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스스로의 입으로 한국을 비난하게 하라'', 일본 우익의 교묘한 노림수!
* 창씨개명은 하고 싶은 사람만 한 것이지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 강제로 연행한 ‘종군위안부’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모시는 신성한 행사로, 침략전쟁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일본 극우들의 주장일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각종 매체들에서 오선화(吳善
花)는 위와 같은 주장들을 거침없이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그의 주장을 일본
의 우익인사들은 ‘한국지식인 사회의 양심적인 고백’이라고 칭송하면서 그들 주장의
논리적 근거로 삼고 있다. 일본 우익 역사왜곡의 대표적인 책이라 할 수 있는 니시
오 간지(西尾幹二)의 <국민의 역사(國民の歷史)>에는 오선화의 책 <한국병합의 길
(韓國倂合への道)>이 인용되고 있으며,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외상은 ‘창씨개명
은 조선인들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그 근거로 오선화의 책
<생활자의 일본통치시대(生活者の日本統治時代)>를 들고 있는 것이다. 소위 ‘양심
적인 한국 지식인’ 오선화의 주장이, 이제는 일본 우익인사들의 우경화 발언에 그 근
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 첫 번째 책 <치마바람>에서부터 시작된 오선화 저작 대필의혹
< PD수첩 >이 종지부를 찍는다.
''90년대 초 오선화 기사는 내가 썼다'',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의 결정적 증언.
1983년 일본으로 건너간 오선화는 도쿄 우에노의 한국인 술집에서 호스티스 생활을
시작한다. 자신을 ‘호스티스가 아니라, 한국에서 온 호스티스 여성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준 강사’ 였다고만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이 <치마바람 (スカ?トの風)>은 일
약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본사회에 오선화의 이름을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러나 이후 이 책은 오선화가 쓴 책이 아니라 몇 명의 대필자가 있다는 의혹을 지속적
으로 받아왔지만, 결정적 증언이 없어 논란만 지속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 PD수첩 > 취재진이 만난, 오선화의 前동거남 기요츠카 마고토(淸塚 誠)씨는 ‘여
러 명의 대필자가 있다’는 고백을 했으며, 당시 출판사 사장이었던 다카하시 테루오
(高橋輝雄)씨 역시, 자신이 오선화를 거의 일 년 동안 가르치다시피 하면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시인했다. 뿐만 아니라, <치마바람>으로 유명해진 오선화가 이후 많은
우익계 잡지들에서 발표한 글들 역시 대필의혹을 받아왔는데, < PD수첩 > 취재진
이 어렵게 만난 현직 일본 우익잡지 관계자는 ‘90년대 초반 오선화의 이름으로 나간
기사 중 내가 쓴 것이 여러 개 있다’고 고백했다.
■ 나라를 팔아 ‘일본 우익의 애완견’이 된 학력 위조 교수 오선화.
오선화가 일본 귀화 사실을 숨기는 까닭은?
한편 오선화는 많은 글에서 자신이 한국의 ‘대구대학교’를 졸업했다고 밝혔다. 하지
만 < PD수첩 >의 확인 결과 ‘오선화’ 혹은 오선화의 본명인 ‘오승일(吳勝一)’ 어느 쪽
도 졸업생 명단 뿐만이 아니라 입학생 명단, 심지어는 편입학생 명단에서까지도 찾
을 수 없었다. 그녀의 한국에서의 학력이 위조된 것이다. 학력을 위조한 소위 ‘한국
출신 지식인’ 오선화는 현재 타쿠쇼쿠(拓植)대학교 국제개발학부의 교수로 활동하
고 있다. 학교 강의 이외에도, 오선화는 수많은 외부강연 활동을 하고 있는데, 취재
결과 오선화는 한 차례의 강연에 최저 10만 엔(약 85만 원)의 강연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지방에서의 강연일 경우 최고급 호텔과 교통편을 주최측에서 제공해주어
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오선화의 강연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약 20-30만 엔
(170만원-255만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인기강사로 이름이 높아 강
연이 많아 최소 3달 전에는 예약을 해두어야 한다고 한다. 그녀는 현재 도쿄 시부야
구 혼쵸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도쿄 인근의 온천지역에 별장까지 가지면서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인의 이름으로 ‘혐한?친일’ 발언을 한 자
가 누릴 수 있는 대가이다. 또한 취재 결과 오선화는 1998년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러한 사실을 숨긴 채 ‘한국인’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많은
일본 언론인, 출판관계자들은 “‘한국인’의 이름으로 ‘한국’을 비난하는 글을 쓰는 것
이 좀 더 센세이셔널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일본의 극우 세력은
‘한국 지식인 오선화’의 이름을 빌어 그들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오선화는 그들
로부터 사회?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 속속들이 등장하는 ''제 2의 오선화''!
현재 일본 베스트셀러인 ‘혐한류’의 참고 서적은 오선화의 책!
문제는 이런 문제가 오선화 한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네티즌들 사이
에서 명예훼손 소송으로 유명해진 <친일파를 위한 변명>의 작가 김완섭씨의 경우
도, 책 분석 결과 일본 우익의 논리와 일치하며, 이를 일본의 우익적인 인사, 매체들
은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 PD수첩 >에서는 김완섭이 참석한 ‘제 21회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심포지엄’ 강연 현장 동영상을 입수했는데. 이날 심포지
엄에서 ‘새역모’의 부회장인 후지오카 노부카츠(藤岡信勝)는 ‘오늘 강연으로 김완섭
은 한국에 재입국하는 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유엔 인권위
원회에 제소하겠다’고까지 발언했다. 이 날 강연에서 김완섭은 ‘식민지 시대에 조선
인들은 아무도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고 일본군이 되기 위해 조선
인들은 혈서까지 써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대형서점 한국관
계 서가에는, 근거 없이 한국을 비난하거나 일본의 전쟁책임을 부정하여, 미래지향
적인 한일관계 정립을 방해하는 책들이 넘쳐나고 있다. 발매 1년 만에 1백 만 부 판
매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화 <혐한류(嫌韓流)>의 작가 야마노 사린(山野車輪). 그
는 대중매체와의 인터뷰를 피하기 때문에 일본 기자들조차도 야마노 샤린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일본 내에서조차도 실존인물이 아닐지도 모른
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PD수첩 > 취재진은 <혐한류>의 출판사를 통해 공식적인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역시 얼굴을 공개하는 인터뷰는 거부한 채 이메일을 통해서
만 ‘<혐한류>는 정상적인 한일 관계의 구축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라는 답변만을
해왔다. 오선화의 책을 출간한 한 일본출판사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만화 <혐한류
>는 오선화씨의 주장을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 더 보시려면 우리가 출
간한 오선화씨의 다음과 같은 저작들을 참고하시라’는 친절한 홍보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선화는 일본 기자들도 얼굴을 모른다는 야마노 샤린과 ‘한류는 일본문
화의 도용이다’라는 요지의 대담을 나누고 그 대담기사를 잡지에 싣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