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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020817 자유와 책임 200809 주일 갈513
1. 코로나19와 선진국
코로나 19는 초기에 중국에서 대유행하다가, 곧바로 유럽으로 옮겨가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최고 선진국들에서 감당할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었습니다.
결국 모든 나라들이 중국처럼 통제하고서야 겨우 급속 확산을 막을 수 있었는데, 통제를 해제하자 다시 재유행이 되고 있다는 뉴스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코로나19는 누가 뭐래도 선진국, 그리고 자유가 부러울 정도로 보장되는 나라, 그리고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된 나라들에서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의료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고, 사회보장이 잘 돼 있어서 전염병은 문제가 안될텐데도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선진국들이 코로나19의 피해에 있어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습니다.
1)7일 오전 10시 기준(한국시간) 세계 실시간 통계인 월드오미터 코로나19 확진자 현황에 따르면 누적 확진자수는 1천923만8,021명으로 집계됐다. 총 사망자는 71만6,548명으로 나타났습니다.
2)세계 최다 감염국인 미국은 총 503만2,179명의 감염자가 발생했습니다.
누적 사망자는 16만2,804명입니다.
3)유럽국가
①스페인 35만4,530명,
②영국 30만8,134명,
③이탈리아 24만9,204명,
④독일 21만5,210명,
⑤프랑스 19만5,633명
세계적 강국이며, 선진국임을 자랑하던 나라들이 코로나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후진국들, 자유가 제한되거나, 가난한 나라들이 도리어 코로나에서는 나은 편입니다.
대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왔을까요?
2. 오늘 구약 본문 창세기 2:8-17 말씀은 천지창조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가 거기 살게 하셨는데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셨으나 동산중앙에 선악과는 따먹지 말도록 금단의 열매를 두셨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들
-생명 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모든 것이 갖춰진 아름다운 완전한 동산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
넷째 강은 유브라데
-물은 생명의 근원, 풍요의 조건!! - 모든 중요하고 큰 도시들은 강변이나 해변에 위치
->에덴 동산은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삶의 터전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에덴을 창설하신 후 거기에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정착시키시되,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유일하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선악과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는 아마 처음에는 에덴 동산의 수많은 과일과 꽃들과 나무, 그리고 채소들을 보면서 선악과를 따먹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간교한 것으로 알려진 뱀(사탄)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될수 있다고 유혹했고,
이에 속아서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 “선악과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대로 죄와 죽음이 있는 세상으로 내쫓김을 받아 인류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선악과를 두고 이런 저런 말들이 있습니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말은 “하나님이 애초에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으면 선악과 따먹는 불순종도 없었을 것 아니냐”는 말입니다.
일견 그럴 듯 해 보입니다.
선악과를 아예 만들지 않았으면
– 죄는 범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인간은 자유가 없는 것이 됩니다.-인간 로봇
자유는 선택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됩니다.
ex)북한의 선거제도
형식은 민주주의이나 내용은 완전한 일당 독재
그런데 북한의 헌법은 북한의 주민에게 최고인민회의와 각 지방 인민위원회의 위원을 직접 선출한 권리와, 정당 결성 및 선거 참여의 자유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한 선전에 불과합니다.
*후보
선거에 참여할 정당과 개인은 선거연합체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가입해야 하며 해당 선거연합은 모든 지역구에서 후보를 단일화합니다.
*투표방법
투표용지에는 단일 후보자(들)의 이름 옆에 기표하는 자리가 없습니다.
투표용지를 받은 투표자는 후보자에 대한 찬반을 할수 있는데 찬성하면 그대로 투표함에 넣습니다. 그러나 선정된 단일 후보에 반대할 경우 기표소에 들어가 후보자의 이름에 줄을 그어서 반대 표시를 하고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습니다.
결국 기표소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는 선거연합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서 낸 단일 후보를 반대한다는 것으로 비밀보장이 안되기 때문에 감히 반대투표를 위해 기표소에 들어가지 않고 그대로 기표하여 100% 단일후보가 당선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후보자를 선택할 자유를 주지 않고 단일후보만 뽑게 되어 있는 북한의 선거는 자유 선거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선악과가 없다면 아담과 하와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인이 아닌 것입니다.
선택의 자유가 없이 그냥 에덴 동산의 모든 것이 선택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는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있는 동시에, 먹으면 안되는 선악과가 있음으로 선택할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진정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은 창조시대 초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고도로 발전된 문명시대에도 에덴 동산은 있습니다.
그리고 먹을수 있고 주어져 있는 것이 있는 반면 먹으면 안되고 주어지지 않은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혼돈하고 불의한 세상이 된 것은 먹으면 안되는 선악과와 같이 금지된 것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책임의식없이 자유를 남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그 어디도 그 누구도 책임이 따르지 않는 자유는 없습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 붙습니다.
ex)자, 좋은 예가 여기 있습니다.
아마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못 먹습니까?
전에 유명한 어떤 가수가 자기는 “참, 불쌍한 여자”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왜 오늘같이 잘 사는 시대에 먹을 것을 마음대로 못먹고, 그 유명한 여자 가수는 왜 자기를 불상한 여자라고 했을까요?
먹는대로 살이 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마음대로 먹을 자유는 있으나 먹고 소화가 안돼, 고생하는 것이나, 살이 쩌서 성인병 환자가 되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책임이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 맛있는 것 마음대로 못 먹습니다.
자유와 책임은 바로 이런 겁니다.
자유가 주어지면 책임도 함께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들이 선악과와 같은 금지된 것을 행하지 않는다고 자유가 없다고 할 것입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처럼 해서는 안될 선악과를 취하는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자유가 있는 것입니까?
오히려 할수 있음에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금지하기 때문에 선악과를 취하지 않는 성도들이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반면에 자유인이라면서 사람이 하면 안될 일들을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하는 사람들은 양심과 도덕과 윤리와 실정법의 감옥에 갇혀서 도리어 부자유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라면 아예 선악과를 두지 않거나 원천적으로 먹을수 없도록 막아 버렸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일방적으로 순응하는 인간 로봇트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가 로봇처럼 임의로 조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판단과 결단에 따라 순종하는 삼이 된 것을 오히려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다시 아담과 하와, 그리고 선악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가지고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물론 뱀이 하와를 유혹했지만 그 첵임은 하와, 그리고 아담에게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이 유혹한다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할 책임은 어디까지나 아담과 하와에게 있는 것입니다.
결국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수많은 식물을 먹을 자유를 놔두고 먹지말라고 금하신 오직 하나의 과일 선악과에 집착하여 따먹음으로 주어진 자유 전부를 잃어 버린 결과가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선악과는 자유에는 지켜야할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자유와 책임은 불가분리입니다. 자유를 누리려면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ex)코로나19에 무너진 선진국,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
오늘날 자유주의가 만개한, 그리고 자본주의가 최고도로 발달된 서구 선진국들이 코로나에 속절없이 무너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자유, 그리고 풍족한 물질생활을 자유로 여기고 누리기만 했지
그 자유와 물질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확진자로 진단되고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음에도 ①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것이나, ②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제하라며 데모하는 이해가 안되는 광경을 텔레비전을 통해 우리는 자주 보고 있습니다. 폭동수준도 있다고 합니다.
자기들은 건강하고 코로나에 걸릴 확률도 적으니까 사회적 거리 해제하고 경제를, 사회 생활을 일상화하라고 데모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상권을 위해 남의 생명권을 빼앗는 자유의 남용(濫用)입니다.
3. 도리어 오늘 신약 본문 갈라디아서 5:13절 말씀은 우리에게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으니 서로 종 노릇함으로 자유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니 서로 책임있게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해 오해할수 있습니다.
자유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면 자유를 누리고 살면 되지, 왜 사로 사랑으로 종노릇해야 하는 책임을 지라고 하는가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을 부채의식, 우리가 부르는 찬양가운데 빚진자라는 찬양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지금의 물난리 - 예를 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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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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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전국이 물난리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코로나에 지친 국민들이 이번에는 물난리로 홍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 부천은 물난리가 없고, 우리는 비 피해가 없으니 다행이다 하고 물난리를 겪는 사람들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나중에 어려움을 당할 때 다른 사람들도 자기들은 괜찮다며 다행으로 여기고 우리를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만 조금이라도 수재의연금을 모으려고 하는데요, 이것이 이번 물난리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ex) 강철왕이라고 불리는 미국 철강산업의 대표주자였던 카네기와 가구점 주인
미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미국 피츠버그에 비가 내렸던 어느 날의 일입니다.
가구점이 모여 있는 거리에서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우산은 썼으나 세찬 비를 맞으며 여기저기 살피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할머니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한 가구점 주인이 그 할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할머니, 우리 가게 안으로 들어 오세요. 비도 많이 내리는데 가게 안으로 들어오세요."
"나는 가구를 사러 온 것이 아니라 차를 기다리고 있어요. 괜찮습니다."
"할머니 가구를 안 사셔도 좋습니다. 그냥 편히 앉아 계시다가 차가 오면 가세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할머니는 가구점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서 차를 기다렸습니다.
"참, 차를 기다린다고 하셨지요. 차번호가 어떻게 되죠? 제가 확인해 드릴게요."
"아유~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괜찮습니다. 차번호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차번호를 받고 몇 번이고 밖에 나가 차가 왔는가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지켜본 주위의 가게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저 친구 할 일도 되게 없군.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차라리 낮잠이라도 자든가 하지."
"글쎄 말이야. 손님 끌어들일 궁리는 안하고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 뒤치다꺼리만 하고 있네."
그러나 그는 차가 올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그 할머니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마침내 그 할머니가 기다리는 차가 왔습니다. 가게 주인은 친절하게 인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할머니!"
"고마웠어요, 젊은이!"
그런데 며칠 후 그 가게 주인은 미국의 대재벌이자 강철왕으로 알려진 카네기로부터 깜짝 놀랄 편지를 받았습니다.
'며칠전 비오는 날, 저의 어머님께 베풀어 주신 당신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우리 회사에 필요한 가구 일체를 당신에게 의뢰합니다. 또한 저의 고향 스코틀랜드에 큰 집을 짓게 될 참인데 그곳에 필요한 가구도 모두 당신께 의뢰합니다.
처음보는 노인에게 그런 친절을 베푼 분이라면 그 어떤 일을 맡겨도 책임있게 잘 하실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라는 편지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세계는 닥쳐온 재앙으로 대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람이 누워있거나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기상 이변이 속출하여 어디는 대홍수로, 어디는 폭염으로 재앙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재앙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세계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재앙들은 천재지변의 성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불러온 인재의 성격이 아주 강합니다.
생태계의 파괴와 지구 온난화가 주범
지금도 현재 진행중인 기나긴 장마와 집중호우만 하더라도 그 원인은 지구온난화로 보고 있는데요.
이러한 온난화의 원인은 온실 가스 배출 증가에 있다고 봅니다.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 연료의 사용이 크게 증가하고,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숲이 파괴되면서 온실 효과가 점차 강화되고 있습니다.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온실 기체로는 이산화탄소가 가장 대표적이며 메탄, 수증기, 프레온가스 등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농업이나 가축 사육, 자원 개발을 위해 열대 우림을 비롯한 많은 삼림을 파괴하였기 때문에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공급해 주는 지구의 허파 기능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집중호우의 원인은 지구온난화로 그 중심은 시베리아지역이라고 합니다.
북극지역이 평년 최고 기온보다도 10도 이상 높았습니다.
불타는 시베리아라는 이야기가 나왔듯이 시베리아 지역에서 산불이 굉장히 많이 났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온난화로 그렇게 기온이 높아지면서 북극해의 얼음들이 녹아내렸고 그 차가운 얼음물이 남쪽으로 많이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 지역과 중국, 일본, 동아시아지역에는 찬공기가 내려오면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을 못하고 또 그게 온도차가 심해지면서 굉장히 많은 비를 포함하는 그런 형태로 나타났고 반대로 미국지역에는 폭염이 나타났습니다.
결국 인류 문명의 발달은 결국 제살 깎아 먹는 꼴이 된 것인데, 보완하거나 대비하지 않고 무지막지한 경쟁을 통해 생태계를 무자비하게 파괴한 결과입니다.
즉 발전, 개발, 이익의 자유만 내세웠지 환경 보전의 책임은 무시한 댓가입니다.
자본주의의 발달 역시 현재의 재앙에 큰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돈만 벌수 있다면 환경은 안중에도 없는 천민자본주의(천민 출신이었던 유대계 자본주의자들이 수익에 비해 자본주의 문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상태)도 그 원인중 하나입니다.
바이러스도 그렇고, 앞으로 더 센놈이 온다는 것도 역시 그렇습니다.
인류가 개발과 발전, 풍요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지 손톱밑이 썩고 있는 것은 알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유에는 책임도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들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은 선택할 권리가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은 천지의 창조주이신 주님을 믿는 신앙생활까지도 ‘종교는 자유다’라고 말하며 자유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자유 역시, 그것을 선택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택하는 순간 주어진 자유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자유회복을 위해 오신 주님
하나님은 선악과로 인하여 잃어버린 자유를 회복하게 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하나님께서 주셨던 자유 의지를 따라 주님을 선택하고 생명을 얻도록 다시 자유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고 다시 자유하는 영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자유는 무제한의 무절제한 자유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1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도리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절제되어야 하고 책임있게 행사되어야 합니다.
갈라이서 5:13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자유롭고 책임있는 성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살 때 책임있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참된 자유와 책임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고 하심으로 자유와 책임이 우리 안에 하나로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책임이 우리 안에서 조화롭게 자리매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