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강해]
누가로 본 수호천사 (눅 1:1-4)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시간에 “누가로 본 수호천사”라는 제목입니다. 성경에 성경에 수호천사라는 낱말은 없지만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마18:10에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했습니다. 우리의 출생에서부터 일생을 우리와 함께하며 돕는 떠나지 않는 천사입니다.
그런데 천사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천사 같은 사람을 들라고 하면 많겠지만 누가복음의 기자 누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바울 곁에 있어서 그의 사역이 마치기까지 영육 간에 바울을 도왔습니다. 마10:41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하신 말씀처럼, 누가가 받을 하늘의 상도 클 것입니다.
진정한 수호천사란 어떤 모습일까요?
1. 자기를 밝히지 않습니다.
수호천사가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도 자기를 감춘 것과 같이 누가는,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을 쓰면서 자기 이름을 내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초기 기독교 역사를 알 수가 없는데, 3절에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겨우 “나도”라는 낱말만 사용했습니다.
마6:1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경고하셨지만, 사람들은 자기 이름 내기를 좋아합니다. 이처럼 체험 가운데도 날마다 천사의 지시를 받고 천사와 대화한다면 사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경에도 간혹 천사가 나타나지만 천사는 불필요하게 자기를 나타내지 않습니다(마18:10, 히1:14, 행12:15, 시91:11-12). 천사숭배는 비성경적입니다. 그런데 옛적에 겸손하지 않고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는 천사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탄입니다.
우리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도 그런 약점을 가진 자들입니다. 얼마든지 하나님과 섬길 자를 대적할 소질을 가진 자들입니다. 돕든지 반대하든지 목적은 부정적인 역할이 아닌 언제나 긍정적인 역할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의 감동 속에서 일합니다.
본문 1-4절에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가 철저히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인 것을, 눅 1장 본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자었습니다. 아무나 성경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들이 정경으로까지 채택되었다는 것은 그는 온전한 성령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벧후1:20-21에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한 것과 같습니다.
개혁주의에서는 유기적 영감설을 믿는데 유기적 영감설이란 하나님께서 우리 인격을 활용하시되 온전히 성령으로 사로잡아 성경을 쓰게 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만큼 누가가 진리를 깊이 묵상했으며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성경 기록은 더이상 기록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천사로서 사명을 다하려면 그렇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52:7에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한 것처럼, 목회도 천사로서의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과 감동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3. 함께하며 떠나지 않습니다.
딤후4:9-10에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이처럼 누가는 바울을 떠나지 않은 충성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복음 증거하러 다닐 때 많은 무리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바울이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는 얼마나 많이 모여들었는지 창가에 걸터앉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 전도를 위해 감옥에 갇히자 그동안 바울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버렸습니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떠났습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심부름을 보냈고, 알렉산더는 바울을 대적하여 피해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군들조차 꼭 그런 식으로 전도해야만 하냐면서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 떠나도 누가는 로마 감옥에서도 바울과 같이 있었습니다. 특히 누가는 의사입니다. 간호사가 옆에 있어도 복인데 의사가 옆에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천사란 그래야 합니다. 천사가 우리를 판단하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우리를 떠나거나 대적한다면 천사가 아닙니다.
4. 수호천사는 약점을 돕습니다.
바울은 여러 면에서 훌륭하지만, 한 가지 흠은 육체의 가시였습니다. 바울은 그 병을 없애 달라고 하나님께 3번이나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필요해서 주셨다는 것입니다(고후12:9). 그러나 그 대신 의사 누가를 주셔서 바울을 보살펴 주셨습니다. 약점을 도와주었습니다.
한 편 누가로 인한 연단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심히 깐깐하고 꼼꼼하고 흐트러짐이 없이 완벽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누가는 기록을 잘합니다. 의사의 특징이 원인을 찾고 과정과 결과 등 기록하는 것인데 그 특징이 복음사역에도 나타납니다.
그는 너무나 완벽해서 부담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하도록 하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바울이 완전한 것도 이런 사람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경건생활을 비롯해 말과 행동도 흐트러질 수 없고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것이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것은 우리에게도 보이든 보이지 않든 수호천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으면 도움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지만 직무면에서는 하나님의 천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누가와 같이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고,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누가와 같은 하나님의 천사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