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뮤지컬
꼭 진짜 같은 무대 위 커다란 성,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여운을 주는 대사들은 그냥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뼈저리게 노력해야 나오는 결과였던 것이다. 그걸 프로젝트를 하는 내내 깨우칠 수 있었다. 길고도 길었던 극본과 이번 한 학기를 보내며 생긴 기쁨과 고통과 시련을 적어본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땐, 내가 극본을 적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극을 적게 됐을 때, 정말 막막했다. 처음엔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할지 상상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인물을 라온 오빠와 윤지, 지환 오빠와 천천히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극의 결말이 만들어졌고, 전하고자 하는 가치도 점점 형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던 애매모호한 이야기는 글로 적히면서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게 너무 신나서 쉬는 시간이면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렸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의 짧은 의견 하나하나가 모여 등장인물이 생겨났다.
인물을 떠올리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기에 극본은 그보다는 더 쉬운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너무도 우습게도.. 크나큰 착각이었다. 별거 아닌 한 문장, 한 단어를 적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극본은 대충대충 적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애정 담긴 문장으로만 이루어진 생각의 결정체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미워하며 매일을 컴퓨터 앞에서 울고 웃으며 보냈다. 특히 논문 발표와 함께 극본을 쓰는 기간은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이야기를 적어야 할진 모르겠지만, 끝을 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시간을 쪼개 글을 쓰던 바쁜 일상 속의 창작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그렇게 끙끙대며 일주일간 적어둔 극본을 뮤지컬 팀원들과 함께 나누며 읽고, 역할을 나누는 화요일 프로젝트 시간이 참 좋았다. 그 과정에서 모든 인물이 정말 사람으로 목소리와 몸을 머금고 태어나는 느낌을 느꼈다. 그런 느낌은 살아가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새로운 기분을 느끼며 노래를 만들고 계속 극본을 적었다. 지루한 순간도 있었지만, 가끔 튀어나오는 좋은 문장을 보며 끈기를 얻었다.
그렇게 적고, 읽고, 노래해보는 걸 반복하다 보니 극본 마감기한은 다가왔다. 마음에 없는 말, 있는 말 모두 적고 새로운 글로 눌러담다,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을 놓고 최종본을 은향쌤께 보냈다. 홀가분했다. 인물을 조금 더 먼 곳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 기분이었다.
이제 남은 과정은 극 연습과 공연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일주일 만에 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배경을 완성했고, 노래를 연습하며 극을 연습했다. 극본을 미룬 내가 미웠고 팀원들에게도 미안한 순간이 많았다. 늦은 밤까지 연습하며 미안함과 피곤함을 느끼며 일주일을 보냈다. 정말 마지막 연습날인 금요일이 다가왔고 마지막 연습을 새벽 3시에야 끝냈다. 그리고 5시간이 지나고 힘이 넘치는 상태에서 축제날을 맞이했다.
축제 당일, 무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대에서의 마지막 순간만 기억에 남는다. 개인 소감을 이야기는 하는 순간에 이 극이 나의 첫 자식 같다고 말한 게 생각난다.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아주 열심히 만들고 다듬은 자식 같은 존재다. 한 번의 무대 하나만 바라보며 치열하게 달려온 한 학기의 시간이 편안하게 마무리되는 여러 말을 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날 저녁으로 먹은 고추 장아찌는 아주 매웠는데, 기분은 꽤 괜찮았다. 그러니까, 극을 만족스럽게 끝냈단 이야기다.
프로젝트를 하는 내내 신나는 시간이었다. 신나게 글을 써보고 이야기 나눴고 상상했다. 프로젝트 시간이 끝나고도 숲에 가자 수업시간에 숲을 걸으면서도 생각했고, 생활관에서도 생각했고, 집에 오는 버스에서도 생각했다. 너덜거리는 찢어진 극본을 어느 곳에서나 읽었다. 가끔은 리아가 하은이로 보이기도 했다. 무대 소품 중 하나인 문을 칠하다 신발에 묻은 페인트는 아직도 안 지워졌다. 그리고 극본을 쓰며 얻은 빠른 타자 속도와 다크써클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몸속에 깊게 배인 뮤지컬에 진심이었던, 그런 마음들을 애정한다. 막막했던 길고 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도와준 민재쌤과 은향쌤, 윤지, 리아, 비채, 여경 언니, 지환, 라온 오빠에게 많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앞으로도 뮤지컬과 멀 듯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싶다. 그러다 인연이 맞으면 자꾸 만나면서 말이다. 뮤지컬 프로젝트, 정말 신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