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별장 하나 장만했다
63년에 서울 올라와 60년 만에 별장 하나 장만했다. 요즘은 새벽에 아내와 별장에 나가 봄에 심은 백합꽃 군락에 날아오는 나비 구경한다. 성경에 이런 구절 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로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 나는 세속의 모든 영화가 한송이 백합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거기 오동나무도 두 그루 심었다.
오동 하면 鄭澈의 시가 떠오른다. 曆日僧何識(스님이 어찌 날짜 지나감을 알겠는가) 山花記四時(산에 피는 꽃을 보고 계절을 알 뿐) 時於碧雲裏(때때로 푸른 구름 속에서) 桐葉座題詩(앉아서 오동잎에 시를 쓰네).
장주(莊周)의 「추수」 편도 떠오른다. '남방의 원추(鵷鶵)라는 새는 벽오동이 아니면 앉지도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예천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고 했다. 원추는 상상의 새 봉황을 말하며, 봉황이 앉아서 쉬는 나무(祥瑞木)가 오동(梧桐)이다. 無號 하종인 스님 생각난다. 작고하시기 전에 나에게 '桐梓'란 號를 대리석에 조각해서 주었다. 동(桐)은 오동나무요, 재(梓)는 가래나무다. 둘 다 봉황이 머무는 나무다.
거사에겐 경노당이 별장이다. 졸업 후 '일간 내외경제' 기자 때 처음 이문동에 집을 장만했다. 밑에는 청량리서 원주 가는 기차가 심심하면 빽빽 소릴 지르고 다녔다. 거기 축대 집 손바닥만 한 화단에 배나무를 심었다. 늦가을에 배가 두 개 익자 아들이 학교 선생님이던 뒷집 할머니와 나눠먹었다. 세월이 흘러 삼성동 빌라에 살 때는 앞마당에 단감나무 심고, 뒷마당에 가죽나무 심고, 계단 위에는 포모사 자두나무 심었다. 여름에 자두 익고 가을에 감 익으면, 거사 몸값 올라간다. 나와 동갑인 부산 출신 2층 부인과 재일교포 3층 태사자 어머니가 과일 하나 맛보자며 아양 떤다. 그러면 마님 몰래 자두나 감 따서 그들께 건네주었다.
토평 살 때도 꽃 판을 벌렸다. 종로 5가에서 감나무 사 왔고, 파주 가서 장미 사 왔다. 꽃 보러 아침마다 주부들이 몰려와 수다 떨었고, 부녀회는 '아파트 조경 위원장'이란 규정 외 별정직을 하사했다. 수지 대우아파트에서도 감나무와 장미 또 심었다. 나처럼 결혼 후 50년 서울 살면서 사는 집마다 감나무 심고 꽃 심은 사람 드물 것이다. 나는 서울시장한테 공로패 받을 자격 있다.
지금 살고있는 성복동 롯데 아파트는 참 편리하다. 옆에 전철역과 롯데몰 있다. 노인정은 에어컨 잘 나오고 공짜 커피와 녹차 준비되어있다. 화단엔 백합화 만발하고, 숲 속엔 두 그루 오동나무 자란다. 자연이 그립다고 멀리 지리산 설악산 찾아갈 필요없다. 새벽에 슬리퍼만 끌고가면 南窓 너머에 숲이 있다. 숲을 바라보며 30 분 참선 호흡해보라. 거기가 별장이요, 거기가 阿蘭若다. 허허허! 마지막으로 천기누설 하나 밝히련다. 요즘 거사는 아침마다 땅에 무엇을 심고있다. 먹고 남은 자두와 복숭아씨다. 백 년 쯤 후에 이곳이 무릉도원이 되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