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4:31- 37
31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 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귀신이 이렇게 얘기해요. 마귀가 안다고요)
3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떤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예수님께서 시험을 다 받으시고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세요.
갈릴리는 히브리어 ‘가릴‘에서 온 단어로, 돌고 돌다에요. 하는 일이 계속 반복되다. 이런 뜻이에요.
그리고 가버나움은 히브리어 카파르나흠에서 나온 단어인데 카파르가 성전을 가리키고 나흠이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이란 뜻이에요.
쉽게 풀어쓰면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성전, 그러니까 갈릴리 가버나움은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성전, 나를 위한 성전, 구약의 성전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구약이 쉬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는 그러한 구약의 성전, 이게 갈리리 가버나움 이에요.
이 성경의 일차 수신자인 히브리 사람들은 갈리리 가버나움 하면 쉽게 그러한 개념을 떠올렸단 말이에요.
거기에다가 그곳은 회당이었어요.
회당은 원 성전에 못 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경을 배우고 하는 곳이에요. 교회예요, 교회.
그리고 그날은 이스라엘의 안식일이었다. 그래요.
이걸 다 종합해보면 갈릴리 가버나움의 안식일, 회당은 하나님의 안식을 오해하여, 복음이 주는 하나님의 안식을 오해하여 자신들을 위로할 성전을 추구하며 그 율법의 루틴을 살고 있는 인간 세상, 즉 가짜 교회가 되는 거죠.
이게 바로 마귀가 말씀을 사용하여 오해시키려 했던 내용이었잖아요.
그런데 그걸 당시 회당이 그대로 담고 있었단 말이에요. 거기에 귀신들린 사람이 등장하는 거예요.
그런데 조금 이상하죠? 그 장소가 회당이란 말이에요. 다른 곳도 아니고.
귀신들린 사람은 회당에 못 들어와요. 아니, 회당뿐만 아니라 동네 안으로도 못 들어와요.
유대인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을 들여요?
당시에는 귀신들린 사람은 마을 밖으로 격리되어 살도록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버젓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회당 안에 귀신들린 자가 있는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건 단순히 회당 안에 귀신들려 미친 사람이 있었고 예수님의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다는 치유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우리가 금방 알 수 있는 거예요.
거기에서 귀신들린 사람이라고 번역이 된 어구가 푸뉴마 아카달토스에요. 푸뉴마는 성령입니다.
성령에게 쓰이는 단어가 왜 귀신들린 자에게 쓰였을까요? 푸뉴마 아카달토스, 아카달토스는 불결한, 더러운 왜곡된 이란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왜곡된 성령, 더러운 성령이에요. 그런 성령이 있을 수 있어요? 왜곡된 성령, 더러운 성령이 있을 수 있냐고요?
그렇다면 더럽고 왜곡된 성령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히브리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읽었을까요?
요한복음 6장 63절 보세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로고스) 영이요(푸뉴마) 생명이다
그래요. 여기 보면 육과 영이 대조되고 있어요. 성령과 마귀가 대조되는 거죠?
여기서 육은 역사와 인생을 아울러 총칭하는 개념이고 푸뉴마, 영, 이건 성령을 가리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성령을 로고스, 말씀이라고도 부르시고 생명이라고도 부르신단 말이에요. 성령을.
그러니까 진짜 성령은 예수라는 말씀을 가리키는 거고 그 예수가 바로 생명이란 뜻이에요.
그렇다면 푸뉴마 아카달토스, 더러운 성령, 왜곡된 성령은 무얼 가리킬까요? 단순히 귀신들린 사람으로 그들이 인식했을까요?
아니요. 예수에게로 인도하지 않고 인간의 행위로 이끌어가는 왜곡된 더러운 말씀, 말씀의 흉내를 내는 더러운 말씀을 푸뉴마 아카달토스, 그걸 귀신들린 사람으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회당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 귀신들린 사람 안으로 들어가서 너희들이 다 그런 사람이더라는 설명하는 거예요. 지금.
히브리 사람들은 그러한 더러운 말, 왜곡된 말을 가진 자를 귀신들린 자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누가가 푸뉴마 아카달토스라는 말을 쓰고 있는 거예요.
지금 누가는 회당 안의 모든 인간들을 다 싸잡아서 푸뉴마 아카달토스라고 지적하고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