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존 에드워즈는 그의 유세에서 자신의 ‘성공’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친은 (직조)공장 직공으로 평생을 일했다. 모친은 (우체국 직원 등) 이 일 저 일 여러 가지를 했다. 부모님은 (오로지) 나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힘든) 일을 했다. 나는 우리 가족 가운데 처음으로 대학생이 됐다. 나는 이제 나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이는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행운이었다.”
다른 사례는 허스트 캐슬과 허스트 언론 그룹 소유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다.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10살 안팎이던 시절 이미 영국 등 유럽을 여행하고 유럽의 문화에 매혹됐다. 그리고 아버지 조지 허스트가 소유한 4만 에이커 크기 샌시미언 랜치의 뒷 산에 올라가 훗날 그 자리에 유럽식 대 호화 건축물을 세울 것을 꿈꾸었다.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샌시미언의 허스트 캐슬은 그의 어릴 적 꿈의 결정이다.
두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모두 아메리칸 드림의 구현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에드워즈나 허스트의 아메리칸 드림은 서로 다르다. 에드워즈류는 에이브러햄 링컨이나 빌 클린턴의 꿈에 가깝다. 어린 시절의 난관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성공담, 이른바 대망의 실현이다.
허스트의 꿈은 미국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유럽식이다. 유럽 왕실에서 자라는 어린 왕자의 호사스런 야심에 버금한다. 실제로 127에이커의 정원과 165개의 방으로 된 허스트 캐슬은 미국인이 재구성한 유럽 왕가의 성곽이다.
보통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말하면 이민자들이 미국이라는 이국 사회가 마련한 갖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성공하는 것을 가리킨다. 동시에 미국에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조언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에 첫발을 디딘 사람들은 우선 꿈을 가질 것을 조언받는다.
한인들이 갖는 꿈은 이민자의 꿈이다. 한인들이 갖는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갖는 규범과 질서 속에서 최선을 다할 경우 이민자로서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올바른 미래에 대한 설계를 갖고 최선을 다할 경우 미국은 외국인에게도 기회를 주는 사회라는 얘기다.‘꿈’을 부르짖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류와도 사뭇 다르다.
킹 목사의 ‘꿈’은 절망하지 않는 것이 사는 길이라는 메시지다. 에드워즈나 허스트의 세속적 ‘꿈’에 비해서 매우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다. 한인이 가져야 할 꿈은 이런 철학적 종교적 꿈도 아니고 허스트류의 왕자의 꿈도 아니다. 오히려 에드워즈류의 세속적 꿈과 닮은 점이 있다. 그러나 한인들은 에드워즈와 달리 이민자라는 제약을 안고 있다.
이제 한인들, 특히 한인 자녀들이 어떤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있는 지 되돌아볼 때다. 한인 타운에 빈번한 범죄사건이나 탈선 행위 보도는 그런 자각도 상당히 시간적으로 늦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들 한인 청소년들의 탈선행위는 분명 부모들이 갖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과 자녀들의 ‘세속적 꿈’이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부 한인 자녀들이 어쩌면 잘못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될 정도다. 하기사 부모들이 사기와 탈선과 범죄를 아메리칸 드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자녀들이 배우는 것도 그런 것일 것이다.
허스트류의 왕자식 아메리칸 드림을 마련해주지 못할지라도 자녀들의 밝은 미래와 멋진 꿈의 실현을 위해 한인 사회 어른들의 올바른 아메리칸 드림 설정이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