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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적 꼼수로 잉태되었으면 어떠냐.
유산의 위기가 많았지만 용케 이겨내고 산달(産月)도 많이 어긴데다 난산 끝에 얻은
자식이므로 더욱 귀하지 않은가.
역사(歷史)에 길이 남을 웅대한 역사(役事) 새만금방조제 말이다.
분분한 찬반의 갈등에 지지부진했던 지난 일은 접어버리자.
땅덩이가 작은 나라가 바다막아서 거대한 옥토를 얻게 되었음에도 끊이지 않는 여진
(餘震)은 자기 시각에서 보면 모두 다 정당한 외눈박이들의 항변으로 이해하자.
열띤 토론과 승복의 페어 플레이(fair play), 대승적 양보에 미숙하기 때문으로.
다만, 4명의 대통령이 줏대 없이 휘둘리고 오락가락해 황금같은 세월과 천문학적인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것은 통탄할 일이지만.
1. 새만금방조제 개요
전라북도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 일원 바다를 막은 '새만금방조제'란 군산시 내초동
내초도~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사이의 33.9km를 말한다.
이로서 비응도와 야미도, 신시도, 가력도의 교통수단은 배에서 왕복 4차선의 도로를
달리는 차량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지도를 바꿔놓았으며 바다의 만리장성이라는 새만금방조제가 만들어낸
국토는 40.1ha이며 서울시 면적의 2/3 란다. (그러나, 담수호 11.8ha을 감하면 실제
토지는 서울시 크기의 1/2 이 채 되지 못되며 여의도의 140배, 뉴욕 맨하탄의 5배,
파리의 4배, 바르셀로나의 3배 운운은 검증이 필요할 듯)
이처럼 거대한 땅을 얻는 것이 용이한 일인가.
이 땅을 낳게 한, 최대 저폭464m, 최대 높이54m, 85리의 방조제는 418km 경부고속
도로(4차로)를 13m높이로 쌓을 만큼인 1억 2천 3백만m3의 토석과 5조2천억여원의
돈을 먹었다니까.
지지부진함으로서 장장 19년의 세월과 연인원 247만 4천여명, 각종중장비 93만 6천
여대가 투입되었는데 계획대로 마무리를 하려면 15조원이 더 필요하단다.
더구나, 최고기록의 책인 영국의 기네스북(Guinness book)에 등재되었다.
종래의 세계 최장 방조제(The Longest Sea Dike in the World)는 방조제의 왕국인
네덜랜드의 조이델제(Zuyder zee/zuider)였는데 이를 새만금방조제가 몰아낸 것.
그러니, 역사(歷史)적 역사(役事)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새만금방조제를 걷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차일피일 끝에 2011년 8월 17일 군산행 첫열차(05:40) 편으로
33.9km 새만금 방조제 답사길에 올랐다.
65일간의 반만리(2.000km) 길에 비하면 겨우 하루치에 불과하므로 조족지혈이겠다.
그러나, 방조제란 바다를 막은 긴 직선로이므로 녹록하지 않다는 것은 길을 걸어본
사람은 수긍할 것이다.
군산의 시발점 비응도를 떠난 것은 11시 30분.
우선 차량이 뛰어들 수 없도록 차로(車路)보다 월등히 높고 폭넓은 인도에 안도했다.
공차증(恐車症)으로 부터 해방되어 맘껏 생각하며 걸을 수 있으니까.
안전도 높은 중앙분리대와 갖길을 갖춘 왕복 4차선로가 한가한 것은 아직 덜 알려진
탓인가 평일이어서 인가.
매연공해가 없으므로 걷기에 그만인 길이다.
관광어항으로 변신한 비응도(飛鷹島)는 날고 있는(飛) 매(鷹)의 형상인 섬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즐비한 횟집들은 낮에는 별볼일 없는지 잠잠하고 이따금 방파제를 드나드는 어선이
하얀 파문을 그릴 뿐 검푸른 서해바다가 한가로웠다.
오히려, 미구에 잃게 될 터전(어부에게 육지는 사막이니까)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방조제 안쪽이 바삐 돌아갔다.
수평선을 반듯한 외줄타고 걷기 때문에 예상한 대로 정신적 피로에 육체가 압도되어
금방 지루함이 찾아들었다.
그래도, 해가리개 하나 없는 바닷길이지만 날씨가 우울해 걸을만 하여 다행이었으나
아직 아무 것도 먹지 않아서 처음 맞는 휴게소 '해넘이'에 들렀다.
일몰 감상이 뛰어난 곳이라 해넘이 인가.
전망대에 올라온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휴게소에 있는 사람들도 대형배낭을 멘 늙은
이를 기인 또는 이방인으로 보는가.
요리조리 살피기 바빴으니.
아직은 덜 시장한지 먹을 것 고르는데 실패하고 길을 떠났다.
바다를 가르는 도평선(道平線?) 끝의 띠엄띠엄 박혀있음에도 연봉 연릉처럼 보이는
거무스름한 산봉들은 정녕 명사십리(明沙十里) 선유낙조(仙遊落照) 평사낙안(平沙
落雁) 망주폭포(望主瀑布) 장자어화(壯子漁火) 월영단풍(月影丹楓) 삼도귀범(三島
歸帆) 무산십이봉(無山十二峰) 등 8경의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렸다.
새만금방조제의 야미도, 신시도와 연육교 공사중인 무녀도, 선유도 등 16개의 유인
도를 포함해 총 63개의 섬을 말하며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섬군이다.
저 아스라한 그림처럼 보이는 군도가 내 눈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원들의 그리움을 이해할 것 같으니...
다음 휴게소인 '돌고래쉼터'부터는 고군산군도가 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눈의 존재 이유는 뭐든 보는 것이며 뭔가를 봄으므로서 생기가 눈으로부터 온몸으로
순환되는지 십여km이상 걸었는데도 몸은 이전보다 더 가벼워지는 듯 했다.
바람에 날려왔는가 새들이 배설했는가.
방조제 석축 틈으로 돋아난 식물들의 강한 생명력에 감동되었는지 걸음이 빨라졌다.
첫 곡선지역을 돌았을 때 야미도 전망대가 손짓하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지금 보이는 것은 양쪽으로 지루하게 뻗은 방조제와 바다뿐이지만 제반 시설이 갖춰
지면 명품 전망대가 되겠다.
각 지자체에 불어닥친 웰빙 길 바람이 군산이라고 비켜가겠는가.
군산시의 길은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수풀이 우거진 길을 여유, 풍요, 자유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여행길’(군산신문에서 따옴)을 뜻하는 구불길(久茀)이란다.
군산 역전에서 본 구불길이 새만금방조제까지 이어졌나 옥도면 야미도 뒷산에서도
구불길 리본이 팔랑거리고 있다.(월령재를 넘어 대각산으로 이어지는 구불길 리본은
새마금길을 의미하는가 고군산길의 표지인가.)
야미도는 원래 밤(栗)이 많아 밤섬이었는데 일제의 지명 한자화 작업 때 밤의 한자
율(栗)을 야(夜)로 표기하는 오류를 범했으며 맛(味)을 가미해 야미도가 됐다는 것.
조사들(釣師)에게 지명도가 높은 곳이라 하나 낚시와 먼 거리에 있는 나의 관심사는
오토캠핑장을 비롯해 각종시설이 들어선다는 광대한 매립지다.
부디 이목구비가 훤칠한 옥동자가 태어나길 빌며 그 곳을 떠났다.
아득하던 고군산군도 연육교 공사현장, 신시배수갑문과 새만금방조제 준공 조형물,
마치 미사일기지처럼 보이던 대각산 전망대 등이 또렷해진다는 것은 신시도가 코앞
이며 방조제 33.9km의 반에 육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후 4시쯤에 아리울유람선이 정박중인 연육교 공사현장의 천막쉼터에 도착했다.
'아리울' 은 우리말 ‘아리(물)’ 와 ‘울(울타리, 터전)’ 의 합성어로 ‘물의 도시' 라는 뜻
이며 새만금방조제의 별칭이라고.
현장 책임자들로 보이는 이들과 담소중 이심전심이었나.
돌고래쉼터에서 먹은 달걀 3개가 오늘 식사량의 전부이기 때문에 시장한 참인 내게
그들은 시원한 음료수와 빵을 권했다.
그들의 신시도리 소개는 이 근처에 천막치려던 내 계획을 바꿔버릴 만큼 달콤했다.
가파른 월령재를 넘고 짧은 방조제 뚝도 걷고 논길 밭길, 아스라 하던 전망대가 있는
대각산 자락을 걸어 해질 녁에 신시도리 팔각 정자에 안착했다.
군산시 옥도면 신시도(新侍島)는 4.25㎢의 크기에 16.5㎞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으며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크고 전라북도에서는 2번째로 큰 섬이란다.
일제가 지명 한자화 작업때 '新侍'라 한 까닭은 분명치 않으나 신라의 석학 최치원이
이 섬에서 공부했는데 글읽는 소리가 바다건너 중국땅까지 들렸다는 설화가 있다나.
밤새 비가 내릴 듯 하여 마을 앞 해변에 있는 정자 안에 천막을 친 후 맞은편 식당에
식사를 주문했으나 퇴짜를 맞았다.
몇사람이냐 묻더니 외상(獨床) 사절이란다.
연육교 공사중인 대형 건설회사와 하청업체 만으로도 욕구가 차고 넘친다는 뜻인가.
백두대간 궤방령을 떠오르게 하는 문전박대의 매정한 인심이 섬까지 파고들다니.
멀찍이서 보고있던 한 영감이 수퍼에 가면 라면을 끓여줄것이라고 귀띔해 준대로 그
수퍼를 찾아가 라면을 먹었는데 이 바람잡이(?) 영감이 바로 그 수퍼의 주인이다.
밤에 만난 이 마을 중견 중년 한 분도 그것(사나워질 인심)을 걱정했다.
스스로 내게 다가와 말길을 튼 그는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군도연육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라고 했다.
그들에게는 세계 최대, 최장 등 거창한 접두사나 국토확장, 수자원보호, 수해상습지
해소 등 국가적 이익은 관심거리가 아니다.
기상조건에 민감하여 결항이 잦고 불편한 선박에서 편리한 전천후 차량으로 바뀌는
교통환경의 회기적 개선마저도 부정적이다.
연육교 개통과 함께 뭍으로부터 밀어닥칠 손님 맞기 위함인지 마을의 목좋은 집들은
개축, 보수(Remodeling)공사가 한창이지만 흉흉해질 섬마을 인심이 뻔하다는 것.
관광 특수에 의한 경제적 이익보다 대대로 이어오는 후한 인심의 변질을 염려한다.
중고등학교 재학시절 어머니에게 참고서가 필요하다고 하면 아무 대꾸 없이 밖으로
나가신 어머니는 얼마후 갯벌에서 캔 바지락 등 한 망태를 들고 오신단다.
책과 학용품 값이 되고도 남는 돈이 되는.
그 여의주 같은 터전이 사라져 가는데 환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냔다.
한데, 신시도리에 가기 위해 월령재를 넘으면 500여m의 방조제가 있다.
1970년대에 외부의 도움 없이 신시도리 주민들이 합심갈력하여 쌓았다는 방조제다.
당연히 갯벌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럴 줄 알면서도 자력으로 방조제를 구축했던 그들이다.
규모의 차이일뿐 동일한 역사인데"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남이 하면 스캔들"의 법칙
(?)에 순박하다는 이 섬마을 사람들도 순치되었는가.
주목할 것은 갯벌이 다시 형성됐다는 사실이다. <계 속>
군산역(1), 관광어항으로 변신한 비응도의 즐비한 횟집(2. 3), 33.9km방조제의 왕복 4차선 도로가 부안을 향하고 있다(4) 방조제에서 본 비응도(5. 7/양쪽 방파제에 수문장처럼 서있는 희고 붉은 두 등대는 비응도의 수호신?) 차로보다 월등히 높은 인도(4. 8/청홍색)는 달리는 자동차에 대한 안전도가 높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곧게 뻗은 왕복4차선 도로와 방조제 안쪽의 수변도로(1. 2/친화적인 중앙분리대와 차로보다 월등히 높은 인도가 맘에 든다)
방조제 상의 풍력발전소(1)와 돌고래쉼터(2 ~ 5)
야미도 뒷산 절개지(1)를 돌아서면 전망대(2 ~ 4) 새만금방조제로 이어지는 군산의 길 '구불길' 표지리본(5) 야미도 마을(6. 8/관광객 맞을 준비에 바쁜가 공사가 한창인데 먼지 소음 등으로 시비가 잦단다) 야미도의 부푼 꿈은 관광시설이 들어설 광대한 지역(7)에 기초하고 있다는데 글쎄!
야미도에서 바라본 신시배수갑문과 새만금방조제 준공조형물(1)과 고군산군도연육교 공사 현장(2)
아리울 유람선(3)과 연육교 공사 현장 휴게소(4) 신시도리로 가기 위해 신시광장길(1)을 따라 올라가 월영재(2)를 넘었다.
탈레스(Thales)는 물을 만물의 원질로 보았다. 사람의 몸은 70%가 물로 되었다. 물이 그만큼 중요하다. 월영재를 넘어가다가 만난 청년(3)은 갈증이 극한상황이었던가. 물을 호소하는 그에게 물을 줄 수 있어 참 다행. 신시도리 주민이 합심갈력하여 쌓았다는 방조제(4)와 대각산 전망대(5. 6) 신시도리 어항(7. 8)과 정자 안에 지은 내 집(9/천막)
첫댓글 저도 카페지기님의 뒤를 따르리다.