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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기록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가슴속에 새겨졌다. 도전의 기쁨, 포기의 지혜, 자연의 경이로움, 그리고 함께 걷는 행복.
80대의 우리가 3,000m 고지를 걸었다.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이미 우리만의 정상에 올랐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도전하는 마음과 함께 걷는 사람이다."
돌로미티 케이블 카 트레킹 - 효도 관광 힐링 트레킹 제11화 별들의 산장 라가주오이
2025년 7월 28일
예약 취소가 만든 인연
어제 호텔 포르도이에서 택시비 80유로를 들여 파소 팔자레고(Passo Falzarego) 언덕길에 있는 산장, **콜 갈리나(Rifugio Col Gallina)**에 도착했다.
사실 이 산장에 머물게 된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연초에 알타 비아 1 코스를 구상하며 전설의 라가주오이(Lagazuoi) 산장을 예약하려 했지만, 1월인데도 이미 만원이었다. 할 수 없이 케이블 카로 오르내리며 하루를 보낼 계획으로 이곳 콜 갈리나를 예약했는데, 예약 취소가 안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1박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계획에 없던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연을 만나고, 뜻밖의 풍경을 만나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이것도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늘로 오르는 3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산장 앞 버스 정류장에서 약 1km 떨어진 라가주오이 케이블 카 정류장까지 버스를 탔다.
오늘도 날씨는 구름이 많았다. 전체 전망은 포기하고, 그저 날씨가 조금이라도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9시 30분경 케이블 카에 몸을 실었다.
2,105m의 파소 팔자레고 고개에서 2,752m의 라가주오이 산장까지, 케이블 카는 단 3분 만에 도착한다.
이 케이블 카는 특별하다. 중간 지지 기둥 없이 1,150m의 와이어 로프 하나로 연결되어 운행하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케이블 카 10대 안에 드는 유일한 공중 리프트라고 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광경은 아찔하면서도 황홀했다. 발아래로는 끝없는 절벽이, 눈앞으로는 구름 속을 뚫고 나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별들이 내려와 잠드는 곳
케이블 카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라가주오이 산장(Rifugio Lagazuoi)**이 나타났다.
1년 전부터 예약해야 겨우 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그 유명한 산장. 알타 비아 1 코스 3일 차에 필수적으로 숙박해야 하는 곳이며, 여름밤 무수한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천상의 잠자리라고 했다. 360도로 탁 트인 전망에서 바라보는 일몰과 일출은 일품이라 사계절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산장의 베란다에 서니 시야가 확 트였다.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세어보았다. 3,264m의 안텔라오(Antelao), 2,701m의 크로다 다 라고(Croda da Lago), 2,482m의 그란 디에도(Gran Diedro)... 구름 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3,167m의 펠모(Pelmo) 산도 있다고 했다. 2,575m에 있는 누볼라우(Nuvolau) 산장, 2,236m의 파소 지아우(Passo Giau) 언덕, 그리고 저 멀리 3,220m의 **치베타(Civetta)**까지...
반대편으로는 어제 다녀온 피츠 보에, 마르몰라다, 사소롱고가 보인다고 했다. 구름만 아니었다면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하지만 구름 속에 감춰진 산들도 나름의 신비로움이 있었다.
피콜로 정상을 향하여
우리는 라가주오이 정상인 2,778m의 **피콜로(Piccolo Lagazuoi)**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약 700m의 가까운 거리였고, 길도 안전했다. 놀랍게도 휠체어도 다닐 수 있도록 철제 도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누구나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감동적이었다. 산은 모든 이를 위한 것이라는 철학이 느껴졌다.
정상에는 예수님의 십자가상이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는 1차 대전 전몰자 추모비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2018년 트레비소 시에서 세운 추모 간판에는 독일어와 영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억하며"
백색 전쟁의 흔적
이것은 **'백색 전쟁(White War)'**의 흔적이었다.
1915년부터 1917년까지 3년간,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군이 이곳 돌로미티의 고산 지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눈 덮인 산에서 싸웠기에 '백색 전쟁'이라 불렸다.
라가주오이 정상 2,778m의 피콜로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리가 올라온 파소 팔자레고의 고갯길이 아득하게 보였다. 100여 년 전, 저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 젊은이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정상에서는 구름이 많아 전망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맑은 날이면 이곳에서 마르몰라다 산군과 사소롱고 산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고 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산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려올 때는 몰랐는데, 되돌아 올라갈 때는 상당히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옆으로 완만한 철제 길이 나 있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고도 정상까지 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다시 한번 따뜻한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천상의 맛, 치즈 스파게티
40분 만에 정상을 둘러보고 라가주오이 산장으로 돌아왔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몸을 추스렸다.
라가주오이 산장은 1965년 우고(Ugo)와 알다(Alda) 부부가 산악인을 위한 대피소로 만들었고, 현재는 그들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의 유지를 받들어 탐방객들에게 최상의 음식과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이곳 식당은 돌로미티에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우리는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한 입 먹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스파게티 위에 살짝 뿌려진 치즈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이렇게 맛있는 스파게티는 처음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주방장에게 어떤 치즈인지 물어봤다. 친절하게도 주방장이 직접 치즈 샘플을 가져와 보여주며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과 여행자를 향한 따뜻한 친절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해발 2,700m 고지에서 맛보는 이 스파게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선물 같았다.
천상의 포토존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대피소를 나와 정상 반대편 길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 쪽으로 내려갔다.
아찔한 포토존이 나타났다.
천 길 낭떠러지 위에 만들어진 전망대였다. 그곳에 서니 사방이 확 트인 절경이 펼쳐졌다. 하얀 안개 속에 가려지는 천상의 세계를 마음껏 체험했다. 구름이 산봉우리 사이를 흘러가고, 바람이 안개를 밀어내며, 순간순간 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자연과 함께 깊은 숨을 쉬었다. 80대의 나이에 이런 곳에 서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산 속의 전쟁, 지하의 터널
자연사 박물관에는 1차 대전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세계 1차 대전 중 이탈리아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이곳 고산 지대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가장 좋은 방어 수단은 산의 성벽이라고 판단한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이곳 절벽에 참호를 파서 진지와 진영을 만들었고, 피콜로 라가주오이를 천연 요새로 사용했다.
1915년부터 1917년까지 3년간, 고지대 전초기지를 연결하는 터널과 길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카이저예거슈타익(Kaiserjägersteig)'**이라고 불렀다. 터널 시스템의 길이는 약 1km에 달했으며, 완벽한 갱도였다고 한다.
이에 맞서 이탈리아군은 적의 진지를 정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아래에서 지뢰를 터뜨리는 것뿐이라고 판단했다. 마르티니 레지(Martini Ledge) 난간을 점령하고 산 아래에서부터 터널을 파고 올라가 오스트리아 진지 아래에 폭발물을 설치하고 폭파했다고 한다.
박물관의 비디오는 이 모든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었다. 어둡고 좁은 터널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과 두려움 속에서, 젊은이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원래 돌로미티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영토였으나 1차 대전 후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이곳 치베타와 라가주오이 산악에서 벌어진 전투의 흔적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기억하는 것의 의미
전쟁의 역사는 뼈아픈 과거다.
그 슬픔은 상처가 되어 영원히 남는 법이다. 하지만 후손들은 그 고난과 시련의 시기를 되돌아보며, 어리석은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곳에서 파소 팔자레고 고갯길로 하산할 수 있는 루트가 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코스라고 하니, 체력이 허락한다면 한번쯤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전쟁의 흔적을 걸으며, 평화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림으로 쓴 시
케이블 카로 하산하기 위해 승강장으로 가는 길에, 올라올 때는 보지 못했던 2층 카페 테라스와 '라가주오이 엑스포 돌로미티(Lagazuoi Expo Dolomiti)' 전시장이 있었다.
시간이 있어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그림으로 시를 그리는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줄리아 네리(Giulia Neri)**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단순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었다.
"자연의 노래(Song of the Nature)"
"각자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져가세요(From each take away what you need to live)"
"왜 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불완전함에 매력을 느끼는가(Why are we sometimes attracted to the imperfections of others)"
"어딘가에, 당신이 그것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도,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정확히 있습니다(Somewhere, even if you don't know it yet, there is exactly what you need)"
"때로는 천 마디 말보다 몸짓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Sometimes a gesture is more important than a thousand words)"
역시 화가는 그림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인 것 같았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선과 색으로 전달하고, 보는 이의 가슴속 깊은 곳을 울리는 재능.
특히 "어딘가에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정확히 있다"는 문구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 여행이 그랬다. 계획에 없던 곳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정확히 만났다.
또 하나의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후 3시 30분이 조금 넘어 케이블 카를 타고 하산했다.
오늘도 구름이 많아 만족스러운 광경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남겼다. 하지만 구름 속의 신비로움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완벽한 날만이 좋은 여행은 아니다. 불완전함 속에서 발견하는 것들이 더 소중할 때도 있다.
파소 팔자레고 고개에서 **카페 바 파니니(Cafe Bar Fanini)**에 들어가, 다음 행선지인 친퀘토리로 가기 위해 예약해둔 **호텔 라 바이타(Hotel La Baita)**까지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택시를 타고 어제 숙소 콜 갈리나에 들러 짐을 찾아 실었다. 짐을 맡겨준 산장 주인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했다.
호텔 라 바이타에 도착해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가득 채워진 하루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냈다.
별들의 산장 라가주오이에서 보낸 하루.
비록 별은 보지 못했지만, 전쟁의 상처와 평화의 소중함, 자연의 위대함과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을 배운 날이었다.
오늘의 기록
오늘의 이동 경로: 콜 갈리나 → 라가주오이 케이블 카 → 라가주오이 산장 → 피콜로 정상 → 산장 → 자연사 박물관 → 전시장 → 하산 → 카페 바 파니니 → 호텔 라 바이타
오늘의 운동량: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답다. 구름 낀 하늘도, 포기한 전망도, 계획에 없던 만남도. 모든 것이 여행의 일부다."
제12화 다섯 개의 탑 친퀘토리(Cinque Torri)
2025년 7월 29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
어제 40유로를 주고 라 바이타(La Baita) 호텔까지 왔고, 오늘도 40유로를 주고 친퀘토리 케이블 카 정류소인 **바이 데 도네스(Bai de Dones)**까지 택시를 탔다. 아침 9시 30분, 정류소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인데도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도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줄을 서서 1일권을 사야 했다. 5일권은 어제까지 다 사용했기 때문이다.
여행의 마지막 날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매일 아침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이 반복이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동시에 곧 끝나버릴 것이라는 아쉬움도 함께 찾아왔다.
앞에 있는 바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출발을 준비했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녹여주었다.
초원 위의 아베라우
리프트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니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아베라우(Averau) 산이 푸른 초원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마치 초원의 왕관처럼, 혹은 신이 초원에 살짝 올려놓은 조각품처럼 보였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초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보라색, 노란색, 하얀색... 한 송이 한 송이가 생명의 찬가를 부르는 듯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야생화들이 춤을 추었고, 그 싱그러움이 우리의 마음까지 맑게 씻어주는 것 같았다.
다섯 개의 탑, 친퀘토리
케이블 카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앞에 **친퀘토리(Cinque Torri)**가 모습을 드러냈다.
**친퀘(Cinque)**는 '다섯', **토리(Torri)**는 '탑'이라는 의미다. 다섯 개의 봉우리가 마치 하늘을 향해 솟은 탑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실제로 보니 정말 고대의 성곽처럼, 혹은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첨탑들처럼 느껴졌다.
친퀘토리는 백운암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특유의 옅은 회색을 띠고 있었다. 암석의 질감은 독특했다. 약한 암석 위에 세워진 봉우리들은 불안정한 상태로 서 있으며, 열의 응집력 결과로 생긴 암석의 균열과 풍화, 동결 작용, 그리고 다양한 환경 변화에 따라 오랜 세월 동안 형성된 봉우리들이라고 한다.
제일 높은 봉우리는 2,361m 높이의 **토레 그란데(Torre Grande)**다. 클라이머들이 특히 좋아하는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치마 노르드(Cima Nord, 북봉), 치마 수드(Cima Sud, 남봉), 치마 오베스트(Cima Ovest, 서봉).
다섯 개의 탑은 토레 그란데를 필두로 토레 세콘다(Torre Seconda, 제2탑), 토레 라티나(Torre Latina, 라틴 탑), 토레 쿠아르타(Torre Quarta, 제4탑), **토레 잉글레세(Torre Inglese, 영국 탑)**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탑들이 서로 다른 개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
클라이머들의 천국
친퀘토리는 파소 팔자레고 고개길과 파소 지아우(Passo Giau) 고개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여름에는 트레킹뿐만 아니라 클라이머들의 천국이며 기초 교육장으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어, 전 세계에서 온 클라이머들이 선호하는 명소라고 한다. 암벽 곳곳에서 로프를 매고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도전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겨울에는 라가주오이에서 콜 갈리나를 거쳐 친퀘토리, 아베라우 산을 넘어 크로다 네그라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어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사계절 내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돌로미티의 보석 같은 곳이었다.
계획을 바꾸는 지혜
우리는 오늘 처음 계획으로 친퀘토리 루프 트레킹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몸도 피곤하고, 앞으로 남은 장거리 트레킹을 위해 체력을 아껴야 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전망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힐링하는 것도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었을 때는 늘 정상을 향해, 목표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다. 과정이 목적지보다 중요하고, 때로는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푸른 초원과 파란 하늘이 펼쳐주는 아름다운 신의 정원 같은 이곳에서, 맑은 공기와 여유로운 마음으로 몽환적인 순간들을 즐기는 것.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었다.
만약 우리가 친퀘토리 루프 트레킹을 했다면, 3km의 거리를 약 2시간 동안 걸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참호, 벙커, 그리고 전망대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전쟁의 흔적보다 평화의 순간을 선택했다.
아베라우를 향하여
이곳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12시 56분경 왕복 1시간 거리인 아베라우 산장을 향해 완만한 오르막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보이는 아베라우 산 정상에 산장이 보였다. 경사길이 있어 조금 힘은 들지만, 그렇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주위의 풍경과 산들을 감상하며 초원 위를 걸었다. 2,229m의 바코 데 라 모냐(Beco de Ra Mogna) 산이 가까이에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초록 초원 위에 우뚝 솟은 암벽이 마치 대자연의 조각품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주변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야생화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구름 그림자가 산허리를 천천히 흘러갔다. 이런 순간들이 쌓여 여행이 되고, 추억이 되는 것이다.
드디어 아베라우 산장과 케이블 카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걸으면 휴식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2,648m의 아베라우 산장
조금 더 올라가자 드디어 2,648m의 아베라우(Averau) 산과 산장이 나타났다.
30분 만에 아베라우 산장에 도착한 우리는 시원한 맥주 한 잔씩을 주문했다.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가며 더위를 식혀주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마시는 맥주의 맛은 특별했다.
휴식을 취하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독일에서 온 가족, 프랑스에서 온 커플, 이탈리아 현지인들...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1874년의 발자취
산장 벽에는 흥미로운 글귀가 사진과 함께 새겨져 있었다.
"1874년 8월 10일, 비엔나 출신 리카르도와 저 산토 세베리노(Santo Severino)는 아베라우 산 정상에 최초로 도달했습니다."
150년 전,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장비로, 케이블 카도 없이, 이 험준한 산을 올랐을 그들의 용기와 열정이 경이로웠다. 우리는 그들이 개척한 길을 편안하게 걷고 있는 것이다.
선구자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이 절로 일었다.
알타 비아 1 코스를 내려다보며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알타 비아 1 코스의 일부인 파소 지아우(Passo Giau) 고개에 있는 **페다레 산장(Rifugio Fedare)**까지 리프트를 타고 내려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더 넓게 펼쳐진 초원과 멀리 보이는 산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곳을 많은 사람들이 트레킹 코스로 선택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리프트 아래로 알타 비아 1 코스를 걷고 있는 트레커들이 보였다. 배낭을 메고 묵묵히 걷는 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며칠씩 산장을 이어가며 걷고 싶다는 꿈을 꾸었지만,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아름답고 감사했다.
파소 지아우의 만남
페다레 산장에 내리니 지아우 고개를 넘어온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이들도 여기에 주차해 놓고 리프트를 타고 아베라우 산장을 거쳐 친퀘토리를 구경하고 내려가는 관광객들인 것 같았다.
그곳에서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40대 아들이 60대 어머니를 모시고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모자를 만났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금방 친해졌다.
"효자 아들을 두셨네요!" "You have such a wonderful son!"
서로를 칭찬하며 기념 촬영을 했다. 나이 든 부모를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함께 여행하는 자식들. 그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저 멀리 지아우 고개에도 헤어핀 도로(영미에서는 스위치백, Switchback이라고 부른다)가 구불구불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돌로미티의 모든 고개마다 새겨진 인간의 노력과 도전의 흔적들이었다.
다시 아베라우로, 그리고 하산
10여 분을 즐기다가 다시 리프트를 타고 아베라우 산장으로 올라갔다.
아베라우 산장 리프트에서 내려 친퀘토리를 바라보며 하산하는 길은 비교적 쉬웠다. 그다지 큰 경사지가 아니어서 걷기에 참 좋은 트레킹 코스였다.
내려오는 길에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자연 속의 꽃과 바람과 공기, 그리고 주위의 풍경... 그것은 힐링 그 자체였다. 친퀘토리의 남성적인 암벽과 초원의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함께 감상하며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이정표 팻말이 나왔다.
오른쪽으로 가면 알타 비아 1 코스의 아베라우 산장, 왼쪽으로 가면 알타 비아 1 코스의 친퀘토리 산장과 **스코이아톨리 산장(Rifugio Scoiattoli)**이 나온다는 표지였다.
돌로미티 트레킹에는 이런 이정표가 곳곳에 잘 만들어져 있어, 조금만 주의해서 확인하며 걸으면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었다. 선조들의 지혜와 후손들의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여유롭게 사진도 찍으며 내려왔다.
오후 3시경 리프트를 타고 내려와 바이타 바이 데 도네스(Baita Bai de Dones) 식당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내일 트레킹을 위해 어제 숙소 라 바이타 호텔에 들러 짐을 싣고, 알레게(Alleghe) 호수에 있는 호텔까지 도착했다.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을 위한 이동이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되새겼다.
계획을 바꾸는 유연함, 여유를 즐기는 지혜, 낯선 이들과의 따뜻한 만남, 자연이 선사하는 치유... 오늘 하루도 배움과 감사로 가득했다.
오늘의 기록
오늘의 이동 경로: 라 바이타 호텔 → 바이 데 도네스 → 친퀘토리 → 아베라우 산장 → 페다레 산장 → 아베라우 산장 → 친퀘토리 → 하산 → 알레게 호수 호텔
오늘의 운동량:
"때로는 계획을 바꾸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여정을 즐기는 것이, 정상을 정복하는 것보다 평화를 만끽하는 것이 더 큰 의미를 지닐 때가 있다."
제13화 올빼미 산 치베타(Civetta)
2025년 7월 30일
계획의 변경, 또 다른 기회
처음 계획대로라면 어제 저녁 이미 예약해 놓은 스타울란자(Staulanza) 산장에서 자야 했다.
하지만 택시로 이동하다 보니 다음 일정들을 고려했을 때 택시비가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았다. 고민 끝에 가까운 알레게(Alleghe) 마을에 있는 Hotel alle Alpi를 예약하고, 산장 예약금 60유로는 포기하기로 했다.
60유로는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여행은 때로 이런 선택을 요구한다. 완벽한 계획보다 유연한 대처가, 고집보다 지혜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어제 우리를 친퀘토리에서 여기까지 80유로에 태워준 택시 기사가 너무 친절했다. 내일 예약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방인에 대한 따뜻함, 그것이 여행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알레게 호수
아침에 일어나니 알레게 호수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광경에 30분간 호숫가를 산책했다. 독특한 바위 봉우리들이 안개 속에서 신비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다 했고, 에메랄드빛 호수는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알레게는 1771년 **몬테 피츠(Monte Piz)**의 산사태로 인해 바위 덩어리가 굴러와 물길을 막아 생긴 호수다. 재앙이 만들어낸 아름다움, 그것이 자연의 이중성이다. 주위의 마을들이 모여 형성된 이 호수 마을은 3,220m의 치베타(Civetta)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특히 치베타 산의 온통 붉게 물든 첨탑 같은 계곡의 파노라마는 마치 성당의 외관과 같다고 한다. 북서면에는 백운암으로 이루어진 1,000m 높이의 수직 석벽이 약 5km에 달하며, 이것은 알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암벽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아름다운 석벽이 알레게 마을을 감싸 안고 있으니, 이 마을의 축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호텔 베란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치베타 산 중앙에 있는 콜다이 산장에서 자야 하기 때문에, 짐을 31일 오후까지 호텔에 보관시키고 가벼운 배낭만 챙겼다.
치베타를 향하여
9시 30분경 호텔을 나와 5분 정도 걸어서 치베타 산으로 올라가는 알레게-피안 디 페체(Alleghe-Pian di Pezze) 케이블 카 탑승장에 도착했다.
9시 45분쯤 1일 편도권을 16유로에 사서 케이블 카에 올랐다. 치베타 산의 아름다운 푸른 평원,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1,470m 고도의 **피안 디 페체(Piani di Pezze)**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차가 올라올 수 있고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어 가족 나들이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부모들이 돗자리를 펴고 쉬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우리는 다시 1,922m에 위치한 푸른 전망대 **콜 데이 발디(Col dei Baldi)**까지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갔다. 내리자마자 바로 눈앞에 **펠모 산(Monte Pelmo)**이 장엄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3,167m의 펠모 산이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은 겨울철이면 스키의 시작점으로, 치베타 산을 따라 즐기는 스키어들의 고향이라고 한다. 1,000m 아래에 있는 알레게 마을도 저 멀리 보였다. 우리가 잤던 호텔의 앞쪽 부분이며, 치베타 산의 북서면에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의 도전
잠시 쉬었다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오늘은 **콜다이 산장(Rifugio Coldai)**까지 트레킹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거리와 고도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이다.
오늘의 일정: 콜 데이 발디 → 말가 피오다 → 알타 비아 1 합류 → 콜다이 고개 → 콜다이 산장 → 콜다이 호수
조금 내려가니 스타울란자 산장에서 자고 알타 비아 1을 걷고 있는 등산객들과 조우했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트레킹을 시작했다. 이들은 오늘 저녁 콜다이 산장이나 티씨 산장에서 1박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걷고 있었다.
케이블 카에서 출발해 펠모 산을 바라보며 경사진 자갈길을 30여 분, 1.4km를 걸었다. 폐업 중인 **말가 피오다 농장(Malga Pioda)**이 나왔고, 여기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섰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고도 상승이었다.
천안에서 온 두 선생님
20여 분을 걸어 올라가니 저 멀리 우리가 내렸던 케이블 카 승강장이 보였다. 이제 펠모 산이 우리의 왼쪽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알타 비아 1 코스 합류 지점에서부터 우리와 함께 이야기하며 걸어온 두 분의 한국 여성과 기념 촬영을 했다.
"천안에서 왔어요."
두 분 다 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빨간색 옷을 입은 분은 영어 선생님이고, 다른 분은 국어 선생님이라고 했다.
"말이 통하는 영어 선생을 따라 무조건 따라다녀요. 방학 때마다 같이 여행을 떠나거든요."
국어 선생님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함께 세계를 여행하는 두 친구. 아름다운 우정이었다.
"80대시라고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들의 눈빛에서 진심 어린 존경을 느꼈다. 우리도 그들의 젊음과 활기에 힘을 얻었다.
가파른 오르막, 끝없는 도전
콜다이 산장까지는 계속해서 가파른 산길이 펼쳐져 있었다.
힘들었다. 쉬엄쉬엄 산행을 했지만, 계속되는 경사길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고통이었다. 80대의 다리가, 폐가, 심장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아무리 힘들어도 극복하고 실행하고 나면, 그 성취감에 도취되는 만족감을 감출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매번 이렇게 힘든 체험을 소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발 한 발, 한 걸음 한 걸음.
오른쪽의 절벽 같은 암벽 위가 콜다이 산의 정상이고, 앞에 보이는 콜다이 고개에 산장이 있다. 저 멀리 목적지가 보이지만, 그래도 힘들어 자신과 한 순간 순간을 싸우며 인내하고 극복하며 트레킹을 계속했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니 계속되는 가파른 길들이 보기에도 아찔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동시에 몸 전체에 퍼지는 새로운 활력이 이 순간의 행복을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해냈다. 우리는 여전히 할 수 있다.
콜다이 산장, 환호의 순간
고개를 넘어서니 바로 목적지였다.
힘든 순간들이 지나가며 평안이 찾아오는 것처럼, 2시간 20분 만에 해발 2,132m에 위치한 콜다이 산장에 도착하니 환호의 함성이 저절로 나왔다.
"드디어 도착했어요!"
서로를 끌어안고 기뻐했다. 이 순간을 위해 견뎌낸 모든 고통이 값진 것이 되었다.
콜다이 산장에서 체크인을 하고 5인실을 배정받았다. 배낭을 옮겨놓고 피로한 몸을 달래기 위해 침대에 누워 잠시 피로를 풀었다. 산장 침대의 딱딱함도, 공동 침실의 불편함도 이 순간만큼은 천국의 침대처럼 느껴졌다.
리푸지오 아돌포 소니노
30여 분 휴식을 취하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니, 산장의 묘미를 백분 느낄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콜다이 산장의 정식 이름은 **리푸지오 아돌포 소니노 알 콜다이(Rifugio Adolfo Sonino al Coldai)**라고 한다. 1905년 문을 연 이 산장은 1930년 소니노 가문의 산악인 아돌포 소니노를 기리기 위해 이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산장에서, 우리는 그가 사랑했을 풍경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보이는 깎아지른 암벽이 치베타 산에 포함된 일부라고 한다. 왼쪽으로 보이는 산들이 콜다이 산의 정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넓게 펼쳐진 시야에 모두 높고 푸른 산과 암벽들로 채워져 있으니, 이 행복한 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산장 뒤편에서의 점심
허기가 느껴져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산장 뒷편 초지에 앉아 호텔 조식 때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꺼내 먹었다. 맑은 공기와 함께 먹는 샌드위치는 어떤 레스토랑의 식사보다 맛있었다.
땀 흘려 걸은 후 먹는 음식의 맛, 고도 2,000m에서 마시는 물 한 모금의 시원함, 그것이 산행의 특권이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왼쪽의 치베타 산과 오른쪽의 콜다이 산이 만나는 콜다이 고개(Forcella Coldai) 너머에 있는 콜다이 호수를 보기 위해 15여 분을 더 걸어 올라갔다.
치베타 산 기슭의 에메랄드
2,143m에 위치한 **콜다이 호수(Lago Coldai)**는 '치베타 산 기슭에 박힌 보석 에메랄드'라고 불린다.
그 이름이 과장이 아니었다.
치베타 산의 장엄한 암벽들이 호수에 비칠 때, 비할 곳 없는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에메랄드빛 호수는 고요했고, 그 고요함 속에 하늘과 산이 완벽하게 반영되어 있었다.
이곳도 알타 비아 1 트레킹 코스이기 때문에 많은 트레커들이 지나갔다. **티씨 산장(Rifugio Tissi)**이나 **바졸러 산장(Rifugio Vazzoler)**에서 1박하기 위해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이었다.
호수 맞은편 언덕 너머 절벽 아래가 바로 우리가 올라온 알레게 호수 마을이었다. 저렇게 멀리서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알펜글로의 전설
치베타의 석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백운암 직벽들이 하루 종일 다양한 색깔로 변한다고 한다.
**알펜글로(Alpenglow)**라는 대기의 광학 현상으로, 바위가 하루 종일 다양한 색깔로 물드는 멋진 자연 현상이다. 새벽과 해질녘에는 주황색이나 빨간색으로 변하고, 햇볕이 비치는 정오쯤에는 노란색으로, 야간의 달빛 아래에서는 흰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영혼이 머무는 공간'**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순수하고 깨끗하게 자연이 빚어준 걸작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콜다이 호수에는 커다란 날개와 검붉은 혀, 그리고 강렬한 붉은 눈을 가진 용이 살았다고 한다. 잘 날지는 않았고 둥지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했지만, 날 때면 언제나 페다이아 호수로 날아갔다고 한다.
용이 날 때에는 항상 어려운 일이 일어나곤 했다. 마지막 목격은 1771년 알레게 호수를 형성한 피츠 산의 산사태 직전이었다고 한다.
전설일 뿐이지만, 이 신비로운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니 용이 정말 있었을 것만 같았다.
저녁노을과 공동 침실의 배려
산장으로 내려오면서 들에 핀 야생화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6시경 산장에서 저녁을 주문했다. 이곳 특산품이라는 요리는 버섯과 감자와 해산물을 치즈에 버무린 음식이었다. 담백하고 고소해서 샐러드 믹스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침대에 누웠다. 오늘 일과를 마무리하며 단잠을 청했다.
5인 침실이라 나중에 40대 트레커 2명이 도착했다. 서로 조용히 지냈는데, 그들은 우리가 불편한지 카페로 내려가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가 잠든 후에 올라와 2층 침대에서 잤다. 그리고 새벽 일찍 일어나 출발했는지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나이 든 이들을 배려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씨가 고마웠다. 말 한마디 없이 전해진 따뜻한 배려였다.
올빼미 산, 치베타
돌로미티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치베타(Civetta)**는 '어린 부엉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8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치베타는 돌로미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트레킹, 겨울에는 스키로 사계절 언제나 붐비는 곳이다.
'올빼미 산'이라는 별명은 산의 북서면이 중앙에 머리를 두고 두 날개를 활짝 편 산세의 모습이 마치 올빼미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로 멀리서 보면 정말 거대한 올빼미가 날개를 펴고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여름이면 치베타 산을 트레킹하는 23.5km의 **트랜스 치베타(Trans Civetta)**가 유명하다고 한다. 2025년 7월 20일 9시에 23.5km의 치베타 산악 트레킹 대회가 올해로 43회를 맞는다고 한다.
800커플만 참가 가능하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커플 2인조 트레커들만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코스는 고도 705m의 **우스톨라데(Ustolade)**에서 고도 1,469m의 **피아니 디 페체(Piani di Pezze)**까지로, 치베타 산을 종주하는 코스로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냥 트레킹하기도 힘든 코스인데, 이렇게 트레킹 대회까지 열면서 산을 즐기는 유럽 사람들의 일상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들의 젊음에 갈채를 보내고 싶었다.
오늘의 기록
오늘의 이동 경로: 알레게 호텔 → 피안 디 페체 → 콜 데이 발디 → 말가 피오다 → 알타 비아 1 합류 → 콜다이 산장 → 콜다이 호수 → 콜다이 산장 숙박
오늘의 운동량:
"가장 힘든 오르막 끝에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치베타의 석벽이 빛나는 호수에 비칠 때, 우리는 영혼이 머무는 공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