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먼 길, 막술 한 잔』
- 시인 구산 박정래(국문78) -
봄꽃이 함박눈처럼 내리고
하늘 구멍도 뻥 뚫린 주말
먼 길 떠난다는
젊은 부음하나 꽃잎처럼 날아왔네
세상 살다보니 멀지도 가깝지도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봇도랑 가 찔레넝쿨처럼 무심하던 후배,
그의 술 한 잔은 찔레가시처럼 시니컬하고
찔레꽃처럼 저 혼자 어디선가 피고 지던 녀석,
장례식장 앞 마로니에 공원에는
연산홍, 철쭉꽃, 원색 관상꽃들 흐트러지게 피고
숲속 길은 생기가 넘쳐 걷기조차 힘이 드는데
이런 계절 누군가 떠난다는 것은
뒤에 남은 희미한 삶들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
마지막 술 한 잔 건네며
그의 이름 꽃길에 묻네
(詩想) 그는 2천년 전후 회사 선후배로 함께 일했었다.
그 시절은 IMF 국가 부도라는 참담하기 그지없던 때였다.
대들보 같던 회사도 모래성처럼 무너졌고, 떠나고 남는 자가 모두 행복도,
불행도 아닌 블랙홀의 시간이었다. 그 무렵 후배는 떠났고,
그러나 그 후로 만날 때마다 바뀐 많은 명함을 내밀었었다.
어쩌다 우연히 술좌석에서 만나면, 언제나 그의 세상은 한쪽에 몰려 있고,
말로는 명쾌하게 그 세상을 몰아 부쳤다. 그가 지난 일요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퍼뜩 그는 박경리의 토지에서 사랑에 슬픈 월선아지매와 용이, 아들 홍이가
의존했던 주갑아재 같지 않았나 생각한다. 용정, 만주벌의 의인, 협객, 나그네,
울분을 타령으로 토했던 주갑아재.
누구나 꽃길을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꽃길에서 보내고 돌아오네.
첫댓글
마지막 가는 길에
막술 한잔에
편히 떠날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