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 물에도 빠질 수 있다
송 희 제
인간의 여정에서 미래의 삶은 예측할 수가 없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태어날 때 각자의 운을 가지고 태어난다'라고 한다. 나는 운명론자는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며 개척하면 삶의 자리는 어느 정도 바뀔 수도 있다고 본다.
젊은 시절에 나에게는 다양하고 멋진 친구들이 가까이 있었다. 그중에 한 친구는 나보다도 키도 크고 얼굴도 동안이며 목소리 톤도 좀 맑고 높아 눈에 띄었다. 당시 잘 나가는 은행원으로 같은 사내 결혼하여 그 친구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 남편도 성실하고 과묵하며 참 가정적이고 애처가였다, 자녀들도 남매였는데 둘째 딸아이는 나의 장남과 동갑이었다. 당시에 아파트도 그리 많지 않을 때 큰 아파트에서 화려하게 살았다. 그 남편은 대인관계도 좋아 남들에게 진실하여 신뢰를 주는 인상이다.
그 후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들에게도 예기치 않은 일이 닥쳐왔다. 2000년도 전후에서 IMF 금융 위기가 닥쳐왔을 때다. 본인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금융 위기가 닥쳐 대전에서 잘 나가던 은행이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그 당시 퇴직금으로 지점장은 최소 4억에다 약간의 플러스가 있다고 들었다.
그때 웬만한 집은 그런 거금을 만질 수도 없었다. 한동안 그 남편은 돈과 씨름하는 직업에서 해방되었다고 휴식 시간을 즐겼다. 그 귀한 시절에 가족과 해외여행도 다녀 주변에서 부러우면서도 불안했다. 거기에 자주 드나들며 거액을 거래하는 고객 건설 업자와도 절친하여 의형제처럼 지냈다. 그 고객은 예전에 그 남편이 재직 중일 때 잘 도와주어 자기 사업이 번창했다고 그 고마움에 답례를 과분하리만치 했다. 국내외 골프 여행도 자주 하여 은행 업무에 찌든 심신을 한동안 휴식으로 충전했다.
그 후 그 퍽 의리 있어 뵈는 그 업자와 더 돈독한 의형제처럼 지낼 때다. 전남 신안 앞 바다 가까이에 섬이 있는데 거기를 함께 사서 같이 새로운 사업을 하자고 제의했다. 급매물로 싸게 나와 손타기 전에 빨리해야 한다고 서둘렀다. 순수하고 곧은 성품으로 의형제로 오래 사업해 온 그의 말에 한치의 여지도 없이 동의하였다. 자금도 자기가 외국에도 벌인 일이 있어 거기서 돈이 나오는 대로 자기가 반절씩 하기로 했다. 우선은 이 남편 자금으로 다하고 이자로 그 당시 500만 원씩 6개월쯤 받아 든든하게 생활비로 여유 있게 썼다. 그 후부터 이자도 매달 느려지다 잘 안 나오며. 여러 이유와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친구네는 이자로 받아쓰던 생활비가 끊기게 되었다.
그때 내가 이웃 아파트서 살던 때다. 애들도 또래가 비슷하여 백화점에서도 자주 만났는데 명랑하던 그녀 얼굴이 점점 초조하고 어둡게 변해갔다. 그 남편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왔던 그 옛 고객이 큰 사기꾼이란 걸 뒤늦게야 안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을까? 전직 은행 지점장이 몇십 년 거래하던 거물 고객한테 전 재산을 큰 사기를 당하다니! 강직하고 업무에만 충실한 성품을 악용한 파렴치한이 등잔 밑에 있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다른 곳에도 그렇게 접근하여 수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벌어진 것이다. 그 범인은 이미 외국으로 도망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 친구는 자녀가 중. 고교 시절 낼 공납금이 밀리어 내게 울먹이며 여러 번 하소연하기도 했다. 너무도 딱하여 몇 번이나 애들 학교에 낼 돈을 대납해 줬다. 그랬더니 설 명절에 날달걀을 여러 판으로 내게 주어 날 당황케 했다. 그 사기꾼은 이혼하고 해외로 도망가고 그 부인이 가게서 아르바이트하여 죄송하다며 가게 달걀을 많이 줬다고 내밀었다. 그때 우리 아파트 통로 이웃들과 달걀 나눔을 실컷 하기도 했다. 그 후도 그 친구는 마음 여린 내게 자주 도움을 청했다.
한동안 뜸하여 안정되었나 했더니 그 후도 가끔 내게 SOS를 쳐서 나를 당황케 했다. 집도 다 정리하고 신혼 때 살던 옛 비래동 아파트에 반전세로 살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내게 한밤중에도 갑자기 전화가 왔다. 장남이 아파 병원에 있는데 병원비를 정산해야 한댔다. 우선 살려야 하는데 그 돈이 없다며 울먹였다. 그 옆에 남편도 있는 듯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몹시 당황하고 놀랐지만, 상황이 급박한 듯했다. 그 돈을 다는 못 해주고 반절만 보내고, 나머진 남편보고 구해달라고 했다.
그 30분쯤 후에 또 전화가 왔는데 아무도 도와주려는 반응이 없다고 했다. 나까지 그 친구 내외의 처사와 인간관계까지 속상하고 얄궂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친구 전화를 끊은 후 잠이 오지 않았다. 세상이 그렇게 야박해도 그대로 잘 수가 없어 잠든 남편까지 깨워 사정을 말해 결국 전액을 다 송금 해줬다. 난 아예 받을 생각은 접고 보낸 것이다.
그 후 몇 달이 흘렀다. 그 친구가 자기 남편이 자기 얼굴 체면 다 던지고 인근 아파트 경비를 한댔다. 한꺼번에 다 못 갚고 매달 조금씩 갚겠다고 하였다. 아들은 그때 잘 퇴원하여 그때도 몸을 달래며 지낸다고 했다. 난 그 돈은 난 다 잊었으니, 집안에 별 탈이 없기를 바란다고만 했다. 그 친구가 그래도 내가 잊을 수 없는 늘 고마운 은인이라며 갚는다고 우겼다. 그 경비 월급도 적은데 생활비도 힘든 상황에서 쪼개어 내게 그 돈을 갚겠다는 말만 들어도 반은 갚은 듯했다. 자존심도 있을 테니 두 달만 내 통장에 입금케 하고 아예 안 받을 셈으로 그 통장을 없애버렸다. 아예 빌려준 내 돈은 딱한 그녀를 도왔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잘 나가던 그 친구네가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본의 아닌 세상사에 시달리는 게 너무 안타깝고 답답했다. '접시 물에도 빠질 수 있다.'라는 속담이 어처구니없는 말이 아닌 것 같다. 모두 건강하게 그 친구네가 잘 풀려나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