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장 구속사 강해
기근에 대한 야곱의 인식
바로의 꿈을 해석한 지혜가 인정되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7년 간의 풍년 동안 곡식들을 모아 창고에 가득하게 하였고 다가올 흉년을 대비하였다. 흉년이 시작되자 세상은 기근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곡식이 없어 양식을 구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하게 변해갔다. 애굽 땅 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들까지 광범위하게 기갈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에 사방에서 애굽으로 곡식을 구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기 시작했다. 바로는 곡식의 관리를 요셉에게 위임하였고, 요셉은 일일이 곡식의 판매를 관장함으로서 계속된 흉년 동안에 양식이 모자라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단단히 단속하고 있었다.
1. 흉년에 대한 야곱의 해석
야곱과 그의 식솔들이 머물고 있는 가나안 땅에도 기갈은 예외가 아니었다. 사방 나라들이 먹을 양식이 없어 애굽으로 사러 다닌다는 소식은 마침내 야곱에게도 알려졌다. 야곱은 목축이나 농사를 통해 더 이상 양식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고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 양식을 구해오도록 하였다(창 42:2). 심각한 기근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것을 기다리고 있던 야곱은 기근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양식이 풍부한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심한 기갈이 계속될 경우 기근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이미 아브라함이나 이삭도 가나안에 기근이 오면 기근을 피해 다른 곳으로 잠시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야곱은 좀처럼 기근을 피해 가나안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양식을 구해오는 일에도 한도가 있기 때문에 가급적 생활의 여유 자금이 풍족할 때에 모든 식솔들을 기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무엇인가 중대한 조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가급적 타처로 이동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야곱이 분명하지 않지만 어떤 의도를 그 마음 속에 숨겨두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야곱의 속마음을 잘 알 수 없으나, 혹 20여 년 전 사라진 요셉에 대한 그리움이 야곱으로 하여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한 것으로 미루어 생각할 수 있다. 야곱이 요셉에게 대하여 그처럼 연연하고 있는 것은 요셉이 다른 형제들보다 특별한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12아들을 부여받은 의미에 대하여 신중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12아들을 주셨다는 것은 야곱을 통해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을 완성함에 있어 야곱의 기대를 모으고 있던 요셉이 사라졌다는 것은 야곱으로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던 일이다. 요셉을 보내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요셉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요셉의 죽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은 야곱으로서는 기약은 없지만 요셉의 살아 있음을 은근히 기대했을 것이라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그리움이 여전히 간절하였다는 것은 야곱이 양식을 사기 위해 애굽으로 10명의 아들을 보내면서 베냐민은 자신의 품속에 남겨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창 42:4). 요셉을 잃은 야곱은 베냐민을 늘 가까이에 두고 요셉을 마음 속에서 기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후 야곱은 요셉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총리로 있다는 사실과 요셉이 자기를 모셔오기 위해 보낸 수많은 보물과 수레들을 확인한 후 기력이 소생하여 기뻐하며 애굽으로 내려간 것을 볼 수 있는데(창 45:26-28) 좀처럼 현 거처를 떠나려 하지 않던 야곱이 곧바로 애굽으로 내려간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행동이다. 이런 점들을 본다면 야곱은 은근히 요셉의 생존에 대해 기대하고 그처럼 심한 기근 속에서라도 어떻게든지 요셉을 만나기 전에는 가나안을 떠나지 않으려 한 것 같다.
2. 요셉의 존재 가치
곡식을 사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열 명의 아들들은 요셉에게 절하고 그 면전에 서게 되었다. 그들은 20여 년 전 자기들이 팔아 넘긴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자기들의 눈앞에 버젓이 살아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요셉은 첫눈에 그들이 자기의 형들임을 알아봤으나 모른 체하고 오히려 엄중하게 그들을 대했다. 마음속으로는 오랜만에 만난 형들에 대한 기쁨으로 당장이라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형들과 오랜 해후를 나누어야 했으나 요셉은 냉정했다. 오히려 요셉은 형들을 궁지로 몰아갔다(창 42:8-9).
형들이 양식을 구하기 위해 자기 앞에 선 것을 본 요셉은 소년시절에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 곡식단을 둘러서고 절하던 꿈(창 37:6-8)과,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던 꿈(창 37:9)을 기억했을 것이다. 이미 요셉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소년시절에 꾼 꿈에 대하여 신중하게 여기고 그 꿈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양식을 얻기 위해 서 있는 것을 보고 그 꿈이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해석할 수 있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발탁되는 과정에서 가나안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나 굳이 애굽에 머물려고 결정함에 있어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일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한 요셉의 기대가 이제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둘째 번의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따라서 요셉은 아버지를 비롯한 베냐민의 생존에 대하여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들을 심문하던 요셉은 그들을 옥에 가두어 두었다(창 42:14-16). 삼일 후 요셉은 형들을 찾아와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너희가 독실한 자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들의 주림을 구하고 너희 말째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리하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창 42:18-20)고 제의했다. 이 말을 들은 형들은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자 형들은 자기들 중 한 사람이 볼모로 잡혀 있어야 함에 있어 서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였다. 오히려 20여 년 전 요셉을 판 일을 들추어내며 누군가 볼모로 잡혀 있어야 할 일에 대한 책임을 벗어버리려고 했다(창 42:21). 아무래도 자신들이 요셉을 미워한다는 이유만으로 요셉을 팔아버리고 야곱에게는 들짐승에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한 것에 대한 불안감이 지금까지 그들의 정서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누군가 담보로 옥살이를 하게 된 불행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러자 르우벤이 나머지 형제들을 힐문하면서 자신의 결백을 은근히 주장했다(창 42:22). 이 말을 들은 형제들은 피차간에 자신들의 이유를 내세워 누군가 볼모로 잡혀 있어야 함에 있어 서로 발뺌을 했다. 요셉은 그들의 통변을 듣고 심히 마음이 괴로워 혼자 울고 돌아온 후 시므온을 결박하여 볼모로 삼고 나머지 형들에게는 양식을 주어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처음에 요셉이 한 사람만 가서 베냐민을 데려올 때까지 형제들을 볼모로 잡아 두겠다고 위협했다가 삼일 후 그 대신 형제들 중 한 사람만을 볼모로 잡아 두겠다고 한 것은 그동안 형제들이 어떤 모양으로 변화되었는가를 시험해 보고자 한 의도였다. 비록 20여 년 전에 자신을 애굽으로 팔아버린 형들의 소행이야 밉다고 하더라도 그 일 속에는 하나님의 크신 경륜이 담겨 있음을 잘 알고 있는 요셉으로서는 이제 와서 그 일로 형들을 힐난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그동안 형들이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삶에 대하여 얼마만큼의 책임 의식을 발동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형들은 요셉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때문에 지금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켰다가는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게 되었다. 이에 요셉은 냉정하게 당시 요셉을 파는 일에 주동이 되었던 시므온을 볼모로 잡아두고 나머지 형들을 가나안으로 돌려보내 베냐민을 데려 오도록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