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베이징)'스차하이' 옛거리 인력거투어
군위농협 해외 연수단일행은 북경 신공항에서 일행중 길 잃은 한사람 찾기 한바탕 소동을 치른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일행들의 휴대폰 로밍업을 하였다.
요즘은 휴대폰의 기능이 좋아 현지에서 바로 켜면 로밍업이 되어 편리함이 있었다.
또 다른 길 잃은 사람 발생을 예방하고 비상 연락을 취하기 위한 처방이기도 했다
그래도 근검하신 조합원 몇분들은 아예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오신분도 계셨다.
휴대폰을 로밍업을 해 켜보니 중국시간 표기가 되며 한국 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오후5시30분 부터 북경 현지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북경 시가지를 이동 하는 중 북경의 경제적 급성장 발전해가는 도심거리를 보며 현지 가이드의 북경에 대한 소개는 계속 되었다.
중국은 넓은 대륙국가로서 자치 23개성으로 구성 인구 14억 속에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가운데 소수민족 55개의 다양한 민족은 8% 그중 朝鮮族(조선족) 인구 1,923,361명으로 소수 민족중에는 제일 많이 차지 하고 있으며 주요 분포지역은 길림성 연변족자치주 장백산 조선족자치현 흑룡강 요녕등 많은 분포를 차지 하고 있다고 한다.
수도 북경(베이징)은 직활시로 2천만명이 거주 하는 정치,문화 교통 중심 도시임을 설명 하였다.
그러나 제가 본 첫눈의 북경의 거리는 아직 교통질서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자전거를 타고 4거리 교차로를 그냥 지나다녀 온통 차량들이 울리는 경적소리로 가득했다.
북경 현지가이드의 알토란 같은 열변의 북경 소개 중 어느덧 첫 여행지인 스차하이에 도착하였다.
▲스차하이 주변 지도
일행들은 스차하이 옛거리에 내려 현지 가이드의 단체 승차 계약으로 2인 1조가되어 인력거에 탑승하여 인력거 투어를 시작했다.
북경의 날씨도 만만치 않은 무더위 인지라 우리 일행들을 수레에 태워가는 인력거 아저씨들도 구슬땀을 흘리며 20여대의 인력거가 스차하이 거리를 줄을 이어 같다.
일정의 시간에 쫒기어 거리를 탐방할 겨를도 없이 30여분의 투어가 이루어 졎다. 아쉬운 감이 있었다.
낭만과 추억이 있는 곳, 베이징 스차하이(什刹海)
스차하이는 전해(前海), 후해(后海), 서해(西海)의 3개 수역 및 부근 지역으로 이루어진 중국 북경의 신흥 관광명소이자, 아름다운 5대 도심지역의 하나이며, 북경에서 명,청 시대의 전통이 가장 안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스차하이란 이름은 명/청 시대에 10개의 사찰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 하였으며, 호수를 원나라 몽고인들이 바다(海)로 부른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십찰해는 몽고어로 본래 열개의 사찰이라는 뜻이라 한다.
이들 호수는 경항대운하의 북경 시작점이기도 하며, 옛부터 물류의 중심 역할을 한 바, 많은 상가가 자리하게 되고, 항궁에 납품하는 각종 물품들이 스차하이 주변에 집중 되는 등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베이징의 깊은 역사가 숨 쉬고 있고 서민들의 생활이 그대로 보전된 스차하이. 이곳은 전통과 현대가 믹서돼 새로운 베이징의 멋과 풍류가 형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저녁놀이 붉게 물들 때면 호숫가 주변 즐비하게 늘어선 빠에서 네오사인을 불 밝히고 낭만의 무드가 무르 익는 곳이이란다. 곳곳에서는 트롬펫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현재는 잘 보존된 전통의 건물들이 중국의 옛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었으며, 인공호수를 개발하여 뱃놀이 등 관광자원으로 승화 시켜 많은 관광객으로 부터 인기를 끌고
더불어 호수 주변으로 100여개의 바(BAR)가 들어서면서 북경에서 가장 큰 바 거리로 성장하였고, 밤마다 바들이 밝히는 등불이 호수를 비추며 새로운 북경의 밤 문화의 중심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인력거를 타고 스차하이 주변 후퉁 구석 구석을 누비며 베이징 서민들의 생활을 몸소 체험하기도 하고 재래시장을 찾아 그들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베이징에서 스차하이라 아였거늘 우리일행들은 일정에 쫒겨 그냥 스처 지나 와야만 했다. 후통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맛집들은 겉보기에는 낡아보이지만 오랜 시간 유지해온 전통의 베이징 맛을 볼 수 있는 곳이라 했다.
▲이 건물이 영화 소림사에 나오는 배우 이연걸'이 다녔던 학교라고 한다.
▲음주운전 금지 표지판
골목으로 들어서자 인력거가 즐비하게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물 수거 자전거
전통가옥을 설명도 없이 그냥 자전거 (인력거)로 30여분 주변을 한바퀴 휘~ 익 돌아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끝이였다.
▲도로 안내 표시판
▲외국인 관광객 스차하이 빠골목의 탐방 풍경
▲스차하이 투어를 마치고 광광 차를 기다리는 외국인 관광객들
담벼락에 북경 관광 명소 그림을...
▲ 현지인들의 카드와 마작 놀이...
스차하이 옛거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자료를 통해
스차하이(什刹海) 소개를 하고저 한다
스차하이는 옛 베이징성(北京城)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베이하이(北海)공원과 잇다아 있는 역사문화 관광지이다. 스차하이는 쳰하이(前海), 허후하이(后海), 시하이(西海)로 이루어진 호수와 호수가의 명승고적, 그리고 주민거주지로 구성됐다. 스차하이는 베이징성 안에서 명청시기의 전통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며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5대 도심지역의 하나이기도 하다(칭다오의 8대관,마카오의 옛거리, 쑤저우 고성, 샤먼의 구랑위, 베이징의 스차하이) .
원나라의 수도인 대도는 스차하이 수역을 기점으로 펼쳐졌는데 원,명,청 3대 왕조에 걸쳐 베이징의 도시계획과 수맥의 핵심이다. 800년의 발전 과정을 거쳐 왕족에서부터 사대부,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심후한 문화가 농축돼 있으며, 스차하이 골목과 사합원은 북경의 전통민속문화를 구성하고 있다. 스차하이라는 이름은 원명청시기 호수 주위에 10개의 사찰이 있어 붙여졌으며 바다 '海(해)'자를 쓰는 이유는 원나라 몽골인들은 호수를 해자라고 했기때문이다.
스차하이는 경항(京杭)대운하의 베이징의 출발지여서 명,청시기에는 물류의 중심이기도 했다. 호수주변으로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섰으며 황궁에 납품되는 각종 물품들이 스차하이 주변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스차하이의 첸하이(前海), 허후하이(后海), 시하이(西海)와 베이하이공원의 베이하이 및 중국 정치의 심장인 중난하이(中南海)는 베이징 수맥의 용맥을 이룬다. 그래서 원, 명, 청 시기의 경성의 귀인들이 모여살게 되었는데 베이징에는 "东富西贵,南贱北贫"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2003년 사스시기에 베이징의 젊은이들이 여름더위와 밀폐된 공간을 피해 스차하이 호숫가 주변의 빠를 찾기 시작하면서 유행이 되자 호수주변으로 100여개의 빠가 들어섰으며 베이징에서 가장 큰 빠거리가 형성됐다. 베이징의 서쪽 하늘에 석양이 물들면 호숫가 빠들도 불을 밝히고 스차하이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현대 베이징의 밤문화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으로, 베이징에서 가장 낭만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1. 인력거투어(골목관광)
인력거를 타고 베이징 옛골목을 돌아보자. 전통 상가들이 들어선 담뱃대 사거리도 거닐어 보고 베이징의 전통주택이자 베이징 시민의 생활 실태를 볼 수 있는 사합원에 들려 차 한잔 하고 베이징성 안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에 들려 베이징 시민들의 생활 깊이 들어가 호흡해 보자.
골목을 베이징에서는 후퉁(胡同)이라 하는데 몽골어의 우물이라는 뜻인 후뚱에서 따온 말이다. 베이징에는 6천여개의 후퉁이 있었는데, 크고 작은 사합원들 사이로 후퉁이 만들어졌다. 현대문명의 발전으로 베이징성 안을 제외하고는 전통적인 후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스차하이지역은 베이징에서 후퉁이 가장 완벽하게 보존돼 있는 지역으로서 명,청시기의 왕부와 귀족들의 저택이 있으며 베이징의 전통거주문화를 체험할수 있는 곳이다.
사합원은 말그대로 동서남북 4면에 집을 짓고 가운데는 정원이 있는 전통주택을 말한다. 사합원의 외벽은 대문을 제외하고 창문은 내지 않는다. 북쪽의 방을 정방이라고 하는데 집안의 어른이 살며 동,서 양쪽은 상방이라고 하는데 아들과 딸들이 산다. 남쪽은 최하위로서 하인 침실과 창고로 사용된다. 풍수지리로 볼때 북쪽은 오행에서 물(水)에 속하며 북쪽에 정방을 짓는 것은 화재를 피한다는 뜻이다. 동쪽은 목(木), 건(乾,하늘)에 속해 아들을 살게 하고, 서쪽은 금(金), 곤(坤,땅)에 속해 딸이 살게 한다. 중국 유교사상 중의 남존여비 사상이 엿보인다. 건물높이로 볼때 북쪽의 정방을 가장 높이 지으며 남쪽의 건물은 지붕을 한쪽만 만들어서 신분의 차별을 둔다.
사합원의 정원에는 나무를 꼭 심는다. 중국글로 볼때 사합원내에 나무가 없으면 '口'내에 사람만 있음으로 가둘 “囚”자가 되므로 불길한 징조가 되기 때문에 정원에는 꼭 나무를 심되 한그루면 '困'자가 되므로 불길하다하여 나무는 두그루 이상을 심었다.
나무를 심을때도 석류나무(다자다손을 상징함), 복숭아나무(장수를 상징함), 대추나무(아들을 낳게함) 같은 복을 상징하는 나무를 심었으며 회나무와 소나무는 능원에 심는 나무기 때문에 자택의 정원에는 심지 않는다. 또 정원 중심에는 어항이 있어 금붕어를 기르는데 항상 재물의 풍요로움이 있으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
사합원의 대문:
예로부터 문은 신분과 직위의 상징이다. 따라서 '名門(명문)'이라는 말이 생기게 됐으며 문벌이라는 말도 생기게 되었다.
사합원의 대문은 유교사상 중의 예(禮)의 체현이다. 문의 넓이와 깊이, 높이는 엄격히 구분된다. 황궁의 대문 다음으로 왕부의 대문의 규격이 가장 높아 5간의 넓이(약 20미터)에 세개의 문을 갖추며 대문에는 63개의 금못을 박는다.(황궁에는 81개)
왕부 다음으로 사대부나 권세가 있는 관료의 집 대문은 광량문(廣亮門)이라 한다. 1간의 크기이며 사합원의 동남방향에 문을 낸다. 동남쪽은 태극팔괘에서 바람을 뜻하는데 순풍이라는 뜻이다. 문짝의 위에는 4개의 문당을 박는데, 이는 4품급 관료 이상의 집 대문에만 박을 수 잇다.
문루에서 볼 때 문의 위치가 뒤로 일보 정도씩 들어가면 한급씩 올라가는바 3품, 2품 관원이 되겠다. 문턱도 급에 따라 높아지는데, 이는 귀신을 막는 작용을 한다고 믿었다.
(중국 풍속에 따르면 귀신은 무릎을 굽힐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문턱을 높게 만들면 귀신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또 귀한 손님을 배웅할 때는 꼭 대문 밖까지 바래주어야 한다.
대문 밖에는 문둔태가 있는데 사자모양의 문둔태는 집주인이 황족임을 말해주며 문둔태가 북모양이거나 박스모양에 사자머리가 있으면 고위급 무관과 문관을 의미한다.
은정교
하루는 황제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황궁에서 답답해하다가 꿈을 꿨는데, 황궁근처에 산을 구경 할 수 있는 좋은 곳을 보았다.
신하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스차하이의 은정교로 모셨다. 은정교 위에서 서산을 바라보면 황제는 은정관산이라는 글을 썼으며 이때부터 은정관산은 베이징 절경의 하나로 되었다. 현대 문명으로 둘러싸인 오늘 서산은 어렴풋하게만 보인다. 은정교를 중심으로 호수량 안에는 백여개의 빠들이 들어서 있다. 수 백년 전이나 오늘이나 은정교는 사람들로 붐빈다. 수백년전 경성으로 들어오는 물자와 상가로 인해 붐비었다면 오늘은 스차하이를 찾아드는 국내외 관광객들과 밤문화를 즐기는 베이징의 젊은이들로 붐비고 있다.
담뱃대사거리
담뱃대사거리는 명,청시기에 상가가 형성된 민속문화거리이다. 청나라 때 담배를 피우는 만주족 귀족들이 많아지면서 담배상가와 골동품 상가가 많아져 담뱃대사거리라는 이름이 생겼다. 청나라가 망한 후 만주족 몰락귀족들이 집에 있는 골동품을 내다가 여기에서 팔었으며 현재는 중국민속문화 관련 기념품과 의류를 판매하는 거리로 탈바꿈했다.
첫댓글 호수를 바다로 알았다고? 그런데 그것이 고유명사가 됐다? 재밌네. 바쁜 와중에 놓치지 않고 즐거운 여행 다녀 오셨군. 몸과 마음에 활력이 솟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