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고통스러운 미숙 씨. 오늘도 이를 악물고 걸음을 걸으려 애써 보지만 극심한 통증에 비명만 지릅니다.
평소 관절이 약했던 미숙 씨는 딸을 출산하던 중 고관절에 무리가 가서 2001년 수술을 받았지만 지금은 인공고관절이 다 닳아버린 상태입니다. 고관절 재수술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미숙 씨는 한없이 답답해집니다.
2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미숙 씨는 키가 130㎝에 불과한 왜소증(저신장증)을 갖고 있습니다. 해맑은 미소와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미숙 씨는 신체적 어려움을 딛고 전문대를 졸업했고, 사무실 경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었지요.
성실한 남편마저 병마 겹쳐 빚덩이 일찍 철든 중3 딸 희망 잃지 않았으면
이곳에서 기계 일을 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들과 달리 작은 키를 가진 미숙 씨에게 늘 따뜻한 배려를 해주는 마음씨에 반해 6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미숙 씨는 임신을 했지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남편이 울산에서 일을 하다 허리를 다치고 말았습니다. 디스크 수술을 받았지만 남편에게는 6급 장애진단이 남았습니다. 미숙 씨 또한 자연분만으로 출산을 하던 중 고관절에 무리가 가면서 고관절 수술을 받게 됐고, 끝내 2급 장애진단을 얻게 됐습니다.
남편은 허리 통증으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됐고 산업재해로 받은 보상금은 다단계의 유혹에 빠져 모두 탕진하고 빚까지 지게 됐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세 식구는 친척집을 전전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다시 일어서겠다며 노점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해 조금씩 희망을 쌓아나갔습니다.
하지만 4년 전 우연히 받게 된 건강검진에서 남편이 간 수치가 높고 담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약물치료를 병행하던 중 갑자기 심한 감기를 하던 남편은 면역력이 약화돼 급성폐렴을 앓게 됐습니다.
이미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에서 폐에 염증까지 생긴 데다 패혈증과 신종플루까지 겹쳐 남편의 병세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습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20일 동안 중환자실 치료를 받는 남편을 간호하면서 미숙 씨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다행히 남편은 고비를 넘기고 퇴원했지만,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약물 치료와 검사비 등 병원비가 1천만 원 넘게 나왔습니다. 미숙 씨는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주위 이웃에게 구걸하다시피 돈을 융통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간경화에 폐까지 나빠져 아예 일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미숙 씨 또한 서둘러 재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더 이상 도움 받을 곳도 없고, 남편 병원비로 생긴 빚도 갚아야 해 버겁기만 합니다.
중학교 3학년인 딸은 어려운 형편에 일찍 철이 들어버린 때문인지, 학교에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도 대학은 가지 않고 일찍 취업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미숙 씨는 착한 남편과 딸을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겠다고 다짐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습니다. 미숙 씨 가족이 다시 희망을 꿈 꿀 수 있게 도움과 응원을 기다립니다.
※'사랑의 징검다리'는 TBN부산교통방송(94.9㎒)에서 매주 목요일 오전 9시 30분에 방송됩니다.
이렇게 됐습니다
5월 18일자 정민 씨 이야기
지난달 18일 정민 씨의 사연이 게재된 후 모두 103명의 후원자가 455만 1천73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에게서 무작정 딸들을 데려와 생계가 막막했던 정민 씨와 두 딸은 아직도 이렇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크게 감동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열악한 주거 환경 때문에 이사가 절실했지만 보증금이 없었던 정민 씨는 이번에 전달받은 후원금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딸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볼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정민 씨는 "딸들이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돼 무척 감사하다"면서 "지금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나중에 자신과 딸들도 어려운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나눔을 실천하고 살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