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 / 김규율
〈달콤한 인생〉을 보고
정년퇴직 다음 달에 삭발했다. 삭발을 좋아하거나 동경한 건 아니다. 종교적이거나 어떤 불의에 항거하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머리를 너무 길게 기르거나 빡빡 깎는 남자는 알고 보면 똑같이 이상한 놈이다.” 오래전 어떤 행사에서 공연에 출연한 사람이 한 말이다. 그때의 어감으로는 그 말이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을 하거나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러한 정신이나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들렸다. 사람이 중요한 결심을 할 때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하는 경우는 적다. 내가 삭발하게 된 동기 역시 나도 잘 모를 정도로 복잡하다.
퇴직이 가져온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환경 앞에서 마음을 다잡고, 생각도 달리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있었다. 그런 여러 심정을 내보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생겼다. 마음을 내보인다는 건,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향한 약속을 굳힌다는 의미도 있다. 금연이나 금주 결심을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말해야 효과를 본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삭발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지든, 빠지든 희든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스님들이 파르스름하게 머리를 밀어내는 이유 중 하나는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수행에 전념한다는 뜻이리라.
퇴직해서 삭발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우선 가족의 이해가 필요했다. 아내는 내심 삭발을 원치 않는 표정을 보였다. 그렇지만 일 년도 넘게, 삭발한다는 이야기를 조금씩 했기에 큰 거부감은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아내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전동 이발기를 검색해주기까지 했다. 동네 미용실 주인은 삭발을 말렸다. 하는 수 없이, 처음에는 머리를 최대한 짧게 깎고, 다음번에 비로소 완전한 삭발을 했다.
삭발하고 집으로 올 때 모자를 쓰지 않았다. 굳은 마음으로 머리를 깎았는데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신경을 덜 쓰려고 머리를 깎았는데, 오히려 주목받게 된 결과에 약간 당황했다. 아내는 삭발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로 완곡하게 거부감을 나타냈다. 며칠 후 볼일이 있어서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서려고 할 때, 아들이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럴 거면 뭣하려고 머리 깎았어요?” 용기를 주는 건지 빈정대는 건지 알 수 없는 무심한 말이다. 내가 삭발하고 나니 삭발한 사람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의외로 젊은 사람들이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외국에서 그러하듯이 우리나라도 이제 빡빡머리가 하나의 머리 형태로 자리 잡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 갈 때 삭발한 후 40년 만에 다시 깎은 머리를 기념하고 싶었다. 재색 생활한복을 입고 찍은 휴대전화 셀카 사진은 내가 봐도 승려 모습이 연상되었다. 문제는 꼭 가봐야 할 경조사가 생겼을 때다. 사람들은 삭발한 나를 대수롭잖게 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내가 부담되었다.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단이지만 스스로 약해지고 있었다. 삭발에 대해 자연스럽게 보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 나이 서른이 되기 전, 출가를 생각하고 스님과 상담한 적이 있다. 수렁에 빠진 듯한 이십 대가 떠올릴 수 있는 여러 돌파구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현실도피와도 같은 것이었다. 어느 스님은 출가하려는 사람 마음이 자살하려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절박하다는 뜻이리라. 또 출가는 죽을 정도의 각오가 필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젊었을 때 출가 안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도를 깨달아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으로 출가해도 부족할 터인데, 한때의 고통을 피하려고 출가를 생각했다. 설령 출가했더라도 결코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는 못했으리라. 종교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또 출가 수도승의 길이 어찌 속세의 삶보다 편하겠는가.
이제 출가나 은둔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생각과 행동하기에 따라, 출가·은둔과 유사한 생활이 가능한 은퇴자의 삶이다. 삭발하면서 새로운 출발이나 제2의 인생 같은 의미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은퇴 후 삭발은 다른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치른 자발적 통과의례였다. 하나의 이벤트이고 호된 신고식이었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의지를 알리는 선언 같은 성격이 되지 않았을까, 등으로 자기합리화와 미화도 해본다. 나는 은퇴했어도 나름대로 뭔가를 생각하고, 다시 목표하는 게 있다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은퇴한 후 변화된 환경에 어색해할 아내의 마음을 보듬어줄 필요도 있었다.
이제는 너무 드러내지 않으며 내면의 성숙을 생각하는 자세가 좋겠다. 과거를 잊으려고 하되 아주 잊지는 말고, 출가의 꿈이나 삭발의 마음도 안으로 쟁여두려고 한다. 직장 은퇴가 인생 은퇴가 되지 않고, 의미 있는 일이나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고목이라 해도 꽃 피우고 열매 맺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며,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는 건 무람없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위안 삼으려는 마음은 접기로 한다. 다만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마음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꼭 내 정원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해야 좋은 일인가. 옆집에 핀 꽃도 바라보며 축하해주고, 멀리 꽃소식이 들리면 구경도 가볼 일이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진솔한 글입니다.물론 사유도 깊고요.
문운이 창궐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