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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에 등장하는 복제 기술들
독자 여러분들 중에는 이미 많은 분들이 “에이리언 4”를 보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를 좋아하는 필자는 사실 전편인 에이리언 3를 보고 에이리언 시리즈가 끝난 줄 알았다. 왜냐하면 에이리언 3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인 우주 전사 리플리 (시고니 위버)가 가슴을 뚫고 나오는 새끼 에이리언을 잡고 용광로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기를 희생하면서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괴물을 제거하는, 여운이 남는 감동적인 결말의 영화가 된 것이다. SF영화에서 상대편은 수백 명이 죽더라도 정작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는 능력을 갖는다. 적어도 “복제” 기술이 나오기 전에는 그랬다. 세포나 유전자만 살아 있으면 주인공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복제기술”이 나오면서 영화제작사는 주인공을 죽이지 않는다는 SF 영화의 공식을 과감하게 깨고 주인공을 죽였다가 다시 살리고 있다.
1993년 제작비 650억원을 쏟아부어 만든 “쥬라기 공원”은 오래 전에 지구에서 멸종한 공룡의 피를 빨고 호박에 갇힌 모기의 화석에서 유전자를 채취, 공룡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기술력(?)을 보여주었다. 복구되지 않는 부족한 부분은 파충류와 양서류의 유전자로 보완한다는 지극히 과학적인 치밀함도 보여주었다.
이야기 배경을 2154년의 지구로 삼은 2013년 개봉작 영화 “엘리시움”에서 부자들은 “엘리시움”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우주정거장에 따로 거주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지구에 남아서 위험하고 오염된 일을 하는 환경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는 어떤 병이든 CT, MRI 처럼 생긴 장치에 누워서 10초 정도 치료를 받으면 모든 병이 낫는 신박한 의료장치가 개발된 것으로 묘사되었고 사고로 사망한 악당 용병조차 세포 복제 기술로 다시 복구되어 되살아 나는 장면이 나왔다. 영화제작자는 약 150년 뒤면 이런 기술이 실현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1997년 개봉한 영화 “제5원소”에서는 배경이 23세기이기 때문에 “엘리시움”보다 더 기술을 발전시켜 파손된 우주선의 잔해에서 찾은 어떤 사람의 겨우 팔 한쪽으로부터 직접 사람 전체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선보였다. 이 시기의 지구에서는 날아다니는 교통수단과 함께 죽은 세포만 있어도 완전한 개체로 다시 복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듯 하다. 재미있는 것은 신체의 일부로 복원을 하니 갓난 아기가 아니라 사고 당시 나이의 성인 여자가 나오더라는… 세포 reprogramming을 뛰어넘는 기술이 구현되었나 보다.
이러한 SF 영화들 가운데 유독 필자의 눈길을 끄는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에이리언4” 였다. 이 영화의 후반부에 연방군 의학탐사선 아우리가호에서 베티호로 탈출하는 과정 중 1-7이라고 적힌 방을 보게 되고 이 방이 자신의 팔에 새겨진 “8”이라는 숫자와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들어간 곳에서 실패한 자기 복제 인간들의 끔찍한 잔재들을 보게 된다.
Figure 1. 영화 에이리언 4에 나오는 장면. 전편에서 자신의 몸에 착상(?) 에이리언과 함께 뜨거운 용광로에 뛰어든 리플리는 에이리언과 함께 사망하여 에이리언 시리즈가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왠 걸? 에이리언 4가 제작되었다. 그럼 영화제작사는 어떻게 죽은 리플리를 살려냈을까? 과학자들은 우주선에 남아 있던 혈흔으로부터 리플리를 복제하는데 성공한다! 영화 후반부, 연방군 의학탐사선 아우리가호에서 베티호로 탈출하는 과정 중 1-7이라고 적힌 방을 보게 되고 이 방이 자신의 팔에 적힌 “8”이라는 숫자와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들어간 곳에서 자신의 실패한 복제 인간들의 끔찍한 잔재를 보게 된다.
복제 (cloning)라는 놀라운 기술 이면에 발생할지도 모를 기술적인 문제 그리고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감독은 우리에게 소리 없이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이 기술이 대단한 것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기술은 안전합니까? 지금 이 기술은 부작용을 만들 가능성이 없습니까? 우리는 과연 이러한 기술을 비윤리적으로 쓰는 집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런 것들이 두려워 과학적 진보와 연구를 중단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마우스는 6회 재복제가 한계인가?
동물을 복제하다 보면 복제과정 중에 높은 비율의 배아가 발달에 실패하고 또 최종 분만을 앞둔 임신 말기에 태아가 폐사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기형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많이 있으며 정상적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고 태어나자 마자 곧바로 폐사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돼지를 예로 든다면 보통 1회 복제 수정란 이식 실험에 200~300개 정도의 난자를 이식하면 임신율 50% 정도에 1~5마리 정도의 산자가 태어나곤 한다. 성공적으로 분만에 성공하는 확률은 이식 난자 1000개당 1~2 마리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렇게 낮은 복제 성공률과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전세계 복제 전문가들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뚜렷한 개선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복제과정 중 문제를 해결해 간다면 복제 실험의 안전성과 재현성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고 연구를 진행한 과학자가 있었다. 바로 Yamanashi 대학의 Teruhiko Wakayama 박사이다.
Figure 2. 야마시나 대학의 Teruhiko Wakayama 박사. 그는 우리나라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 초청으로 2015년 10월 27일 한국을 방문, “이종이식연구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의 국제심포지엄에 참석, 매우 감명 깊은 발표를 해주었다.
그는 일찍이 2000년에 2가지 종류의 마우스를 각각 4계대, 6계대 연속 복제에 성공한 연구결과를 Nature지에 발표한 바 있다. 그의 논문에 따르면 복제된 마우스의 텔로미어에 대한 검사에서 연속 복제한 개체들에게서 특별히 텔로미어가 짧아지거나 조기 노화 현상이 관찰되지는 않았고 다만 이식한 배아의 1~2% 정도만 산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텔로미어가 긴 배아들이 선별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논문에 기술했다 (Wakayama, Shinkai et al. 2000).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중에 한 가지는 ‘왜 6계대 이상 연속 복제가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복제가 가능하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유전적 결함이나 후생학적인 이상이 치명적인 수준 이상으로 누적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예측되었다. 6회까지 재복제에 성공한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였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고 재복제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끝까지 연구했다.
마우스의 낮은 재복제 성공률에 의문을 품은 일본인 과학자
2015년 10월 27일, 필자는 Wakayama 박사를 처음 만났다. 그는 이미 마우스 복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유명인사였다. 그는 일본인 특유의 발음으로 발표를 진행했는데 영어는 유창하지 않았지만 발표 내용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발표 내용 중에 이런 일화도 소개했다. 해외 유명 학술잡지에 영어로 논문을 써서 제출했더니 해당 학술지에서 회신을 하면서 “올바른 영어”로 써서 제출해 달라며 게재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물론 논문도 다시 썼겠지만 다시 제출하며 보낸 메일에 “과학적 내용이 중요한가? 아니면 영어가 더 중요한가?”를 물었다고 했다. 마우스 연속 복제 결과는 그렇게 유명 학술지에 발표되었고 Wakayama 박사는 우수한 한국의 연구자들이 “영어” 때문에 주눅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마우스 복제 과정의 낮은 성공률은 Wakayama 박사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Trichostatin A (TSA)라는 물질이 실험에 적용되면서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TSA가 적용되자 마우스에서의 재복제 성공률이 극적으로 개선되어 25회까지 재복제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Figure 3 참조). 그럼 TSA는 도대체 어떤 물질이길래 이런 효과를 나타내는지 살펴보자.
Figure 3. TSA 적용과 마우스 재복제 성공률 데이터 (Wakayama, Kohda et al. 2013). 항진균 성능이 있는 TSA는 배아에서 histone deacetylation inhibitor로 작용한다.
재복제 성공률을 극적으로 높인 TSA (Trichostatin A)
TSA는 원래 Streptomyces hygroscopicus라는 세균이 내놓는 항곰팡이성 물질이었다. 그런데 이 물질이 유전체를 구성하는 히스톤 단백질에 아세틸기를 붙이고 떨어뜨리는데 관여하는 성질을 가진 것이 밝혀진 것이다. 히스톤 단백질에 아세틸기가 붙고 떨어지는 것은 마치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과 같아서 우리 유전체의 히스톤 단백질에 아세틸기가 붙으면 단백질 합성이 가능한 상태가 되고 아세틸기가 떨어지면 단백질 합성이 중단되는 성질이 있다. TSA가 아세틸기를 떨어뜨리는 효소를 억제하니 유전자가 아세틸화된 상태, 즉 단백질 합성이 가능한 열린 상태가 유지되었다 (Figure 3 참조).
Figure 4. 히스톤 단백질에 아세틸기가 붙으면 단백질 합성이 가능한 상태가 되고 아세틸기가 떨어지면 단백질 합성이 중단되는 성질이 있다 (그림 출처 : Depletion of Latent HIV Infection & the Goal of Eradication). TSA가 아세틸기를 떨어뜨리는 효소를 억제하니 유전자가 아세틸화된 상태, 즉 단백질 합성이 가능한 열린 상태가 유지되었다.
결과적으로 Wakayama 교수는 TSA를 이용, 마우스를 25회까지 재복제하는데 성공한다. 필자는 2015년에 Wakayama 박사를 심포지엄 발표장에서 만나고 그의 발표 사진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한 두번 재복제하기도 힘든 것을 25대나 연속해서 재복제를 성공함으로 그 이전의 복제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후성학적인 오류의 누적 등도 복제에 있어서 문제 중 하나였음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연구성과를 보였다. 대단한 집념과 노력이 아니고는 하기 힘든 연구였다. 국적을 떠나서 그가 연구를 수행했던 과정이나 연구성과는 존경스러웠으며 그러한 기초연구가 가능하도록 지원한 대학의 뚝심과 연구에 대한 배려 또한 부러웠다.
EPILOGUE
일본은 지금까지 총 25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5명 이상의 수상자 면면을 찬찬히 살펴보니 연구성과보다 평생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든 연구과정들이 눈에 띈다.
한 분야에 미쳐서 평생을 바치려면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계기도 있어야 하지만 또 그 분야에 대한 연구가 계속해서 흥미를 주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단기적으로는 정책적 변화나 파격적 지원으로 한 두 명의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진심으로 기초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탕 위에 짧고 굵은 지원보다는 긴 호흡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간단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는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연재
1편 - 누가 최초로 줄기세포란 멋진 이름을 붙였나? / 줄기(stem)의 일부만 심어도 완전한 개체로 복구될 수 있는 식물의 놀라운 능력 / 줄기세포 (stem cell)라는 용어를 인류 최초로 사용한 과학자 Ernst Haekel (1868년) / 다른 세포로 분화되는 능력을 가진 세포를 줄기세포라 명명한 Valentin Häcker (1892년) (2016년 8월 9일 연재)
2편 - 매일 하루에 2333억개의 적혈구를 만들어내는 줄기세포 (2)/ 생각보다 일찍 시작된 혈구에 대한 연구 / 100년전 발견된 혈액에서의 줄기세포 (stem cell)라는 개념을 생각해낸 100년전 과학자 알렉산더 A. 막시모프 (2016년 8월 17일 연재)
3편 - 줄기세포 논란 때마다 나오는 테라토마 (teratoma) (3)/ “STAP세포는 있습니다….” / Obokata 연구원의 연구 성과는 왜 그렇게 주목 받았을까?/ 약 60년전, 마우스에서 발견된 테라토마 (1954) (2016년 8월 23일 연재)
4편 - 핵전쟁 발발 가능성이 골수이식을 가능케 하다 (4) / 1945년 8월, 일본의 두 도시에 핵폭탄이 터지다 / 혈액성분에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치는 방사선 (1949년) / 조혈에 중요한 부위에 대한 단서를 찾다 (1951년) / 방사선에 노출된 마우스에 세포를 이식해 보다 / 사람에게 골수를 정맥으로 주사한 첫 시도 (1957년) (2016년 8월 30일 연재)
5편 - 1963년, 드디어 줄기세포의 개념이 확립되다 (5)/ 인류 최초의 골수이식 –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사람 골수이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살신성인 핵물리학자 Louis Alexander Slotin 박사 / Louis Slotin 박사의 엄청난 판단력 덕분에 알게된 방사선 조사 용량 / 임상실패를 딛고 다시 동물실험을 기초부터 수행하다 / 1960년, 캐나다 – 의학과 생물리학의 만남 / 드디어 확립된 줄기세포의 개념 (2016년 9월 6일 연재)
6편 - 인류 최초 시험관 아기의 탄생 (1978년) / Mouse 유래 배아줄기세포의 분리 (1981) /
복제양 돌리가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개구리 체세포 복제 실험 (1975년) (2016년 9월 13일 연재)
7편 – 인류 최초의 복제 포유동물 “돌리” / 피부 세포로 개구리 복제에 성공하다 / 이해를 돕기위한 소설 :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아내를 다시 태어나게 한 A 생명공학 교수 / Gurdon 박사 연구 성과의 의미 / 분화된 세포의 초기화 : Nuclear reprogramming/ 세계 최초의 체세포 복제 포유동물 Dolly (2017년 8월 8일 연재)
8편 - 복제양 Dolly에게 조기 노화를 일으킨 텔로미어/ 예상 수명의 반 밖에 살지 못한 Dolly / 발생 시계는 Zero에서 시작한다. / 세포는 죽지 않는다고 믿었던 과학자들 / Dolly의 짧았던 수명과 텔로미어 (2017년 8월 17일 연재)
참고문헌
Wakayama, S., T. Kohda, H. Obokata, M. Tokoro, C. Li, Y. Terashita, E. Mizutani, S. Kishigami, F. Ishino and T. Wakayama (2013). "Successful serial recloning in the mouse over multiple generations." Cell Stem Cell 12(3): 293-297.
Wakayama, T., Y. Shinkai, K. L. Tamashiro, H. Niida, D. C. Blanchard, R. J. Blanchard, A. Ogura, K. Tanemura, M. Tachibana and A. C. Perry (2000). "Ageing: cloning of mice to six generations." Nature 407(6802):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