 중앙일보 |
새튼의 요구에 대해 의아해했다는 건 새튼이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뜻이다. 더구나 새튼은 단순히 구두로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미국인 특허변호사를 대동했다. 그저 생각나서 한 번 이야기해 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하고 왔다는 소리다.
또 한편 새튼은 줄기세포 재단의 미국설립과 그 이사회 의장직도 요구한다.
줄기세포 허브와 함께 연구기금을 관리할 세계줄기세포재단(World Stem Cell Foundation)을 만드는 방안도 같이 논의됐다. 새튼 교수는 이 재단의 이사장 자리를 요구했다.
섀튼 교수는 이 재단 운영을 책임질 이사회에 다수의 미국인 과학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 재단을 미국에 두자는 의견도 냈다.
정부 관계자는 "섀튼 교수가 황 교수를 내세워 세계줄기세포 재단을 미국에 세워 캘리포니아 주정부 자금 등을 끌어들일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런 단계를 거쳐 섀튼이 재단과 허브의 주도권을 행사하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전했다.
하지만 황 교수 측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 정부 관계자는 "황 교수가 '외국 자본을 받아서 연구하기 싫다. 이것(연구 성과물)은 국가 소유가 아니냐'며 섀튼 교수의 제의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 2005년 11월 29일 중앙일보 |
그리고 새튼의 이 움직임이 있었던 6월은 마침 피디수첩에의 첫 제보가 시작되었던 달이이기도 하다.
줄기세포 재단의 미국설립이 무산되고 2005년 10월 3일 특허권 50%를 요구했다 거절 당한 새튼은 2005년 10월 11일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피디수첩과 인터뷰를 한다.
did you see all of eleven lines or just part of them?
줄기세포주 11개를 직접 다 봤느냐는, 그 의도가 너무나 자명한 이 심각한 - 자신이 교신저자였던 논문이 문제가 생긴다면 과학자로서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지 모르는 - 취재팀의 질문에 내내 묘하게 웃으며 대응했던 그가 이제 이해 간다.
이후 이 사건 관련 일지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 10월 19-23일 피디수첩의 미국취재 - 10월 26일 피디수첩 노성일 인터뷰 - 10월 31일 피디수첩 황우석 인터뷰 - 11월 6일 피디수첩 줄기세포 인수 시도 실패 - 11월 8일 노성일 난자 매매 시인 기자회견 - 11월 12일 피디수첩 줄기세포 인수
그리고는 드디어 11월 12일 새튼의 워싱턴포스트지를 통한 결별 선언.
이후 새튼은 황우석과 연락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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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새튼의 욕망이란 관점에서 바라 본 사태의 진행이었다. 한국 쪽의 욕망은 다음 편에서 다루자.
본 총수, 소설 싫어한다. 해서 사실관계에 기반해 딱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
첫 째, 특허 지키자.
잡소리 다 필요 없다.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은 바보 같은 소리 그만 씨부리고, 즉시 특허전문변호사들로 하여금 새튼 특허와의 분쟁을 준비하게 하라.
둘 째, 검찰은 새튼과 미즈메디의 관계를 확인하라.
미즈메디가 새튼과 체결 추진했다는 구체적 협약의 내용을 확인하고, 연구원들의 긴박한 영주권 신청 사유와 새튼 개입 여부를 확인하고, 지난 2월 3일 SBS가 보도한 새튼에게 보냈다는 줄기세포의 정체를 확인하고, 인간 복제배아 줄기세포까지 포괄하는 새튼 특허와 미즈메디의 상관관계를 확인하라.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의 연속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본 총수,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
딴지총수 ( chongsu1@ddanzi.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