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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
교회는 구름 위에 떠 있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교회는 집들과 집들 사이에, 마을과 마을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저 무인도의 빛이니…. 산 속의 소금이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의 빛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의 선한 행위를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닙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죄 많은 이 세상을 떠나 깊은 산으로 들어가서 절벽이나 바위에 홈을 내고 거기에 앉아 생명을 걸고 경건 훈련하는 성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조금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영성은 성장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태양이 세상을 위하여 존재할 때 그 가치는 한이 없지만, 태양 혼자 있으면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위해 하나님께 택함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고, 교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책임감을 갖고 세상의 사회 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만일 한쪽 날개가 부러져 날개가 한쪽뿐인 새가 있다면 그것은 비극입니다. 보기에도 얼마나 딱하겠습니까? 새는 두 날개를 가지고 있어야 아름답고, 새답게 날개치며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성도인 우리가 교회 안에서만 충성하고 교회 안에서만 바로 살고 사회를 등한시하면 마치 한쪽 날개가 부러진 새와 같습니다. 교회 생활도 잘 해야 하지만, 사회 생활도, 국가 생활도 사회인으로서, 국민으로서 잘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의 사명을 다하는 길이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14장 18절에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올곧게 바로 믿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동시에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 생활이 아닌 사회 생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국가 안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은혜를 받아 일등 국민, 모범 시민이 되는 역사가 이 시간에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회 생활을 잘 하려면, 먼저 인간의 모든 제도에 순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포장이라는 말은 표창, 상을 주는 것을 말함)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본문 13-14절)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정부를 거스르는 것, 그것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데모하는 것, 그것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정부의 제도에 복종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로마서 13장 1절에서 2절에도 말씀하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권세자들을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됩니다.
물론 정부가 하나님의 법을 다 따르는 것이 아니고, 국가가 하나님의 명령을 100%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국가 제도에 복종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우상을 섬기는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허락하셨고, 세우셨고,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그 나라의 총리와 도지사들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아하수에로 왕도 하나님을 섬기는 왕이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그의 아내가 되게 하시고, 모르드개를 그 나라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그 왕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셨습니다.
물론 다윗과 같은 의로운 사람을 역적으로 몰고, 하나님의 사람 85인을 죽이고, 악정을 베푼 사울 왕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제도에 순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금도 잘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3장 6절에서 7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를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세금도 잘 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금을 잘 내지 않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경영자의 사업체에 세무 사찰을 하러 간 국세청이나 세무서의 직원이 '아이구, 시간 낭비만 했네. 아주 철저하게 세금을 다 냈구나. 앞으로 예수 믿는 사업체에는 사찰하러 갈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감탄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기업주가 이중 장부를 만들어 세금을 속여서 낸다면 그 사람은 좋은 국민도 아니고, 좋은 교인도 아닙니다.
마태복음 17장 24절에서 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세금을 내셨습니다.
가버나움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어떤 일로 집 밖으로 나갔는데, 세금 징수원이 베드로에게 와서 "너의 선생님은 세금을 안 내시느냐?"하고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내실 거다."라고 대답한 후에 집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세금에 대해 보고하려고 하니,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집 안에 계셔도 밖에서 일어난 상황을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령하셔서 양곡교회의 모든 상황을 다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령하시고 전지전능하셔서 여러분의 가정 상황을 다 아십니다. 모르시는 것이 없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임금들이 자기 아들들에게 세금을 받느냐? 타인들에게, 국민들에게 받느냐?"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가 세금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임금님들이 아들에게 세금을 받으시겠습니까? 타인에게 받으시겠지요."
"그래, 그렇지. 그러면 나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실 필요가 전혀 없는 분이십니다. 성전세든 국세든 내실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모든 왕들에게 세금을 받으실 분이시지만, "베드로야, 바다에 낚시하러 가거라. 첫 번째로 물려오는 물고기의 입을 열면 거기에 한 세겔의 돈이 있을 것이니, 너와 나를 위해 세금을 바쳐라. 괜스레 이런 일로 오해받지 말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대로 바다에 가서 낚시를 하니 신비롭게도 물고기 입에 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세금을 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금을 내지 않으셔도 되는데, 세금을 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교회에서도 십일조를 잘 드리고, 할 일을 잘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을 받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도가 나서 사업을 끝내기로 작정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새벽기도를 한 지 한 달만에 특별한 은혜를 받고 사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사업이 점점 잘 되어서 십일조가 오십만 원에서 백만 원, 이백만 원, 삼백만 원, 사백만 원으로 자꾸 늘어나더니, 지난 달에는 사백만 원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때에도 사업이 번창해서 이 달에는 칠백만 원을 드렸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십일조를 잘 드릴 때 복을 받는 것처럼, 세금도 잘 내는 회사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언론사들이 지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렇게 동시에 모든 언론사를 세무 사찰하는 경우는 잘 없으니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금을 잘 내고 공정했다면 이러한 때 얼마나 떳떳하겠습니까? 어쨌든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니 이런 아픔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십일조도 잘 드릴 때 복을 받지만, 나라의 세금도 바로 낼 때 우리가 담대하게 사업할 수 있고, 할 소리도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를 넘어뜨릴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는 세금 문제에도 깨끗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교통 법규도 잘 지겨야 합니다.
어제 밤에 저와 제 아내가 크게 다칠 뻔했습니다.
저는 시간이 아까워서 잠자는 시간과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한 전 시간을 교회 사역을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쏟고 있습니다. 어쨌든 잠자는 시간과 운동하는 시간은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건강해야 하나님의 일을 강건하게 하고, 잠을 자고 운동을 해야 제 건강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잠을 자는 것도 운동을 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어제 하루 종일 서재에서 말씀을 준비했기 때문에 1000m도 걷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늦은 밤이지만, 아내와 함께 운동장에 가서 40분쯤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보행 신호등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오토바이 한 대가 미친 듯이 질주했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천천히 걷고 있어서 망정이지, 뛰었다면 분명히 오토바이에 부딪쳤을 것입니다. 모든 차들이 신호에 따라 정차해 있으니 그 오토바이가 오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데, 그렇게 쏜살같이 달리면 어떻게 합니까? 따라가서 혼내주고 싶었지만, 제가 아무리 잘 달린들 그렇게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어떻게 따라가겠습니까? 어쨌든 참 나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저를 치어서 제가 다쳤다면 그 사람인들 편합니까?
법을 지키지 않으면 남도 다치고 자기도 다칩니다. 법을 지키면 남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자신도 보호를 받습니다.
우리 모두 준법 정신이 투철해야 됩니다.
그러나 정부 제도, 국가 제도, 국가의 법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은 따를 수가 없습니다.
정부에서 학교를 비롯한 모든 공공 장소에 단군 상을 세워놓고 모든 학생들과 공무원들에게 거기에 엎드리라고 하면 그것은 할 수가 없는 일인 것입니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큰 우상을 만들어 바벨론 도의 평지에 세우고는 모든 장관, 방백, 도지사 등 공직에 있는 사람들을 다 모아 놓고 명령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할 때 우상에게 엎드려 절하라. 그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지 않는 사람은 풀무에 집어 넣겠다."
모든 만조백관이 그 우상 앞에 절하는 그때에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꼿꼿이 서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왕의 진노로 그들은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에 던져졌습니다. 그들을 풀무에 던지던 군사들이 불길에 타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 안에서, 그 불길 속에서 살아서 산책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더구나 세 사람을 던졌는데,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네 사람이 불길 속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 분이 누구입니까? 대부분의 주석자들은 예수님이라고 하는데, 어떤 주석자들은 천사라고도 합니다.
어쨌든 느부갓네살 왕이 깜짝 놀라 말합니다.
"우리가 셋을 넣었는데 어찌 넷이냐? 한 분은 하나님의 아들, 신의 아들 같구나."
그리고 아구까지 가서 "사드락, 메삭, 아베느고야!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나오니, 옷도 타지 않았고 머리카락 하나도 그슬리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천사를 파송하셔서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사도행전 4장을 보면, 앉은뱅이를 고친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니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습니다. 병 고치는 것이 예수를 믿는 목적은 아닙니다. 구원 받기 위해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다 보면, 병이 낫게 되는 일이 많은데, 병이 나으면 복음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한 학생이 피부병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약을 발라도 낫지 않고, 약을 먹으면 간이 상하고, 약을 먹지 않으면 피부가 갈라지고,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학생이 저랑 함께 기도했는데, 그 자리에서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러니까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까지 다 교회에 모시고 나왔습니다. 그분들이 지금 믿음 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병이 낫게 되면 이렇게 전도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앉은뱅이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암 세포가 타버리기를 바랍니다.
많은 병자가 일어나면 전도 문이 그만큼 더 많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40년간 앉은뱅이로 산 사람을 일으키니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 관원들이 질투해서 그것을 막으려고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 놓고 쐐기를 박았습니다.
"앞으로 예수 이름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라."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입이 두 개로 서로 다르지만, 성령으로 똑같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 어느 것이 옳은가 판단하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법이라도 하나님의 법을 거스르면 따를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국가 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국가의 법이나 제도에 순종해야 하지만, 국가가 하나님의 법을 파괴할 때는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 사회 생활을 잘 하려면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해서 모든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변론을 그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줄 알고 함부로 말합니다.
시편 14편 1절에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시편 53편 1절에도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왜입니까? 세상에서 제일 무식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부모 없이 자기가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부모 없이 자기가 있다는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장 어리석은 사람, 미치광이 같은 사람은 이 세상이 만드신 분이 없이 그냥 있다는 사람입니다.
시계는 시계 회사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우주를 만드신 분이 어떻게 계시지 않겠습니까?
한 천문학자 교수님이 사랑하는 그의 제자를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도해도 그 제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참 믿지 않습니다.
"자네는 왜 하나님을 믿지 않나?"
"왜 믿어요?"
"이 사람아, 이 우주를 하나님께서 만드셨는데 그분을 안 믿어?"
"아이구, 무엇이 그래요? 우연히 생긴 것이지, 우주를 하나님이 만들었다고요?"
교수님이 제자를 전도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태양계, 소우주를 만들었습니다.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까지 만들었습니다. 스위치를 넣으면, 지구는 태양을 돌고, 달은 지구를 도는 우주를 만들어 놓고 제자를 불렀습니다. 교수님의 연구실에 들어온 제자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우주 모형을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야! 굉장하네요. 선생님, 이것 만드신다고 고생 꽤나 하셨겠네요."
"아니야, 나도 놀라는 중이야. 오늘 연구실에 들어와 보니 우연히 생겨 있었어"
"거짓말 마세요. 어떻게 이게 우연히 생겨요? 선생님께서 만들어 놓으시고는 아기처럼 그렇게 놀리세요?"
"야, 이 사람아. 말 잘했다. 이런 작은 우주도 우연히 생기지 못하고 내가 만들어야 있는데, 이 거대한 우주가 어떻게 우연히 있단 말인가?"
그때 그 학생이 깨닫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참 어리석습니다. 그런 사람은 부모 없이 자기가 태어났다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함부로 말합니다.
작년에 한 방송국에서 어느 교회 지도자의 부끄러운 죄를 마구 공개했습니다. 증거도 없는 일을 확인도 해보지 않고 공개했습니다.
그 방송기자는 참 어리석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줄 알고 그런 것입니다. 그 방송국 사장도 어리석은 사람, 무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줄 알고 그런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을 안다면, 교회 지도자가 혹 실제로 그런 수치스러운 일을 행했다 해도 그것을 덮어서 하나님 교회가 손해 보지 않게 할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가 죄 지었다고 알려지니 얼마나 많은 새 신자들이 실망하고 주저앉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새 가족들이 낙담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손해보시고, 하나님의 교회가 손해보는 말을 하나님을 믿는 기자가, 하나님을 믿는 방송국 사장이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모든 방송국의 사장과 기자들이 예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맙시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줄로 알면 교회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교회 지도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게 됩니다.
교회의 지도자나 교인들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마귀의 사람인 줄로 알고 멀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교인들의 선행은 자랑하고 부끄러운 일은 덮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지키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하나님이 없는 줄로 아는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많이 했습니다.
'교회에는 식인종들이 모인다.'
성찬식을 할 때 '이것은 주님의 살이다. 이것은 주님의 피다.' 하고 먹으니, '교인들은 식인종이다. 모일 때마다 사람을 잡아서 사람의 살을 뜯어먹고 피를 마시는 식인종들이다.'라고 악담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면 자기 아내나 남편을 더 귀히 여기고 가정을 더 사랑하게 되는데, '교인들은 가정 파괴자다. 교회에 다니면 교회만 알고 가정을 파괴한다.'고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또 누구든지 믿음이 들어가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가 되는데, '교인들은 반국가적이고 나라를 파괴하는 자들이다.'라고 했습니다.
왜입니까? 그 당시 로마에서는 황제를 우상처럼 숭배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교인들이 그것을 막았습니다. 그러니 '교인들은 국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이런 저런 말을 퍼뜨렸 던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도 자기들의 왕을 천황으로 섬기면서 신사 참배를 하도록 강요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헛된 소문을 퍼뜨리니 이런 것들이 전도하는데 악재가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그냥 두면 안 된다. 오히려 선으로 악을 이겨야 된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선을 많이 행함으로 비방하는 자들의 입을 막아라.'고 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선을 많이 행할 때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악을 행하고 추태를 부리면 전도의 문이 닫히게 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전도의 문이 활짝 열려서, 결국 로마인의 98%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처럼, 우리 나라도 불원간에 예수님의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가을 사과나무에 사과가 빨갛게 주렁주렁 많이 열리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와 같이 그런 선행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간단합니다.
바다의 염분이 평균 2.8%인데, 어떤 곳은 불과 0.7,8%이고, 홍해 쪽은 조금 더 많답니다. 대서양도 염도가 높은 편이랍니다. 바닷물이라고 염도가 다 같은 것이 아니라 바다마다 염도가 다른데, 어쨌든 바닷물 100개 중에 두 세 개에만 소금기가 들어가도 짠맛이 나고, 바닷물이 썩지 않고, 물고기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교인들이 2%, 3%만 되어도 교인들이 선을 행하는 소금과 빛이 되면, 우리 나라는 살 만한 나라, 복 있는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25%, 30%의 국민이 예수를 믿으니, 천 몇 백만 명이 다 소금처럼 선을 행하고 빛으로 빛을 발하면, 우리 나라는 세계 최대 강대국이 될 줄로 믿습니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불만 켜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제가 기회 있는 대로 선을 많이 행하여, 불신자들이 교회에 대해 비방하는 말을 딱 끊어버리고 "야! 교회는 선한 단체이구나."하게 된다면, 복음이 잘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잘 하려면 '뭇 사람을 공경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
뭇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인데, 믿는 형제끼리는 사랑하고,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은 공경하라(respect)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악하게 사는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가 멸시할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은 모두가 귀합니다.
또 그 사람이 언제 예수님을 믿게 될지 우리는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인지, 아닌지를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2부 예배를 마치고 나가니 한 여 집사님이 "목사님, 우리 아저씨예요."하며 감격해 했습니다. 아저씨라고 해서 저는 이웃집 아저씨인 줄 알았더니, 집사님의 남편이었습니다.
우리 여 집사님은 처녀 때부터 믿음 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그 남편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눈물로 기도하고 애써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처음으로 아내를 따라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고는 "내가 왜 이렇게 늦게 교회에 왔나?"하시며 등록을 하시고 오늘도 오신 것입니다. 아주 점잖고 마음씨도 좋아 보이시는 분이 아내가 그렇게 전도를 하는데도 왜 20년 간이나 교회에 나오지 않으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교회에 오셨으니까 우리가 왜 진작 나오지 않으셨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분이 교회에 오시기 전까지는 사실 저도 '그 집사님의 남편이 예수님을 믿겠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믿게 하셨습니다.
어떤 여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남편이 술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아파트 문을 쾅쾅 차면서 소리쳤습니다.
"빨리 문 열어! 빨리 문 열어!"
여러분, 술기분이니 그런 행동을 했지, 제 정신에 어떻게 그렇게 했겠습니까?
어느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이사를 가게 되면, 요즘 남자들은 이삿짐을 싣기 전에 차에 먼저 올라가 있답니다. 아내가 짐은 갖고 가도 남편은 버리고 갈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참 슬픈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문을 열고 나가서 친절하게 맞이했습니다.
남편이 또 소리쳤습니다.
"술상을 보아라!"
떡, 고기, 과일 등을 푸짐하게 차려서 술상을 내어 놓고 말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남편의 친구들이 감탄을 했습니다. 만일 자기들이 밤 12시 넘어 집에 가서 이런 행동을 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는데, 이 부인은 "예, 예." 하고 정성껏 차려오니 감격을 한 것입니다.
"부인. 이렇게 늦은 밤에 찾아온 무례한 저희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술상까지 봐 오십니까?"
"예, 이유가 있으니 그저 술이나 맛있게 드세요."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아이구, 제가 이유를 말씀드리면 술맛이 떨어질 테니 그냥 드세요."
"아이구, 그러지 말고 이유를 꼭 말해 주세요."
"저는 교회 집사입니다. 제게 가장 소중한 분은 제 남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남편도 예수님을 믿게 하려고 10년간 기도하고 전도했습니다. 남편과 같이 교회 생활을 귀하게 하다가 천국에도 같이 가서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서 10년간 전도했는데, 제 남편은 갈수록 더 세상으로 치달아 교회와는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도 포기했습니다. 조금 외로워도 천국에는 혼자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렇게 술을 좋아하는데 지옥 가면 술이 있겠습니까? 고기가 있겠습니까? 과일이 있겠습니까? 너무 안타깝고 불쌍해서 그저 남편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차렸으니 맛있게 드세요."
그 말을 듣고도 술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술기분이지만, 그 남편이 찔림을 받고 그 다음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은 남편을 포기했어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아, 그분은 안 돼." 해도, 하나님께서는 아닙니다. 그 사람 중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고 고민하는데, 예수님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바울아,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다."
그래서 바울이 1년 6개월 동안 거기에서 복음을 전해 고린도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깡패, 몸을 파는 여자,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들이 언제 예수님을 믿게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나쁜 사람, 악한 사람도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을 성경에서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악하게 사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도 선한 마음이 있습니다. 남의 집을 터는 깡패나 강도도 아주 가난한 사람을 보면 도와 주기도 합니다. 몸을 파는 여인도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동정하고 도와 주는 선을 행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사람 같잖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선이 있습니다.
아주 포악한 한 사형수, 사람을 죽여 사형 선고를 받은 아주 포악한 사형수, 그가 사형을 당할 때까지, 죽을 때까지 16주 동안 감옥에서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그의 어머니에게 편지만 썼습니다. 자기가 죽은 후 20년간 한 달에 한 통씩 어머니가 편지를 받을 수 있도록 효성을 심어서 240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20년간 매달 한 통씩 어머니에게 편지를 부쳐 달라는 부탁을 친척들에게 하면서 애원했습니다.
"71세 된 내 어머니께 내가 사형을 받았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세요. 20년 징역 언도를 받은 것으로만 말해 주세요. 그래야 어머니가 희망을 갖고 사십니다."
그리고 그는 사형장으로 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20년간, 91세까지 살아 계실지는 모르지만, 편지를 받을 때마다 아들이 살아 있는 줄로 알고 희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 사형수의 효성이 얼마나 지극합니까?
그러니 우리는 누구나 다 귀히 여겨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귀히 여기고 존경해야 합니다.
며느리들이여, 뭇 사람을 공경하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으니, 시어머니가 아무리 구박해도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애지중지 기른 아들을 여러분에게 빼앗겼으니 억울해서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들도 조심하세요. 너무 지나치면 며느리 손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신안 앞 바다의 한 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마을 송씨 가문에 며느리를 너무 심하게 구박하는 한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의 구박을 견디지 못한 며느리가 집안 식구들이 일하러 간 사이에 명태국에 독약을 넣어 점심상을 차렸습니다. 그 국을 먹은 시어머니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도망을 갔는데, 배가 없어 멀리 갈 수 없으니 바닷가에 있는 산 속의 작은 굴에 들어가 숨었습니다. 낮에는 그 굴에 숨어 있고, 밤이 되면 나와서 조개를 주워 먹으며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시어머니를 죽인 며느리를 찾아 온 섬을 다 뒤졌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바닷가를 자꾸 왔다 갔다 하는 그 집의 개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그 개를 따라가 보니, 작은 굴 안에 시어머니를 죽인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며느리는 동네 사람들의 손에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또 한 마을에는 며느리 셋을 쫓아낸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결혼하면 며느리를 쫓아내고, 또 결혼하면 쫓아내고, 그래서 며느리를 세 번이나 쫓아낸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가씨들은 시어머니를 잘 만나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며느리를 세 번이나 쫓아낸 시어머니가 있는 집에 누가 시집을 가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은 무섭습니다. 세상에! 아내를 세 번이나 잃은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도 있었습니다. 부모가 그렇게 말려도 그 여자는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시어머니를 잘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시어머니도, 이번에 결혼해 온 며느리도 다른 며느리처럼 집을 나갈까 봐 조심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니 본색이 드러나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냇가에 빨래하러 가는 며느리를 냇가까지 따라와서 잔소리를 했습니다.
"얘야, 빨래할 때는 반드시 네 시아버지 빨래를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내 빨래를 하고, 그 다음에 네 신랑 것을 하고, 마지막에 네 것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로 하는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열을 받은 며느리가 사방을 둘러보니 시어머니와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왼손으로 시어머니 머리채를 잡아 물에 집어 넣고 오른손으로 빨래 방망이를 들고 시어머니 엉덩이를 개패듯이 팼습니다.
시어머니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시어머니의 비명 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저 며느리가 나를 개패듯 팼다!"
그때 며느리가 연극을 했습니다. 엉엉 울면서 "억울한 소리 하지 마세요. 어머님이 날 패놓고 무슨 소리예요?"
시어머니가 악한 것을 다 아는 동네 사람들이 며느리 말을 믿겠습니까? 시어머니 말을 믿겠습니까? 분이 난 시어머니가 집으로 가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애야, 네 아내가 날 팼다."
"아니, 어머니. 미쳤습니까? 내 아내가 어머니를 패게요?"
이제 시어머니는 화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때 그 마을의 전도사님이 그 소식을 듣고 그 집에 가서 전도를 했더니,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다 예수님을 믿더랍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으로는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을 존경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모든 사람을 존경하게 됩니다.
정말 예수의 사람인 우리는 모든 사람을 존경해야 됩니다.
그리고 왕을 공경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왕을 높여라(honor the king).'고 되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 뭇 사람은 존경(respect)하고 임금님은 높이라고 하십니다.
나라의 대통령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불행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 장관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가 망합니다. 대통령은 나라를 대표하는 어른이고 국가 원수입니다. 우리 나라 대통령을 우리가 존경하지 않으면 누가 존경하겠습니까? 그리고 대통령이 아무리 정치를 잘 해도 모든 백성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만일 대통령이 담배 판매를 억압하면 모든 국민은 좋아하고 국민의 건강도 증진되겠지만, 담배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담배 회사 회사원들은 밥줄이 끊어지니 대통령이 나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어떻게 모두를 좋게 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근로자 편에 서면 기업주들이 싫어합니다. 기업주들 편에 서면 근로자들이 싫어합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에 맞는 정책을 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게 이익이 되든 이익이 되지 않든, 그 정책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최소한 공경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식탁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우리 대통령 각하께서, 대통령께서'라고 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대통령 말이야' 하는 식으로 말을 하면 여러분 집안에서 대통령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게 욕먹는 대통령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장관, 국회의원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여러분 집안에서는 절대로 장관, 국회의원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존경스럽지 않은 인물을 누가 되려고 하겠습니까?
대통령을 높여야 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설사 대통령이 악한 정치를 한다 해도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왜입니까? 부모처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honor your father and mother)고 한 것처럼, 대통령을, 국가 원수를 높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는 잘못해도 아버지입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을 높이고 나라의 지도자를 높일 때, 나라의 질서가 서고,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 앞에서 학교 선생님을 함부로 말하면 여러분 자녀의 성적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너의 담임 선생님 말이야." 라는 말을 들은 자녀는 공부하지 않습니다.
"얘야, 선생님들은 다 우등생이셨단다. 선생님들은 다 실력 있는 분들이고 모범 학생이었던 분들이시다. 선생님은 귀한 분이야."
그래야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게 되고, 선생님을 존경해야 공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모임에든지 가서 "아무개 목사 말이야, 아무개 목사."라는 말을 들으면 정신이 아찔합니다.
"아무개 장로, 아무개 집사."라는 말을 들으면 저는 참 슬픕니다.
"아무개 장로님." 이라고 해야 합니다.
연세가 80세 되신 장로님이 40세 되신 장로님을 부를 때에도 "김 장로님, 이리 와 봐요."라고 해야 합니다. "김 장로, 이리 와 봐."하는 사람은 자기 복을 자기가 까부는 사람입니다.
상대방을 높이면 자기도 높아지고 하나님께서도 높임 받으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듣는 자녀는 믿음 생활을 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사회 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국가 국민으로서 모범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국가 제도에 복종하고, 선을 행하고, 뭇 사람을 존경하고, 이웃 사람을 높이고, 지도자를 높이며 나아가면, 우리는 모범 시민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고, 교회는 칭송을 받고, 전도 문이 활짝 열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