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진항이 백어에게 물어 말하되, “당신(선생)은 또한 특별히 들은 말이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 亢以私意窺聖人 疑必陰厚其子 진항이 사사로운 뜻으로 성인을 엿보고자 하였으니, 반드시 몰래 그 자식을 후대하였을 것으로 의심하였다. 對曰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詩乎 對曰 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대답하여 말하길, “아직 없습니다. 일찍이 홀로 서 계실 적에, 제(공리)가 정원을 총총히 지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길, ‘시를 배웠느냐?’고 하시어, 대답하여 아뢰길, ‘아직 못 배웠습니다.’라고 하였더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하시어, 저는 물러 나와 시를 배웠습니다.”라고 하였다. 事理通達 而心氣和平 故能言. (시를 배우면) 사리에 통달하여 심기가 화평하게 되므로, 능히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慶源輔氏曰 詩本人情該物理 故學之者 事理通達 其爲敎溫柔敦厚 使人不絞不訐 故學之者 心氣和平 事理通達 則無昏塞之患 心氣和平 則無躁急之失 此其所以能言 경원보씨가 말하길, “시는 人情을 본받고 物理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를 배우는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게 된다. 그 가르치는 것이 온유하고 돈후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헐뜯고 들추어내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이를 배우는 사람은 심기가 화평하게 된다. 사리에 통달하면 어둡고 막히는 걱정이 없고, 심기가 화평하면 조급해하는 허물이 없다. 이것이 바로 말을 잘할 수 있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誦詩三百而使能專對亦學詩能言之驗 신안진씨가 말하길, “시 3백수를 암송하면 사신으로 가서 능히 오로지 대처할 수 있다는 것도 역시 시를 배우면 말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의 증험이다.”라고 하였다. 他日又獨立 鯉趨而過庭 曰 學禮乎 對曰 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다른 날에 다시 홀로 서 계시기에, 제가 총총히 정원을 지나갔는데, 말씀하시길 ‘예를 배웠느냐?’고 물어, 대답하길,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자,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어, 저는 물러 나와 예를 배웠습니다.”라고 하였다. 品節詳明 而德性堅定 故能立 (예를 배우면) 품절(등급에 따라 조절함)이 상세하고 밝아지면서, 덕성이 굳세게 안정되므로 능히 설 수가 있게 된다. 慶源輔氏曰 禮有三千三百之目 其序截然而不可亂 故學之者 品節詳明 其爲敎恭儉莊敬 使人不淫不懾 故學之者 德性堅定 品節詳明 則義精而莫之惑 德性堅定 則守固而莫之搖 此其所以能立 경원보씨가 말하길, “예는 3,300가지의 항목이 있는데, 그 순서가 확연하여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예를 배운 사람은 품절이 상세하고 명확하며, 그 가르치는 것이 공손하고 검소하며 장중하고 공경하는 것이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치지 않게 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 그러므로 이를 배운 사람은 덕성이 견고하게 안정된다. 품절이 상세하고 밝으면 義가 정밀하여 어떤 것도 미혹하지 못한다. 덕성이 굳세게 안정되면 지킴이 견고해져 어떤 것도 그를 흔들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능히 설 수 있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夫子嘗曰立於禮 又學禮能立之證 신안진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일찍이 예에서 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 또한 예를 배우면 능히 설 수 있다는 것의 증거다.”라고 하였다. 聞斯二者 “이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라고 하였다. 當獨立之時 所聞不過如此 其無異聞可知. 홀로 서 계실 적에 들은 바가 이러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가 특별히 들은 바는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陳亢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 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진항은 물러나와 기뻐하며 말하길, “한 가지를 물었더니 세 가지를 얻었다. 시를 들었고, 예를 들었으며, 또한 군자는 그 자식을 멀리한다는 것을 들었다.”라고 하였다. ○ 尹氏曰 孔子之敎其子 無異於門人 故陳亢以爲遠其子 윤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자기 자식을 가르칠 적에 다른 문인들과 다른 점이 없었기 때문에, 진항은 (공자께서) 그 자식을 멀리한다고 여겼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聖人之敎未嘗私厚其子 學詩學禮止可告之 若此學必待其自肯 정자가 말하길, “성인의 가르침은 일찍이 자기 자식을 사사로이 후대한 적이 없었으니, 시를 배우고 예를 배우는 것은 단지 일러줄 수 있음에 그칠 뿐이고, 만약 이것을 배우는 것이라면, 반드시 그 스스로 하고자 함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陳亢實以私己之心窺孔子 故有此問 及其聞伯魚之說而又以孔子爲遠其子 則以己私意之未忘而以爲聖人故推其子而遠之也 殊不知 聖人曷嘗有是心哉 但其敎人之法不過如此 而自世人之私厚其子者觀之 則亦可以有警云爾 주자가 말하길, “진항은 실제로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으로 공자를 엿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한 것이다. 그가 백어의 말을 들음에 이르러서는, 또한 공자께서 그 자식을 멀리한다고 생각하였으니, 이는 곧 자신의 사사로운 뜻을 잊지 못하고서, 성인께서 일부러 그 자식을 밀어내어 멀리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니, 성인께서 일찍이 어찌 이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겠는가? 단지 성인께서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이 이와 같음에 불과하였지만, 세상 사람들이 제 자식을 사사로이 후대하는 것으로부터 그것을 살펴본다면, 역시 이로써 경계하는 바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聖人竭兩端之敎於親疎賢愚 無以異也 其告門人固嘗曰 興於詩立於禮 而此語伯魚 以先之以學詩 次之以學禮 學之序固當然也 不學詩無以言 易其心而後能言也 不學禮無以立 謹其節而後有立也 陳亢初疑伯魚之有異聞 及聞斯言乃亦夫子之所以敎門人者 故有遠其子之言 謂不私其子也 味伯魚答陳亢之辭氣 亦可見其薰陶之所得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성인께서 親疏와 賢愚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양단의 가르침을 다하신 것에 대하여 특이하게 여길 것이 없다. 문인들에게 일러줄 적에 본디 일찍이 말하길, 시에서 흥하고 예에서 선다고 하였고, 여기서 백어에게 말할 적에는 시를 배우라는 것을 앞에 하였고 예를 배우는 것을 그 다음에 하였는데, 배움의 순서상 본래 당연한 것이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으니, 그 마음을 평이하게 한 연후에 능히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가 없으니, 그 절도를 삼간 연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진항은 처음에 백어가 특별히 들은 말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였다가, 이 말을 들음에 이르러서는, 이 역시 공자께서 문인들을 가르치신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을 멀리한다는 말을 하였던 것이니, 자기 자식을 사사롭게 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백어가 진항에게 대답한 말의 기운을 음미해보면, 그가 훈도를 통해 터득한 바를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詩能興起人心 禮可固人肌膚之會筋骸之束 於初學爲最近 故聖人以此爲學者門戶 잠실진씨가 말하길, “詩는 사람의 마음을 흥기시킬 수 있고, 禮는 사람의 살과 피부의 결합, 그리고 근육과 뼈의 결속을 견고하게 할 수 있으니,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제일 천근한 것이 된다. 그래서 성인께서 이것을 가지고 배우는 사람이 들어가는 문으로 삼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陳亢謂聖人遠其子 未免以私意窺聖人 曰 古者易子而敎之 父子之間不責善乃天理如此 非私意也 누군가 묻기를, “진항은 성인께서 자기 자식을 멀리한다고 말하였으니, 사사로운 뜻으로 성인을 엿본 것을 면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옛날에는 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쳤는데, 부자지간에 責善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天理가 이와 같은 것이지, 사사로운 뜻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問伯魚聖人之子 陳亢意其有異聞 及止聞詩禮之訓 乃知聖人遠其子 愚意伯魚之資稟稍劣 故聖人止以是告也 使其有曾顔之資亦當以曾顔者告之矣 若一以遠其子 則是有心於爲公也 聖人然乎哉 曰 父子主恩 義方之訓 只說到這處 若伯魚天資穎悟 卽飮食起居無非敎也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聖人何隱乎爾 曾顔可至 伯魚亦可至 自是日用不知耳 누군가 묻길, “백어는 성인의 아들이니, 진항은 그가 특별한 말씀을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가, 단지 시와 예의 가르침을 들은 것에 미쳐서는, 마침내 성인이 자기 자식을 멀리함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백어의 천부적 자질이 다소 열악하였기 때문에, 성인께서는 그저 이로써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백어에게 증자나 안자의 자질이 있었다면, 역시 증자나 안자와 같은 것으로써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만약 일률적으로 자기 자식을 멀리한다면, 이것은 공평하게 하는 것에 마음을 둔 것이니, 성인께서 그렇게 하시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아버지와 자식은 은혜를 주안점으로 삼으니, 의로 밖을 방정하게 하는 가르침은 단지 여기까지 말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만약 백어의 천부적 자질이 뛰어났더라면, 먹고 마시고 기거하는 것 중에 가르침이 아닌 것이 없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사계절이 운행되며 온갖 사물이 그곳에서 생겨난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숨기겠는가?’라고 하셨으니, 증자와 안자가 이를 수 있었다면, 백어도 역시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일상생활 중에 알지 못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得三謂聞詩聞禮與遠其子爲三也 夫子固不私其子亦何嘗遠其子 當其可而敎之 敎子與敎門人一耳 興詩立禮 詩禮雅言 與此之聞詩聞禮 平日敎門人如此 敎子亦不過如此 陋哉亢之見也 味伯魚答亢之辭氣 雍容詳密 亦可見濡染薰陶之所得矣 惜其不壽而不至大成就耳 신안진씨가 말하길, “세 가지를 얻었다는 것은 시를 들었고, 예를 들었으며, 자기 자식을 멀리하는 것, 이렇게 셋이라는 것을 말한다. 공자께서 본래 자기 자식을 사사로이 대하지 않았으니, 또한 어찌 일찍이 자기 자식을 멀리한 적이 있었겠는가? 그 옳은 것에 당하여 가르치니, 자식을 가르치는 것과 문인을 가르치는 것이 똑같을 따름이다. 시에 흥하고 예에 선다거나, 시와 예는 평소 늘 하시던 말씀이라는 것은 여기서의 시와 예를 들었다는 것과 더불어 평소 문인들을 가르침이 이와 같았으니, 자식을 가르치는 것 역시 이와 같음에 불과하였다. 비루하구나! 진항의 식견이여! 백어가 진항에게 대답한 말의 기운이 온화하고 너그러우며 상세하고 정밀한 것을 음미해보면, 역시 훈도를 받고 젖어 물들어 터득한 바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백어가 장수하지 못하여 큰 성취에 이르지 못하였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