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
어제는 집에서 머리카락을 잘랐다. 반곱슬머리가 몇달 자르지 않은 탓에 이리저리 꼬부라지고 여름이라 더 덥게 느껴졌다. 그래 생각난 김에 서랍을 뒤져 면도칼이 끼워진 빗과 머리 자르는 가위로 대충 잘랐다. 안경을 끼자니 거추장스럽고 알에 머리카락이 묻어 벗었다. 벗으니 근시인 탓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방바닥에 손바닥만한 거울을 놓고 몸을 앞으로 웅크린 채 가위로 대충 치고, 빗으로 빗었다. 앞머리와 옆머리를 자르고 뒷머리는 감으로 잘랐다. 눈도 나쁜 데다가 거울을 두개 들고 들여다보기가 어려워서. 목주변까지 내려온 머리털은 아내에게 면도칼로 밀어다라고 해야지 하고 멈추었다. 그리고 내 뒤통수를 볼 수 없으니 밖엔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논산 훈련소 있을 때 생각이 난다. 입소한 뒤 처음 머리를 다시 자르는데 서로 동기끼리 잘랐다. 그랬더니 내 뒤통수는 완전히 계단처럼 층이 진 모양이다. 군대에 손거울이 있을 리 만무하니 내가 내 뒤통수를 볼 수는 없었다. 단지 보는 사람마다 웃으니 나도 웃을 수밖에. 아무튼 내무반장이 나를 세워 놓고 이렇게 동기 머리를 엉터리로 자르면 안된다고 했을 정도였다.
저녁에 아내가 오더니 오늘 이발했냐고 묻는다. 그래 내가 내 머리를 잘랐다니까 믿질 않는다. 중도 제 머리는 깎지 못한다는 데 어떻게 자기 머리를 깎느냐며 배꼽을 쥐고 웃는다. 그래도 머리가 깔끔해서 밖에서 자른줄 알았단다. 내 뒷머리를 보고서야 집에서 자른 줄 믿었다. 밖에서는 대개 주변부를 깨끗히 면도하는데 나는 그냥 있으니 내가 깎은 걸 믿는단다. 그냥 놔둬도 이쁘다니 나도 굳이 면도기로 밀어달라는 무서운 부탁을 하지는 않았다.
손쉬운 이발빗과 가위가 있으니 십분이면 까딱없다. 계속 보면 좀 웃기지만 신경쓰지 않으면 내 얼굴도 내가 모르는 법이다.
그렇지만 나도 은근히 남의 시선에 민감해 한다. 그제는 반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탔는데, 반바지가 좀 짧다. 서 있을 때는 무릎 바로 위까지 닿는 헐렁한 수영복 스타일의 옷인데, 집에서 입기에 한없이 편하다. 그래 이걸 외출복으로 하자 결심하고 입고 돌아다니니 여자들이 짧은 치마 처음 입은 것처럼 신경이 쓰였다. 자전거를 타니 무슨 사각팬티 입고 나돌아다니는 느낌이다.
왜 남자들 반바지는 이렇게 긴가? 남자들도 좀 짧은 반바지 많이들 입고 다니면 나 같은 아저씨도 더 편할 텐데.
물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으니, 나만 신경을 끄면 되는 일이다.
아무튼 사소한 것에 소심한 내 모습을 보며 나도 참 별 볼 일 없이 웃기는 놈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