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의 씁쓸함
임병식 rbs1144@hanmail.net
학교폭력이 이슈화 되면서 어떤 한 사건이 갑자기 재조명 되고 있다. 어느 가수가 노래경영 프로에서 승승장구해 준결승에까지 올랐는데 과거의 학폭사건이 터져나온 것이다. 그녀가 속한 팀이 미션에서 일등을 해 전원이 3차에 진출하자, 이를 지켜본 과거의 학폭 피해자가 폭로를 하고 나선 것이다. 그에게 구타를 당한 것은 물론, 돈까지 빼앗겼다는 것이다.
발설을 한 사람은 조용이 잊고 살려 했는데, 나쁜 짓을 한 사라이 처벌 받기는 커녕 아무렇지도 않게 잘 나가는 것이 불공평하다 는 생각이 들어 화가 치밀었단다. 그것은 금방 입소문을 타고 번져나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그 지원자는 유리한 고지를 확보했음에도 그만 눈물을 머금고 중도하차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 발설은 유사한 경험이 있는 다른 사건들을 이끌어 냈다. 여기 저기서 동시 다발로 유사사례가 터져나오기 시각했다. 먼저 배구계에서 불거졌다. 학창시절 쌍둥이 자매가 후배 여학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힌 사실이 폭로되었다. 꼬집고 때리고 모욕적인 언사로 “왜 사느냐 죽지,” 혹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춤을 추겠다.” 등으로 갖은 괴롭힘과 모욕을 가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철없는 학찰시절의 일이라고 하지만 이쯤 되면 도를 넘은 짓이 아닌가 한다.
지난 일을 꾹꾹 눌러 담고 지냈던 피해자가 발설을 하고 나선 것은 이유가 있었다. 방송을 보고 옛일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가증스럽게도 자기의 과거는 숨기고 가수한테 당한 피해자를 동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문득 어느 시가 떠올렸다. 다산 정약용선생이 쓴 견여탄(肩輿歎)이란 시인데 여기에는 이런 시구가 나온다.
人知坐輿樂(인지좌여락)
不識肩輿苦(불식견여고)
사람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괴로움은 알지 못하도다.
학폭을 당한 일을 어찌 가마 메는 일에 비교할 수 있을까 마는 가해자는 잊고 지내는 반면에 그로 인한 피해자는 그 괴로움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유사성이 있지 않은가 한다.
이를 두고 혹여 어떤 사람은 세월도 오래 지난 일을 가지고 굳이 아픈 기억을 들춰내서 그 가수가 결승 진출을 못하게 만들고, 배구선수 또한 국가대표 박탈은 물론 연봉삭감과 더는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 잘한 일이냐고 반문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문제가 아닌가 한다. 왜 그런가 하면 당해본 사람만이 그 쓰라림을 알기 때문이다.
유사한 경험은 내게도 있다. 아무런 잘못이 없이 상급생 교실로 불려나가 어떤 특정학생에게 구타를 당했던 것이다. 생각하면 분하고 뼈아픈 기억인데, 하루는 동급생이 선배가 좀 보자한다고 말을 전했다. 느낌이 좀 안좋았지만 호출하는데 가지 않을 수가 없었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순식간에 구타를 당한 것이다.
그 일은 고향친구가 향우회 모임을 갖자고 하면서 통보를 해오자 생각이 떠올랐다. 정기모임이 아니지만 한 선배가 대단위 아파트를 짓는 현장책임자로 내려와 있어 임시 모임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궁금하여 물었다.
“누군데?”
“응, 신정o 이라고 2년 선배야.”
그 말을 듣자 불현 나는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러면 좀 아픈 기억이 있지만 만나보지 뭐.”
말했더니 그가 이상 기미를 눈치채고 꼬치꼬치 물었다. 해서 여차여차 저간의 일을 대충 말해 주었다. 그런데 그 말을 곧바로 그에게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모임에 나가보니 정작 그가 나타나질 않았다.
전하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가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못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런가 보다 여겼지만 나는 금방 짐작이 갔다. ‘ 아, 나 보기가 불편했나 보구나.’
나는 실로 선배가 나타나기를 은근히 기대했었다. 다른 것이 아니고 나를 구타한 이유를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만큼 나는 영문을 모르고 호출을 당하여 이유없이 구타를 당했던 것이다.
시기는 고교 1년때의 겨울방학 직전이었다. 쉬는 시간인데 호출을 받고 긴장하면서 3학년 교실 문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난데없이 주먹이 날아와 내 명치를 가격했다. 그 바람에 나는 대책없이 '아이쿠'하고 그 자리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숨이 먹히고 심한 통증이 밀려와서 한참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후 나는 심한 모멸감에 시달렸다. 맞은 것도 맞은 것이지만 구타이유가 궁금했다. 그 선배는 읍내 찐방집 아들로서 얼굴이 4각형으로 각이진 얼굴이라 분명히 기억을 하고 있다.
그 일이 있는 후 그는 곧 졸업을 했고, 나는 그가 구타한 이유도 모른채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은 두고두고 내 기억 속에서 치욕으로 남아 있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주먹으로 명치를 얻어맞고 고꾸라진 것이 두고두고 분하고 창피했다.
세월이 흘러서 나는 그 일을 잊고 지냈다. 아니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그냥 재수가 없어서 누가 퍼질러 싸놓은 똥덩어리를 한번 밟았다고 치부해 버렸다.
그런데 잊고 지내던 일을 깨우쳐서 만나볼 기회를 얻었는데 누군가 미리서 말을 해버린 바람에 놓치고 만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복수할 생각은 없었고, 단지 나를 표적삼아 구타한 이유는 꼭 알고 싶었다. 한데 나타나지 않아 만나볼 기회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이었다.
그러한 일이 었었기에 나는 학폭 보도를 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그러면서 ‘나는 그때 한방을 얻어맞고도 그 일이 잊히지를 않는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난 일을 가지고 뭐 그렇게까지 심각해질 필요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누구나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피해를 당한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을까 한다. (2021)
첫댓글 선생님께도 쓰린 경험이 있으셨군요 저는 고1때 어느 선배와 말다툼한 게 화근이 되어 선배들 교실로 호출당해 멍석말이를 당한 적이 있었지요 머리에 양동이를 씌움 당해 누구 때린 줄도 모르게 실컷 얻어맞았지요 학창시절에 후배를 혹독하게 괴롭힌 배구선수들에 대한 파헤치기 기사가 연일 터져나와 온국만이 충격을 받고 있는데 그래도 집안 내력까지 까발리는 게 못마땅해 한 소리 했더니 큰애가 달고 나서더군요 학교폭력은 알어나서도 안 되고 적당히 용서해서도 안 된다고...
이선생님도 그런 경험이 있시시군요.
벌써 55년도 더된 일이지만 그런 학폭은 시간이 가도 잊히지 않는것 같습니다.
하물며, 그리 오래되지 않는 시기에 그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면 더욱
잊히지 못하겠지요.
제 경험에 비추어 볼대 피해호소를 한 사람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학창시절 아픈 기억은 잊히지 않는 법이지요. 학원폭력은 반드시 근절 되야하는데 그게 불안한 가정에서부터 비롯되는 거라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할지가 난감한 게지요.
웬체 그 쓰라린 기억때문에 수십년의 세월이 흘렸지만 잊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 학폭을 당할 피해자도 그간 그런 심정을 안고 살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반드시 학폭은 근절되어야하고 사회인식도 필히 바뀌어야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