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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은 국민들 가슴에 거대한 슬픔을 만들어냈다. 슬픔이란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태어난다.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 울기 시작했다. 일본은 불바다에서 시작한 나라다. 2차대전 후 거지상태에서 출발했고, 그 반동의 힘과 열망으로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최근 50년 동안 0에서 100 가까이 올라온 셈이다. 무리한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살인적인 스트레스가 도사린다. 자살, 왕따, 가족해체, 고독사가 그 결과다. 이때 대지진이 발생했다. 유례없는 재앙을 겪으면서 일본인들은 타인의 슬픔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감성, 타인과 관계를 맺고 싶은 욕망이 분출된 것이다. 방안에 틀어박혀 있던 젊은이들이 구제활동을 위해 집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조선일보 7월 2일자)
일본 청년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인도방랑>을 저술한 여행가인 후지와라 신야가 대지진 100일 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AFLAC(아메리칸패밀리생명보험) 일본지사의 창업자이자 최고고문인 오다케 요시키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2005년 인간개발연구원 창립30주년 기념특강 당시에도 “흔들리는 항해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역설한 바 있다.
“내가 매일 아침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면서 반드시 30번씩 커다랗게 외치는 말이 있다.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가 바로 그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는 ‘흔들리더라도 가라앉지 말라’는 고대 유럽인의 격언도 있다. 프랑스 파리시 문장(紋章)의 배경에 새겨져 있는 이 문구가 던져주는 역설의 교훈은 개인, 기업, 국가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 사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다 보면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실패에서도 배운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보고(寶庫)’라고 믿어야 한다. 나는 지난 31년 동안 AFLAC에서 그런 자세로 나 자신을 불살랐고, 그렇게 최선을 다한 나 자신에 만족한다.”
원전 안전 신화 깨지며 ‘태양경제’ 촉발
오다케 고문이 AFLAC을 창업한 게 1974년이니 벌써 3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일본은 많은 곡절을 겪었다. 특히 3월 11일 발생한 진도 9의 대지진은 치명적 상흔을 남겼다. 오다케 고문은 행불자 포함 사망자 2만명에 이르는 인명의 손실, 16조 9천억엔으로 추정되는 경제적 피해를 가져온 대지진을 ‘성공에 도취한 일본의 교만에 대한 경고’로 규정했다.
“슬프지만 일본에는 제대로 된 원전 기술이 없었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제1 후쿠시마 원전도 미국인의 손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설계 당시 매그니튜드(진도) 7인 캘리포니아를 기준으로 삼았다. 쓰나미는 아예 상정도 하지 않았기에 일본 정부는 제방 높이를 최소 10m로 높여야 한다는 전문가의 경고도 무시했다. 사실 원전의 설계, 시공, 유지, 관리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에 의해 일관성 있게 진행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일본 원전 분야에 근무하는 관리들은 철저한 아마추어 집단이었다. 더욱이 경직된 로테이션(순환근무) 시스템이 장기간 근무의 장점인 전문성 강화를 방해했다. 보통 사람은 감당키 어려운 리스크를 안고 있는 중요 시설의 행정을 로테이션 근무를 하는 아마추어 관료 집단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다케 고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로 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원전은 일본 전국에 산재해 있다. 따라서 어디선가 원전 사고가 나더라도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니다. 오다케 고문은 “일본열도가 두부처럼 유동적인 4개의 플레이트 위에 놓여 있는 불안한 상황이지만 확고한 대안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유사 이래 일본은 대지진을 몇 차례나 겪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재난이 있었기에 일본이 성장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번에 칭찬을 받았던 동북지방 주민들의 인내심과 질서의식은 그런 현상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암담한 상황이 계속되자 긍정의 미덕은 풍화되고 말았다. 나는 피해지역을 시찰하면서 인간의 미련함을 느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신뢰와 안전에 대한 신화가 동시에 깨지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물론 에너지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원전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이지만 대책도 없이 즉각적인 탈원전을 주장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하나 있다. 3월 11일 이후 일본 원전의 안전은 허구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오다케 고문은 원전 사고로 겪어야 했던 고통을 ‘인체실험’을 강제로 당한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번 원전 사고의 규모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20~30개 투하된 경우와 같다고 한다. 세계인은 앞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대신에 ‘후쿠시마’라는 단어를 더 자주 거론할 것이다. 심각한 것은 누구도 어디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일본 대지진은 세계에 심각한 화두를 던졌다. 원전 사고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제 뉴스를 보니까 미국에서도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따라서 각국이 앞으로 원전 정책을 어떻게 세우고 추진할 것인지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일본은 이번 기회에 학문과 견식이 높은 전문가의 조언을 진지하고 겸손하게 들어야 한다. 세계의 영지(英智)를 총동원하는 지적클러스터를 형성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자연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일본이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개발에선 뛰어날지 모르지만 실용화에선 독일은 물론이고 중국보다도 뒤떨어져 있다. 에너지 실용화는 철저히 원전에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석경제에서 석유경제로 이행됐던 것처럼, 이제 세계경제는 태양경제로 돌입할 것이다.”
대지진 계기로 진정한 근대화 시도해야
일본의 한 신문은 기획시리즈 ‘새로운 일본으로’를 통해 “자연에너지로의 장기적 이행을 준비하자”고 촉구했다고 한다. 오다케 고문은 “앞으로 나라와 기업의 경쟁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면서 “도요타나 히타치처럼 ‘기술우위’에 만족하지 말고 ‘매력이 경쟁력’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세계 유일의 독특한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명사적으로 일본은 지금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일본의 정치, 행정, 사회, 경제 등 전 분야에 걸쳐 구조와 토대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일본 수상이나 각료에게 이를 촉구해 왔다. 19년 전에는 책까지 출간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선의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나는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원폭 투하와 미군 점령을 경험했다. 그로부터 66년이 흘렀지만 일본에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없었다. 혼과 정신이 깃들지 않은, 허울만 뒤집어쓴 위장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일본을 지배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순 축적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의 시기만 연장시켰고, 근원적 변화를 가로막았다.”
그런 질곡의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 대지진이었다. 오다케 고문은 “기존의 방식을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하면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에서 진정한 의미의 근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지진은 일본에 축복이 될 것”이라는 후지와라 신야의 일갈과 통하는 발언이다. 그는 “거짓, 과장, 허세를 버리는 것이 리더십”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스스로 선택한 결과는 아니다. 숙명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나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도전할 수밖에 없다. 운명이다. 많은 일본인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다. 다만 활동의 범위를 좁은 일본에서 조금 더 넓은 동북아시아로 확대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전국판 신문사 사외이사로 일하며 TV방송국도 가지고 있지만 새삼 느끼는 것은, 개개인의 변화를 이끌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올해 연말 노자의 도덕경에 관한 책을 출판할 생각이다. 대지진 이후에도 대다수 일본인은 돈과 물질만 쫓으며 현상에 집착하고 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이야말로 일본인이 겸허히 수용해야 할 교훈의 원점(原點)일 것이다. 존경받는 나라와 국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정리=정지환 인간개발연구원 편집위원/감사나눔신문 편집국장 lowsaejae@gam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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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케 창업자/최고고문의 Profile ▲ 日 히로시마 농업단기대(현 히로시마현립대) 졸업 ▲ 대구한의대 명예보건학 박사 ▲ 1974년 일본 AFLAC 설립, 부사장, 사장, 회장, 고문 ▲ 국제기업경영자협회(IMA) 이사 ▲ 아스펜연구소 감사 ▲ (사)New Business협의회 부회장 ▲ 학교법인 명치학원 이사 ▲ (사)일본경제단체연합회 이사 ▲ (재)국제과학진흥재단 회장 <상훈> 일본국가훈장 ‘란주호우쇼’ 수상, 비즈니스위크지 아시아 스타 50인 선정 <저서> 이것으로 좋은가 일본, 리더개조론, 주머니 속의 인간학, 가장 소중히 해야 할 것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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